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소소한 꿀팁방송-91화 (91/191)
  • 91화. < ep21. 아키두스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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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요네스는 생전 처음 겪는 상황에 당혹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니 당혹감이라는 감정 자체가 처음이리라.

    리치왕의 군단장으로 만들어진 눈요네스가 인간에게 물린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뿐더러 원래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이...네...”

    눈요네스는 자신의 목을 물고 있는 강서를 바라보며 소리를 뱉었지만 의미있는 단어가 만들어 지지는 못했다. 그저 소리에 불과한 미 완성의 몇 음절.

    눈요네스는 이내 검은 빛으로 변한 손톱을 휘둘러 강서를 떨어뜨렸다.

    분명 <마나제약>을 풀고 이전보다 빨라졌어야 할 공격속도였지만, 눈요네스의 공격은 마나제약을 풀기 전보다 느려져 있었다.

    단순히 당혹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몸 상태가 이전과 달리 어딘가 이상했기 때문.

    “네 이놈...”

    눈요네스는 강서가 자신에게서 떨어지고 나서야 제대로 된 단어를 뱉을 수 있었다.

    말끝을 늘이는 그의 목소리에는 당혹감과 함께 난감한 감정 몇 자락이 어우러져 있었다.

    리치왕의 마나를 상징하는 녹색 빛이 손끝에서 사라져 있었고 그 녹색 빛 대신에 검은색의 불길한 마력이 감돌고 있었다.

    그 마력은 눈요네스의 맘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운신을 돕고 힘을 키우는 리치왕의 마나와 다르게 검은 마력은 눈요네스의 신진대사를 방해하며 점점 몸을 잠식하고 있었다.

    동시에 무거워지는 팔다리. 눈요네스는 손을 쥐어보았다. 뇌에서 보내는 신호와 실제 몸이 움직이는데 괴리가 존재했다.

    “무슨 짓을 한 거냐...”

    눈요네스가 강서를 노려보며 읊조렸다. 그리고 뒤에 있는 아키두스도 강서에게 말했다.

    “그러게 형씨...도대체 뭔 짓을 한 거야. 내가 그래도 오래 살았는데 살다살다 그런 어이 터지는 역관광은 처음 봤어.”

    강서는 아키두스를 잠시 바라보고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상태창을 눈으로 훑었다.

    [현저한 양의 악성마나가 체내에서 감지됩니다.]

    [죽음의 기운이 온몸을 잠식합니다 ]

    [체내에서 악성마나가 모두 배출될 때까지 <디버프: 시체화>의 영향을 받습니다.]

    [남은시간 29:33]

    강서가 눈요네스를 한입(?) 하기 전에 먹은 것은 <끝이끼>환단이었다. 델타에게 주었던 알약형태의 끝이끼 농축액.

    마나를 주입함으로써 전염되는 리치왕의 마나를 보고 <시체화>의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지 궁금했기 때문에 직접 시행해 본 것이었다.

    그리고 강서의 생각대로 그것은 효과를 발휘했다.

    [<군단장:눈요네스>에게 현저한 양의 악성마나가 전이됩니다.]

    [<군단장:눈요네스>의 신체능력이 90%저하됩니다.]

    [<군단장:눈요네스>의 마나순환이 정지됩니다.]

    [<군단장:눈요네스>가 더 이상 마나를 사용하지 못합니다.]

    [<군단장:눈요네스>의 스킬이 봉인됩니다.]

    [<전이>를 통해 현저한 양의 마나가 배출됩니다. 시간에 걸쳐 몸 상태가 회복 됩니다.]

    [남은시간 00:43]

    강서의 몸에 자리 잡았던 악성마나가 눈요네스에게로 전이되면서 강서의 몸에 있던 상당량의 악성마나가 모두 배출 되고 눈요네스가 시체화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흠...'

    리치왕의 마나처럼 무한히 퍼져나가는 형태가 아니라 말 그대로 <전이>되는 형태를 가졌던 것이다.

    “혹시나 해서 한 번 해봤어요. 디버프 마법을 거셨다고 생각하면 돼요.”

    “...형씨 혹시 리치왕 수하는 아니지? 이계에도 리치왕이 있다던가...”

    강서의 별거 아니라는 듯한 말투에 아키두스는 고개를 도리질 치며 천천히 다가왔다.

    눈요네스의 몸은 점점 스러지고 있었다. 말 그대로 설야 한 가운데서 점점 내려앉고 있었다.

    어떻게든 다리에 힘을 주어 버티려는 것 같았지만 <디버프:시체화>는 신체능력 90%를 저하시키며 근섬유를 경직시켰다. 통제를 벗어난 몸을 가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키두스는 가까이 다가가 눈요네스를 바라보며 입을 벌렸다. 그 눈요네스가 자신의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강서가 말한 ‘디버프 마법’ 때문에.

    ‘디버프 마법이라니...’

    아키두스는 눈요네스 몸 전체에 서린 죽음의 기운을 보며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눈요네스가 쓰러졌다는 사실 그자체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가 더 놀란 것은 <마법>의 언급이었다.

    리치왕이 등장하게 되며 <디아판대륙>전체의 마나 자체가 오염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리치왕이 본격적으로 점령 전을 시작하기 전 가장 먼저 한 일이 그것이었으니까.

    리치왕의 점령전은 아무런 계획 없이 단순히 시행된 것이 아니었다. 철저히 리치왕의 계획 하에 시행된 것

    대륙의 마나를 오염시켜, 가장 난감한 적인 마법사들을 미리 묶어 놓은 다음에 직접적인 전쟁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군단장들이 리치왕의 군대를 이끌고 여러 왕국을 멸망시키고 아발론 제국만을 남겨둔 지금 디아판 대륙 전역의 마나에는 리치왕의 마나가 감돌고 있었다.

    더 이상 정순한 마나의 기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공간이 되었다.

    그래서 마법사들이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고 말이다. 마법을 사용할 때마다 이물질이 끼어 술식을 흐트러트렸으니.

    물론 그것이 그만한 영향력을 발생시키는 일이니만큼 그만한 대가를 치르었겠지만 말이다.

    아키두스는 강서를 한 번 바라보았다.

    ‘이계에서의 마력이기 때문에 먹히는 건가? 아니면 술식이 달라서...’

    고민을 하던 아키두스의 귀에 그르르-하고 눈요네스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이럴 때가 아니지. 형씨 이거 지속시간이 얼마나 돼?”

    “일단은 24시간인데...”

    24시간이라고 말하려던 강서의 머릿속에 델타의 했던 말이 떠올랐다. 델타는 분명 24시간이 넘었는데도 계속 재생되었다고 이야기 했었다.

    ‘눈요네스에게 적용될지는 모르는 부분이니...’

    “일단 24시간입니다.”

    “흠...우선 좋아. 형씨 그거 더 있어?”

    “네, 6개 정도 있네요.”

    강서는 품에서 끝이끼 환단을 꺼내어 아키두스에게 보여주었다. 아키두스는 그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키두스의 머릿속에서 새로운 계획이 짜여졌다. 물론 강서의 방법이 있다는 전제 하에 된 계획이었다. 그의 도움이 없다면 시행 불가능한 계획.

    그렇게 아키두스가 강서를 향해 고개를 숙이려 할 때.

    "...!!"

    “끄아아아!”

    쥐어짜는 소리와 함께 눈요네스의 신형이 갑자기 움직였다. 강서와 아키두스가 있는 방향으로 다가오던 하린이 지척에 도달했을 때였다.

    저항할 수 없는 상황에 고민하던 눈요네스가 마지막 발악으로 하린을 노린 것이었다. 이유는 당연하게도 그녀가 가장 약했기 때문.

    빠른 속도는 아니었지만, 가볍게 피할만큼 느린 속도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거리가 너무 가까웠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끔찍한 타이밍이었다.

    하린이 검집으로 손을 움직였을 때에는 이미 눈요네스의 손이 하린의 코앞에 도달해 있었다.

    촤악-

    피륙이 꿰뚫리는 소리와 함께 새하얀 눈 위에 핏자국이 낭자했다.

    “아이 씨바...”

    아키두스의 나지막한 욕지거리와 함께 눈요네스의 몸이 엎어졌다.

    “따가워...이 개새는 마지막까지 맘에 안 드네.”

    아키두스는 눈요네스의 머리를 한 번 걷어차며 중얼거렸다.

    큰 상처는 아니었다. 아키두스가 눈요네스의 손을 옆으로 밀어 막은 것이었다.

    다급하게 막은 만큼 손바닥에 구멍이 하나 뚫리긴 했지만 치명적인 상처는 아니었다.

    손바닥에서 피를 흘리는 아키두스를 보며 하린이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아키두스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표정으로 강서를 향해 턱짓을 했다.

    “감사해요. 저 때문에...”

    “됐수다. 고마우면 저 형씨 좀 꼬셔주슈. 나 좀 도와달라고.”

    그렇게 둘러대는 아키두스의 손바닥을 강서는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

    “로아 길드장. 괜찮은 겁니까?”

    아발론 제국의 남부 중앙성 ‘드미트리’.

    신전의 인장을 가지고 있는 몇 명의 헌터들이 모여 있었다.

    포탈을 타고 넘어온 헌터들 중에서도 고위의 헌터들이었다. 각자 남부에 성 하나씩을 지휘하기로 되어있는 헌터들.

    “괜찮지 그럼. 군단장을 처치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그놈 꿍꿍이를 그대로 믿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하긴...감옥에 갇혀있던 그 아키두스라는 리치왕의 수하 놈을 뭘 보고 믿는지는 저도 모르겠네요.”

    “애초에 그 판다라는 인간 자체가 난 별로 마음에 들지 않네. 얼마 되지도 않은 애송이 헌터가 특이해서 인기 좀 얻었다고 뻗대는 게."

    그 헌터들 가운데에는 지도가 한 장 놓여 있었다.

    “그것보다도 문제인 건 그 리치왕이라는 놈은 대륙 북단에 있고 우리는 남부성을 맡아보고 있다는 것이지. 이게 무슨 전력 낭비인가?”

    “그건 그렇습니다. 단 한 번의 전적도 없는 데 말이지요.”

    그들의 근본적인 불만은 그것이었다.

    리치왕의 영토는 북쪽 설야(雪野)였고, 이들이 미리 알아본 결과 리치왕은 한 번도 바다나 상공을 통한 점령전을 실시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북쪽에서부터 군대를 이끌고 내려올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다.

    심지어 선발대원들이 제1지령을 수행했을 때에도 육지를 통한 공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부의 성을 맡아보게 된 것이 불만이었던 것이다.

    제1지령에 대한 설명을 들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개인 보상은 개인이 얼마나 지령수행에 기여하는가에 달려있다. 그에 따라 차등적으로 개인보상을 받는다. 개인 보상은 해당 세계의 수행과제가 끝나면 치르고, 신전에서 받을 수 있다.’

    개인보상.

    그것 때문이었다.

    남부에서 활동하는 만큼 개인보상이 적을 것이라 기대되기 때문에.

    물론 이들이 이것에 대해서 항의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전력낭비가 아니냐. 우리도 최전선에서 싸우게 해달라 하며 말이다.

    하지만 헌터협회에서 정한 선발대장 리차드 4세는 단호했다.

    ‘언제 무슨 일이 발생하지 못하는 법이고, 날아 올 수도 있는 일인데 병력을 한쪽으로 집중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리차드는 그들의 말을 일부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그렇게 불만이 쌓여있는 상태에서 남부 성을 맡은 헌터들이 <판다>의 소식을 전해 듣게 된 것.

    그가 북측 리치왕의 성에 파견되어 있으며 리치왕의 군단장 중 한 명을 잡았으나 그 성에 숨겨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이다.

    “어쨌든, 남부성은 문제가 생길 일이 없으니, 우리가 그곳에 가서 그 <눈요네스>라는 군단장을 처치하는 것이 지령을 클리어하는 데에도, 아발론 제국에도 도움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흐음."

    “그렇죠.”

    “솔직히 우리가 여기까지 와서 헌터협회의 말을 들을 필요가 있습니까? 부탁을 한 건 신전인데 말이죠.”

    “맞습니다! 신전이 부탁한 것은 지령뿐이죠. 그에 대해서는 헌터협회가 왈가왈부할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점점 남부성에 속한 헌터들의 의견이 모이는 것을 시작으로, 아키두스의 계획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

    “아키두스 네 이놈...어디서 이런 괴상한 술수를...”

    또 한명의 군단장 ‘이미트립스’가 눈 위에 누운 채 아키두스를 바라보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읊조렸다.

    “그러게 나도 좀 신기해.”

    아키두스는 그런 그를 미리 준비한 밧줄로 묶고 있었다. 눈요네스의 뒤를 이어 아키두스가 찾은 군단장이었다.

    이미트립스 역시 강서의 한입 식사거리가 되어 <디버프: 시체화>에 걸리게 되었다.

    하린은 눈요네스 때에 경험한 게 있어서 인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을 했다.

    “근데요...리치왕을 잡는 데에 이 사람...군단장들이 왜 필요한 거에요?”

    그건 하린만의 질문이 아니었다. 실시간으로 모든 장면을 보고 있던 시청자들의 머릿속에도 자리 잡은 질문이었다.

    “좋은 질문!”

    아키두스는 하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대답했다.

    “원래 아무나 알려주는 거 아닌데 형씨들이니까 알려줄게.”

    이미 수많은 사람들에게 생중계되고 있었지만 그것을 알지 못하는 아키두스는 정말 엄청난 비밀을 그들에게만 알려준다는 듯 말을 끌었다.

    아키두스는 밧줄을 한번 더 묶으며 입을 열었다.

    “징크스라는 게 있어. 자신이 쌓지 않은, 예외적인 힘을 사용할 때 얻게 되는 제약이지.”

    “알런지 모르겠지만, 마수들은 모두 이 징크스라는 것을 가지고 있고, 신격을 얻은 존재들 중에서도 종종 이 징크스라는 것을 가진 존재들이 있지.”

    아키두스의 말을 들으며 하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전에 강서를 통해 한 번 들어본 적이 있는 내용이었다.

    “자기가 쌓은 것까지는 제약을 하지 못하지만, 뭐 어쨌든 그런 한 가닥하는 개새들이 가진 약점이 바로 <징크스>야.”

    “그럼 그 리치왕의 징크스가 이 군단장분들이랑 관련이 있는 거에요?”

    “그렇지. 리치왕의 징크스는 <힘을 빌려준 직속수하 6명>에게 찔리는 거야.”

    “아...그래서...”

    아키두스는 다 묶은 이미트립스의 밧줄을 다시 한 번 당겨서 점검해보며 하린에게 말했다.

    “그런 거지. 원래라면 소집을 걸어서 하려고 했지만...변수는 그쪽이 더 많아서. 이 개새들이 말을 좀 안 들어야지 아주."

    "..."

    "..."

    아키두스의 말이 끝나자 사위가 적막해졌다. 설야에 불어오는 북풍소리 만이 적막함에 덮였다.

    아키두스는 두 사람을 차례로 쳐다보았다.

    수심에 빠진 표정이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아키두스가 물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두 사람은 입을 열지 못했다.

    “응? 왜들 그래?”

    시청자의 채팅을 통해 알게된 충격적인 제보를 아키두스에게 어떻게 전달해야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 아재...눈요네스가 죽었다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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