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 ep13. 뽑기 (2) >
===================
길드(Guild).
미지의 세계인 던전에 효과적으로 적응하기 위해, 헌터들이 스스로 모여 결성한 독자적인 조직체.
헌터들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그런 만큼 세계 각국에 수많은 길드들이 존재했으며 각자의 방식으로 던전에 적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수많은 길드들 중에 일반인, 헌터 할 것 없이 누구나 알고 있으며, 일반적인 거대길드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초거대 길드 4개가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 길드들을 <4대 길드>라고 불렀다.
.
.
.
.
.
“분명 없어진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4대 길드 중 하나인 라이언하트(Lionheart)의 수장. <리차드 4세>가 중얼거렸다.
그는 길드하우스 안쪽 자신의 집무실에서, 마탑이 보내온 편지를 읽고 있었다.
편지의 내용은 수혁이 강서에게 이야기 했던 대로, 판다지아가 판매목표 수량을 달성하여 기념행사를 준비한다는 것.
하지만 리차드 4세의 눈길을 끈 것은 그런 사사로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바로 마탑에서 내건 행사의 슬로건.
‘최강의 검의 주인.’
그리고 그 슬로건 아래 적혀있는 우승 상품이었다.
최초로 발견된 <미확인 아티팩트>이자, 마지막으로 발견된 <미확인 아티팩트>.
이름조차 알아 내지 못해 <무명검(無名檢)>이라 불렸던 그 검을 수혁이 상품으로 내건 것.
리차드 4세는 자신의 몸체만큼이나 묵직한 목소리로 자신의 비서관을 불렀다.
“아드리아나.”
“부르셨습니까.”
“무명검. 분명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했던 것으로 기억하네.”
“새로 확인된 정보는 없었습니다. 다만 마탑에 문의한 결과, 길드장님께서 생각하시는 그 무명검(無名檢)인 것은 틀림없다고 답문을 보내왔습니다.”
“흠...”
리차드 4세는 잠시 눈을 감고 고개를 뒤로 젖혀,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그는 생각이 많아질 때마다 눈을 감는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눈을 감고 있던 리차드 4세는 눈을 감은채로 <수석비서관 아드리아나>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는 게 좋겠나?”
“우선은 진위여부는 가서 확인하더라도 참가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방식과 종목, 룰같은 것을 알 수 없다는 게 좀 걸리긴 하지만... 그건 라이언하트(Lionheart)의 것이니까요.”
아드리아나는 마치 당연한 이야기라는 듯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 태도에 리차드 4세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우리 라이언하트도 아니고 일개 마탑지부에서 ‘최강의 검사’를 논하는 것이 맘에 들지 않기는 하지만....다른 길드들은 어떤가?"
“어제 마지막으로 확인한 바로는 천명(天命)을 제외하고 모두 응한다는 답문을 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천명은 아직 마탑 쪽에 아무런 답문도 보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드리아나의 말에 리차드 4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천명이야...”
“그럼 채비하겠습니다.”
***
수혁이 창고에서 찾은 것은 <무명검>이 들어있는 아공간 페이퍼였다. 오래전 넣어두고 페이퍼 자체를 잃어버린 줄 알고 있었던 것.
‘거의 한 달을 이것만 찾아 다녔는데, 천장에 붙어 있었을 줄이야.’
무명검은 5년 전, 갑자기 영국에 존재하는 한 산에 생겨난 검이었다.
소문으로는 던전 하나가 사라지면서 생겨났다고 했지만 진위여부는 파악되지 않았다.
다른 아티팩트였다면 진작에 영국내에 거주하는 헌터가 소유를 했을 테지만, 그 어떤 길드도 무명검을 가지지 못했다.
검이 산 자체에 박혀서 뽑히지 않았기 때문.
어떤 원리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지는 아무도 밝혀내지 못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갖은 방법을 써도 검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당시에도 영국 내 랭킹 1위 헌터였던 ‘리차드 4세’도 검을 뽑는 데 실패했다는 것.
리차드 4세가 실패한 이후에도 세계 각지에 내로라하는 헌터들이 몰려와 그 검을 뽑아보려 했지만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지금도 모르겠군.’
수혁은 아공간 페이퍼를 보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명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자신임에도, 수혁은 왜 자신이 무명검을 아공간페이퍼에 넣을 수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다른 길드라고 그 방법을 사용해보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무명검은 수혁을 제외하곤 그 누구에게도 마법을 허용하지 않았다.
아이러니한 것은 아공간에 넣게 된 경위가 수혁 본인의 의도와 하나도 상관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수혁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자신이 우연히 그 근처를 지나가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갑자기 어떠한 전조도 없이 자신의 앞으로 무명검이 돌에 박힌 체 날아왔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막아내기 위해 다급히 활성화 시킨 무기 보관용 아공간페이퍼 속으로 무명검이 쏙 빨려 들어갔다는 것.
그런, 말하더라도 아무도 믿지 않을 사실들뿐이었다.
겪고 난 뒤 수혁도 어안이 벙벙하여 한참을 가만히 서있었을 정도였으니. 굳이 어디에 말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돌아오자마자 그 페이퍼가 사라져 버리기도 했고 말이다.
과거야 어찌되었든 수혁이 생각하기에, 그건 시기적절한 발견이었다.
어차피 수혁 자신이 사용할 수도 뽑을 수도 없었으며, 자신의 아공간페이퍼로만 옮길 수 있는 물건이었다.
그 아공간 페이퍼는 수혁의 마력에만 반응하는 전용 아공간 페이퍼였고.
바라는 것은 행사의 이목이 집중되어 판다지아의 매출이 올라가는 것. 그뿐이었다.
수혁은 지금 마탑 한국지부 설립 이래, 최대의 재앙(?)을 후원하고 있었으니까.
.
.
.
.
.
.
“이게 무명검이에요 아저씨.”
마탑의 행사 겸 대회가 시작하기 전 수혁이 자리를 비운 사이, 하린과 강서가 대회장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대회장 가운데에 돌에 박힌 채 세워져 있는 무명검을 보러 온 것.
수혁이 마력에 반응하는 몇 가지 마법장치들을 걸어 놓기는 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혹자가 본다면 우승상품을 이렇게 방치해도 되냐고 따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겉보기에는 무방비상태 그 자체였다.
하지만 수혁이 무명검을 그렇게 놓을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다.
자신의 아공간 페이퍼가 아니라면 무명검을 가져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확신할 수 있었기 때문. 애초에 그렇기에 이 무명검이 더 유명하기도 했다.
검은 뽑을 수 없다. 돌도 옮길 수 없다.
원리는 알 수 없었지만, 그건 이미 5년 전에도 증명된 일이었고, 수혁도 이런저런 시도를 수십 번 해보며 증명한 것이었다.
그리고 만약 가능한 방법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회에 참가하겠지 굳이 마탑에 척을 져가며 가져갈리 없었다.
대회장에 들어온 이유는 강서 때문이었지만, 들어오기 원한 것은 하린이었다.
사실 강서는 무명검에 큰 관심이 없었지만 하린이 소개를 해주겠다며 데리고 들어온 것.
실제로 무명검을 보고 나서도 강서는 큰 반응이 없었다.
이게 누구도 아직까지 뽑지 못한 검이에요. 이걸 탑주님이 가지고 계실 줄은 몰랐는데...어쨌든 낭만적이지 않아요? 이름 없는 검이라니. 저도....”
“음... 하린님”
“…네?"
“저거 삐뚤어진 것 같지 않아요?”
하린이 신나게 설명하는 것을 듣다가, 강서가 무언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강서가 가리킨 것은 무명검이었다.
정확히는 무명검이 박혀있는 돌의 한쪽 끝 부분이 중앙 바닥에 미리 표시해 놓은 부분을 벗어난 것을 지적한 것.
멀리서 본다면 알 수 없는 미세한 오차였지만 그것이 강서의 눈을 사로잡았다.
강서의 말에 하린도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확실히 미리 표시해 둔 테두리에서 조금 벗어나 있었다.
“어...? 진짜네요 조금이기는 한데 확실히...”
“잠시만요.”
강서는 그렇게 말하고 검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허리를 숙여 돌 아래쪽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누가 봐도 돌을 들어 옮기려는 것 같은 강서를 보며 하린이 손을 내저었다.
“아저씨 다쳐요! 그거 아까 탑주님이 못 움직일 거라...?!”
“조금 무겁긴 하네요.”
하린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하린은 처음에, 수혁이 대회장에 미리 돌을 놓는다고 했을 때 한껏 걱정을 했다. 그때 수혁은 웃으며 대답했다.
‘누가 가져가면 어떡해요? 혹시 제가 다른 맘을 먹고, 검은 못 뽑아도 돌 째로 들고 갈 수도 있잖아요.
‘하하, 괜찮습니다. 가져갈 수만 있다면요. 하린님이 아니더라도 마력도 안 쓰고 가져간다면 누구든 인정할게요. 아마 1티어가 무더기로 와도 불가능 할 겁니다. 그게 가능한 사람이면 5년 전에 마력으로 근력을 강화해서 뽑아갔겠죠.’
그렇게 이야기 했었다.
무게의 문제가 아니라고.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작용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안심해도 된다고 말이다.
그런데 강서는 당연하다는 듯 돌을 들어 올렸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쿵-
“지금은 괜찮나요?”
"..."
“아직도 튀어나와 있나요?”
“아니요. 됐어요...된 것 같긴 한데...”
하린은 혹시나 수혁이 잘못 알았을 가능성을 생각해 자신이 직접 다가가 들어보았다. 하지만 하린의 손길에는 돌이 미동도 하지 않았다.
“끄응!”
“그거 꽤 무거워요. 조심해요.”
“....아저씨.”
돌에서 손을 뗀 하린이 강서를 심각하게 바라보며 불렀다.
“네?"
“그게 미확인 아티팩트라고 굉장히 귀한 건데...가지고 도망갈래요?”
“...가져가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마탑 우승상품인데.”
강서의 의아하다는 표정에 하린이 고개를 숙이고 중얼 거렸다.
맞아요... 맞는데...
물론 하린도 진심으로 물어본 것은 아니었다. 마탑의 눈길을 피해서 살아갈 수 있는 나라는 하프라인 안쪽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다만, 어이가 없을 정도로 당연하게 돌을 든 강서를 보며 허탈감에 우스갯소리를 해보았을 뿐.
.
.
.
.
.
'음...'
고개를 숙인 하린을 보며 강서가 고개를 갸웃 했다. 하린의 말과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
그러다 우연히 강서의 시선이 하린 허리춤의 검으로 향했다.
‘아.’
“하린님 검이 필요한 거죠?”
“네? 검이요?”
“확실히 하나만 쓰기도 하고 꽤 오래 쓴 것 같기는 하더라고요.”
그리고 오해를 했다. 하린이 그 이야기를 한 이유가 자신의 검이 낡았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아 아뇨. 괜찮아요. 저는 이거면 충분해요.”
당황하며 손을 내젓는 하린을 바라보며 강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검도 휴식이 필요합니다. 내구도라는 개념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무기라면 하나만 사용해도 괜찮지만, 본래는 돌려가며 검을 사용하는 게 좋죠.”
"..."
강서가 그렇게 말하자 하린은 고민을 했다. 확실히 그런 의도로 말을 한 건 아니었지만,
하린에게 그 검은 ‘무기’보다는 아버지의 ‘유품’이라는 의미가 강했다. 그래서 휴식이 필요하다는 말에 괜스레 마음이 동한 것.
“행사 시작 전에 잠깐 다녀와요.”
“그럼....아!”
강서의 말을 들은 하린은 뭔가가 생각났다는 듯이 눈을 반짝였다.
“그러고 보니까 아저씨한테 알려드리고 싶었던 게 있었어요.”
“알려주고 싶은 거요?”
“매번 직접 가서 사셨잖아요. 저도 그걸 말리지 않았던 게 인터넷으로 보면 현장에서 직접 사는 것 보다 품목이 부족했었거든요.”
하린은 스마트워치를 켜고 화면을 하나 활성화시켰다.
“근데 이번에 헌터몰이 대량 확장을 하면서 거의 차이가 없어져서....”
“헌터몰이요?”
그리고 수혁이 본다면 눈물을 흘리며 뜯어말릴 정보를 강서에게 공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