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소소한 꿀팁방송-60화 (60/191)
  • 60화. < ep13. 뽑기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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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수혁의 짤막한 인사말과 함께 <판다지아 판매목표 달성기념 행사>가 시작되었다. 행사가 이루어지는 공간은 마탑 사유지에 신축한 대회장.

    이 대회를 위해 새로 마련된 공간이었다. 수많은 거대길드의 간부급 인사들이 각자의 지정된 장소에 자리하고 있었다.

    -와 라인업 실화냐. 죄다 아는 얼굴이네

    -마탑주최. 4대 길드 참여...

    -근데 솔직히 무명검이면 당연하지.

    “사실 마탑이 그동안 이정도로 대외적인 행사를 연 적은 없었습니다.”

    그 모습은 모두 방송을 통해 전 세계로 송출되고 있었다. 수혁이 말한 것처럼 이번 행사는 주로 양지에 나서지 않는 마탑으로서 이레적인 행사였으니 말이다.

    뿐만 아니라 그저 길드 행사도 아니었고, 무려 4대 길드가 모이는 대 행사.

    모든 길드장이 자리한 것은 아니었지만 4대 길드가 모두 모이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확실히 예외적인 일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시니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저희 마탑의 <판다지아 판매목표 달성기념 행사>는 대회의 형식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래서 중계진이 준비되어있는데요...”

    “안녕하세요. 하린입니다!”

    “판다입니다.”

    -키야 판-다

    -지-야

    -그를 위한 행사...

    -판 the God’s son 다

    판다지아 행사의 중계진은 하린과 강서였다.

    <판다>가 현장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처음으로 중계석에 앉아 있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물론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었고, 대회장의 한쪽에 있을 뿐이었지만.

    “여기부터 설명은 저희가 하도록 하겠습니다! 대회의 룰은 간단합니다. 우선 가장 중요한 상품!”

    하린이 활기찬 목소리로 무명검을 가리켰다. 그와 동시에 화면에 무명검이 잡혔다.

    시청자들은 화면을 통해 처음 보았기 때문에 채팅으로 ㅗㅜㅑ를 남발 했지만, 현장은 오히려 조용했다.

    이미 들어오면서부터 눈이 그쪽으로 고정된 채 자신이 검을 뽑는 상상을 수십 번도 더 하고 있었기 때문.

    대회에 자리한 사람들 중 대다수가 5년 전 무명검에 도전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당시에 루키라 불리던 자들이 지금은 길드의 간부가 되어 자리하고 있는 것.

    이번에는 뽑을 수 있다는 출처모를 자신감들이 가득히 차올라 혹자는 침을 꿀떡 삼키기도 했다.

    -ㄹㅇ이었구나

    -ㅗㅜㅑ....

    -마탑이 가지고 있었다니 ㄷㄷ

    -킹꿀잼 몰카자너;;

    “우선 가장 기본적인 룰! 검을 뽑으면 이 대회에서 우승을 하게 됩니다.”

    하린의 첫 번째 설명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검을 뽑아야 검을 가져갈 테니까.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검을 뽑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게임에서 승리한 일부만이 <무명검>에 도전할 권리를 얻습니다."

    -???: 온라인 참여되나요?

    -ㅋㅋㅋㅋㅋㅋ검도 원격으로 뽑아 보던가

    -???: 이기어검?!

    -ㅋㅋㅋㅋ손가락으로 채팅 두드리면서 이기어검ㅇㅈㄹㅋㅋㅋ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그 게임에서 승리한 사람들만이 무명검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게임은 바로...”

    하린이 말을 끌자 좌중의 시선이 하린에게로 향했다.

    “바로...”

    -???: (이마를 짚으며) 저번에는 무려더니 이번에는 바로야?

    -저만한 길드를 모아놓고 저러는 것도 대단하다.

    -할말하않...

    “팔씨름입니다!!”

    하린의 말과 함께 사위가 적막해졌다. 하린의 입에서 나온 말이 그들의 예상과 너무도 멀었기 때문. 차라리 대련을 떠올렸으면 떠올렸지 팔씨름은 정말 예상 밖이었던 것이다.

    세계에 내로라하는 거대길드간부들을 다 불러 모은 자리였다. 게다가 그 4대 길드의 길드장까지 있는 자리.

    ‘팔씨름이라고...?’

    누군가 조그만 소리로 중얼거렸다.

    적막한 가운데에서 강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룰은 경기전 말씀드리는 기본 룰로 진행되나... 시작 전 두 명이 합의를 하시면 조항변경이 가능합니다. 총 10번의 라운드로 진행되고, 10번의 라운드 마다 손을 들 기회를 드립니다. 손을 든 사람이 2명이 넘어갈 경우 제가 임의의 방법으로 두 명을 선택하겠니다.”

    강서의 말이 마치지 마자 수혁이 말을 붙였다.

    “느끼셨듯이 통역마법은 이미 필드에 걸려있고요. 죽거나 회복불능의 상처만 아니면 무엇이든 하셔도 됩니다. 과도한 행위가 보이면 제가 제재하겠습니다.”

    일부는 조금 꺼림칙한 표정을 지었지만 대부분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혁의 말을 들었다. 순간 대처 능력에 대해서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이 수혁의 고유능력이었으니까.

    “그럼- 1라운드를 시작하겠습니다. 참가를 원하시는 분은 손을 들어주시면 됩니다.”

    * * *

    오성길드의 부 길드마스터 이병진은 자신있게 1라운드에 나섰다.

    다른 사람들은 상황을 보려는 듯 움직이지 않았지만, 이병진은 강서의 1라운드를 시작하겠다는 말과 함께 손을 들었다.

    ‘멍청한 놈들. 지금이 기회지 저 괴물 같은 4대 길드가 나서기 시작하면 답도 없을 텐데.’

    이병진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게 이병진의 생각이었다.

    오성도 한국에서라면 어디 가서 기죽지 않을 거대 길드였지만 이곳은 판 자체가 달랐다. 변수가 좀 있을 것을 감수하더라도, 첫 번째로 나서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한 것.

    그리고 실제로 그건 나쁘지 않은 판단이었다. 이병진과 함께 손을 든 사람은 한 명뿐이었으니까.

    “더 없는 것 같으니 두 분은 가운데 무명검 옆의 테이블로 자리해주시면 되겠습니다.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그건 바로 일본의 거대길드 중 하나인 쿠로이누 길드의 간부였다.

    “오성길드의 부 길드 마스터 <이병진>이다. 전사클래스지.”

    “쿠로이누의 <시바사키 다이지로>라고 하오. 본인도 전사 클라스이외다.”

    팔씨름이 이루어지는 곳은 무명검 옆의 철제 테이블 이었다. 투박한 테이블이었지만 대장장이 클래스에 마탑에서 직접 의뢰하여 제작한 B급 아이템이었다.

    테이블 위에는 네 개의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팔씨름의 판정을 위한 마법진을 수혁이 미리 새겨놓은 것.

    두 사람이 자리하자 강서가 추가설명을 했다.

    “손등이 파란색 마법진에 닿게 되면 경기는 종료됩니다. 반대로 옆에 빨간색 마법진이 그려져 있는 엘보우 패드에서 팔꿈치를 뗄 경우에도 경기는 종료됩니다. 시작 신호 전에 힘주시면 안 됩니다. 그 외에 추가하실 사항 있나요?”

    이병진과 시바사키 다이지로 두 명 다 고개를 내저었다.

    -그라제~ 팔씨름할 때 시작 전에 힘 빼는 건 국룰이자너

    -ㅋㅋㅋㅋㅋㅋ이거 뭔데 긴장되냐zzz

    -진짜zzzzzz내일부터 팔씨름 메이져 운동종목 ㅇㅈ?

    “그럼 준비하시겠습니다.”

    강서가 준비를 말하자, 약간의 긴장감이 좌중을 덮으며 두 사람이 손을 마주잡았다. 단순한 팔씨름이라 할 수 있었지만 걸린 상품이 상품인 만큼 비장함이 감돌았다.

    “시-작!”

    강서의 말과 함께 두 사람의 팔에 터질 듯이 근육이 차올랐다.

    꽈아악!

    얼마나 강하게 손을 잡았는지 맞잡은 손에서 밧줄당기는 소리가 날정도. 이병진과 시바사키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ㅗᅮㅑ ...무슨 팔뚝이 내 머리보다 굵냐

    -정보) 저기서 팔씨름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각국 국내랭킹 50위 안에 드는 괴물들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팽팽한 접전. 가운데 자리 잡은 두 개의 주먹은 부들부들 떨리면서도 한 쪽으로 밀리지 않고 90도의 각도를 유지했다.

    하린이 능숙하게 진행을 시작했다.

    하린은 사실 무미건조한 말투의 강서에게 생동감있는 현장중계는 무리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른 운동 경기 중계영상을 몇 개정도 미리보고 와달라고 이야기는 했었지만, 혼자 한다는 생각으로 철저히 준비를 해왔다.

    “아, 양 선수 모두 엄청난 괴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병진 헌터는 최근 국내 2티어 헌터 중에서도 최상위권의 던전 수행 능력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능력이 과연 팔씨름에서도 나타날 수 있을지 여러분들 모두 함께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반대쪽...”

    하린이 반대쪽 시바사키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이야기하려 했는데 끼어드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건 강서의 무미건조한 목소리였다. 중계방송 특유의 톤 높고 긴장감 있는 목소리가 아니라 조금은 허탈감이 느껴질 정도로 긴장감 없는 목소리.

    “아, 시바사키. 그제 저녁에 동생분과 함께 고베 구로몬시장에가서 직접 사온 1등급 와규를 먹고 왔다고 하는 데요. 일본산 소고기 중에서는 고베 와규가 제일 이죠. 먹은 만큼 힘을 써야할 텐데요. 시바사키.”

    "..."

    분명 중계와 비스무리하기는 했지만, 일반적인 것과는 뭔가 많이 다른 강서의 중계에 하린이 잠시 벙찐 표정을 지었다.

    다행히 시바사키는 듣지 못한 것 같았지만, 시바사키가 들었다면 분명 경기에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 하린은 생각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아재요 뭔가 핀트가 그게 아닌 거 같은데...

    -이름 풀네임으로 부르라곸ㅋㅋㅋㅋ

    -이ㅏ니;; 애초에 저걸 왜 알고 있는 거ㅋㅋㅋㅋㅋ

    -본격 (남의)사생활방송

    어쨌든 중계를 멈출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1라운드는 시작된 상태였으니까. 하린은 당황하면서도 중계를 계속 진행했다.

    “네, 시바사키 다이지로 헌터는 일본 거점길드 쿠로이누의 최전방에서 꾸준히 던전공략을 해온 헌터로 유명한데요. 최근만 따지면 이병진 헌터가 우세하긴 하지만 2년간 클리어한 던전의 개수를 따지면 시바사키 다이지로 헌터가 더 많습니다. 과연 누가 이길 수 있을 지…"

    그 순간 팽팽하게 중앙을 유지하던 이병진의 손이 조금 밀렸다. 조금의 힘을 비축해두고 있던 시바사키가 승부수를 던진 것.

    “크윽, 갑자기...”

    “아, 시바사키, 힘을 비축하고 있었어요. 너무하네요. 시바사키. 이병진 헌터 이대로 무너져 내리면 안 됩니다. 눈앞에 있는 무명검이 물거품이 되어버립니다.”

    -그놈의 시바사키ㅋㅋㅋㅋㅋㅋ

    -판다특) 뭐가 문제인지 모름

    -He is 시바사키

    -중계를 가장한 개그방송이자녘ㅋㅋㅋㅋ

    순간적으로 강력하게 들어오는 힘에 밀려버린 병진은 기를 쓰고 손을 원래각도로 돌려놓으려 했으나 그것이 마음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거의 비등한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약간이라도 기울어 중력의 도움을 받는 시바사키 쪽이 이미 유리하게 된 것. 이병진이 할 수 있는 최대가 버티는 정도였다.

    ‘이 따위 팔씨름 때문에...!!’

    이병진은 말 그대로 젖 먹던 힘까지 끌어 모아 버텼다. 그런 그의 머릿속에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그의 머릿속에 스쳐간 것은 강서의 마지막 설명.

    ‘손등이 파란색 마법진에 닿게 되면 경기는 종료됩니다. 반대로 옆에 빨간색 마법진이 그려져 있는 엘보우 패드에서 팔꿈치를 뗄 경우에도 경기는 종료됩니다. 시작 신호 전에 힘주시면 안 됩니다. 그 외에 추가하실 사항 있나요?’

    그때 분명 추가된 조항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병진이 얼굴이 벌겋게 물든 채로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시바사키에게 말했다.

    “야."

    "...?"

    “내가 이겼다.”

    "무슨..."

    시바사키는 병진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자신이 유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비장의 수 같은 것도 없어 보이는 병진이 ‘이겼다’고 말하자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

    "...!?"

    하지만 곧 시바사키 다이지로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병진의 왼손이 테이블 위로 올라온 것.

    쾅!

    시바사키 다이지로가 반응할 새도 없이 이병진은 왼손으로 오른 손등을 감싸 당겼다. 그리고 웃으며 읊조렸다.

    “내가 이겼다고, 이 시바사키야.”

    .

    .

    .

    .

    .

    .

    .

    “아, 승리하네요. 이병진 헌터. 팔씨름의 룰을 정확히 이해했습니다. 시바사키, 유리했지만 결국 게임에서 지고 마네요. 아쉽습니다. 시바사키”

    룰을 이해했다는 강서의 멘트에 하린이 입을 벌렸다. 그건 누가보아도 반칙처럼 보이는 행위였으니까.

    하지만 수혁을 바라보자 수혁도 '생각보다 시작이 가볍네...'라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하린은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 만이 이 대회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보다 훨씬 더, 거대한 스케일의 경기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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