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소소한 꿀팁방송-76화 (76/191)
  • 76화. < ep18. 마수사냥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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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 최후의 미개척 A급 던전.

    그 엄청난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마구로의 마당’은 빠르게 클리어 되었다. 물론 그게 쉬운일은 아니었다.

    마구로의 마당이 그렇게 빨리 공략될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강서의 덕분이었으니까.

    강서가 아니었다면 지하 100M깊이에 마구로가 잠들어 있다는 것도, 그런 마구로를 깨우는 방법도 알아내는데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었다.

    어쨌든, 인류 최후의 던전이 클리어 된 만큼. 세계의 관심이 헌터계로 모였다. 마구로의 사냥이 생중계로 방영된 만큼, 보스공략과 동시에 갖은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인류 최후의 던전. 클리어]

    [갈 곳 잃은 헌터계, 고장난 나침반]

    [마지막 던전 클리어 너무 서두른 것 아닌가?]

    가장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은 키워드는 ‘헌터계의 차후 행보’였다.

    본래 헌터계의 방향은 명확히 정해져있었다. 아직 공략하지 못한 미개척 던전을 공략하고, 공략된 미개척 던전의 공략법을 수정 보완하며 공고히 한다.

    그것이 헌터계 전체가 공유하는 유일한 방향성이었다. 헌터협히가 지향하는 방향이기도 했고.

    많은 사람들이 헌터계의 방향성이 사라진 현재 상황을 우려했다.

    제목: 야, 솔직히 지금 뒤에 상황 딱 보이지 않냐?

    글쓴이: 킹스토피아

    헌터 던전 돌 때 직장인 연봉 우습게 벌지.

    턱 없이 부족한 인력이니 희소가치 있지

    만만할 수밖에 없다. 일반인이.

    세상에 다시 계급화 될 꺼다. 지금은 아니지만 이 상태면 갑을관계 형성되는 거 한순간이다.

    -또또 디스토피아충. 이 새끼들은 허구언날 비관적이야

    ㄴ글쓴이: 비관적인 게 아니라 현실적인 거다. 솔직히 너 같으면 안 그럼?

    ㄴㅇㅇ안 그럼.

    -이 새끼 헌터 같은데...

    ㄴ? 왜 프로필 보니까 다른 글도 없는데 이글이 어딜 봐서 헌터지지임?

    ㄴ가로로 읽어 보셈;;

    헌터의 힘에 대한 두려움에 일각에서는 헌터들을 제재해야한다는 말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일반인들 이라는 절대다수의 그룹이 하나의 여론을 형성하기 시작하자 헌터제재에 대한 의견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눈덩이 구르듯 불어났다.

    세금을 강화해야 한다.

    헌터들의 폭력성에 대비해야 한다.

    일반인들을 보호하는 새로운 대비책을 구축해야 한다.

    그러한 주장들이 언론을 완전히 뒤덮는 데 까지 채 반나절이 걸리지 않았다.

    마수로부터 인류를 구한 영웅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주장들 점점 많아지고 전 세계규모의 사회적 분위기 침체가 지속되어 가는 가운데,

    헌터협회에서 돌연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의 주인공은 라이언하트의 길드장 리차드 4세였다. 그가 헌터협회장 로건 프리먼의 위임을 받아 헌터협회 전체를 대신하는 대리인으로 기자회견장에 섰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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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현재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귀족헌터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시국에 기자회견을 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라이언 하트의 길드장으로서 현재의 상....”

    기자회견장에는 기자들이 발디딜틈 없이 가득 차있었다.

    소란스럽다 못해 귀가 아플 정도로 시끄러이 울려 퍼지는 소리들이 기자들이 채우지 못한 허공을 매웠다.

    리차드가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배려라고는 눈꼽만치도 존재하지 않는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지극히 개인적인 질문도 있었지만 그건 대다수 현재의 상황에 대한 질문들이었다. 헌터협회를 대변하는 대변인으로서, 4대 길드의 길드장으로서, 헌터로서.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기자회견장을 어지러이 만드는 것은 질문소리 만이 아니었다.

    셔터소리와 간간히 들려오는 기자들 간의 언쟁.

    혼돈의 도가니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현장이었다.

    그렇게 대답은 없고 질문만이 메아리치며 맴도는 가운데-

    기자들의 수많은 물음에도 한 번 입을 연적 없던 리차드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5월11일 12시. 마수'시펠케'를 사냥할 예정이다.”

    약 2초 동안 세계를 멈추었다.

    기자들의 시끄러운 목소리가 일순간에 조용해졌다.

    기자들이 멈췄다. 셔터가 눌리지 않았고, 플래시가 터지지 않았다.

    생중계되고 있는 이 기자회견을 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할 일을 잊고 순간 멍해졌다.

    “현재 하프라인 안에 마수가 출몰했고, 우리 라이언하트는 이를 발견했다. 현재 길드 ‘천명’의 도움으로 <시펠케>를 속박하고 있으며 내일. 12시 헌터협회의 조율아래 구성된 스쿼드로 사냥에 나선다.”

    리차드는 거기까지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많은 기자들이 말을 더듬으며 리차드에게 추가로 질문을 해왔지만 리차드는 따로 대답해주지 않았다.

    “저, 저, 저 잠깐만요!”

    “리차드씨! 그게 무슨 말인가요? 하프라인 안쪽에 마수라니요!”

    “리차드씨! 한 마디만 더....”

    “장소는 어디입니까!”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리차드의 기자회견 후에 세계는 발칵 뒤집혔다.

    헌터계의 향후 행보에 대한 우려는 더 이상 기삿거리가 되지 못했다.

    리차드가 이야기한 것은 그런 쓰잘데기 없는 소모성 논쟁과는 비교도 안 되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마수였다.

    공포, 재앙, 끔찍함, 절망,

    그건 마수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모든 인류가 공유하는 감정의 이름들이었다.

    15년 전 균열이라는 재앙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인류에게 마수는 그 존재자체로 재앙이었다.

    하지만 리차드는 그런 마수를 <사냥>한다고 표현했다. 그 말에 사람들은 묘한 기대감을 가졌다.

    포식자와 피식자가 뒤바뀔지도 모른다는 기대.

    그리고 그 기대는 당연하게도 잃어버린 하프라인 바깥의 세상을-

    다시 <수복>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사람들에게 심어주었다.

    그렇게 모두가 주목하는 가운데.

    마수사냥을 위한 시간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

    카오-

    마구로의 마당이 클리어 된 뒤, 강서는 마수사냥에 관한 일체의 것들을 모두 수혁에게 넘겼다.

    첫 마수사냥이니만큼 ‘방법’에 대해 미리알고 준비를 해야하지 않냐고 샬롯과 리차드가 말을 건네왔지만 강서는 고개를 저었다.

    걱정을 하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딱히 미리 알 필요도 없었고, 준비할 만큼 거창한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마수 '시펠케'의 사냥까지 하루남짓한 여유시간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 강서는 쇼파에 앉아 라오를 쓰다듬고 있었다.

    ‘많이 자랐구나.’

    강서는 라오를 보며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외관으로 보이는 라오의 몸이 크게 자란 것은 아니었다. 다만 강서가 그렇게 말한 것은 라오의 뿔을 보고 말한 것.

    금색 기운으로 감싸인 라오의 뿔이 이전보다 더 자라있었다. 해룡옥을 먹고 몸 안으로 들어온 기운이 단번에 소화되지 않고 천천히 흡수되었던 것이다.

    라오는 강서의 쓰다듬는 손길이 기분 좋았는지 살며시 눈을 감았다.

    그르렁 거리는 라오를 쓰다듬으며 속으로 ‘이제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강서의 눈에 이상한 것이 하나 들어왔다.

    거실 한쪽에 놓아둔 무명검(無名劍) 위에 한 장의 쪽지가 붙어있던 것.

    하린이 한 일 일리는 없었다. 마구로의 마당 공략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씻어야겠다고 방으로 들어가서 곯아떨어진 뒤 아직까지 미동도 없기 때문.

    강서가 한 게 아닌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렇다면 제 3자가 하린과 강서가 들어오기 전에 집에 들어왔다는 것을 의미했다.

    강서는 라오를 천천히 한쪽에 내려두고 무명검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쪽지를 주워들었다. 편지 표면에 따로 발신인이 적혀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수신인은 적혀있었다.

    ‘TO. 판다’

    쪽지가 자신에게 온 것임을 확인한 강서는 쪽지를 펼쳤다. 그러자 갑자기 쪽지에 빛이 어리며 강서의 상태창이 활성화 되었다.

    [<고유결계:흑막>의 발동조건이 성립합니다.]

    그리고 강서 눈동자가 새까만 색으로 젖으며 세상이 어두워졌다.

    .

    .

    .

    .

    .

    .

    .

    "..."

    완전한 암흑. 강서의 시야는 완전히 소멸되었다. 강서의 신체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 상태창에서 표시한 것처럼 결계에 들어오게 된 것.

    단 한 줌의 빛도 없는, 시간도 공간도 거리도 구분할 수 없는 완전한 흑암가운데서-

    [너는 누구지?]

    갑자기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강서라고 합니다.”

    잠시 고민하던 강서는 상대가 묻는 대로 이름을 대답해주었다. 상대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지만 어차피 지금은 가면을 쓰고 있지 않은 상태이기도 했고...

    ‘걱정, 자만, 우려, 자신감, 영웅심.’

    하린의 집에 몰래 침입한 사람이니 악인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목소리에 서린 감정이 악한의도를 가진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허...마구로의 마당을 보면서 예상하긴 했지만...역시 예지계열 고유능력이라 이건가. 여유가 넘치는 군. 분명 너 같은 놈은 없었는 데... 이 고유결계에 대해서도 알고 있나?]

    강서의 대답에 뭔가 오해를 한 듯한 목소리의 주인은 아티팩트에 대해 물어왔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강서는 그 아티팩트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흑장상주(黑帳上珠)... 맞나요?”

    흑장상주.

    실제로 그건 강서에게 익숙하기 그지없는 아티팩트였다.

    들어오는 순간 편안함을 느낄 정도.

    <고유결계:흑막>을 펼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는 <흑장상주>는 대마법사 파이베브스 시절 가장 애용하던 아티팩트 중 하나였으니까 말이다.

    [....]

    강서가 태연하게 <흑막>을 펼쳐낸 아티팩트의 이름을 말하자 목소리의 주인이 이번에는 정말 당황했는지 어떠한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잠시간 정적이 흐르고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그 정도의 예지능력을 가진 놈이...어쨌든 그렇다면 너도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이건 이세계의 대마법사가 명상과 연구를 할 때 사용했던 고유결계다.]

    "..."

    [종래에 9서클의 경지에 다다랐던 대마법사는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 새로운 세상을 창조했다고 하지.]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강서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것이 파이베브스 시절 자신을 칭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목소리가 이야기 하고 있는 흑장상주의 용도는 강서가 알고 있는 것과 조금 달랐다. 강서는 그런 식으로 흑장상주를 거창하게 이용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 완전한 흑암 속에 정적들을 가두어 수십 일을 묶어두기도 했지. 네가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시펠케를 잡아 직접 문을 열고 싶으면 제대로 대답해야할 거다.]

    [질문을 몇 가지 하도록 하지. 만약 대답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각오...]

    목소리의 주인이 말을 멈추었다.

    잠자코 말을 듣고 있던 강서가 갑자기 입을 가리며 하품을 했기 때문.

    “아, 죄송합니다. 오랜만이라서.”

    [...]

    강서가 흑장상주를 자주 사용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가장 자주 사용했던 아티팩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매번 그렇게만 사용해서 그런가.’

    하지만 목소리의 주인이 말한 것과 다르게 강서가 그만큼 흑장상주를 자주 사용했던 이유는 파이베브스가 특이한 체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

    파이베브스는 빛이 있는 곳에서는 뇌 활동이 멈추지 않는 특이한 체질이었다.

    결국 뇌에 휴식이 필요할 때에도 빛이 있는 곳이면 휴식을 제대로 취하지 못했다. 그럴 때 사용했던 아티팩트가 바로 흑장상주였다.

    흑장상주의 고유결계 ‘흑막’안에서 만큼은 빛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결국, 쉽게 말해. 목소리의 주인이 찬양해 마지않던 흑장상주는-

    “10분만 자고 얘기해도 될까요?”

    [...]

    사실 강서의 낮잠용 아티팩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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