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소소한 꿀팁방송-95화 (95/191)

95화. < ep22. 공백의 5년 (2) >

=======================

제약이라는 이름 하에 알 수 없는 공간에 갖혀있는 동안.

강서가 생각한 것보다 5년이라는 시간은 수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분명 강서가 정신을 차린 곳은 아발론 제국의 북부였다.

하지만 강서가 광장에서 경험한 것은 제국에 있어서는 안 되는 <현대의 문물>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현대의 지구와 아발론 제국이 수행과제가 클리어 되고 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교류를 하고 있었던 것.

아공간을 통한 물건 운반이 가능했던 것이다.

철 지난 헤드셋과 mp3, 달러의 통용, 그리고 카드기까지.

일반인이 포탈을 이용할 순 없지만 그런 외적인 요소의 영향은 일반인에게도 미쳤다.

“그러니까...1문과 2문과 3문이 있고 헌터라면 자유자제로 넘나들 수 있다는 거죠?”

“그렇지. 지구가 본부. 그리고 신전이 열어준 <차원 문>이 3개인 거지. 제1문이 여기, 아발론. 제2문이 <포고숄>, 그리고 제3문이 <아단>.”

강서의 낭비를(?) 막은 갈색머리의 소년, 갈진혁이 말했다.

“근데 아단은 아무나 못 들어가. 아직 수행과제가 안 끝났거든.”

“진짜로 몰랐던 거야? 형 헌터질 하면서 신문 한 번 안 봤어?”

“...네. 뭐..최근 5년간은요.”

우스갯소리로 건넨 말에 진짜로 고개를 끄덕이는 강서의 진지함(?)을 보며 갈진혁은 어깨를 으쓱였다.

“뭐...그럴 수도 있지. 또 궁금한 거 있으면 스마트 워치 받고나서 이야기 하라고.”

갈진혁은 스마트워치가 없는 강서를 이끌고 광장 근처의 헌터관리국으로 이동했다.

헌터의 방문이 적은 지역이기는 했지만 엄연한 사냥지역의 최 근방 도시였기 때문에 헌터관리국이 존재했던 것이다.

쾅쾅-

갈진혁이 별다른 붙임말 없이 문을 두드렸다.

안쪽에서 반응이 없자 갈진혁은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그의 발길질은 망설임이 없었다. 마치 수십 번도 더 겪어온 일을 행하듯.

“아이씨, 누구야…”

테이블에 발을 올린 채 모자를 얼굴에 덮고 있던 한 인사가 모자를 들어 보이며 그렇게 말했다.

가라앉은 목소리와 얼굴의 붉은 자국에서 그가 방금 전까지 잠에 젖어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남자는 짜증나는 표정으로 일어나더니 이내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짓고 숨을 들이키며 의자에서 떨어졌다.

“그냥 대충 필요한 것만 말하...?!!”

쿠당탕-

그리고 이내 다시 넘어진 의사를 세우고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 갈진혁?”

“일 좀 하세요. 아저씨. 북부 모서리라 꿀만 빨고 있는 건 알겠다만 헌터관리국에서 헌터는 받아야지.”

“왜 이런 객지에...”

“나는 볼 일 없고. 이쪽 잘생긴 형이.”

갈진혁의 말에 강서는 문득 자신이 가면을 쓰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강서와 계속해서 함께했던 판다가면이 사라지고 없었던 것이다.

물론 크게 상관이 있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이쪽이 좀 더 차분한 느낌이 있었지만...아무래도 어색한 느낌이 있는 건 사실이었다.

“스마트 워치를 좀 구하려고 왔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관리국의 직원은 갈진혁의 눈치를 보며 재빠르게 안쪽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잠시 부스럭 거리더니 작은 상자를 하나 들고 다시 나왔다.

“여기 있습니다.”

강서는 상자를 받아들며 카드를 내밀었다. 수혁의 무한도 블랙카드.

“이게 될지 모르겠네요. 좀 오래된 카드라.”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물건 자체의 대금은 따로 발생하지 않고 운송 수수료만 발생하게 됩니다.”

띠릭!

다행히도 강서의 카드는 무리없이 영수증을 뽑아내었다.

관리국의 직원은 카드에 그려져 있는 마크가 어디서 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허겁지겁 카드를 돌려주었다.

강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스마트 워치가 담긴 상자를 열었다.

외형은 조금 달라졌지만 그래도 낯설지 않은 모양의 스마트 워치.

강서는 그것을 꺼내어 손목에 찼다.

그러자 스마트 워치가 자동으로 켜지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스마트 워치 가동.]

[생체 정보를 기반으로 등록 정보를 확인합니다.]

[...]

스마트 워치가 가동되는 것을 보며 갈진혁이 고개를 갸우뚱 했다.

갈진혁도 망가트려 본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의 경우 정보 확인이 이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기 때문.

스마트워치는 수 초간 정보를 확인한다는 말을 재차 띄우기만 하였다.

“원래 이렇게 오래 걸리는 게 아닌데...”

갈중혁이 중얼거리기 무섭게 울리는 알림음.

띠링!

그리고 나타난 정보에 헌터관리국 담당자는 의문성을 낼 수밖에 없었다. 떠서는 안 되는 문장이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신규등록이 필요합니다.]

***

“야 인마! 불그성 관리국 보고서 검토해보라고 한 게 언젠데 아직까지도 말이 없어!”

“...죄송합니다.”

헌터협회 헌터관리국 중앙본부. 여느 직장과 다를 바 없는 갈굼이 일어나고 있었다.

“내가 임마, 니가 안 해서 내가 봤다 보고서. 내가 괜히 시킨 줄 알아? 이거...이거, 세장만 넘겨봐도 꼬라지가 보이니까 시킨 거 아니야!!!”

"..."

헌터관리국 중앙본부에서 하는 일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곳곳에 퍼져있는 헌터관리국들을 관리하는 일.

그 중에서도 이곳은 제1문. 그러니까 아발론 제국 북부의 관리국을 담당한 팀의 사무실이었다.

“작년 9월. 특이사항 없음. 필요추가 품목 없음. 사냥 통계. 핀 불 217마리, 아림문 338마리. 자, 10월. 특이사항 없음. 필요추가 품목 없음. 사냥통계. 핀불 222마리, 아림문 217마리. 그리고 11월. 다시 핀불 217마리.“

"..."

툭-

상사로 보이는 인물이 갈굼을 받는 사원에게 보고서를 내던지듯 넘겼다.

“이 새끼는 217이랑 뭐 있냐? 하운디암은 다 뒤졌고? 이 꼬라지를 그대로 검토도 안하고 올려 보내니까 너 같으면 화가 나 안나.”

"..."

“그리고 방문헌터 명단은 언제까지 보류야. 안보여? 북부 불그 성 담당 이 새끼 이거 지 혼자 있다고 관리국 잠귀 놓고 누워서 퍼 자고 있다니까?”

“죄송합니다!”

“죄송할 게 아니라 너도 빨리 쳐 가서 일하라고!!”

사원은 울그락불그락해진 얼굴의 상사를 향해 고개를 꾸벅이고 자신의 자리로 가서 앉았다.

엄청난 농도의 갈굼질을 받은 만큼 기분이 나쁠 법도 했지만, 사원의 얼굴은 의외로 덤덤했다.

‘이제 못해먹겠네.’

이유는 간단했다.

불그성의 담당자가 일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그도 알고 있었기 때문.

그럼에도 그것을 묵인 한 것은 아발론 제국 북부 불그성의 담당에게 묵인하는 대가로 일정량의 돈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리에 앉아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지에 대한 고민을 하던 사원의 컴퓨터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뭐야 이거.”

사원은 떠오른 메시지를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떠오른 메시지의 출처는 방금 대화의 화두였던 불그성의 헌터관리국이었다. 하지만 의아한 표정을 지은 게 그것 때문은 아니었다.

떠오른 메시지의 내용이 <신규등록신청>이었기 때문.

신규등록 신청은 새로 각성한 헌터가 스마트 워치를 처음 착용할 때 신청하는 것이었다.

<새로 각성한 헌터>가 헌터관리국에 방문하면 본부로 신규등록신청을 하는 것이 헌터관리국의 직무 중 하나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현대의 지구, 그러니까 차원문을 넘어가지 않은 관리국에 한해서 적용되는 이야기.

차원문 너머의 관리국에서는 얼토당토 않는 이야기였다.

애초에 스마트워치에 등록도 안 된 헌터가 이계로 넘어갈 수도 없을뿐더러, 만약 각성하자마자 넘어갔다고 하더라도 뭐하러 북부 끄트머리까지 가서 신규 등록을 하겠는가?

‘이 아저씨 돈이 궁했나.’

본부의 사원은 뭔가 꿍꿍이가 있다 싶어 정보를 열어보았다.

‘이름은 이강서, 투급은...’

“응? 이게 뭔 개소리야.”

B. 기본정보에 적혀있는 투급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5년 전, 아발론 제국으로 가는 문이 3티어 이하의 헌터에게도 활짝 열리면서 헌터들의 본격적인 호황기가 열리기 시작했다.

정보의 확장, 아발론 제국과의 교류 등등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었지만 가장 크게 작용한 것은 역시 기회의 차이였다.

줄을 서서 던전으로 들어가야 했던 이전과는 다르게 원하는 때 몬스터를 찾아 나설 수 있었다.

종류는 더 단순해졌지만, 때문에 더욱 사냥이 쉬웠고 개체수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성 외곽만 넘어가도 넘쳐나는 것이 몬스터였으니까.

그리고 이것은 하위 티어의 헌터들에게 더욱 더 크게 작용했다.

본래 던전에서 사냥을 할 때에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고, 자본기반이 적은 만큼 실패할 때마다 기회자체가 점점 줄어들었다.

그런데 사냥기회 자체가 활짝 열려버리니 급속도로 성장을 하기 시작한 것. 그리고 열린 기회는 첫 번째 문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열리는 순서대로 수준이 더 높기는 했지만 문이 더 있었던 것.

첫 번째 문, 제국 아발론.

두 번째 문, 해안도시 포고숄.

그리고 세 번째 문, 마법대륙 아단.

세문을 이용하며 헌터들이 대 호황기를 맞은 것이었다.

물론 수행과제가 아직 클리어 되지 않은 세 번째 문은 아직 공략단에게만 허락되어 있었지만.

그렇게 수준자체가 수직상승한 헌터들에게 기존의 티어기반 등급체계는 의미가 없어졌다.

5티어의 헌터보다 3티어 헌터가 더 많아졌다는 한마디 누구나 어떤 상황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무용지물이 된 티어기반 등급체계를 개혁하여 생겨난 것이 바로<투급>.

신승아의 연구실에서 제시된 이 <투급>은, 기존의 시험을 봐 승급하는 티어제의 번거로움을 삭제해 버리고 현장에서 직접 헌터의 능력을 측정한다는 장점이 있었다.

체내에 잔류한 마력의 흔적과 새로 개발된 근세포 속 활동기억 추출기법 등을 기반으로 전투능력을 측정해 S부터 F까지 등급을 나누는 이 투급이 현재 헌터들의 수준을 나누는 기준이었다.

문제는 바로 거기 있었다.

모든 신규 각성 헌터는 보통 F급에 속했다. 간혹 재능을 타고난 자들이 E급에 속했으나 그것 조차도 한해에 한두 명 나올까 말까한 정도의 확률.

게다가 B라는 등급은 단순히 재능이 있다고 해서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재능이 있는 자가 헌터계에서 살아남아 베테랑의 경지에 오를 정도의 시간이 흘러서야 B라는 투급에 오를 수 있었다.

모든 헌터들 중에서도 B급 이상의 헌터는 5%가 채 되지 않았으니까.

신규 등록 헌터가 B라는 것은 단순히 말도 안 되는 일 수준이 아니라 천지가 개벽할 이야기인 것이다.

물론 이런 높은 등급의 인물이 신규 등록을 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다.

잠적용 위장신분거래 라던가. 음지에서 암약하는 비밀 암살단이라던가.

‘근데 내가 받은 건 보고서 값이고. 이건 사이즈가 너무 크...’

지금까지 받은 푼돈으로 넘기기에는 사이즈가 너무 컸다. 이런 건 보통 전문적으로 맡아서 하는 업체가 있었다.

자신 같은 프리랜서(?)가 혼자 커버 치기에는 사이즈가 너무 크다.

그렇게 생각하며 거부 버튼을 누르려던 본부사원의 손가락이 멈칫했다.

“아니지...”

아발론 북부 불그성의 담당자는 일하는 것 조차 귀찮아서 자신과 거래를 한 인물이었다.

리스크를 감수하고 이런 큰 건을 땡기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그리고 그 이유는...지금 자신이 하는 생각과 다르지 않으리라.

‘어차피 짤리게 된다면...크게 한 번 당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어차피 올해 상반기 까지만 하려고 했고.

‘얼마나 등 처먹을지는 모르겠지만...같이 콩밥 먹게 되기 싫은 이상 나도 좀 떼 줘야 할 거요.’

딸깍-

***

“오, 됐네요.”

강서의 스마트 워치가 제 화면을 찾으며 등록이 완료되었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이쪽도 B급...”

헌터관리국의 직원이 강서를 보며 턱이 빠질 듯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도 B급이라는 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수치인지 알고 있었던 것.

“신규 등록부터...”

게다가 그 신규 등록. 말할 것도 없었다.

사실 신규등록이 아니라. 실종상태였던 강서가 행정상 사망처리를 받으며, 개혁된 헌터 데이터베이스에서 정보가 말소된 것이었지만.

강서 자신도 모르는 그 사실을 누가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감사합니다.”

강서는 관리국의 직원에게 고개를 꾸벅이며 건물을 나섰다.

갈진혁은 나갈 채비를 마친 후 ‘먼저 밖에 나가 있겠다.’고 이야기한 뒤 이미 건물 밖으로 나가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정확히 강서의 몸이 건물을 나서 3초가 지난 순간이었다.

강서의 목으로 칼이 들어온 것은.

"..."

칼을 들이밀고 있는 사람은 갈진혁이었다. 갈진혁은 능숙하게 담배 한 대를 문 채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누구냐, 넌.”

‘형’하면서 부르던 그 소년이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갈진혁의 눈은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적대(敵對)라고 하기에도 뭐한 얼굴이었다. 어떤 감정도 보이지 않는 무표정 그 자체였으니까.

'...'

그리고 그 때 아닌 선문답에 강서가 선택한 답은.

“일단은 방송인인 것 같습니다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