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소소한 꿀팁방송-87화 (87/191)

87화. < ep21. 아키두스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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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달라졌다.

아키두스는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13회차까지 도달한 기억을 아무리 되짚어 보아도 ‘이계 신전의 사자’라는 존재가 출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

아발론 제국이 쉬티안 발라리아로부터 가장 오랜 시간을 버텼던 11회차에서도 그런 존재는 나타나지 않았었다.

단순히 회차에 따라 달라지는 환경적인 차이가 아니었다.

아키두스의 입장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이레귤러>였던 것.

‘설마...’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일. 아키두스의 조금 빠르게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무려 10개가 넘는 생.

자신을 괴롭게 한 ‘윤회의 저주’가 풀리는 조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어쩌면 이번 생이...’

아키두스는 이번 회차에 조금 더 공을 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런 아키두스에게 황제가 말을 걸어왔다.

“쉬티안 발라리아에 대항할 방법을 알고 있다고 들었다.”

황제 쿠비아의 목소리가 접견실에 나지막하게 울렸다.

씨익-하고 웃어 보인 아키두스는 고개를 돌려 강서를 쳐다보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꽝이 아니라 당첨이었군. 판다 형씨. 좀 이따 얘기 좀 하자고. 내가 물어 볼게 많거든.”

"..."

그리고 다시 고개를 제자리로 돌려 황제를 보며 말했다.

“이제야 대화가 좀 되겠네. 황제 나으리.”

"..."

“우선 이것 좀 풀어줘. 존내 답답해 이거.”

철컹-철컹-

아키두스가 자신의 몸을 움직여 쇠사슬 부딪히는 소리를 내었다.

아키두스의 말에 아키두스를 데리고 온 교도관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호통을 치려다 멈칫했다. 황제와 눈이 마주쳤기 때문.

황제는 나지막히 교도관에게 말했다.

“풀어주게.”

“...예.”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교도관은 황제의 명대로 아키두스의 사슬을 풀어주었다.

“폐하...아무리 아키두스가 무력이 없는 놈이라도 리치왕의 책사입니다. 어떤 사술(詐術)을 꾀할지 모르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철컹-

양손을 속박하는 수갑을 제외하고 아키두스의 전신을 옭아매던 사슬이 풀렸다.

아키두스가 우두둑-소리를 내며 목을 한 바퀴 돌렸다. 그리고 자신감이 그득히 차오른 표정을 지으며 황제에게 물었다.

“지금이 언제지?”

“제국력 460년 2월 18일”

“그래도 신기록 갱신이네 2월18일이면...”

아키두스는 눈을 살며시 감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시간을 끌었다. 아키두스의 하얀 머리칼이 좌우로 흔들리며 그의 자신감을 흩뿌렸다.

아키두스는 이내 눈을 뜨고 황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어디까지 소식이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쯤 최북단 헬리미안 성이 무너졌을 거다. 아주 와르르 무너져 내렸을 거야. 그리고 쉬티안 발라리아가 아발론 중앙으로 진격하고 있겠지.”

“2월 18일에 잘하면 성 하나쯤 더 함락이 되었을지도 모르겠군. 이를 테면 북부 중앙 성 아고르 같은 곳 말이지.”

황제는 아키두스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

아키두스는 대꾸없이 자신의 말을 경청하는 황제의 얼굴을 보며 다시 한 번 확신에 찬 미소를 지었다.

황제가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놀랐으나 내색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 아키두스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저번 회차의 겪은 황제도 자신의 감정을 내색하지 않는 성격이었고, 아키두스는 자신이 말한 대로 이미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으니까.

“어떻게 아는지는 묻지 마라. 영업비밀이니까.”

"..."

“어때? 이정도면 우선 자리를 옮기는 게. 이정도면 폐급 공기야. 차라리 탄광바닥에 코 박고 숨 쉬는 게 낫지”

지상으로 나가자는 말이었다.

아키두스 입장에서 반년동안 갇혀온 지긋지긋한 칠흑감옥에서 더 있고 싶지 않았던 것. 황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황제는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옆에 있던 교도관에게 한마디를 건네었다.

그리고 그 말은, 아키두스의 예상을 한참 벗어나 있었다.

“다시 집어 쳐 넣어라. 괜한 기대를 했군. 감옥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주지.”

"응?"

“원하는 대로 거꾸로 매달아 둬라. 바닥공기가 더 좋다니.”

“예! 폐하.”

교도관이 다시 아키두스의 신체를 사슬로 옭아매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황제의 반응에 아키두스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온몸을 비틀며 사슬에 저항했다.

“아니, 무슨 소리야. 왜 다시 감옥으로 들어가! 잠깐 아이씨 놔봐.”

“헬리미안 성은 무너지지 않았다. 리치왕의 군대도 물러갔고.”

그 모습을 보며 몸을 돌리던 황제가 무심한 말투로 두 마디를 남겼다.

“뭐? 헬리미안이 안무너졌다고? 그럴 리가. 구라치다 걸리면 피 보는 거 안 배웠...”

황제의 말을 들은 아키두스가 눈을 크게 뜨며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실제로 아키두스 입장에서는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때 쉬티안 발라리아가 헬리미안 성을 공격하도록 만든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아키두스였으니까.

교도관은 아키두스의 몸에 다시 사슬을 두르기 시작했다.

아키두스는 자신을 조여오는 사슬의 무게를 느끼며 황제 쪽으로 고개를 돌려 다급하게 말했다.

“아니, 잠깐 야, 황제님! 폐하! 말할게! 어이 형씨! 판다형씨 뭐라고 말 좀 해줘봐. 신전의 사자라며!!”

"..."

-아니 아재 번지수 아무래도 번지수 잘못 찾아온 것 같은데요.

-차라리 킹골병사가 더 쓸모 있을 것 같은데...

“휴우...”

강서는 참을 수 없는 민망함을 한숨에 내뱉고 황제를 보며 말했다.

“그냥 제가 설명 드리겠습니다.”

***

아발론 제국의 전쟁의 방.

“...확실히 이전과 같이 무방비하게 당하지는 않았겠군.”

“그럼, 내가 얼마나 신경 썼는데.”

황제의 말에 아키두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전쟁의 방에는 아키두스와 강서 그리고 리차드가 들어와 있었다. 전쟁실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황제도 당연히 황제의 자리에 앉아 있었고.

그들은 디아판 대륙 전체가 그려져 있는 지도를 가운데 놓고 둘러앉아 있었다.

“저쪽에서는 이미 다 넘어왔네. 아발론 제국의 각 성으로 이동 되는 것 같더군. 우선 이동하지 말고 그곳에 머무르라고 다 전해놓은 상태네.”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알고 있겠지만 이틀 남은 게지.”

리차드가 자신의 눈앞에 메시지를 다시 띄우며 말했다.

[지역: 아발론 제국]

[수행과제: 리치왕으로부터 아발론 제국을 수호.]

[수행과제를 위한 두 번째 지령이 37:22:20 후 활성화 됩니다.]

*

[제2지령: 아발론 제국을 수호하라.]

[내용: 신전의 인도를 받아 아발론 제국으로 소환된 헌터들은 아발론 제국이 리치왕의 군대에 함락되지 않도록 48시간 동안 수호합니다.]

[보상: 개인보상, 제2지령]

[남은시간: 48:00:00]

*

강서는 리차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께 보여드리기는 어렵지만, 저희는 리치왕의 군대가 차후에 어떻게 움직일지 어느 정도 미리 파악할 수 있습니다. 약 이틀 후 리치왕의 군대가 아발론 제국을 향한 두 번째 공격을 시작할 겁니다.”

“흐음..."

황제가 왕좌에 손가락을 천천히 두드렸다. 특유의 습관이었다.

“아키두스.”

한참을 생각하던 황제가 아키두스를 불렀다. 아키두스는 그 부름에 대답하는 대신 말하라고 턱짓을 했다.

“네가 이 해골병사를 일부러 만들었다고?”

“그래. 나를 그렇게 아니꼬와 하시는 나으리네 나라를 위해서 만들었수다.”

“왜지?”

황제가 물었다. 아발론 제국의 황제로서 가장 의뭉스러운 부분이었다. 아키두스는 분명 리치왕의 군대. 쉬티안 발라리아의 책사로 있는 인물이었다.

지금 당장 이것이 계략이라며 돌아서도 이상하지 않은 인물.

황제의 말에 아키두스는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난 또 무슨 대단한 질문한다고.”

아키두스는 수갑에 찬 두 손을 들어 올려 목 언저리를 긁으며 황제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보다 더 의미없는 질문도 없어. 높으신 나으리. 내가 리치왕에게서 벗어나고 싶어서 그렇다고 하면 ‘역시 의심스럽다.’할 거고. 심심해서 그렇다 하면 ‘심심해서 다시 돌아설 수도 있겠군’이라 할 거고. 뭐 그 밖에도 그냥 이라고 하면 안 믿을 거잖아?”

아키두스의 경험에서 나온 말들이었다. 실제로 이전회차에서 자신을 믿어달라며 황제를 찾아갔을 때 그렇게 대답했었으니까.

아키두스는 어차피 체념했다는 표정을 하고 황제에게 말했다.

"나를 믿지마.”

"..."

“그냥 이것만 믿어. ‘해골병사에게 물리면 리치왕의 마나에 면역된다.’ 이건 진짜잖아?”

황제는 말없이 잠시 아키두스를 응시했다. 그런 황제에게 강서가 입을 열었다.

“우선 그것보다는 현재에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논의가 가장 중요합니다. 이쪽은 저희 신전의 사자들을 대표해서 오신 분이고, 폐하는 아발론의 황제이시니 이 자리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에 다라 이틀 후의 전쟁의 양상이 달라질 겁니다.”

“아키두스는 보류하도록 하지.”

강서의 말에 황제가 동의를 표했다.

“형씨 보면 볼수록 맘에 드네, 아는 것도 많고.”

자신의 처우에 대한 논의가 일단락되는 것을 보고 아키두스가 미소를 지었다.

“우선 변수가 없다면 막는 게 크게 어려울 것 같지는 않네, 해골병사 자체는 사실 문제가 되지 않는 수준이야.”

리차드의 말대로 해골병사를 잡아내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선발대원의 입장에서만 생각한 것이 아니라 이세계로 넘어온 모든 헌터들의 수준을 다 고려하더라도 그러했다.

리치왕의 마나로부터 면역만 된다면 사실상 해골병사의 전력은 C-D급 던전의 잡 몬스터 수준이었으니까.

“그리고 성주 헤일림의 경우 나보다 더 강하더군. 아마 1대1로 붙으면 내가 질 걸세. 다른 성주들도 그정도의 전력이라면 절대 약하다고 할 수 없네. 다만 문제는...”

리차드가 말을 늘였다. 헬리미안 성에서의 경험 때문이었다.

헬리미안 성은 아발론 제국에서도 가장 강력한 병사들로 구성된 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제국에서 먼 곳에 위치하다보니 숙련된 기사들은 적었지만, 헬리미안성에 존재하는 병사들은 그 어느 성의 병사들보다 더 자주 더 많이 훈련을 실시한 것.

리치왕의 군대가 남하할 경우 가장 먼저 도착하게 되는 지역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투를 겪으며 적지 않은 사상자가 발생한 이유는 그곳에 존재하는 리치왕의 군단장 때문이었다.

“군단장이죠.”

리차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서 아키두스가 끼어들었다.

“그렇지. 군단장이 문제지. 해골병사 사이에서 지 좋을 대로 움직일 수 있는데 강력하기까지 하니까.”

“그 군단장이라는 놈은 얼마나 있는 거지?”

“리치왕의 여섯 검이라고 해서 나까지 포함 총 여섯 명인데...뭐 나는 비전투인력이니까 부러진 검이지.”

“...그런가.”

여섯이라는 말에 리차드의 눈에 무게감이 더해졌다. 리차드가 상대했던 하나의 군단장만으로도 선발대 두 명이 꽤나 심각한 중상을 입었던 게 떠오른 것.

‘시펠케...정도.’

리차드는 해골병사로 가득한 전황의 불리함까지 고려하면 가히 시펠케에 준하는 상대였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리차드를 보며 아키두스가 웃음을 지었다.

“자, 그럼 여기서 문제-”

"...?"

“그 군단장들이 전장에서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요?”

톡톡-하고 계속해서 두드리는 소리를 내던 황제의 손가락이 멈추었다. 그리고 아키두스를 쳐다보았다.

“당연히 전장이 훨씬 유리해지겠지. 하지만 군단장을 먼저 각개격파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 해골 병사들을 다루고 조종하는 것도 군단장인데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것을 허용할 리가 없지.”

황제의 말에 리차드도 동조했다.

“그렇네. 시도해보지 않은 게 아니네. 해골병사들을 해치고 군단장들을 먼저 잡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야. 다가가는 게 불가능하네”

하지만 두 사람과 다르게 강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가가는 게 아닙니다.”

"...?"

그리고 아키두스는 더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부르는 겁니다.”

“불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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