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소소한 꿀팁방송-82화 (82/191)
  • 82화. < ep19. 변혁 (4) >

    =====================

    “우와...”

    “제가 살아온 성입니다. 화려하진 않아도 굳건하죠. 저도 왕실아카데미로 갔다가 3년 만에 돌아오는 건데도 변함이 없네요.”

    하린이 성벽을 보며 탄성을 질렀다.

    ‘지구의 과거. 지구의 과거.’라고 이야기만 했지 던전이랑 똑같은 생태의 ‘세이로의 숲’을 보면서는 실감을 하지 못했었는데,

    직접 돌로 지어진 성을 보며 자신이 지구의 과거로 왔다는 것이 실감이 난 것이었다.

    -미래촌놈;;

    -와 근데 진짜 이제야 실감이 나네...

    -그럼 던전들이 다 지구의 과거에 실존했던 공간인 거야?

    -망록시기가 이렇게 밝혀지네.

    이미 강서의 <히든 던전>을 통해 한차례 백신을 맞은 사람들이었지만, 그래도 제 1 망록시기를 자신의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이 놀란다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하린과 마친가지로 사람들도 성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조금씩 실감이 나기 시작한 듯, 궁금한 것들에 대해 채팅을 치기 시작했다.

    흑석으로 지어진 투박한 형태의 성벽은 조금 오래되어 보이기는 했지만, 견고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병사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고, 그 성벽 꼭대기에서는 깃발이 하나 흩날리고 있었다.

    ‘아발론 제국.’

    그건 아발론 제국을 의미하는 깃발이었다.

    마차 한 쪽에 앉아 강서는 그 깃발을 보며 상념에 잠겼다.

    제1망록시기. 아발론.

    아직까지 강서가 얻은 것은 두 개의 키워드뿐이었지만, 강서는 한 인물을 떠올릴 수 있었다.

    <누군가를 위한 비석>에도 적혀있을 이름. <아키두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었다. 강서가 떨어진 시점의 시간대가 어느 때인지 알지 못했으니까. 아발론 제국이 존재하던 초중반기 시대라면 <아키두스>가 없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있었으면 좋겠는데..."

    "...?"

    강서가 어깨의 라오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맨 처음 ‘신전의 편지’에 대해서 들었을 때, <지구의 과거>와 <이세계>라는 말에서 강서는 <누군가를 위한 비석>의 이름들을 떠올렸다.

    어쩌면 유흔결계를 통해 자신이 기억을 더듬어 연기하는 외형뿐인 인물이 아니라, 실제 살아있는 과거의 그 인물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 편이 성격도 훨씬 더 생생할 테니까.

    애시당초 강서가 유흔결계를 들어가기 시작했던 것도 자신이자, 한명의 영웅이었던 과거의 그 인물들이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혀 졌다는 것이 마음에 걸려 그랬던 것이었다.

    가능하다면 본인을 그대로 보여주는 그쪽이 나았다. 제3자 시선에서 보면 어떨지도 궁금하고 말이다.

    히히힝-

    “다 도착했네요.”

    마차를 모는 말의 울음소리가 한번 울리고, 자신을 카릴이라고 소개한 여기사가 나지막하게 도착을 알렸다.

    그녀의 말대로 마차가 성벽아래 도달했다. 정확히는 성문 앞에.

    카릴은 자랑스러운 듯 자신의 성을 다시 한 번 소개했다.

    “다시 한 번 소개드리겠습니다. 아까는 성이라고만 말씀드렸지만. 풀네임은 ‘라모푸리마트차고르 헬리미안 성’입니다.”

    경악스러울 정도로 긴 성 이름에 하린이 탄성을 뱉었다.

    -성이름 수준;;

    -망록시기에는 길게 짓는 게 유행이었나 보네

    -우리 때였으면 무조건 줄여 불렀다.

    시청자들의 반응처럼 하린도 그 긴 이름에 입을 벌리며 놀랐다.

    “허...엄청 기네요. 저는 그냥 라헬성이라고 부를래요.”

    “라헬성이요?”

    하린의 말에 카릴이 반문했다.

    “저희가 살던 곳에서는 줄임말문화가 있거든요. 첫 번째가 <라> 어쩌구저쩌구 하고 기니까 가장 앞 글자인 ‘라’를 따고 뒤에서 ‘헬’을 따서 라헬성이요.”

    “줄임말....흠...흥미로운 문화네요.”

    카릴에 라헬-라헬-하고 중얼거리는 동안 강서는 성벽을 한 번 둘러보았다.

    성벽위에 서있는 병사들은 잔뜩 군기가 들어차있었다.

    경계가 강한 외곽지역의 특성일 수도 있었지만, 단순히 그렇다기에는 그들의 눈빛이 달랐다.

    병사들은 마치 당장이라도 무언가 쳐들어올 것처럼 완벽한 경계태세를 가지고 있었다.

    대화를 끝내고 나서야 그 삼엄한 분위기를 눈치 챈 하린은 왜인지 조용해지며 마차에서 내리는 카릴만을 바라보았다.

    “원래 열려 있어야 할 시간인데...”

    카릴이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으며 강서는 하나의 키워드를 더 얻었다.

    평소보다 경계가 삼엄하다. 무언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

    “성문을 열어라!”

    카릴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하지만 성벽위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마차가 오는 것까지 모두 보았을 텐데 어떠한 대꾸도 없었다.

    마치 전혀 열어줄 생각이 없다는 것 같이.

    카릴은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이번에는 이름을 소리를 외쳤다.

    “카릴이다! 3년 만에 카두스 공자님을 모시고 돌아왔다. 성문을 열어라!”

    미동도 없던 병사들이 이번에는 ‘공자님?’ 하며 서로 수군 거렸다. 그렇게 몇 마디 서로 대화를 나누더니 한 명이 성 안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

    “허허, 우선 감사를 표하네. 우리 셋째 아들을 구해주었다고?”

    “네, 성주님. 예기치 못하게 세이로의 숲에서 타우이안을 만났는데 이 두 분의 도움으로 큰 위협없이 지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은인이군. 나는 마르네드 헤일림이라고 하네. 가문대대로 이 성을 맡아보고 있지.”

    병사가 사라지고 이내 성의 문이 열렸다. ‘공자’라는 말이 먹혀들어간 것. 물론 공자는 타우이안을 만났을 때부터 기절해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상태였지만.

    성문이 열리고 강서와 하린은 카릴의 인도를 받아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들어가자마자 만난 것이 바로 성주 마르네드 헤일림이었다. 성채에 있는 투박한 접객실에서 성주가 팔을 벌리며 그들을 맞았다.

    성주 마르네드 헤일림은 먼저 감사를 표했다. 바깥의 삼엄한 분위기와는 상반되게 마르네드 헤일림의 분위기는 상당히 너그러웠다.

    적갈색의 머리와 수염을 하고 성주라는 위치를 생각했을 때, 조금은 가벼워 보이는 옷차림. 성주 마르네드 헤일림의 목소리에서는 여유가 느껴졌다.

    “맞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린이라고 해요!”

    “판다입니다.”

    강서와 하린이 간단히 자신을 소개했다.

    -간-단.

    -저렇게만 소개해도 되려나.

    -‘미래에서 왔습니다.’라고 할 순 없자너;;

    너무도 간단한 소개였지만 마르네드 헤일림은 거기서 더 묻지는 않았다. 강서가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을 보고 신분을 숨겨야 하는 상황이라 생각해 배려를 한 것.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말을 이었다.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하네. 원래라면 거하게 대접을 하고 싶지만...그럴 수가 없는 시국이라...”

    "...?"

    성주 헤일림의 말에 카릴이 고개를 돌려 헤일림을 바라보았다.

    카릴이 아는 마르네드 헤일림은 은혜를 배로 갚는 타입의 사람이었다.

    그래서 강서와 하린을 성으로 데려온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헤일림의 반응은 카릴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범주의 것이었다.

    “미안하지만...지금 당장 여기서 나가주게.”

    "...!"

    이어진 마르네드 헤일림의 말에 카릴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문 앞에서 쫓아내지 않았다 뿐이었지, 이정도면 문전박대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자신이 기존에 알던 성주와는 너무 달랐다. 은인은 물론이고 손님에게 식사조차 대접하지 않고 내친다는 건 카릴의 기억 속 성주에게서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카릴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성주님... 갑자기 왜...”

    “내쫓는 게 아니네. 자네들을 위해서지. 이동하는 시간도 있으니.”

    성주 헤일림은 거기까지 이야기하고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창가로 다가가 문을 활짝 열었다.

    천천히 팔을 뻗어 열린 창문 밖을 손가락으로 가리킨 헤일림이 한마디를 뱉었다.

    “지금 이곳으로 군대가 몰려오고 있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카릴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헤일림의 말에서 떠오르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카릴의 머릿속에 떠오른 그 단어는 아이러니하게도 강서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리치왕이군요.”

    강서가 입을 열고 한 단어를 뱉었다.

    "...!!"

    그 단어를 들은 카릴이 헛-하고 숨을 들이켰고, 성주 헤일림은 고개를 끄덕였으며, 하린은 이제 질렸다는 표정으로 강서를 쳐다보았다.

    헤일림이 강서의 말을 받아 이었다.

    “맞네. 리치왕의 군대가 이곳으로 오고 있지. 편히 쉬다가라는 게 사실상 말이 안 되는 상황이지.”

    “<아키두스>가 잡히고 반년은 조용하더니...”

    카릴이 입술을 짓이기며 나지막히 읊조렸다.

    “자네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여기를 뜨는 게 좋을 걸세. 이곳은 아발론의 최북단이라네 리치왕의 군대가 당도하는 첫 번째 성이 될 거야, 리치왕의 군대가 여기까지 당도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걸세.”

    아직까지 버텨낸 성이 없으니-

    헤일림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에는 성주로서의 책임감과 막막함이 담겨 있었다.

    같은 단어였지만 ‘리치왕’이라는 단어에서 떠오른 생각은 각자 달랐다.

    하린은 그게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어 조용히 눈치를 보고 있었고, 헤일림은 다시금 일어난 막막함을 삭히고 있었다.

    그리고 강서는-

    ‘아키두스’

    아키두스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했다.

    제가 망록시기. 아발론. 리치왕.

    세 가지 키워드면 충분했다. 심지어 카릴의 입에서 아키두스가 직접 언급되기까지 했다.

    몇 번째 회차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적어도 아직 아키두스가 실패하지도 성공하지도 않은 시기라는 것을 강서는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잠시 정적이 이어지던 와중.

    .

    .

    .

    .

    .

    .

    .

    .

    .

    .

    “...어?”

    “왜 그러나?”

    갑자기. 하린이 의문성을 내었다. 갑작스러운 소리에 성주 헤일림이 하린에게 물어왔지만, 하린은 대꾸없이 고개를 돌려 강서를 돌아 보았다.

    하린의 눈앞에 갑자기 상태창이 떠오른 것.

    [시공을 뛰어넘어 이계(異界)의 부름에 응합니다.]

    [신전의 축복이 당신들과 함께합니다.]

    “아저씨-”

    강서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 하린이 강서를 불렀다. 자신이 보고 있는 상태창을 강서도 보고 있냐는 의미였다.

    강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서에게도 하린과 같은 상태창이 떠올랐다.

    *

    [지구: 제1망록기(중기)]

    [수행과제: 리치왕으로부터 아발론 제국을 수호.]

    [내용: 제1망록시기 중기. 세계를 주름잡던 제국과 왕국들이 <북부 설야(雪野)>에서 갑자기 나타난 ‘리치왕’의 군대에 하나씩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지구에 남은 유일한 인류국가 <아발론>을 수호하십시오.]

    [보상: 지구의 파편. 이계의 통로. 개인보상.]

    *

    갑작스러운 메시지.

    “이게 아무래도 그 신전의 과제라는 것 같은데요...”

    “그렇네요.”

    하린이 강서에게 말했고 강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간단히 대답했다.

    강서와 하린의 상태창을 볼 수 있을 리가 없는 카릴과 헤일림은 두 사람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신전, 과제. 단번에 이해할수 없는 맥락이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

    헤일림이 강서와 하린에게 묻기가 무섭게 바깥쪽에서 쿵쾅거리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어렴풋하게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도. 쿵쾅거리며 점점 커지던 발소리가 멎음과 동시에 접객실의 문이 열렸다.

    벌컥-!

    갑옷을 챙겨입은 한 군인이 문을 열었다.

    “성주님! 광장에서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