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 ep20. 소소한 적군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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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서세요! 줄!”
질서 관리를 맡은 병사의 목소리가 광장에 울려 퍼졌다.
병사가 목청껏 소리를 지르는 이유는 조용조용 이야기해서는 들릴지 않을 만큼 사람이 많이 모였기 때문.
그들은 모두 광장 한쪽에 있는 건물을 향해 줄을 서 있었다.
“이게 진짜 맞는 거래유?”
“아니 이 사람은 이틀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못 믿네.”
“아이구, 이 사람아 성주님이 가장 먼저 해봤다니까? 자네 지금 성주님을 의심하는 거여?”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니지만서두...쩌기서 나오는 소리가...”
강서가 몸소 해골병사에게 물려 리치왕의 마나에 면역되는 방법을 보여준 뒤.
성주 헤일림은 자신이 가장 먼저 나서서 강서의 말이 옳다는 것을 증명했다. 해골병사에게 팔뚝을 내어주고 나서 과연 리치왕의 수하가 되지 않는 모습을 보인 것.
그것을 기점으로 ‘라헬 성’의 병사들은 해골병사를 이용한 백신을 맞기 시작했다.
물론 그 방식 때문인지, 리치왕의 군대가 당도하는 만 삼일 째까지 팔뚝을 내미는 병사들의 꺼림찍한 표정과 비명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끄아악!
사람들이 줄 서있는 건물 안에서 해골병사에게 물린 한 병사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인간들 입장에서나 항체를 형성하는 것이 목적이었지, 해골병사의 입장에서는 한 번 한 번이 최선을 다한 공격이었기 때문,
약간의(?) 고통을 동반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에이스’님이 ‘10,000원’을 후원!
[???: 자 병사님, 팔에 힘 빼시고요. 크게 한 입 하겠습니다아]
-앙!
-근데 쟤도 좀 불쌍하다. 지 딴에 뭔가 열심히 하고 있는 걸 텐데.
-해골병사2: 야 너 반역자라는데?
-해골병사1: ??? 내가 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크악...!”
물린 팔뚝을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녹빛 기운을 보며 병사가 신음을 흘렸다.
어찌되었든 몸에 들어온 이질적인 마나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몸에 과부하가 걸리게 된 것.
항체를 형성하며 일어나는 불가피한 통증이었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죽지는 않을 거에요.”
고통스러워하는 병사를 보며 강서는 위로를 했지만, 죽지 않으면 괜찮은 거라는 사고는 강서에게만 적용되는 것이었다.
병사는 신음을 흘리며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이...거 원래 이렇게...”
“네네, 원래 조금 아파요.”
강서는 그런 병사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서 특유의 고저없는 말투 때문인지 아무감정도 실리지 않은 말이었지만 시청자들에게는 그것이 마치 병사를 놀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가면 안쪽’님이 ‘50,000원을 후원!
[???: 괜찮아요 괜찮아요. 죽지는 않을 거에요. 크큭..]
‘가면 안쪽’님이 ‘50,000원을 후원!
[???: 네네, 원래 조금 아파요. 크큭..]
-ㅋㅋㅋㅋㅋㅋ크큭충 무엇;;
-악질이자너ㅋㅋㅋㅋ
신음소리를 내며 전신이 녹색으로 물든 병사는 녹빛이 정점에 달한 순간, 잠시 숨을 멈춘 듯 하더니 이내 다시 원래의 색을 되찾기 시작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강서가 꾸벅 목례를 했다. 원래의 몸으로 돌아온 병사는 약간은 겁에 질린 눈을 하고 도망치듯 건물을 나섰다.
“휴우, 아저씨 이제 거의 마무리 되어 가는 것 같아요.”
강서의 옆에서 잡일을 거들던 하린이 창밖을 빼꼼 내다보며 중얼거렸다. 강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해골병사를 톡톡 건드려 보았다.
"흠..."
그리고는 소리를 흘리며 하린을 보고 말했다.
“백신이 거의 다 떨어졌네요.”
강서가 손끝으로 건드리며 확인한 결과, 피어오르는 마나의 잔상이 녹빛에서 거의 연두색 빛을 내고 있었다.
리치왕의 마나가 많이 옅어졌다는 의미였다.
“힘을 내 주어야 할 텐데...”
강서는 고개를 조금 들고는 걱정을 하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런 강서를 보며 하린은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강서가 고민과 걱정을 할 정도의 일은 많지 않았기 때문.
‘그 정도로 강력한 건가...?’
이미 성에 있는 대부분의 병사들은 백신을 맞은 상태였다.
지금 건물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도 대부분 선방에 서는 병사들이 아니라, 후방에서 대기를 하고 있을 임시 대기조 병사들.
강서의 ‘힘을 내주어야 한다.’는 말은 하린에게 숫자로 부족하니 백신을 맞은 사람들이 더 힘을 내주어야 한다는 말로 들렸다.
하린은 전날 병사들과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아니 말도 마세유. 리치왕의 군대에게 버틴 성이 없다니께?’
‘우리도 성주님을 믿지만서두 솔직히 걱정이 되는구먼유.’
‘끝이 없어요. 끝이.’
하린이 물었을 때 확실히 병사들은 ‘리치왕의 군대’라고 하면 치를 떨면서 대답을 했다. 말로만 전해들은 하린에게도 그 이름이 가지는 끔찍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래 이런 때야말로!’
하린은 걱정을 하는 듯한 강서의 모습을 보고 주먹을 쥐어보였다.
자신의 밝은 기운으로 강서의 걱정을 날려 버리겠다는 다짐을 한 것이었다.
그렇게 강서를 향해 한걸음 가까이 붙으며 하린은 응원의 말을 건네었다.
“아저씨!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미리 백신을 맞은 병사님들도 프로분들 이시라고 했고 또...음...리차드님이나 샬롯님 같은 분들도 있고, 시청자분들도 응원하고 계시잖아요! 그렇죠?”
-고럼. 막아낸 성이 없는 건 아직 판다를 못 만나서지.
-잘 버텨주겠지. 리치왕인지 김치왕인지 해봐야 한낱 몬스터자너
-응원 on
“그 리치왕이라고 하는 몬스터가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겠...”
시청자까지 언급하며 열심히 응원을 늘어놓던 하린은 문득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서의 고개가 15도정도 옆으로 기울어 있었다. 마치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묻는 것처럼.
“그게 무슨 소리에요?”
아니나 다를까 강서가 하린에게 물어왔다.
“에? 무슨 소리라뇨...아저씨가 그 리치왕의 군대를 걱정하시는 것 같아서...”
"...?"
“그치만 아까 분명 ‘잘 버텨줘야 한다’고...”
“아아.”
강서는 하린의 말을 듣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는 수천의 사람들에게 백신을 주사하느라 기운이 빠진 체 널브러진 해골병사를 가리켰다.
“이 해골 말한 거에요.”
“...해골병사요?”
“네네, 오늘 놓는 백신 정도는 문제없을 것 같은데, 좀 회복되면 다시 쓸 데가 있거든요. 리치왕의 마나도 무한정 솟아나는 건 아니라서..."
-...
-응원 off
-재활용 on
-속보) 해골병사 강제 노역에 과로사 직전.
-ㅋㅋㅋㅋㅋㅋㅋㅋ
ㄴ해골병사 변사체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글 내려주세요.
"..."
하린은 강서를 한 번 쳐다보고 해골병사를 바라보았다. 해골병사는 자신에게 향한 시선을 느꼈는지 적의 가득한 소리를 내었다.
쿠확칵!
하린은 생각했다. 분명 외향을 보나 목소리를 들어보나 이쪽이 악역이었지만...
-해석: 살려...주...세..요
-해석: S...a...v..e...
진짜 악역은 따로 있는 것 같다고 말이다.
***
[지역: 라무푸리마트차고르 헬리미안 성]
[수행과제: 리치왕으로부터 아발론 제국을 수호.]
[수행과제를 위한 첫 번째 지령이 활성화 됩니다.]
*
[제 지령: 아발론 제국의 성을 수호하라.]
[내용: 신전의 인도를 받아 아발론 제국으로 소환된 헌터들은 자신들이 속한 성을 24시간 동안 수호합니다.]
[보상: 개인보상, 제2지령]
[남은시간: 24:00:00]
*
해골병사가 라헬성에 던져진 지 정확히 삼일 째 되는 날 오후 무렵.
라헬성에 있는 모든 헌터들이 같은 메시지를 받았다. 그리고 모든 헌터들이 라헬성의 성채 중 가장 높은 지역에 올라와 있었다.
“장관이구만...”
선발대로 온 헌터 중 한명. 그랑 피아제가 지평선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몇몇 선발대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건 또 처음 보는 것 같군.”
“던전이랑은 확실히 다른 느낌.”
피에 적신 듯한 붉은 구름. 붉게 익은 하늘.
그리고 그 아래서 몰려오는 질릴 듯한 숫자의 녹빛 군대. 리치왕의 군대가 지평선을 넘어온 지는 꽤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오와 열. 질서. 그런 것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수많은 해골병사들이 그저 하나의 찐득찐득한 덩어리가 되어 엉겨 붙어 라헬성을 향해 밀려오고 있었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그저 밀려오고 있었다.
성주 헤일림도 성채 위로 올라와 있었다. 선발대원들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헤일림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입을 굳게 닫고 군대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막중한 책임감이 그의 눈에 드리웠다.
성채위에 있는 사람들이 한마디씩을 거들고 나자 잠시 정적이 흘렀다. 무지막지한 수의 해골병사들을 보며 많은 생각이 머리에 스쳐간 것이었다.
철컥-
갑옷의 쇳소리를 내며 한 병사가 다급히 올라오더니 헤일림에게 준비가 다 되었음을 보고했다.
헤일림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리치왕의 군대를 응시하였다.
“자네 말이 진실이라 믿네. 판다. 제국 중앙의 지원병이 오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거야.”
헤일림이 옆에 서있던 강서를 보며 말했다. 강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성채를 향해 다가오는 해골병사들이 점점 거대해졌고, 점점 더 빨리 다가오기 시작했다. 실제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멀리서 다가오는 것을 보는 시야의 착각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장도를 더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부우-!
헤일림이 옆에있는 병사에게 눈짓을 하자 나팔소리가 길게 울렸다. 나팔소리는 성내를 가득 메우며 메아리 울렸다.
[23:47:55]
나팔의 메아리가 멈출 즈음에, 리치왕의 군대는 지척이라 할만한 거리에 도달해 있었다. 피어오르는 녹빛기운이 눈에 보일 정도로 가까워졌다.
병사들이 검을 쥔 손에 힘을 불어넣었다.
헤일림이 리치왕의 군대를 한 번 둘러보더니 나지막히 읊조렸다.
“쉬발놈들...”
체계도, 질서도 없는 군대에 신호가 있을 리가 없었다.
선두의 해골병사가 성벽에 닿는 것을 시작으로-
전쟁이 시작되었다.
***
“아, 시발. 이번 생도 꽝이네.”
아발론 제국 중앙 슈상크 감옥 지하 깊숙한 곳.
빛 한 줄기 들지 않는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사지가 사슬로 포박된 한 남자가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주 눈치는 드럽게 없어가지고, 지들 도와주는 건 하나도 모르지.”
찰랑-찰랑-
남자는 사슬을 풀어보려는 듯 사지를 흔들어 보았지만, 사슬 소리만 더 울릴 뿐 풀리려는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휴...이 쓰잘데기 없는 제국 놈들 어떻게 13회차가 도는 동안 도움 한 번이 안되냐.”
이내 포기한 그가 고개를 들어 뒤로 젖히는 순간-
철컥-
"응...?"
끼익-
문이 열리며 남자가 있던 공간으로 빛이 들어왔다. 빛과 함께 칠흑 속에 숨겨져 있던 남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새하얀 머리칼에 짙은 회색피부. 그리고 머리 오른쪽에만 나있는 뿔.
뿔에는 리치왕의 수하임을 증명하듯 녹색의 마나가 서려있었다.
그런 그를 보며 문을 연 병사가 적의 서린 목소리로 읊조렸다.
“나와라 아키두스. 폐하께서 찾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