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소소한 꿀팁방송-100화 (100/191)
  • 100화. < ep23. 포고숄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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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맙소사...”

    던선생이 흘린 한 마디였지만 그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한 마디이었다.

    포고숄의 몬스터가 청수를 토해낸다.

    그건 그리 간단한 의미가 아니었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사냥방식을 통째로 바꿀 수도 있는 것이었다.

    청수를 토해낸다면 C급이니 B급이니 하는 몬스터들이 마력저항 기능을 잃어버리고 그 아래 급으로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사냥이 쉬워질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던선생은 처음과 완전히 달라진 눈빛으로 강서를 바라보았다.

    던선생뿐만이 아니었다. 그를 제외하고도 녹사장 위에 서있는 헌터란 헌터들은 모두 강서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을 향한 시선을 느낀 강서는 어깨를 한 번 으쓱여 보였다.

    그리고 여전히 그 아래서는 스토모스가 고통스러워하며 청수를 내뿜고 있었다.

    꾸르륵-

    주변의 스토모스들도 영향을 받았다. 강서의 주변에서 사냥을 하고 있던 헌터들은 징소리와 함께 자신이 사냥하던 스토모스가 괴성을 지르며 도망치는 것을 보았다.

    꾸에엑-

    그 스토모스들의 발밑이 청수로 흥건해지는 것은 작금의 상황을 보면 아마 착시는 아니리라.

    강서는 다시 던선생을 바라보고 훈수를(?)했다.

    “이 포고숄에 서식하는 몬스터들은 분명 청수의 수혜를 받지만 그건 달리말해 청수의 수혜를 받지 않으면 딱히 특별할 것도 없다는 의미죠.”

    강서는 스토모스 위에서 내려와 던선생을 향해 걸어갔다. 강서의 발걸음은 더없이 여유로웠다.

    그리고 여유로운 만큼 완전한 무방비 상태였지만, 스토모스의 촉수는 강서를 맞추지 못했다.

    마치 신입병사의 눈먼 칼처럼 사방을 향해 목표 없이 휘둘러지고 있었던 것.

    던선생 앞에 무사히 당도한 강서는 눈짓을 하며 그가 왼손에 들고 있던 화염검 집에서 화염검을 뽑아내었다.

    “방금 제가 한 건 멀미와 비슷한 이치입니다. 포고숄의 몬스터들은 특정 주파수의 진동에 이렇게 청수를 뿜어냅니다. 균형기관이 완전히 진탕이 되어버리는 원리죠. 그리고 이렇게 몸속에 있던 청수를 다 뿜어내고 나서야……."

    강서의 말과 함께 스토모스를 향해 던져진 화염검.

    정확한 궤적으로 날아든 그 검은 조금 전 던 선생이 했던 공격이 장난이었다는 것처럼 쑤욱 하고 빨려 들어갔다.

    던 선생의 온힘을 다한 찌르기가 한 뼘을 간신히 들어간 것과 너무도 대비되는 결과. 사람들의 눈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이렇게 마법이 제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화르륵-

    뒤이어 피어오르는 화염검의 마법효과. 그건 청수에 의해 약화된 불길이 아니었다.

    검에 인챈트 되어있는 마법그대로. 100%의 출력을 보였다.

    -…….맙소사.

    -지금 저게 말이 포고숄 몬스터들이 다 저렇다는 거잖아.

    -아니 근데 몬스터들을 두드린 게 몇 번인데 이 방법이 한 번도 발견이 안됐다고?

    강서는 다시 천천히 스토모스를 향해 걸어갔다.

    스토모스의 촉수는 더 이상 휘둘러지지 않았다. 그저 축 늘어진 채로 스토모스의 죽음을 알릴뿐.

    “물론, 그 진동수 찾는 게 힘들긴 합니다. 몬스터 종류별로 다르기도 하고 진동수뿐만이 아니라 강한 몬스터일수록 파형이나 다른 조건도 맞추어야 돼서 웬만큼 연습하지 않는 이상은 맞추기 어렵죠…….그래서 감이 중요합니다.”

    푸헉-

    스토모스의 몸에서 검을 뽑아내고, 방패를 벗겨낸 강서는 그 두 가지 무구를 다시 던 선생에게 건네었다.

    완전히 넋이 나간 표정을 짓고 있던 던 선생은 물건을 건네는 강서를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그...저 어떻...”

    “열심히 연습해서 한번 감을 잡기만 하면 던선생님도 훨씬 나으실 겁니다.”

    강서는 그렇게 이야기 하고 다시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났다.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던선생 만이 아니었다. 녹사장(綠沙場)에 서서 강서의 경악스러운 행위를 본 사람들은 모두 던선생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직 눈치 빠른 몇몇 사람들만이. 슬며시 자신의 아공간 포켓에서 방패를 꺼내들 뿐이었다.

    ***

    갑작스러운 대썰물 사태가 벌어진 뒤 포고숄에서 가장 소란스러워진 곳은 신전의 포탈근처에 위치한 <이계공략소>였다.

    이계공략소는 헌터협회가 공인한 이계공략단 관련 사무를 처리하는 장소.

    쉽게 말해 이계에서 일어나는 헌터와 관련된 모든 일에 중재, 관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기관이었다.

    헌터협회는 공략단장인 공진호에게 공략소를 비롯한 이계공략의 모든 업무와 관련 사무들을 일임했고, 공진호는 공략소에서 일을 맡아볼 사람들로 자신의 길드원들을 택했다.

    때문에 이계공략소는 공공기관이라는 차이점은 있었지만 사실상 길잡이 제2의 길드하우스나 다름없는 분위기였다.

    “무슨 일입니까!”

    “공략 단장님으로부터 별다른 언질은 없었나요?”

    “포고숄의 주민들은 공략단을 믿어도 되는 것입니까? 크라켄을 잡는데 성공했다면 이런 갑작스러운 대썰물 현상은 설명이 되지 않는 데요.”

    “혹시 공략단이 거짓말을 한 것입니까?”

    공략소 창밖으로 끊임없이 들려오는 여러 문책(問責)소리에 짜증이 차오른 갈진혁은 창문을 열고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드르륵-

    “아, 좀 알아서 공식 발표할 테니까 기다리라고!!”

    턱-

    자신의 할 말만 하고 문을 닫아버린 갈진혁.

    공략소는 옆으로는 넓었지만 위로는 그리 높지 않은 5층짜리 건물. 최고층에서 한 말이었지만 짜증에 찬 갈진혁의 목소리는 모든 사람이 듣기에 충분한 크기였다.

    "..."

    그의 막무가내 식 대응에 갈진혁의 옆에 서있던 다른 길잡이 간부가 입을 벌리며 침묵했다.

    “이게 돌격대장이야 잡일 처리반이야.”

    갈진혁은 머리를 긁적이며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는 퀘스트창과 집무실 책상위의 달력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갈진혁이 있는 위치는 이계공략소 최고층에 위치한 간부회의실. 공략소에서 근무하는 길잡이소속 헌터들 중에서도 최상위 간부들만 출입할 수 있는 곳이었다.

    갈진혁을 제외한 다른 헌터들도 다수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 모두 길드원 중에서도 부 팀장급 이상의 중책을 맞고 있는 이들.

    이 자리에 위치하는 모든 인물들이 B급 이상의 투급을 가지고 있었다.

    “아 아무리 맞춰 봐도 단장이 얘기 했던 것보다 하루 빨라. 아이씨 이 아저씨 안 틀릴 거라면서 바로 틀려먹네.”

    갈진혁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미리 언질은 있었지만 확실히 하루가 차이가 나긴 하는 군...”

    그런 갈진혁의 모습을 보며 자리에 앉아 있던 헌터들 중 유일한 A급 헌터 한진모가 중얼거렸다.

    사실 대썰물이 다시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이 자리에 있는 길잡이의 간부들 모두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외부로는 극비였지만 공략단장이자 길드 길잡이의 수장인 ‘공진호’가 이들에게 미리 언급을 해두었기 때문.

    그래서 대 썰물이 일어난 것 자체는 이들에게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날짜였다.

    공진호가 이야기 한 것보다 하루가 빨랐던 것. 정확히 그 부분이 예상 밖이었다.

    “그런데 대장...하루 빨라져도 공략단이 돌아오는 건 5일 뒤니까. 문제는 없지 않아? 내 기억으로는....녹사장, 흑사장, 백사장, 적사장 이렇게 4번이 순서대로 썰물이 일어날 거고 총 일주일이 걸릴 테니까. 시간 맞춰 오겠는데.”

    한 간부가 조심스럽게 갈진혁에게 괜찮다는 말을 하려 하자, 옆에 있던 선배 간부가 손바닥으로 그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아이고 화상아, A급들은 다 공략단으로 나가있는데 백사장은 뭐 아무나 막아? 니가 막을래?”

    “...아니 형 그래도.”

    “지금 하루 당겨진 것 자체가 예측 못했던 일이야. 하루 더 당겨진다고 이상하지도 않아. 그리고 공략단이 약속한 날짜는 어디까지나 약속이지 팩트일 수가 없잖아. 변수는 여기보다 거기가 더 많을 텐데.”

    그 정도는 평소에 주고받는 장난이기도 했고, 또 갈진혁도 그 말에 동감하기 때문에 딱히 둘의 투덕거림을 말리지는 않았다.

    그저 다시 한 번 눈을 감으며 중얼거릴 뿐이었다.

    “아...판 지랄 났네. 진짜.”

    그렇게 눈을 감고 잠시 생각하던 갈진혁은 머릿속으로 해야할 일을 정리했다.

    고민한다고 원인을 찾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라면,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뒤. 일단 할 수 있는 일들을 정리정돈 해야 했다.

    “일단 우리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자 형들.”

    “최악의 상황이라면...”

    “6일 뒤에 공략단도 안 오고, 백사장도 클리어하지 못한 상황.”

    "..."

    갈진혁의 말에 간부들이 침묵했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퀘스트에 나와 있는 대로 <대밀물>의 크기는 지령을 얼마나 클리어 했느냐에 달려있었다.

    녹사장을 클리어 하지 못한다면 가장 거대한 <대 밀물>이 그리고 녹사장을 클리어 한뒤 흑사장(黑沙場)을 클리어 못하면 그 다음으로 거대한 <대 밀물>이 오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세 번째 페이즈인 백사장을 클리어 하지 못한 상황만 가정하더라도 그 피해규모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거대했다.

    어쩌면 이 해안도시 포고숄이 재건이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질지도 몰랐다.

    본래 크라켄을 잡기 이전에도 1년에 한 번씩 <대 썰물>과 <대 밀물>이 있었고 공략단의 3년간 공략시도동안 ‘백사장’도 클리어하지 못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갈진혁은 침묵 가운데서 사람들을 지휘했다.

    “일단 진모형이 공략소 대표 인장 들고 <포고숄 귀족회의>소집해줘. 아마 몇 명 빼고는 이미 귀족회의실에 모여 있을 거야.”

    “그러지.”

    “그리고 양성이 형은 녹사장 쪽 상황 좀 확인해줘. 어차피 우리가 안 나서도 녹사장정도는 어떻게 되겠지만 그건 또 모르는 일이니까. 음...지금이 30분 정도 됐으니까. 대충 8시간까지 진척이 없다 싶으면 알려줘. 길드원들 데려가서 직접 해결해도 좋고.”

    “오케이.”

    “그리고 다희누나가...”

    한 명 한 명 할 일을 읊어준 갈진혁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일단은...’

    이미 계획이 틀어져 버린 이상 얼마나 더 틀어질 지는 예상할 수 없었다. 지금처럼 일단 눈에 보이는 과제를 다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적제 적소에 알맞게 사람들을 배치하고 일을 맡기는 모습을 보며 아까 뒤통수를 후려친 간부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갈진혁을 쳐다 보았다.

    “너 오늘 안 왔으면 어쩔 뻔 했냐? 그 ‘판다’라는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는 나도 알지만, 차원까지 넘어가며 지 자리 내팽개치고 가는 놈이 어디있어 평소에는 안 그러는 놈이 꼭 그 사람 기일 때 마다.....응?”

    말을 하던 간부가 순간 의문성을 내었다. 허공을 쳐다보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간부.

    “뭐..?"

    “30분 만에...”

    “야 진혁아 이게...30분이면 너무 빠른 거 아니냐...?”

    그리고 그것은 다른 사람들도 똑같았다. 간부회의실에 자리한 모두가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쳐다보고 있었다.

    [녹사장(綠沙場)의 주인 <마수: 나르가스>가 처치되었습니다 ]

    [퀘스트의 ‘제1지령’이 클리어 되었습니다.]

    [퀘스트 수행 공헌도에 따라 개인보상이 수여됩니다.]

    이유는 간단했다.

    녹사장의 주인을 처치하라던 제1지령이 1시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클리어 되었던 것.

    심상치 않은 표정을 지은 갈진혁이 A급 헌터 한진모를 바라보며 물었다.

    “형 지금 포고숄에 있는 헌터 중에 공략단에 참여했던 A급 누구 있지?”

    “몇 명 없다. 나랑, 상아탑 총무. 그리고 아잔 길드장이랑, 라이언하트 4팀장 정도 있겠군. 나머진 요양하고 있거나 아발론에서 귀족 놀이 하고 있을 거야.”

    “...말이 안되는데.”

    몇 명 없는 A급 헌터. 그들이 알아서 힘을 모아 스쿼드 구성을 한 뒤 마수를 빠르게 처리했다는 가정은 상식적으로도 말이 안 되었다.

    설사 그렇게 했다 치더라도 이렇게 갑작스러운 상황에 30분은 너무 빨랐다.

    “양성이형 아까 녹사장으로 보낸 헌터한테 전화 연결 좀.”

    “그래.”

    양성이라 불린 간부는 스마트 워치를 조작해서 녹사장으로 보낸 헌터에게 전화를 연결했다.

    꽝-꽈광-

    깽깡-

    "..."

    전화 연결에 성공하자 들려오는 난데없는 소리들.

    갈진혁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건 분명 소음(驅音)이라 부를 만한 소리들이었다. 단순 듣기에 전혀 쾌(快)한 감정이 들지 않는 소리.

    갈진혁은 불쾌한 소리에 대한 물음을 뒤로하고 6팀장 구양성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물어보라는 의미였다.

    “6팀장 구양성이다. 녹사장이 클리어 된 건 확인했나?”

    “아, 네..넵!”

    “생각보다 너무 빨라서. 물어볼 게 좀 있어가지고 걸었어. 일단 A급 헌터 누구 왔어?”

    “어...일단 확인된 바로는 아직 A급이 전장에 참여하지는 않았습니다. 해안 외곽 쪽은 확인해봐야겠지만...아마 아닐 겁니다.”

    "..."

    A급이 아직 참여하지 않았다. 갈진혁과 구양성의 눈이 마주쳤다. 작금의 상황을 이해하는 게 한층 더 어려워 졌기 때문.

    30분도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었는데 A급이 참여하지도 않았다. 그건 이미 불가능이라 여겨졌던 작금의 일을 미궁속으로 다시 한 번 던져넣는 소식이었다.

    ‘대체...’

    갈진혁은 머릿속으로 가능한 상황을 따져보려 했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A급도 없이 30분 만에 클리어한다는 상황이 아무리 따져보아도 불가능한 영역이었던 것.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특이사항으로는 녹사장에 나와 있는 헌터들이 좀 이상행동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상행동...?”

    “네, 혹시 들리시는 지 모르겠는데 지금 막 꽹과리 같은 소리 혹시 들리시나요?”

    “어, 그러고 보니까 이거 무슨 소리냐 아까부터 시끄러워 죽겠는데.”

    “그게...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들 자기 방패를 검으로 내려치고 있는데 이게 그...거의 한 명도 빠짐없이..."

    갈진혁의 눈이 감겼다. 생각을 포기하기로 한 것. 도저히 아귀를 맞출수가 없을 정도의 난잡함이었다.

    “뱉어으라이? 이런 이상한 추임새도 넣으면서 그러네요.”

    .

    .

    .

    .

    그렇게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사람들의 입에서 ‘녹사장 풍물놀이남’이라는 칭호가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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