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 ep15. 가르침을 주십시오.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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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판다입니다.”
-판-하
-워매, 드디어 하린이 쫓겨난 겨?
-ㅋㅋㅋㅋㅋㅋ굴러 날아온 돌 ㅎ
강서는 델타의 부탁(?)대로 방송촬영을 시작했다. 항상 먼저 오프닝을 여는 것은 하린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하린을 찾았지만, 하린은 티어승급에 온 정신을 쏟고 있는 상태.
던전에 같이 들어오지 못한 것은 물론, 지금 강서가 자신의 아이디로 방송을 켰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
“하린님은 티어 승급으로 바쁘신 상태라. 아쉽게도 방송을 같이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계속 미뤄서 원래 가야하는 티어보다 많이 낮거든요.”
‘말리부’님이 ‘10,000원’을 후원!
[예…? 당신은요?]
‘익명의 8티어’님이 ‘20,000원’을 후원!
[???: 티어 승급한다고 바쁘던데요?]
-ㅋㅋㅋㅋㅋㅋㅈㄴ남일
-그렇죠. 당신은 티어가 상관이 없죠...
-아재요 이번엔 던전 교범을 바꿨으니까 다음에는 헌터 체계도 바꾸는 거죠?
-zzzzz
“오늘 방송은 여기 있는 이 델타 피미아 라는 분의 요청으로 켜게 되었습니다.”
-델타 피미아면...
-샤를로트 동생?
-? 갑자기?
시청자들의 질문에 강서가 맥락을 간단히 설명했다.
샬롯 피미아가 델타피미아의 교육을 부탁해서 자신이 그 교육을 하게 되었고, 그 교육이 부당할 시에 증거자료로 사용하기 위해 델타가 촬영을 요청했다는 것.
강서는 방송화면을 델타 피미아에게도 보이도록 스마트워치로 연결해주었다. 델타피미아는 그것을 확인하고 깜짝 놀란 눈을 하였다.
‘15만...?’
“아저씨. 이게 지금 보고 있는 사람 수야?”
“네, 우측상단에 나오는 작은 숫자가 현재 기준으로 방송을 보고 있는 시청자의 수입니다.”
“15만이라...”
델타는 쾌재를 불렀다. 델타도 인터넷 방송을 알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시청했던 것은 꽤나 시간이 지났지만, 그 수가 적은 것이 아니라는 것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자기무덤을 팠군.’
델타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본래 자신은 생방송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강서가 알아서 그렇게 까지 해주었다. 당연히 촬영 보다 그쪽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웃음을 지은 것.
하지만 시청자들의 채팅은 델타가 생각한 것과는 많이 다른 양상으로 이어졌다.
‘말리부’님이 ‘10,000원’을 후원!
[아...그러니까 이번엔 사람이라는 말이죠?]
-ㅇㅇ그런 듯 대상만 사람으로 바뀌었다는 거네.
-모르모르, 몽쿠....다음은 델타인가.
-판다식 사냥법에 이은, 판다식 교육법...
"응...?"
무언가가 계속, 델타의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
강서가 델타를 데리고 들어간 던전은 ‘타르파스의 절벽’이었다.
타르파스의 절벽은 하급티어에서 선호하는 E급 던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좀처럼 찾지 않는 던전 중 하나였다.
그 이유는 던전입구가 사방이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루어진 산의 꼭대기에 있었고, 그 절벽을 내려가지 않으면 몬스터를 잡을 수 없었기 때문.
마법:레비테이션이나 그에 준하는 아이템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순수하게 육체적인 힘으로 절벽을 기어 오르내려야 했다.
그 정도 아이템을 구매할만큼 메리트가 있는 던전은 아니었기 때문에 사람들인 타르파스의 절벽을 찾지 않았다.
물론 현실에서도 사용하는 클라이밍 장비들을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몬스터들의 부산물들을 다 챙겨야하는 저 티어 헌터들에게는 절벽을 올라오는 것도 문제였다.
델타는 절벽 아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확실히 사방이 절벽이라 도망은 못 가겠네. 던전입구로 나가는 건 아저씨가 막을 거고 말이지.”
그렇게 말하는 델타의 목소리에는 자신만만함이 서려있었다.
“그래도...뭘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지만. 계약서 맨 위에 보니까 딱 일주일이라고 되어있던데 일주일만 버티면 되는 거잖아.”
자신이 있었기 때문. 이전 교육자 중에는 자신에게서 하루에 한 시간은 집밖에 나오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기 위해 한 달 동안 별의 별 것을 다 한 교육자도 있었다.
‘일주일 정도야...’
그때도 자신은 끄떡없이 버텨내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숙식까지 제공하도록 계약서에 써져 있었다.
델타가 생각하기에는 아무것도 걱정할 것이 없었다.
‘아빠도이계인’님이 ‘10,000원’을 후원!
[예? 일주일이요? 아재 도대체 애랑 무슨 계약을 맺은 거에요.]
‘개념원리’님이 ‘10,000원’을 후원!
[델타야, 내가보기에는 너네누나가 너를 죽이려는 심산인 것 같은데...]
-모르모르: 도망쳐…
-몽쿠: 지금이라도 도망치란 말이야...
움찔-
하지만 이번에도 댓글들은 심상치 않았다. 댓글들을 보며 델타가 강서에게 뭐하던 사람이냐고 물으려 했으나, 델타가 말을 꺼내기 전에 강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 혹시나 해서 말하는 데 저는 폭력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 채찍도 때리려는 용도는 아니고요.”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숙여, 델타의 한쪽 발목에 채찍의 끄트머리를 감아 묶기 시작했다.
"...?"
“혹시 모르니까 건드리지 마세요. 풀리면 위험하거든요."
“아!"
강서의 말에서 델타는 뭔가 깨달은 듯 탄성을 뱉었다.
“아저씨 걱정마. 도망은 안 갈 꺼야. 나도 누나한테서 소원 얻어야 되거든. 그리고 그렇게 묶어 놓으면 누구나 풀고 도망가지. 생각보다 맹탕인 구석이 있네.”
"...?"
강서가 채찍을 묶는 이유가 자신이 던전 밖으로 도망 갈까봐 미리 대비해 놓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
델타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강서가 생각보다 사람을 믿는 순수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
그런 델타의 말에 고개를 잠깐 갸웃한 강서는 채찍을 마저 묶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델타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교육에서 대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 아저씨 생각보다 신사적이네. 다짜고짜 끌고 들어와서 막무가내식인 줄 알았는데, 방송을 켜서 그런 건가?”
델타는 강서의 의외의 발언에 다시 한 번 미소를 지었다.
방송을 키기 전에는 던전에 기절시켜 끌고 들어오고, 계약서를 들이밀고 채찍을 꺼내는 등 당연히 폭력을 사용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상식적인 선에서 대화가 진행되자 조금은 안심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혹시 샬롯님께서 의뢰하신 것처럼 생활방식을 바꾸는 부분에서 대화할 생각이 있으신가요?"
“그 부분은 전혀. 다른 대화라면 뭐든지 받아주지. 아저씨가 생각보다 신시적으로 나오...”
거절하는 델타의 말에 강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뒤 이어지는 델타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우선 방송 화면은 저한테 맞추어 놓겠습니다. 그럼, 다시 대화할 생각이 드시면 이 스마트 워치를 통해서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
그렇게 말하고 채찍의 손잡이를 주워든 강서는-
퍼억-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절벽을 향해 델타의 몸을 밀어 찼다.
“으아아악!!!”
던전을 울리는 비명소리와 함께 절벽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한 델타의 몸은 약 100m를 내려가 대롱대롱 채찍에 매달렸다.
얼빠진 표정을 짓고 거꾸로 매달린 델타가 정신을 제대로 차리기도 전에, 델타의 스마트워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아아, 이쪽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 채찍은 아티팩트라서 제가 원하는 만큼 늘릴 수 있습니다. 지금이 100m 정도고 앞으로 10분에 1m씩 내려갈 예정이고요.]
“이게 대체...”
-쯧쯧, 신사적이라니. 델타야...
-교육에서 대화가 중요한 이유.avi
-ㄴ순순히 안하면 뒤지기 때문....
-ㅋㅋㅋㅋㅋㅋ신사는 무슨... 신(新) 사탄이면 몰라도.
[혹시 다시 대화를 나눌 의향이 생기시면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참고로 계속 내려가시면 아래서 몬스터들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강서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
“끄으으!!"
델타는 양손으로는 채찍을 잡고 두 발로 지탱하며 절벽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몸 움직이는 걸 정말 싫어하는 델타였지만, 용을 쓰고 절벽을 오르고 있었다.
델타도 나름의 고집과 자존심이 있었기 때문. 강서가 자신을 몰아붙이자 오히려 오기가 생긴 것이다.
‘절대, 안 질 거야.’
델타가 아무것도 안하고 매달려 있는 동안 채찍의 길이가 늘어난 것은 두 번.
델타가 관찰한 결과 그 20분 동안 강서는 한 번도 아래를 쳐다 보지 않았다. 거기에서 델타는 한 가지 묘안을 떠올렸다.
‘내가 기어서 직접 올라가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하겠지.’
바로 직접 기어서 절벽을 올라가는 방법이었다. 들키지만 않는 다면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델타는 절벽을 짚고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채찍을 당기며 올라가는 방법을 채택해, 채찍의 팽팽함을 계속 유지했다.
그리고 동시에-
“아저씨 빨리 올려달라고...”
“나 진짜 죽일 거야?”
“아무리 계약서에 쓰여 있어도 이건 아니지 않아?”
스마트워치를 통해 계속해서 연기도 하고 있었다. 마치 아래에 매달린 채 진이 빠진 것처럼 혼신의 연기까지 펼쳐가며 절벽을 오른 것이다.
델타가 예상했던 대로 절벽을 오르며 거의 꼭대기에 도착할 때까지, 강서는 한 번도 델타를 확인하지 않았다. 그렇게 델타는 정상을 눈앞에 두었다.
한 번.
단 한번만 강하게 당기면 꼭대기를 잡고 오를 수 있는 거리까지 도착했다.
델타는 몸을 절벽에 바짝 붙이고 다리에 힘을 주었다.
‘좋아...이제 오르자마자 발목의 채찍을 풀면 허공에 그냥 내던지지는...’
그렇게 델타가 눈을 감고 마지막 심호흡을 하려고 숨을 들이키는데-
섬짓-
“어떻게, 대화할 생각이 좀 드셨나요?”
델타는 온몸에 소름에 돋는 것을 느끼며 감았던 눈을 떴다.
판다가면을 쓴 강서가 쪼그려 앉은 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절망감에 탄식을 뱉은 델타는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앗... 아앗....
-악마다...
-이게 『교-육』이다.
"그동안 한 번도 안 내려다 봤으면서 왜...”
강서는 델타의 물음에 대답해주지 않았다.
"...아직 없으신 거죠?”
"..."
그리고 뭔가 생각났다는 듯 고갯짓을 하며 델타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아, 올라오면서 물으신 것에 관련조항으로 8항에 보시면 ‘가혹행위 금지조항’이 있는데, 맨 뒷장, 추가 특약사항 12항 보시면 ‘단, 던전이라는 특수한 환경적 배경을 고려하여 생명의 위협이나 신체의 손상, 그에 준하는 신체적 피해를 동반하지 않는다면, 현저한 수준차이가 나는 교육자의 행위는 정당 행위로 인정된다.’라고 적혀있습니다.”
"..."
“이게 무슨 말이냐면, 저는 8티어이고, 델타님이 9티어이기 때문에 현저한 수준차이가 나서 제가 하는 일은 대부분 정당행위로 인정 된다는 말입니다.”
"..."
델타는 아예 혼이 빠졌는지 대답조차 하지 못하고 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강서는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또 다른 궁금한 건 없으시죠?’하고 한 번 더 되묻고, 왼손을 뻗어 슬며시 델타의 몸을 밀었다.
델타의 몸은 마치 원래 그러기로 약속이라도 한 듯. 조금의 걸림도 없이 절벽 아래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채찍이 다시 팽팽해지고, 강서의 스마트 워치로 델타의 힘 빠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할게,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