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 ep16. 징조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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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타는 직감했다. 자신이 의사를 내비치지 않으면 저 사람은 정말로 몬스터가 있는 땅바닥까지 자신을 내려버릴 사람이라고.
그렇기에 대화를 하겠다고 이야기 했다. 솔직히 말하면 절벽을 오르면서 힘이란 힘은 다 써서 쉬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지만.
“그럼 올려드리겠습니다.”
강서의 한마디와 함께 채찍이 엄청난 속도로 당겨지기 시작했다. 당연히 델타의 몸도 엄청난 속도로 청소기 코드 감기듯 빨려 올라갔다.
“으어...으어아아”
느껴지는 엄청난 풍압에 발음도 제대로 못하며 흔들리던 델타의 몸이 한 순간 허공에 붕 떴다.
강서가 채찍을 흔든 것.
그리고나서 델타의 몸이 강서가 있는 절벽 꼭대기에 착지(?)했다.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며 델타의 몸이 두어 번 구르고 멈춰섰다.
땅에 엎드린 델타는 몸을 일으킬 힘도 없는지 눈짓으로 강서의 스마트 워치를 가리켰다. 방송을 꺼달라는 의미였다.
강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스마트워치를 조작했다.
“잠시 방송 쉬었다가 가도록 하겠습니다.”
‘말리부’님이 ‘10,000원’을 후원!
[센세...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러십니까]
-초심 잃었네.
-정보) 판다는 본래 방송인도 게스트도 아니었다.
-아 몰라 방송해!! 방송하라구!!
-저도 직장에서 쉬라고 해서 쉬고 있는데 쉬는 게 그렇게 좋은 건 아닌 것 같아요.
-...그건 본인 의지가 아닌 것 같은데?
생각보다 훨씬 빠른 휴식 타이밍에 채팅창이 달아올랐다. 평소처럼 던전 사냥을 하거나 꿀팁을 준 것이 아니니 내용이 없어 그렇기도 한 것.
물론 그것이 강서의 손을 막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
"..."
방송을 끄고 나서 강서와 델타는 마주앉았다.
강서는 델타가 입을 열기까지 차분히 기다렸고 델타도 강서를 바라보며 입을 꽉 다물고 있었다.
하지만 참을성을 겨루기에는 지내온 시간이 너무 달랐다.
십 분이 넘게 이어진 대치상태에 결국 델타가 참지 못하고 먼저 입을 열었다.
“나도 나지만 아저씨도 진짜 대단하다. 한 번을 안지네.”
고개를 가로저으며 델타가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강서에게 슬며시 부딪혀왔다. 올라오기 전 했던 말을 번복한 것.
“대화를 한다고 하긴 했지만...솔직히 내가 방에서 안 나가는 게 잘못은 아니잖아?”
“아. 그런가요?”
그렇게 얼굴에 철판을 깔고 자신의 논리를 펼치려던 델타가 멈칫했다.
“그렇지. 솔직히 미성년자라고는 하지만 나도 내 자유가 있는...응?”
강서가 자신에게 다가왔기 때문.
델타에게 다가간 강서는 델타의 발목에 묶여있는 채찍을 향해 손을 뻗었다. 델타는 느껴지는 섬뜩함에 본능적으로 다리를 당겼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서의 손아귀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느릿하게 뻗어오는 것 같은 강서의 손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델타는 발을 채 다 빼지 못하고 잡혔다.
"잠깐 아저씨 뭐하는...!!”
"..."
강서는 대답없이 채찍에 손을 대었다.
델타의 머릿속에는 자연스럽게 채찍에 묶이지 않은 채 절벽 밖으로 자신이 내던져 지는 그림이 떠올랐다.
델타는 기겁을 하며 다리를 흔들려고 했지만 강서가 붙잡은 다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니 잠깐만, 아저씨!! 아니 사부님! 선생님!”
강서가 정말로 채찍을 풀려는 시늉을 하자 델타는 거의 울부짖으며 소리쳤다.
“할게요!!! 하고 싶습니다!! 세상에서 대화가 제일 좋아요!!”
델타의 울부짖음이 절벽 가득 울려 퍼지고 소리가 메아리 울리며 사방을 맴돌았다.
강서는 대화를 하겠다는 델타의 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
“...아저씨는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우리 누나가 무섭지도 않아?”
델타는 완전히 기가 빠져버린 자세로 두 팔을 뒤로 짚어 기대앉은 채 강서에게 말했다.
"의뢰를 받았고, 저는 약속을 했습니다. 그뿐이죠.”
델타의 질문에 당연하다는 듯 강서가 대답했지만, 그건 델타로서 쉬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까지 자신을 몰아붙이는 사람도 없었고, 델타가 느끼기에 강서는 지금보다 더 한 짓도 할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
예를 들어, 정말로 절벽 아래로 던져버린다던가, 절벽 밑으로 내던진다던가, 허공에 떨어뜨린다던가.
그렇기 때문에 되물었다.
“뭐 얼마나 대단한 걸 약속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포기하면 되잖아? 안하겠다고. 이렇게까지 하는 건 아저씨도 귀찮잖아.”
“그렇게 쉬운 선택지를 두고.”
델타의 말에 강서가 판다가면을 올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글쎄요. 포기가 쉬운 선택지는 아닙니다만.”
나지막하게 읊조리는 강서의 말에 델타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누나랑 똑같은 말을 하네. 근데 왜 아저씨 말에서는 짜증이 안 나는 거지? 누나가 할 때는 완전 짜증났는데.”
그리고는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쳐다보며 말했다.
“우리 누나 대단하지. 스물일곱 살에 4대 길드의 길드장이 되고, 헌터랭킹도 8위면 엄청 높지. 근데 그래서 문제야. 자기가 한 대로 다 잘 되니까. 자기가 다 맞는 줄 알잖아.”
"..."
“아저씨 누나가 왜 그렇게 주구장창 던전을 다니는지 알아?”
델타는 눈만을 돌려 강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강서는 고개를 저었다. 기껏 해봐야 한 시간 정도 만난 사람이었다. 알 리가 없었다.
“...하프라인을 나가려고 하는 거야. 애초에 하쿠나마타타라는 길드자체가 그걸 위해 만들어 진 거라고 말이 돼?”
"..."
“다들 잊어먹은 거야. 힘 좀 쓰고 능력 좀 생기고, 못 잡던 A급 몬스터도 잡고 하니까. 마수가 어떤 놈들인지 까먹은 거라고.”
델타는 뭔가가 북받쳐 올랐는지 감정서린 말들을 쏟아내었다. 강서는 조용히 델타의 말을 들어주었다.
“나가면 다 죽어. 내가 그래서 가만히 있는 거야 제발 포기하라고.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나빼고 나머지가 다 이상한 거라고.”
“그렇군요.”
"...?"
강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델타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강서가 자신의 말에 수긍을 해주는 태도를 보였으니까.
“이렇게 하죠.”
“뭘?”
***
“후후후.”
델타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강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델타에게 제안한 것은 간단한 내기였다.
“아저씨 혹시 반칙사용할지도 모르니까 다시 방송 켜.”
“그러죠.”
델타는 목을 좌우로 흔들며 몸을 풀었다. 몸에 피로가 꽤나 쌓인 상태였었지만 조금 쉬며 약간 회복되었다.
강서가 제안한 내기는 간단했다.
자신의 판다가면에 델타가 손을 데면 이 자리에서 깨끗하게 손 털고 나갈 뿐 아니라 누나가 하프라인을 나가는 것도 말려주겠다고 약속했다.
다른 내기였다면 고민을 했겠지만 델타는 강서의 제안에 바로 승낙했다. 내기에 자신이 아주 유리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
“아저씨 나중에 말 바꾸지마. 꼭 우리 누나 말려줘야 돼.”
“그러죠. 룰은 아까 말씀드린 대로 하겠습니다. 제한시간 30분. 저는 양손을 포함한 스킬, 무기 사용을 금지하고, 델타님은 원하시는 대로 뭐든 하셔도 됩니다.”
“후회하지마. 후후.”
델타가 내기에 자신이 있었던 이유는 델타의 고유능력과 관련이 있었다. 델타의 고유능력은 그의 누나인 샤를로트와 같았다.
바로 <리미트 해제>. 샤를로트를 지금의 자리까지 올려준 괴랄한 고유능력이었다.
<리미트 해제>는 말 그대로 한계를 지우는 고유능력이었다.
인간이 모든 힘을 쏟는다고 생각하고 힘을 쓰더라도 그건 물리적으로 모든 힘을 쏟는 것이 아니었다. <근육과 뼈가 손상되지 않는 선에서〉노I가 한계점을 두고 쓰는 힘이기 때문.
그건 각성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리미트 해제>는 그것을 무시하고, 정말 생각하는 대로 최대 출력을 뽑을 수 있게 해주는 고유능력이었다.
최대의 속도를 낸다고 하면 연골이 찢어지는 것과, 다리에 금이 가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물리적으로 델타의 신체구조가 뽑을 수 있는 최대의 출력을 뽑아주는 능력.
특히 스킬과 함께 사용될 때의 위력은 가공할 정도.
관련스킬이 없어 아쉽기는 했지만 단 한 순간 만이라면 9티어에 불과한 델타도 경이로운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델타는 강서가 그것을 알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게 이런 내기를 걸어왔다고 생각했다.
“아저씨 아까 분명 8티어라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
델타는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다시 한 번 웃었다.
‘채찍을 들고 있는 거나 아까 다리를 붙잡았을 때를 생각하면 힘에 특화되어있는 게 분명해.’
자신의 누나처럼 능수능란하게 이 고유능력을 사용할 수는 없었지만, 단 한 번뿐이라면, 한 티어 정도는 가뿐히 누를 자신이 있었다.
‘자신있게 걸어오는 걸 보면 그래도 숨기고 있는 게 있는 것 같지만 그래봤자 8티어야.’
7티어가, 6티어가 오더라도 한 순간의 속도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좋아 시작 신호는 어떻게 하지?”
“음... 이 돌멩이를 던지고 땅에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하죠.”
델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서는 지체하지 않고 돌멩이를 던졌다.
델타는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 돌멩이를 노려보았다. 델타의 온 기감이 돌멩이로 집중되어있었다. 시간이 느리게 느껴질 정도로 집중한 상태.
잠시, 적막함이 주위를 덮었다.
떠오른 돌멩이가 자신의 고점을 찍고 땅으로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돌멩이가 바닥에 닿는 소리와 동시에 델타의 입이 벌어졌다.
“리미트 햊.....?”
하지만 델타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델타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자신과 20m는 떨어져 서있던 강서가 자신의 눈앞으로 이동해있었기 때문. 심지어 언제 만졌는지 빗겨 쓰고 있던 판다가면도 바로 쓰고 있었다.
‘왜…?’
“그럼, 30분 후에 뵙겠습니다.”
퍽-
강서의 말과 함께 델타는 자신의 몸이 다시 한 번 차여 허공에 떠올랐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5초 뒤면 자신이 다시 채찍에 매달린 채 절벽중간에 매달려있을 거라는 사실도.
“아."
강서는 외마디 탄성을 뱉었다. 델타의 말대로 방송을 켜긴 했지만 델타에게 방송화면을 공유하지 않은 것이 떠올랐기 때문. 강서는 방송화면을 델타에게 전송했다.
그리고 때마침 델타의 심금을 울리는 하나의 도네이션이 날아왔다.
‘익명의8티어’님이 ‘10,000원’을 후원!
[???: 어휴...빙신…]
***
마탑 한국지부의 옥상.
마탑의 상징인 뾰족한 지붕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는 작은 공간에는 탑주인 김수혁의 휴식처가 있었다.
던전에서 발견된 이로운 식물 몇 가지가 심어져 있었고, 수혁이 애용하는 나무 흔들의자가 있었다.
수혁은 일을 끝마치는 것을 중시하는 사람이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휴식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필요할 경우 낮잠을 자고는 했는데 보통은 스마트워치를 집무실에 벗어놓은 채 옥상에 올라와 흔들의자에서 낮잠을 취했다.
그래서 오늘도 어김없이 판다의 저번 달 지출내역서를 보고나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낮잠을 취하고 있었다.
본래 이 시간에는 그 누구도 옥상을 방문할 수 없었다. 원래라면 그래야 했다.
벌컥-
옥상문이 열렸다.
낮잠을 방해받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비취는 햇살이 따가워서인지 수혁은 눈살을 찌푸린 채 들어온 총무를 향해 물었다.
“뭐야.”
총무는 수혁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굳은 얼굴로 스마트워치를 수혁에게 내밀었다. 평소와 다른 총무의 태도에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수혁은 스마트워치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수혁이 길드 라이언하트로부터 온 메시지를 읽으며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할 때 쯤. 총무의 입이 열렸다.
“하프라인이...함락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