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 ep22. 공백의 5년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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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르릉-
"...?"
상아탑 밖에서 들려온 소리는 어디서나 날법한 그런 평범한 소리가 아니었다.
천지가 울린다고 이야기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굉음.
게다가 그 소리가 특이했다. 소리의 크기로 어림잡기로는 적어도 뭔가 터지는 소리거나 부숴지는 소리여야 했는데 작금의 것은 그렇지 않았다.
마치 화장실 물이 빠지는 배수음(排水音)과 같은 소리.
총무는 그 소리를 들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모르는 소리가 아니었기 때문.
이미 한 번 경험해 본 적 있는 소리였다. 그렇기에 더욱 총무는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대 썰물>이 왜 갑자기...”
총무는 집무실 창가로 다가가 블라인드를 쳤다. 본래라면 푸른색으로 가득 찬 <포고숄>의 바다가 보여야 했다.
하지만 그곳에 더 이상 바다는 존재하지 않았다.
단순히 썰물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이상한 배경이 펼쳐져 있었다.
방금까지 차있던 바닷물이 모두 빠져 나가고 녹색 해초와 기암괴석들이 바다가 있던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더 독특한 것은 그 아래 깔린 모래 마저도 해초와 같은 녹 빛을 띠고 있다는 것.
빠져나간 물의 양도 상당했다. 어림잡아도 세로로만 수 킬로미터는 되어 보이는 공간이 모두 해초(海草)의 숲이 되어 있었다.
총무는 그곳을 유심히 노려보다가 한참이 흐른 후에야 아차 싶었는지 강서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이곳 포고숄은 섬 도시입니다. 신전의 말로는 아발론과 다르게 이세계(異世界)라고 하더군요. 아예 지구와는 별개의 세계라고요. 그리고 지금 나타난 현상은 이 세계의 특징입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알고 있습니다.”
강서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앞을 가리켜 보이며 말했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빈 허공을 가리킨 것.
하지만 총무는 바로 의미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의 눈앞에도 상태창이 하나 떠올랐기 때문.
[신전으로부터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지역: 해안도시 포고숄]
[퀘스트내용: 대밀물과 대썰물의 원인이던 <신수:크라켄>을 처치했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대썰물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이후 찾아올 대밀물로부터 해안도시 포고숄을 지키십시오.]
[퀘스트를 위한 첫 번째 지령이 활성화 됩니다.]
*
[제1지령: 녹사장(綠沙場)을 점령하라.]
[내용: 썰물이 일어나며 드러난 초록빛 모래사장의 주인을 처치하십시오. ]
[보상: 개인보상, 제2지령]
[남은시간: 24:00:00]
[※지령을 성공할 때마다 <대밀물>의 위력이 약화됩니다.]
*
물론 편의를 위해 그렇게 말한 것이지, 강서는 상태창이 나타나고 나서야 현상을 알아차린 것이 아니었다.
강서는 원래 알고 있었다.
이 곳, 해안도시 포고숄도. 강서의 과거 고향들 중 하나였으니까.
***
"안녕하십니까. 큐튜브 시청자 여러분 언제나 안전하고 꿀팁 가득한 헌팅방송을 지향하는 트프리치TV bj던선생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보여드릴 곳은~ 해안도시 포고숄입니다!”
-던~~~~하!
-드디어 포고숄로 넘어온 건가. 열일했네 던쌤
전문 헌터방송인 던선생. 그는 최근 투급이 C급에 달하게 되었다.
그래서 새롭게 해안도시 포고숄을 찾을 수 있었던 것.
제1문인 ‘제국 아발론’이 누구에게나 열린 사냥터였다면 제2문‘해안도시 포고숄’은 조금 달랐다. 최소 C급이 되어야 포고숄로 진입할 수 있었다.
아발론 제국에 존재하는 몬스터들 보다 한 층 더 강력한 종들이 존재했고, 심지어 마수가 종종 나타났기 때문.
오랜 시간 C급이라는 장벽에 막혀 고전했던 만큼 포고숄을 바라보는 던선생의 눈에는 조금의 아련함이 있었다.
"그러게요. 저도 감회가 새롭네요. 아발론에서 투급을 올리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리고 이내 다시 분위기를 바꾸더니. 던선생은 시청자들에게 주변이 보이도록 화면을 비추었다.
“여러분들도 아시겠지만...이곳이 바로 포고숄입니다.”
해안도시라는 말이 아깝지 않게 포고숄의 주변은 모두 푸른 빛 바다로 이루어져 있었다.
동쪽으로 휜 모양의 초승달모양 섬도시 포고숄.
“제가 여러분들께 보여드리는 공간은 <서해안(海舊岸)>입니다. 포고숄을 이루고 있는 거대한 두 면(面)중 하나죠. 이렇게 안쪽으로 움푹 들어와 있는 지형인거 보이시죠? 반대쪽인 동쪽에는 깎아지른 <해식절벽>들이 자리하고 있죠.”
-ㅇㅇㅇ알지
-던쌤만 모름;; C급 따리;;
“후후. 방송 켜기 전에 여러분들이 모를만한 정보들 미리 잔뜩 챙겨놓았습니다. 이따가 놀라지나 마시라고요.”
던선생은 자신 있게 웃어 보였다. 던선생 방송의 특징은 바로 안정감 있는 공략법과 광활한 양의 정보들. 이번에도 상세한 사전조사를 거쳤기 때문에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던선생은 우선 걸음을 옮겨 해안 가까이로 다가갔다. 서해안(西海岸)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늘어서 있었다.
“이곳은 서해안(西海岸) 중에서도 가장 중앙이 되는 위치입니다. 신전의 포탈이 있는 곳과 가장 가까운 곳이라 찾는 사람이 많기도 하죠."
‘B급 헌터 김덕팔’님이 ‘10,000원’을 후원!
[그래서, 오늘 썰물 언제임?]
시청자의 도네이션에서 무언가를 캐치한 던선생은 그 도네이션이 화면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고정을 시켜놓고 화면 한쪽으로 치워두었다.
“여러분 이거 보이시죠? 안다 안다 하시더니. 바로 나타나시잖아요. 모르는 분. 포고숄의 썰물 시간대는 매일 똑같습니다. 지금부터 정확히 31분 후, 2시에 썰물이 시작되죠.”
-박-제
-ㅋㅋㅋㅋㅋ덕팔이 어서오고
-덕팔좌 B급 헌터?ㅋㅋㅋㅋ
“썰물이 없는 동안, 포고숄은 몬스터가 없는 평화로운 도시입니다. 하지만 <썰물>이 시작되면 해안이 조금씩 드러나고 몬스터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죠.”
썰물이 되면 몬스터가 나타난다는 던선생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해안가에 자리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헌터들이었다.
간혹 조금은 다름 차림새의 사람.
이곳 포고숄의 원주민처럼 보이는 사람도 존재하기는 했지만, 그들조차도 행색에서 전문적으로 무기를 다루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결국 사냥을 위해 모인 자리.
해안도시 포고숄에서 <썰물>이 가지는 의미는 몬스터의 등장이자 <사냥시작>이었다.
“많이들 아시겠지만 공략단에서 크라켄을 잡기 전에는 이런 평범한 썰물 말고도 <대썰물>이라는 현상이 1년에 한 번씩 일어났다고 하는데요.”
-???: 네 이놈 어디 C급 따리가 킹략단을 언급하느냐
-응 지금 없어~
-공략단 썰을 풀다니 킹선생;;
“곧 있으면 시작될 일반적인 썰물이 대략 1km가량의 육지를 드러내고, 적당한 양의 몬스터들이 나타났다면, <대썰물>이 있을 때는 조금 달랐다고 합니다.”
던선생은 애용하는 검을 한 자루 꺼내어 모래사장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
던선생은 초승달 모양으로 포고숄을 그려 보였다.
"대썰물은 총 일주일에 걸쳐서 나타나는데 대썰물이 완전히 이루어졌을 때는, 이 초승달 모양의 섬이 원모양이 될 정도로 바다가 드러났다고 합니다. 단계별로 드러나는 데 첫 번째는 해초의 숲으로 이루어졌다 해서 녹사....”
던선생이 말이 채 마치기전에 해안가를 가득 메우는 엄청난 굉음이 울렸다.
꾸르릉-
굉음과 함께 그림을 그리던 던선생의 손이 멈칫했다.
던선생이 고개를 들지 않아도 주변의 상황이 선히 보일 정도로 웅성웅성해졌다.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 그리고 두 눈을 크게 뜨고 놀라는 사람.
“야 저거 봐봐...”
“설마...”
“갑자기? 아니 도대체 왜, 게다가 공략단으로 S급이랑 A급도 싹 다 빠졌을 때...”
던선생은 아래로 향한 고개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던선생이 고개를 들어 바라본 곳에는 <해초의 숲>이 자리하고 있었다.
실제로 본 적은 한번도 없었지만, 공략단이 남긴 기록을 읽은 것만으로도 던선생은 확신할 수 있었다.
“녹사장...”
던선생이 흘리는 그 한마디와 함께 사람들의 눈앞에 상태창이 떠올랐다.
상태창의 내용은 간단했다. 24시간 안에 저 해초의 숲 안에 있는 녹사장의 주인을 처치해라.
그렇지 않으면, 대밀물이라는 재앙이 찾아올 것이다.
분명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지만 복잡하지는 않았다.
해야할 일은 명확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헌터들은 최소 C급을 달성한 헌터들.
구를 대로 구른 베테랑 헌터들이었다.
머리가 판단을 내리기 전에 이미 몸이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대밀물>의 재앙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알고 있었으니. 그리고 그건 던선생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던선생은 입도 함께 움직일 뿐.
“제 앞에 떠오른 상태창이 저 눈앞의 것이 녹사장이라고 증명하고 있는데요, 혹시 시청자분들 중 포고숄에 계신 분은 신전에서 보낸 퀘스트가 보일 겁니다. 공략단에서 수행했던 ‘수행과제’와 굉장히 비슷합니다.”
-뭐야 이거 무슨 상황이야.
-긴급 상황? 갑자기?
-녹사장이 왜 튀어나오는 겨 크라켄 잡아서 이제 대밀물 대썰물 사라졌다며.
“저도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일어난 상황이지만, 현재 신전 측에서도 인지하고 있는 것 같고, 수행했던 수행과제와는 별개로 일어나는 일 같습니다.”
던선생은 그렇게 말하면서 해초의 숲속에서 움직이는 물체를 보았다.
녹빛 이끼로 덮인 바위덩어리가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던선생은 공략단의 공략일지와 사진에서 그것을 본 적이 있었다.
공략단은 실시간 중계를 하거나 영상자료를 남기지는 않았지만 해당하는 정보들에 대해서는 상세히 기록해 두었다. 사냥에 있어서는 충분한 참고가 될 정도로 말이다.
“스토모스”
그 때문에 던선생은 보는 순간 그것의 이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공략단에서 C급으로 규정한 몬스터입니다. 이 몬스터는 ‘대썰물’이 아니더라도 그냥 ‘썰물’에서도 종종 출몰하는 몬스터죠. 단단한 표피가 특징인 몬스터고 생각보다-”
던선생의 말이 끝까지 이어지기 전에 갑자기 던선생의 앞으로 검은색이 맴도는 녹색촉수 하나가 날아들었다. 스토모스의 중앙 위쪽에서 붙어 쏘아진 촉수였다.
던선생은 오른쪽으로 진각을 밟아 직선의 공격을 피해내었다.
“...빠르네요.”
중얼거린 던선생은 촉수가 거둬지기 전에 스토모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콰악-
검자루를 오른손으로 바짝 올려 잡은 던선생은 스토모스의 표피를 직선으로 한 번 찔렀다. 조금 들어가던 검날은 한 뼘을 채 들어가지 못하고 스토모스의 몸에 박혀버렸다.
그리고 박히는 소리와 동시에 회수된 스토모스의 촉수가 던선생 가슴 어림으로 날아들었다.
“강체.”
던선생의 중얼거림과 함께 피어오른 붉은 빛이 던선생의 전신을 감쌌다.
[<스킬:강체>를 발동합니다.]
[강체: 마력을 이용해 몸의 근력과 내구도를 일정량 향상시킵니다.]
그리고 던선생은 허리춤에 달아놓은 검집을 들어 가슴위치까지 올려붙였다. 그리고 정확히 그곳을-
“크윽-"
촉수가 강타했다.
뽑히는 검과 함께 3M가량을 날아간 던선생 하지만 마치 모든 것이 예상 내라는 듯, 던선생의 입가에는 웃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시청자들도 그것을 아는 듯 채팅창의 분위기는 그렇게 무겁지 않았다.
-던쌤 괜찮은 거임?
-같은 C급끼리 좀 친하게 지내지;;
-???: ? 내가 더 아파....
“네 여기까지 스토모스의 공격형태를 보여드렸고요. 이제 사냥방법 들어갑니다.”
던선생은 그렇게 말하며 아공간페이퍼를 열어 또 다른 검을 꺼내었다.
투박한 모양의 붉은 검. 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그 검을 알아볼 수 있었다.
-화염 인챈트된 검이네.
-저거 그사람이 만든 건가보다 A급 누구더라
-가르송 대장장이 각성자.
<가르송>의 특유의 문양이 있었기 때문. 대장장이 클래스의 각성자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하나였다.
던선생은 그검을 쥐고 다시 한번 스토모스를 향해 쇄도했다.
동시에 불어넣어지는 마력과 함께 검에서 화염이 피어올랐다. 던선생은 그대로 촉수를 한번 더 피하고 스토모스의 몸에 검을 찔러넣었다.
조금 전과 크게 다를 것 없는 공격이었지만 결과가 달랐다. 아까보다 2배는 더 검이 들어간 것.
그리고 아까의 공격에는 일말의 움직임도 없던 스토모스가 화염에 고통을 느끼는 듯 괴상한 울음 소리를 내었다.
끼이잉!
끼잉!
-오오 불에는 먹히는 구나.
-바위처럼 보이는 데 바위가 아닌가 보네.
-역시 철-저 던선생. 칭찬해~
그렇게 던선생은 스토모스의 몸 위로 올라가 몇 번의 찌르기를 더 수행해냈다.
“자 이렇게 하면 스토모스를...”
그렇게 던선생의 머릿속에 사냥이 거의 끝나간다는 생각이 들 때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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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니에요.”
그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현실 훈수충이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