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 ep21. 아키두스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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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북단.
북 설야(雪野)의 눈요네스 성.
그 지하 깊숙한 곳에서 몇 명의 헌터들이 모여 수군거리고 있었다.
그들의 발치에는 수개의 검에 등을 찔린 채 축 늘어져 있는 눈요네스의 시체가 있었다.
“그럴 겁니다. 확실히 보통 놈은 아니네요. 움직이지 못하는 데도 기세가... 이런 놈은 A급 던전에서도 본 적이 없는데.”
어둑한 그림자 아래서 노골적으로 표정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은 눈요네스를 바라보며 흡족한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 보다 한 발 앞서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남부성을 맡은 헌터들 중에서도 수위에 드는 헌터들이었다. 아쉽게 선발대에 참여하지 못한 자들.
“그런데 괜찮겠죠? 그 리치왕이라는 작자를 잡는 데 이 녀석이 중요하다고 하던데...”
“어허! 원래 리치왕의 수하였던 놈의 말을 믿는 겁니까? 그리고 뭐 방법이 하나만 있겠소? 방법이야 찾으면 되는 거지 그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수상하다는 겁니다.”
사람들의 반응을 우려하는 이도 있기는 했지만 그 우려는 오래가지 않았다.
아직까지 리치왕을 잡으라는 지령이 내려온 것도 아니었고, 기본적으로 이들은 아키두스를 믿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그리고 일단은 뭐 이렇게 잡혔다는 것만 뜨지 누가 잡았는지는 안 뜨지 않았습니까? 우리끼리만 입조심하면 아마 그런 걱정 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군단장:눈요네스?가 처치되었습니다.]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인지 군단장 눈요네스가 잡혔다는 사실은 모든 헌터들의 상태창에 떴지만 누가 잡았는지는 표시되지 않았다.
불리한 여론에 대응할 수 있는 명분이 충분했고, 자신들이 잡았다는 물증도 없었다.
그렇게 여러 사람들이 모여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정작 이 상황을 먼저 주도했다고 할 수 있는 남부 중앙성 ‘드미트리’의 로아 길드장은 그들로부터 몸을 돌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한 헌터가 그에게 말했다.
"로아 길드장! 이거 뭐 부산물이나 이런 거는 필요 없는 겁니까? 당신이 주도했으니 먼저 선택할 권리를...”
그런 그를 보고 한 헌터가 외쳤다. 먼저 의견을 제안한 사람이니 먼저 권리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예상 외로, 로아 길드장의 반응은 차가웠다.
“필요 없네. 내가 이런 부산물 같은 것에 눈이 멀어 이 녀석을 잡은 줄 아나? 어디까지나 내일 있을 전쟁에서 아발론 제국을 조금이라도 구하기 위해서라네.”
그래도 완전히 떳떳하게 행한 일이 아니어서 어느 정도 양심의 가책은 있었는데, 먼저 상황을 주도한 로아 길드장이 그렇게 나오자, 헌터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쾌(快)하지 못한 감정이 얼굴에 스몄다.
“필요 없는 거면 필요 없는 거지. 거 말을 굳이 그렇게...”
무리의 분위기가 묘하게 어그러지고, 로아길드장이 한 마디를 남기며 자리를 떴다.
“우리가 아무리 신전의 과제를 받고 보상을 받는 다고 하더라도 아발론 제국의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구원자>네. 가장 중요한 것을 잊지 말게나.”
턱-
지하 문이 닫히는 소리.
문 안쪽에서 헌터들의 불만 섞인 목소리들이 작게나마 새어나왔다.
“지가 성인군자야 뭐야, 피차 남이 다 잡아 놓은 거 뺐어놓고 이제 와서...”
“아니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나는 원래 껄끄러웠는데 저작자가 하자고 하자고 꼬셔가지고 한거요. 거 참 경우없는 사람...”
자신을 노골적으로 욕하는 내용들이었지만, 그 모든 소리가 귀에 들리고 있었지만, 로아 길드장은 그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기 때문.
"흐흐흐흐."
로아길드장은 자리에서 나와 문이 확실히 닫혔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난 뒤 자신의 상태창을 열어보았다.
[개인과제: <군단장:눈요네스>의 살해.]
[보상: <아티팩트: 역병의 반지>]
[주의! 해당 내용은 발설할 수 없습니다. 발설 시 기억과 함께 신전의 성흔이 사라집니다.]
***
“뭔 소리야 눈요네스가 갑자기 왜 죽어?”
아키두스가 하린이 전한 소식에 군단장 이미트립스를 묶으려던 손을 멈추고 되물었다.
하린은 시청자의 채팅과 함께 떠오른 자신의 상태창을 보았다.
[< 군단장:눈요네스>가 처치되었습니다.]
눈요네스의 죽음. 상태창이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었다.
“그 새끼가 갑자기 왜 죽어. 아니 밧줄에서 풀려난 것도 아니고 죽었다는 게 무슨 개소리야...”
“...그게 저도 자세히는...”
아키두스는 하린의 대답을 들으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그야말로 낭패였다.
눈요네스가 죽었다는 것은, 리치왕을 잡을 수 없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징크스가 아니라면 이 대륙에 신격의 존재를 이길만한 힘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이런 시벌탱...”
하린의 표정을 보며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는지, 아키두스는 뭐라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아키두스를 보며 강서는 침묵했다.
‘...<규칙>.’
강서는 당황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 알고 있었다고 하는 게 더 올바르리라.
꼭 눈요네스가 아니더라도, 군단장 한 명쯤이 죽어나갈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규칙>.
<규칙>은 강서가 명명한 일종의 <필연적인 방해물>이었다.
강서가 아키두스의 생을 살았을 적.
30번이 넘도록 회차를 진행하며 리치왕을 잡는다는 수행과제를 클리어 하지 못했었다.
군단장들을 잡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강서가 6명의 군단장을 모두 제압한 회차만 해도 10번이 넘었다. 하지만 그 때마다 번번이 강서가 실패했던 이유가 있었다.
6명의 군단장을 모아나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군단장 중 하나가 죽어나간 것이다.
자살조차할 수 없는 철저한 대비를 하는 와중에도 필연적으로 그런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 필연적인 사건을 강서가 <규칙>이라 부른 것.
어느 생(生)에나 있는 것은 아니었고, 특별히 <규칙>이 있는 생(生)이 있었다.
아키두스의 생이 <규칙>을 겪는 첫 번째 생(生)이었던 것이다. 아마 아키두스는 아직 규칙의 존재를 모르고 있으리라.
<규칙>은 어떤 방법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강서는 망연자실해하는 아키두스를 보며 입을 열었다.
“아키두스, 다음 곳으로 이동하죠.”
“소용없어...형씨들 일봐. 난 눈요네스나 진짜로 죽었는지 확인하러 갈게.”
“죽었습니다.”
강서는 아키두스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단언했다. 눈요네스는 죽었노라고.
그 말에 울컥했는지 아키두스는 강서에게 쏘아붙였다.
“그러니까 가라고! 눈요네스가 뒤졌으면 다 의미 없어. 이제 리치왕은 잡을 수 없는 몸이야. 군단장 다 모아도 소용이 없다고. 시발 다시해야 된다고...”
"..."
“도와준 건 고마워. 진심이야. 근데 의미가 없어졌어. 형씨.”
눈요네스가 죽은데서 오는 탈력감이 상당했는지 아키두스는 그렇게 말하하고 나서 몸을 돌렸다.
오른손에 이미트립스를 들고 터덜터덜 눈요네스의 성 쪽으로 몸을 돌려 걸어갔다.
몇걸음을 가던 아키두스는 잠시 멈칫하더니 뒤를 돌아보며 읊조렸다.
“또 보자고. 또 볼 수 있으면.”
그런 아키두스를 보며 강서는 스마트 워치를 조작했다. 실시간으로 내보내고 있던 방송을 끈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천천히 아키두스의 발자국을 뒤따라가기 시작했다.
“아저씨 어디가요...?”
강서는 하린의 물음에 대답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점점 걸음이 빨라지던 강서는 아키두스의 어깨에 손을 올려 강하게 잡았다.
그리고 반대 손으로는 아키두스가 들고 있던 이미트립스의 오른 팔을 들었다.
“눈요네스의 손톱, 이미트립스의 단검.”
이미트립스의 손에는 그를 상징하는 흑색 검신의 단검이 잡혀있었다. 근육이 경직되며 꽉 쥔 손이 그대로 검을 붙잡고 있던 것.
“형씨 지금 뭐...”
푸욱-
강서는 이미트립스의 단검으로 아키두스의 허벅지를 찔렀다.
“가죠. 다음 군단장.”
그 순간. 강서와 눈이 마주친 아키두스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
리치왕의 성문 앞.
"...잘가쇼. 고맙수다.”
아키두스가 하린과 강서를 보며 인사를 했다. 아키두스의 오른 손에는 온 몸이 경직된 채 묶여있는 5명의 군단장이 있었다. 아키두스는 강서에게 자그마한 돌 하나를 건네었다.
"그 보석은 내 마나를 담아놓은 거요. 나랑 다니면서도 봤겠지만, 이래봬도 책사인지라 무조건적인 명령권을 가지고 있수다. 그래서 지금 여기 이러고 있을 수도 있는 거고.”
아키두스는 강서를 쳐다보았다.
강서 또한 아키두스를 쳐다보았다.
아키두스의 눈에는 아쉬움이. 강서의 눈에는 아련함이 서려있었다.
“형씨 거...연명(延命)에 대해서는 어떻게 안거요? 내가 진짜 생각보다 오래 살았는데 형씨같은 사람 처음 봐.”
“그냥 어쩌다보니 알게 되었습니다.”
강서는 아키두스의 질문에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그 모습을 질렸다는 듯 쳐다보며 아키두스는 다시 한 번 물었다.
“아니 그래, 연명(延命)에 대해서 안 건 그렇다 쳐도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는 거요. 불쌍하지도 않아?”
하지만 강서는 아키두스의 말에 어깨를 한 번 으쓱일 뿐이었다.
아키두스는 강서를 보며 고개를 가로젓고 몸을 돌려 리치왕의 성안으로 향했다.
“갑니다. 우리 쉬티안 발라리아의 폐하 저승길 순탄하게 갈수 있도록 기도나 해주쇼”
그가 성 안으로 들어가자 강서는 하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린님.”
“네?”
“혹시 스마트워치로 방송 좀 켜 줄 수 있나요?”
강서의 말에 하린이 의아해 했다.
강서에게도 스마트워치가 있고, 방송을 켤 권한이 있는데 자신에게 굳이 물어오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
“굳이 왜 저한테...아저씨도 스마트워치 있잖아요?”
“아, 그게…”
강서가 팔목을 들어보였다. 강서의 팔목을 본 하린은 눈살을 찌푸렸다.
“...응? 왜 없어요? 잃어버린 거에요?”
“잃어버린 건 아니고...이미트립스의 몸에 묶어 뒀거든요. 카메라 켜놓았고 영상공유 하린님 미리 걸로 해두었으니 켜기만 하면 될 거에요.”
강서는 리치왕의 성을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다.
하린이 강서의 말대로 방송을 켜자 실제 강서의 스마트 워치를 통해 아키두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화면 속에는 아키두스만 있는 게 아니었다. 부글부글 끓는 녹색마나로 휩싸인 왕좌(王座)에 앉은 리치왕의 모습도 함께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강서가 중얼거렸다.
“안녕하세요. 판다입니다.”
하린이 방송을 켜자 시청자들에게 인사를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에 뒤이어서 강서는-
“제1망록시기. 신조 가루다가 지구를 점령하다가 사라지고, 절대자가 사라진 세계는 잠시 평화로웠습니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
“리치왕이라는 새로운 신격(神格)의 존재가 나타난 것입니다. 리치왕은 세계를 정복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보셨다시피 아발론제국만이 남아있었습니다. 그때 리치왕을 홀로 막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중계를 시작했다.
“아키두스, 이건...그의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