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소소한 꿀팁방송-80화 (80/191)
  • 80화. < ep19. 변혁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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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터협회에서 말한 것처럼. 현재 하프라인 밖의 시공간이 뒤틀려 있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세계와 지구의 과거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더군요.”

    "...."

    뒤틀린 시공간.

    흩어진 지구의 잔해.

    이세계.

    지구의 과거.

    하린은 헌터협회에서 발표한 그 내용들을 단번에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할 수 없었다기보다는 바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리라.

    바로 고개를 끄덕이지 못하고 어딘가 오묘한 하린의 표정을 보며 수혁이 말을 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신전의 이야기이지만...신전이 굳이 저희에게 거짓말을 할 가능성은 희박하죠. 지구의 밖에 남으셨던 15년 전 영웅 분들과 마수들은 모두 그 시공간 속으로 흩어졌다고 합니다.”

    "..."

    “...그런가요.”

    침묵하고 있는 하린 대신 강서가 대신 대답했다.

    하프라인 바깥세상은 모든 사람에게 두려움 그, 자체이기도 했지만 몇몇 이들에게는 언젠간 나아가야 하는 곳이기도 했다.

    하린이 그러했다. 하린에게 <하프라인 바깥>이라는 공간은 할아버지가 존재하는 곳이었다.

    자신의 할아버지가 바로 하프라인 장벽 밖에 남은 인물 중에 한 명이었으니, 하프라인 바깥세상 자체가 뿔뿔이 흩어져 있다는 말은 하린에게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마수가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하프라인을 나가기 시작하면 곧 할아버지를 찾을 수 있다 생각했는데, 상황이 그렇지 않았으니 말이다.

    조금은 어두운 얼굴로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만 있던 하린이 오른 손을 들어보였다.

    “뒤틀려있다는 말은...나가면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른다는 말인 건가요?”

    “네, 자세한 이야기는 없었지만, 임의로 나가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기존대로 장벽 내부 수호도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면...어떻게 나간다는 건가요?”

    그야말로 핵심적인 질문이었다.

    미리 공포한 헌터협회의 기자회견이 아직 2시간 정도 남은 시점이었다.

    수혁은 미리 정보를 입수해서 가지고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밝혀진 것은 헌터협회에서 공개한 간단한 편지요약본 뿐.

    그리고 하린이 알기로 그 편지의 요약본에서는 분명 신전이 하프라인 바깥 진출을 도울 거라고 적혀있었다.

    “...이걸 좀 보시죠.”

    수혁은 그렇게 이야기 하면서 손을 펴서 구현마법을 사용했다.

    푸른빛 마력이 수혁의 손을 한 번 감싸더니 허공에 동그란 구의 형태를 떠올렸다.

    마치 홀로그램을 펼치듯 수혁의 손안에서 <구현된 지구>는 아직 마수에게 습격하기 이전의 지구를 완벽히 재현해 내고 있었다.

    “인류는 15년 전 균열을 겪었습니다.”

    수혁의 말과 함께 홀로그램 <파란색>지구가 <검은색>으로 변했다.

    “많은 분들의 희생과 각성, 그리고 신전의 도움으로 우리는 다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확보했습니다. 그게, 하프라인이죠.”

    그리고 검게 변한 지구에서 한 점의 <파란색>이 생겨나더니 점차 확장되어 지구의 3분의 1 정도를 덮었다.

    하프라인이었다. 하프라인을 의미하는 파란색 영역.

    “이게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지구의 모습입니다.”

    “그렇죠.”

    하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린의 눈을 응시하며 수혁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이 바깥 쪽 부분이-”

    수혁이 말을 끌자, 갑자기 하프라인 바깥쪽을 의미하는 지구의 검은 부분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그리고 정해진 규칙과 방향 없이 하프라인을 중심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다 나뉘어져서.”

    회전하는 수많은 조각들은 검은색에서 서서히 가지각색의 색을 띠기 시작했다. 붉은색, 하얀색, 분홍색, 검은색, 초록색 등등. 각각의 색으로 빛나며 회전하는 조각들은 수혁이 따악-하며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

    갑자기 구모양으로 변했다. 각각의 구는 조각이 가지고 있던 색을 그대로 띠며 멈추었다.

    하프라인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수십 개의 구 모양.

    “시공간 어딘가에 흩뿌려 졌다고 합니다.”

    수혁은 그 구(球) 중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예를 들어, 이곳은 지구의 과거일 수도, 아니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일 수도 있는 거죠.”

    "..."

    “그리고 하프라인 바깥에 발을 디디는 순간. 우리 한 명 한 명이 수많은 공간과 시간 중에 한 곳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것도 랜덤으로요.”

    “랜덤으로...”

    “신전의 역할이 바로 그 부분입니다. 지구와 같이 뿔뿔이 흩어지는 것을 방지하고 하나의 시공간으로만 이어지는 통로를 만드는 것이죠.”

    수혁이 다시 한 번 손가락을 튕기자 각각의 색을 가지고 있던 하프라인 주변의 구(球)들이 모두 검은색으로 변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 중 수혁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하나의 구만 노란 빛으로 빛이 나기 시작했고, 하프라인에서 그 구(球)까지 가느다란 실선이 하나 만들어졌다.

    “이런 식으로요. 일종의 포탈이 생기는 거죠.”

    “지구의 과거...”

    수혁의 설명을 들으며 강서가 생각에 잠겼다.

    ‘시공간을 연결한다...’

    강서가 알기로 그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아니 보통일이 아니다 수준이 아니라, 신격에 이른 존재라고 하더라도 어려운 일이었다.

    애초에 라오같이 차원을 넘나드는 신격과 능력을 타고난 종족이더라도 수많은 사람들이 오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

    물론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건 분명 엄청난 힘을 소모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강서는 그 부분에서 의문이 들었다.

    “신전은 왜 우리를 돕는 거죠?”

    신전으로 돌아갈 이득을 알 수 없었기 때문. 가능하다 아니다를 떠나서, 그것을 왜 신전이 제공하려 하는지.

    강서의 머리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연히, 대가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강서의 질문에 수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

    집으로 돌아온 하린과 강서.

    하린은 수혁으로부터 들은 하프라인 바깥이야기가 적지 않은 충격이었는지, 조금은 침울한 표정을 짓고 소파에 앉아있었다.

    그렇게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하린에게 강서가 차를 타서 건네었다.

    별다른 위로 없이 그저 건네었을 뿐이지만, 강서의 조용한 호의가 위로가 되었는지 하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조금 막막해져서.”

    “그렇겠죠.”

    “이제 할아버지를 찾는 게 코앞인줄 알았는데, 갑자기 눈앞에서 할아버지가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에요.”

    강서는 차를 한 번 홀짝였다.

    “할아버지...찾을 수 있을까요?”

    의미 없는 질문이었다. 강서가 어떤 대답을 해도 그건 사실일지 아닐지 판단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물론 하린도 그걸 알고 있었다. 답을 얻으려는 게 아니었다. 그저 답답함에 자신의 마음속에 맴도는 한 문장을 입 밖으로 뱉었을 뿐.

    "..."

    강서의 대답이 없자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그렇게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강서가 입을 열었지만 그건 ‘찾을 수 있다’, ‘찾을 수 없다’ 같은 일차원적인 대답이 아니었다.

    “이번엔 끝나겠지.”

    "...네?”

    “제가 매번 했던 생각입니다.”

    "....?"

    “어떻게든 답을 찾아내었을 때. 이번엔 끝나겠지.”

    평소와 같았다.

    표정은 덤덤했고, 목소리도 고저없는 강서의 것 그대로였다.

    하지만 하린은 무언가가 심장어림에서 일렁이는 것을 느꼈다.

    강서의 말을 단번에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말이다.

    “이번엔 끝나겠지.”

    "..."

    “이번엔.”

    하린은 강서의 덤덤한 말투에서 무한한 막막함을 느꼈다.

    턱 끝까지 차오른 막막함에 포기하면 당장이라도 익사할 것 같은.

    “오래 걸렸지만, 결국 끝나더군요.”

    "..."

    강서는 차를 한 번 더 마시며 어깨를 으쓱였다.

    “조금 멀어졌을 뿐입니다. 이번엔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또 다시 잠깐의 정적.

    조금 멀어졌다-

    조금 멀어졌다-

    하린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눈을 한번 꼭 감았다 뜨고 하린이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강서의 말이 도움이 되었는지 하린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아저씨 보면 꼭 인생 두 번은 산 사람 같아요.”

    "..."

    “스물여덟 살이면 저랑 그렇게 엄청 차이나는 것도 아닌데 꼭 100살은 산 사람인 것 같다니까요?”

    "..."

    하린의 분위기가 풀어졌다.

    하린의 말에 강서는 출처모를 뜨끔함을 느끼며 손가락을 접어 보았다.

    ‘100살...’

    아우헤타이로의 회차만 합쳐도 100살은 넘게 살았던 강서였다.

    “끄으으으!!!"

    하린이 갑자기 쥐어짜는 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폈다. 그리고는 강서를 보며 말했다.

    “안 되겠어요! 오랜만에 방송해요 아저씨!”

    "...?"

    “어차피 탑주님이 신전의 <인장>이 있는 사람만 <포탈>을 이용할 수 있다고 했으니까 당장 찾으러 가지도 못하고, 차라리 몸이라도 실컷 움직...”

    갑작스럽게 강서에게 방송 제안을 해오던 하린이었지만, 그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캬오!

    갑자기 나타난 라오가 울음소리를 내었기 때문.

    갑작스러운 소리에 라오를 쳐다본 하린과 강서는 라오의 모습이 조금은 달라진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본래라면 푸른빛을 띠고 있어야 할 라오의 털이 주황빛을 내고 있었던 것. 주황빛 털은 오묘하고 신기한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라오는 하린과 강서를 보며 어딘가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한 번 더 울음소리를 내었다.

    “캬!”

    “...하린님 혹시 tv좀 틀어주실 수 있나요?”

    강서가 그런 라오의 모습을 보며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건...’

    갑작스러운 강서의 요청이었지만 하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스마트 워치를 조작했다.

    하린의 조작으로 켜진 tv에서는 헌터협회의 기자회견이 중계되고 있었다.

    헌터협회의 수장 ‘로건 프리먼’이 중앙에 앉아있었고 수많은 기자들이 플래시를 터트리며 그의 말을 받아 적고 있었다.

    [...그러므로 신전의 <퀘스트>를 클리어하기 전에 <포탈>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3티어 이상의 헌터 중에서도 신전의 <인장>을 받은 헌터들뿐이며, 신전의 인장이 없는 경우에는 실제로 포탈에 접근 하더라도 이용이 불가하다는 메시지가 나타날 것입니다.]

    이야기를 하는 헌터협회장 로건 프리먼의 뒤쪽에는 거대한 천막이 있었고, 그것은 무언가 거대한 것을 감추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이게 바로....]

    포탈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마친 로건 프리먼은 천천히 몸을 움직여 긴장감을 고조시키며, 뒤쪽에 있던 천막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카메라의 플래시 터지는 소리가 정점에 달한 순간.

    [포탈입니다.]

    로건 프리먼이 천막을 걷었다.

    천막 뒤에는 주황빛을 띠는 마력의 덩어리들이 나선으로 회전을 하고 있었다.

    포탈은 신전에서 만든 것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오묘하고 신비한 분위기를 그대로 풍기고 있었다.

    포탈의 공개와 동시에 플래시 터지는 소리가 기자회견장을 덮었고, 기자들의 질문소리가 빗발치며 소란스러워졌다.

    하지만-

    "..."

    "..."

    하린과 강서는 오히려 조용해졌다.

    그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갑자기 바뀐 라오의 털색과 포탈의 색이 소름끼칠 정도로 똑같았기 때문.

    하린이 조심스럽게 정적을 깨고 강서에게 물었다.

    "음..."

    "..."

    “아저씨 저번에 집에서 마수 잡으러 이동한 것도 라오의 능력이라고 했죠...?”

    “그렇죠.”

    “그때 이동할 때 나타난 색이 라오의 털색이랑 똑같았고요.”

    “네."

    “그럼 이거 혹시...”

    하린이 말을 끌자 강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라오를 안아들었다. 그리고 어깨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하린님 혹시 무임승차 해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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