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소소한 꿀팁방송-61화 (61/191)
  • 61화. < ep13. 뽑기 (4) >

    =====================

    팔씨름. 영어로는 arm-wrestling.

    두 사람이 팔꿈치를 바닥에 대고 손을 마주잡아 상대편 손등이 먼저 바닥에 닿도록 하면 이기는 내기.

    전 세계 누구나 남녀노소 즐기는 그 평범한 놀이는 마탑의 ‘판다지아 판매목표 달성기념 행사’에서 상상치도 못한 모양으로 변형되었다.

    -???: 저건 아무리 봐도 팔씨름 준비자세가 아닌데요.

    -탑주좌+판다좌= ???

    -박하린 벙찐 표정ㅋㅋㅋㅋㅋㅋ

    “중국의 샤오길드 수장 진챠오 헌터와 아랍의 카림길드 수장 카림 헌터의 대결입니다. 이 두 길드장들은 모두 오늘 아침을 굶은 것으로 확인 되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 다 자신있게 기본조항 삭제를 요청했습니다.”

    경기장 안에는 강서의 목소리만이 고저 없이 울려 퍼지고 있었고, 그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침음성을 흘리며 긴장하고 있었다.

    그건 팔씨름을 준비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일반적인 범주를 한참 벗어나 있었기 때문.

    팔씨름 테이블은 진작에 경기장 한쪽으로 치워버리고 양손을 마주잡은 채, 반대쪽 손을 주먹을 말아 쥐고 있었다.

    안 그래도 부실한 조항인데, 두 사람은 제약을 추가하기는커녕 ‘팔꿈치를 패드에 데고 있어야 한다’는 조항까지 삭제해 버린 것.

    무법(無法)의 겨룸.

    두 사람이 손을 마주 잡고 있기 때문에 떨어질 수 없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그건 어찌면 실전보다도 더 극한의 격투였다.

    침음성을 흘리는 것은 중계석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이게 대체...’

    하린은 이미 중계를 포기하고 있었다. 팔씨름이라는 규격을, 넘어도 한참 넘어선 그 괴이한 상황에 도저히 자연스럽게 중계할 수 없었던 것이다.

    수년간의 방송경험도 그 당혹감을 막지는 못했다.

    다행히도(?) 강서가 당혹감 없이 이어서 중계를 하는 덕분에 경기는 속행될 수 있었지만 말이다.

    “그럼 준비하시고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강서의 나지막한 시작신호와 함께, 두 사람의 손아귀가 조여지며 대회장 가득 밧줄 짜는 소리가 퍼졌다.

    꽈아악!

    하지만 상황은 전경기와 많이 달랐다.

    퍽!

    시작한지 채 5초가 되지 않아 카림과 진챠오가 서로의 볼을 향해 주먹을 내지른 것. 둘 다 황소같은 성격을 가진 것으로 유명한 길드장 들이었다. 호전적인 성격을 가진 만큼 첫 공격에 방어 같은 것은 없었다.

    “애송아, 그런 솜방망이 같은 주먹으로 몬스터를 잡을 수나 있냐?”

    “미안한데, 먼저 처 맞고 그런 소리하면 하나도 위협이 안 된다.”

    -킹-씨름

    -킹갓-씨름

    -ㅋㅋㅋㅋ이게 팔씨름이냐;;

    -개꿀잼 몰카의 시대는 갔다...이제 킹꿀잼 생방의 시대야

    -???: 어이 1티어 그런 솜방망이 주먹으로 몬스터를 잡을 수나 있나?

    -지나가던 9티어: ....예?

    몇 번의 주먹과 발길질을 주고받던 두 명의 길드장이 무기를 꺼내드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먼저 무기를 꺼내든 것은 카림이었다. 카림이 자신의 전용무기인 <마그마 해머>를 왼손에 들고 휘둘렀다.

    붉은 색 궤적을 남기며 휘둘린 회색 망치는 정확히 진챠오의 정수리를 향해 내리 찍히고 있었다.

    츠증-

    진챠오 또한 무기를 꺼내 들었다. 살짝 빗겨든 검이 망치와 닿으며 궤적이 미묘하게 뒤틀렸다. 동시에 진챠오는 빗겨진 반대방향으로 한걸음 움직였다.

    콱! 근소한 차이로 카림의 해머를 피한 진챠오가 마주잡은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카림의 몸을 당기려는 시도.

    망치를 내려찍으며 앞으로 쏠린 카림의 몸이 그대로 당겨졌다.

    동시에 진챠오는 그대로 뒤로 누우며 바닥에 등을 붙였다. 그리고 자신의 위로 덮이는 카림의 몸을 오른 발로 차올렸다.

    “크윽-”

    “여기서 부터는 조금 손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수혁이 오른손가락을 튕기며 마법을 발동함과 동시에 [<마법: 디펜시브 스킨>이 발동 됩니다.]

    [디펜시브 스킨 : 몸 전체를 덮는 얇은 방어막을 형성하여 들어오는 데미지의 일부를 감소시킵니다.]

    수혁이 마법을 발동함과 동시에 차올린 카림의 몸이 진챠오를 중심으로 반원을 그리며 땅에 처박혔다.

    쾅!!

    “너무 격하게 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요. 이미 격한데요.

    -극렬합니다만...

    -네, 여러분 이게 <팔씨름>이란 겁니다. 팔씨름의 어원은 ‘팔 뽑히기 시름 포기하던가.’로 이 게임의 패배자는 대부분 죽거나 불구가 되어....

    -ㅋㅋㅋㅋㅋㅋㅋㅋ현웃ㅋㅋㅋ

    다행히 수혁의 마법이 시기적절하게 작동했는지 카림의 몸 전체에 연한 푸른빛이 감돌고 있었다. 얼굴은 잔뜩 찡그려졌지만 상처라고 할 만한 피해는 없어보였다.

    강서의 고저없는 중계도 빠지지 않고 이어졌다.

    “카림선수 한 방 먹었습니다. 비등비등한 수준에서 첫 타격의 의미는 굉장히 크죠.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기대가 되네요.”

    -???: 아침밥 대신에 메치기를 처먹어버렸죠? 든든하죠?

    -1티어 쉐프 진챠오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카림이 한국어 할 줄 알았으면 넌 진짜 죽었다.

    -카림이면 저기서 망치 던져도 맞아죽을 듯ㅋㅋㅋㅋㅋㅋ

    -속보) 강원도 속초에 살던 이모씨 갑자기 날아온 정체불명의 망치에 중상입어

    깡!

    카림이 자신이 누운 곳에서 빠르게 일어났다. 동시에 진챠오를 향해 전력으로 망치를 내리 찍었다. 휘둘러지는 모습이 안 보일 정도.

    전부는 아니더라도 거기에는 <진심>이 일부 섞여있었다.

    진챠오는 이번에도 검을 휘둘러 망치를 쳐버렸다. 본래의 궤도를 벗어났지만 확실히 아까보다 빠른 속도.

    "이봐 카림 이거 단순히 팔씨름인데 그렇게 진심으로....!”

    카림의 자세가 조금 달라졌다는 것을 안 진챠오가 비아냥거렸지만,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콰악!

    “큭!”

    망치가 땅에 내리 찍어짐과 동시에 카림이 망치를 놓고 진챠오의 반대쪽 어깨를 잡은 것이다. 그리고 카림은 마주 잡고 있는 손을 당기며 그대로 진챠오를 들고 강하게 진각을 밟았다.

    1티어인데다가 해머를 주 무기로 사용하는 카림의 힘은 보통사람이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카림의 발이 자리를 박참과 동시에 바닥에 금이 새겨졌다.

    단번에 엄청난 속도로 전진하던 카림이 각도를 바꾸어 진챠오의 어깨를 바닥에 박아버렸다.

    가가가가각!

    엄청난 속도와 압력에 진챠오의 어깨부위가 바닥에 긁혔다.

    “단순한 팔씨름? <미확인 아티팩트>가 걸린 팔씨름이지.”

    진챠오는 몸을 일으키려 안간힘을 썼으나 중력과 속도는 이미 순간을 낚아챈 카림의 편이었다.

    게다가 어깨가 잡힌 채로는 카림을 향해 검을 제대로 휘두를 수도 없는 상태.

    결국 진챠오는 잡고 있던 검을 놓아버리고 주먹을 쥔 뒤 바닥을 있는 힘껏 내리쳤다.

    쾅!

    바닥이 깨져나가며 진챠오의 몸이 공중에 떠올랐다. 공중에서 균형을 잡은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착지했다.

    다시금 두발로 선 두 사람은 쉴 틈 없이 공방을 주고받았다. 아니 쉴 틈이 없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팔씨름>이라는 명목 하에 두 사람의 손이 마주 잡힌 이상 1m이상의 거리가 벌어질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그 모습을 보며 강서는 과거의 한 생(生)을 떠올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한 생(生)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종족을 떠올렸다.

    강서가 보기에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없어진 것 같았지만, 원래 지구에는 다른 아인종들이 같이 살아갔었다.

    그들 중 한 종족, 구성원 모두가 호전적인 성격을 가진 종족이 있었다.

    전투종족 오크.

    힘을 숭상하고, 전투를 즐기며, 언제나 승리에 취해 살아가는 그 종족의 문화 중에도, 지금 벌어지는 팔씨름과 비슷한 것이 있었다는 것을 강서가 떠올린 것이다.

    ‘뭉투스.’

    오크종족의 전통적인 결투문화.

    한 손을 마주잡고 한 쪽이 죽거나 포기의사를 밝힐 때까지 계속해서 한 대씩 주고받는 오크의 결투를 일컫는 말이었다.

    보통 족장결정이나 종족 내 의견 대립의 해결 수단으로 사용되는 그 결투는 자주는 아니었지만 중요한 일이 있으면 종종 치러지곤 했다.

    강서도 직접 해본 적이 있었고.

    그 더할 나위 없이 오크다운 결투문화와 이 팔씨름은 확실히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크흑”

    “쿨럭”

    두 사람의 공방전이 치열해질수록 좌중은 조용해졌다. 이제 2라운드였다. 앞으로 남은 라운드가 총 8번.

    그들에게 그건 기회이기도 했지만, 다가올 현실이었다. 두 사람의 치열한 싸움이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었던 것. 이 중에는 당장 내일 던전스케줄이 잡혀있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고민을 하는 사람들 중에 정작 포기하고 자리를 뜨는 사람은 없었다.

    마탑에서 들이민 무명검(無名劍)이라는 미끼가 너무나도 컸던 것.

    모든 사람들이 검을 뽑는다는 것 자체에 호승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건 5년 전의 자신이 하지 못한 일을 하겠다는 마음이기도, 그 누구도 못한 일을 내가 해내 보이겠다는 마음이기도 했다.

    게다가 단순히 ‘미확인 아티팩트’를 얻는다는 사실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명검을 획득했을 때 길드에 뒤따라올 사회적 가치가 너무 컸다.

    무명검은 현존하는 유일한 미확인 아티팩트.

    유일하다는 것은 명성, 명예와 직결되었고, 헌터 세계에서 길드의 명성은 곧 그 길드의 수준과 유입되는 길드원의 수를 결정했다.

    얻는 순간, 명성을 얻으며 길드의 덩치가 커지는 것은 당연지사.

    대회장에 자리한 모든 길드의 길드장과 간부들은 자신의 길드가 일반적인 <거대길드>딱지를 벗는 상상을 했다. 어쩌면 5대길드가 될 지도 모르리라 하면서 말이다.

    물론 전혀 걱정같은 것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도 있기는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앉아있는 대회장에서 딱 두 사람.

    4대 길드 ‘라이언하트’의 길드장 <리차드 4세>.

    그리고, 역시 4대 길드 ‘하쿠나마타타’의 길드장 <샬롯>이 그러했다.

    한명은 그 무명검이 당연히 자신의 것이라 생각했고, 한명은 무명검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

    “아... 진짜 안타깝네요.”

    하린의 탄성에는 진심이 담겨있었다.

    "그렇습니다. 진챠오 헌터. 비교적 수월했던 첫 경기에 비해 수배는 고생을 했지만 결국 이병진 헌터와 마찬가지로 무명검을 뽑지 못했습니다.”

    두 번째 경기의 승자는 진챠오였다. 타격을 맞은 횟수는 진챠오가 더 많았지만 머리를 써가며 테이블이 있는 곳으로 피했던 것.

    진챠오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하고 진챠오가 피하는 곳으로 따라가며 가격하던 카림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테이블에 도달하여, 허무 하게 팔씨름에서 져버리고 말았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중계에서 하린과 강서가 말한 것처럼 무명검을 뽑지 못했다는 것.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은 진챠오였지만 1분이라는 시간은 뭐라 토를 달 수 없을 정도로 충분한 시간이었다.

    “아쉽지만 2라운드가 예상보다 조금 길어진 관계로 신속하게 3라운드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3라운드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손을 들어주세요.”

    강서와 이전과 같이 3라운드 참여를 권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이전과 달랐다. 이상한 상황이 벌어진 것.

    너도나도 손을 들던 2라운드와 다르게 사람들이 망설이며 눈치를 보고 손을 들지 않고 있었다.

    그건 2라운드가 너무 격렬해서가 아니었다.

    당연히 무명검을 포기한 것도 아니었고.

    그들이 망설이며 손을 들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4대 길드의 라이언 하트의 수장. 이제는 영국 헌터계의 상징이 되어버린 <리차드 4세>가 오른손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