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 ep21. 아키두스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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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 길잡이의 길드장 처음으로 공식석상에 출현 예고]
[베일에 싸여있던 4대 길드 <길잡이> 이제 밝혀지나?]
[혼란한 시국에 새로운 세력, 기존의 체계를 무너뜨릴 가능성 높아]
제1망록시기로 넘어간 <신전의 사자>들이 제2지령을 준비하느라 정신없는 사이. 현대의 지구에서도 나름대로의 변혁의 바람이 일어나고 있었다.
4대 길드 <길잡이>.
항시 베일에 쌓여있던 그 <길잡이>가 내일 오후10시 충격적이고 중요한 새로운 사실을 발표한다며 기자회견을 잡아놓았던 것.
처음 있는 일이었다. 길드 길잡이의 길드장이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사람들의 관심이 모였다.
판다라는 신비로운 인물이 나타나며 조금 잠잠해졌지만, 그 전까지는 <길잡이 길드장>의 정체 자체가 모든 커뮤니티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메인 이슈 중에 하나였다.
애초에 4대 길드라 불릴 만큼의 던전 업적과 크기를 보유하고 있으면서 길드장의 정보가 하나도 드러나지 않는다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
심지어 <길잡이>에 속한 수많은 길드원들조차도 길드장에 대해 알지 못했다. 심지어 몇 명을 제외한 일부 간부진들조차도 길드장의 실제 외모를 알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말 그대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4대 길드의 길드장이라는 위치는 관심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질투의 대상이었다.
정말 작정하고 철저히 숨기더라도 자연스레 드러날 수밖에 없는 자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년 동안 길드원에게 조차 정체를 숨기니 그 자체가 떡밥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모이며 잠잠해졌던 <길잡이 길드장>에 대한 이야기들이 여러 커뮤니티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제목: 왜 하필 지금 중대 발표를 하는 걸까?
글쓴이:프로 의심러
그만큼 중요하고 도움 되는 내용이면 모르겠는데 나는 솔직히 의심이 된다. 지금 포탈 넘어간 엘리트 헌터들에 대한 관심이 적어지면 좋은 사람이 누구임? 생각해봐라.
그리고 선발대원 중에 길잡이가 없는 건 확실한데...이거 아무리 봐도 냄새남.
그 중에는 길잡이가 신분을 숨기고 있는 게 사회 상층부에서 스폰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중대 발표를 하겠다고 예고를 한 시점이 포탈 건너편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타이밍이었고, 새로운 개척지이니 만큼 관심이 몰려있었다.
그런데 같은 헌터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관심을 분산시킬 수 있는 중대발표를 한다고 하니 그런 의심이 올라온 것.
물론 새로운 떡밥은 아니었다.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던 음모론이었다.
-흠...사회 상류층이랑 결탁했다. 뭐 대충 이런 음모론인 것 같은데 이건 전부터 누가 계속 쓰네. 솔직히 지금 와서 헌터가 견제가 되는 세력이겠냐.
ㄴㅇㅇ애초에 이미 범세계적인 세력이라 한 국가 단위에서 견제가 불가능하지.
ㄴ길드장이 그거해서 뭘 얻냐? 돈이라면 쌔고 쌨을 텐데.
ㄴ아티팩트는 제일 많은 게 팩트 ㅇㅇ
-판다도 선발대원 아님 ㅇㅇ
여러 이야기들 가운데 가장 뜨거웠던 이야기는 그와 판다의 행보를 비교한 내용의 글이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음모론을 주장하는 측의 말처럼 실제로 무엇이 있는지는 사람들도 알지 못했지만 현재 가장 뜨거운 인물 중 하나가, 아니 가장 뜨거운 인물이 바로 판다였다.
예측할 수 없는 행동, 헌터계의 흐름을 좌지우지 정보력과, 엄청난 성장력.
그 판다의 행보가 이제까지 걸어온 길드 <길잡이>의 행보와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제목: 읽어봐라.
글쓴이: 네다헌
*기존과 다른 혁신적인 방법
*혜성같이 등장해 단시간에 정점을 찍음
*예측할 수 없는 정보력
*정체를 알 수 없음.
누가 떠오르냐?
-야 이건 누가봐도 킹 The 갓 판다아재지.
-ㅇㅇ킹다아재지. 빠진 거 몇 개 있는데 댓글로 달 테니까 수정해라
-네 ‘전문적인 사육기술(인간과 동물을 가리지 않음)’도 추가하셈.
-글쓴이: 이거 7년 전에 누가 ‘길잡이 길드장’에 대해서 쓴 것 일부 발췌한 거다.
-어...그러고보니...
-킹리적 갓심 on
-설마…
직접적으로 판다와 비교되기 시작하며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어쩌면.
어쩌면 판다와 길잡이의 길드장이 동일인물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물론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부분이었지만, 사람들이 떠들 거리가 되기 충분하다는 사실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의심하는 가운데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
아키두스의 신형(身形)이 눈요네스에게 움직이는 동시에 눈요네스 또한 아키두스에게로 움직였다.
먼저 공격을 휘두른 것은 아키두스였다. 아키두스는 눈요네스의 지척에 다다르자 먼저 오른 주먹에 마력을 실어 휘둘렀다.
쾅!
녹색 잔상을 남기며 휘둘러진 주먹을 눈요네스가 손톱으로 비스듬히 흘려냈다. 눈요네스의 얼굴을 목표했던 주먹은 애꿎은 성 한쪽 벽을 부수며 멈추었다.
“역시...하루이틀 준비한 게 아니군. 아키두스.”
눈요네스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그 소름끼치는 모습을 보며 하린은 헬리미안 성에서의 기억이 오버랩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눈요네스의 손끝에서 부상을 입는 장면들.
“아저씨...”
사실 헬리미안 성에서 발생한 대부분의 부상자는 눈요네스의 손끝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해골병사에게 직접당한 병사는 손에 꼽았다.
헬리미안 성이 최북단에 위치한 만큼 병사 한 명 한 명의 신위가 약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리치왕의 마나에 감염되지 않는다면 해골병사 자체가 강력한 적이 아니었기 때문.
200여명에 가까운 부상자가 발생한 것은 모두 눈요네스의 탓이었다.
“아저씨도 알잖아요. 생포는 말도 안돼요. 저 눈요네스라는 군단장...”
하린의 말에 강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보통의 방법으로는 눈요네스를 생포할 수 없었다.
본래 생포한다는 것은 싸워서 이기는 것보다 배 이상은 힘든 법. 약자가 강자를 상대로 벌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아키두스와 눈요네스의 싸움을 봐서는 분명 이쪽이 약자였고 말이다.
“아마 징크스 때문에 그럴 겁니다.”
강서가 중얼거렸다.
“징크스요? 징크스라면...”
강서의 말을 듣고 하린이 기억 속을 더듬었다. 징크스라는 말을 하린도 분명 들어본 적이 있었다.
마수 시펠케. 그 아득해 보였던 적을 처치할 수 있었던 열쇠 같은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징크스>였다.
“우선은.”
강서의 한마디와 함께 굉음이 울렸다.
콰광!!
성벽 한 쪽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 것. 눈요네스가 아키두스를 발로 차 성벽 밖으로 보내버렸다.
아키두스의 몸이 새하얀 설야(雪野)위로 내리 꽂혔다. 때마침 불어온 눈보라가 상황에 긴박감을 더했다.
무너진 성벽을 박차고 허공으로 떠오른 눈요네스는 아키두스를 향해 날갯짓을 했다.
눈요네스의 날갯짓은 빠르지 않았다. 마치 덫에 걸린 사냥감을 가지러 가는 것처럼 여유로웠다.
강서가 그 뒤를 따라 성벽을 뛰어 내렸다. 그리 높은 위치의 방은 아니었다. 대략 10M가량의 높이를 뛰어내린 강서는 눈요네스 보다 먼저 아키두스의 앞에 섰다.
곧 하린이 뒤따라 강서의 옆에 섰다.
“아저씨 이길 수 있는 거에요?”
하린이 강서에게 물었다. 강서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하린의 기억 속 눈요네스가 너무 강력했던 것뿐.
선발대원 모두가 2인1조로 달려들었다가 일격에 나가 떨어졌었다. 다행히 죽은 자는 없었지만 절대 가볍게 볼 수 없는 중상을 얻어 돌아온 이도 있었다.
심지어 한 때 최강이라 불리던 리차드조차도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하린이 강서에게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강서의 입에서 나온 말에 하린은 탄성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요. 단순능력치를 따지자면 저보다 눈요네스가 강합니다. 지금은요.”
“아…"
“마수 <시펠케>...와 비슷한 정도일 텐데, 리치왕의 군단장들은 징크스가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있기는 있지만 별 의미가 없죠.”
"..."
스릉-
하린은 조용히 검을 꺼내들었다. 조그만 힘이라도 보태기 위해서였다. 아직 몸으로 체감은 되지 않았지만, 정말 위험한 상황이었다.
하린이 뒤쪽을 흘긋 바라보았다.
“...도 아닌....같은...끼...그냥...버릴까...”
아키두스가 처박힌 듯한 눈구덩이에서 녹색 빛이 올라오고 있었다. 아래서 아키두스가 뭐라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곳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챙!
어느새 다가온 눈요네스의 손톱과 강서의 신선대가 쇳소리를 내었기 때문.
횡으로 휘두른 신선대를 눈요네스가 손을 뻗어 막고 있었다.
강서는 신선대가 막힘과 동시에 신선대를 허공에 놓아 버렸다. 그리고 몸을 앞으로 숙여 오른손으로 땅을 짚으며 뒤꿈치로 잡고 있던 신선대를 내려찍었다.
챙!
다시 한 번 울리는 쇳소리. 강서의 뒤꿈치에 차여 날아온 신선대를 눈요네스가 반대 손으로 막았다.
눈요네스의 입꼬리가 더욱 올라갔다. 예상 외로 재미있는 전투였기 때문이었다. 전투자체를 즐기는 눈요네스 입장에서 즐겁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너도 예상외로군. 아키두스 녀석도 수십 년은 전장에서 구른 것 같은 몸놀림이더니 힘만 더 있었다면 더 재미...”
눈요네스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강서의 오른 발이 그의 얼굴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눈요네스는 손을 올려 그것을 막으려 했지만, 강서의 왼발이 신선대를 누르고 있었다. 눈요네스의 손톱을 걸어놓은 채로.
“제법이군.”
나지막히 읊조린 눈요네스의 몸에서 한차례 마나가 박동하며 강서를 향해 세 줄기의 공격이 날아들었다.
[<군단장: 눈요네스>가 마나 제약을 해제합니다.]
강서는 예상했다는 듯 몸을 뒤로 뛰우며 그 공격을 피해내었다. 눈요네스가 신선대 끄트머리를 잘라내며 손톱을 휘두른 것이었다.
몇 차례의 공방이 오고갔지만, 찰나라고 할 수 있는 짧은 순간이었다.
하린은 그 공방을 눈으로 좇으며 자신과는 아직 아득한 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체감했다.
'...'
마나박동을 거친 눈요네스의 몸이 달라져 있었다.
손톱에 녹색기운이 차올랐고 없었던 송곳니가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느껴지는 기운이 조금 더 포악해졌다.
눈요네스는 강서를 향해 거의 찢어질 듯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네놈은 내가 직접 마나를 주입 시켜주지 내 수하로 써주겠다.”
그 모습을 보던 강서는 순간 멈칫했다.
두려움에 떤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강서의 머릿속에 한 가지 궁금증이 떠올랐기 때문.
바로 리치왕의 마나가 전염되는 원리였다.
‘...되려나.’
강서는 갑자기 품속에서 동그란 알약 하나를 꺼내어 입안으로 넣었다. 알약을 꿀꺽 삼킨 강서는 눈요네스를 바라보았다.
송곳니에 녹색빛 마나가 가득히 차올라 있는 것이 아무래도 주입하는 매개체가 송곳니일 모양이었다.
눈요네스는 천천히 강서를 향해 걸어왔다.
강서는 눈요네스가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별다른 액션을 취하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는 강서를 보며 눈요네스는 자신이 마나제약를 해제한 모습을 보고 강서가 겁을 먹었다고 생각했다.
“너무 두려움에 떨지는 말아라. 어차피 내 아래로 올 테니.”
눈요네스는 자신감을 내비쳐 보이며 강서의 앞에 섰다.
그리고 천천히 강서의 목을 향해 송곳니를 들이밀었다. 찐득찐득한 녹색마나가 한 차례 박동했다.
그리고 그런 눈요네스를 빤히 쳐다보던 강서는 판다가면을 살짝 위로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 다음에 강서가 한 행동은 모든 사람을 경악에 빠뜨렸다.
"...?"
눈요네스가 의문성을 내었다.
“...아저씨?”
하린이 강서를 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이 씨부레 눈요네스 새끼야 내가 너 오늘 조지고 그냥 다시 한...뭐야 이거.”
눈요네스에게 욕지거리를 뱉으며 눈구덩이에서 올라온 아키두스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눈요네스에게 물려 리치와의 마나에 감염이 되었어야 할 강서가,
도리어 검은빛이 서린 송곳니로 눈요네스의 목을 물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