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 ep11. 나단 가이스트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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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단 가이스트.
강서도 독특하게 기억하고 있는 생이었다. 알지 못하는 신을 섬기는 사제. 아니 섬긴다는 말 보다는 <계약>했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릴 것이다.
그마만큼 나단 가이스트는 자신의 신을 잘 몰랐으니까.
‘아직도 모르겠군.’
중요한 것은 4000개의 세계를 돌며 경험한 지금, 기억을 되돌아보아도, 그 신에 대해 알 수 없었다는 것. 그게 더 놀라운 일이었다.
강서가 <모른다> 칭할만한 것은 생각보다 훨씬 찾기 힘든 것이었으니.
강서를 상념에서 깨운 것은 그 자신의 주먹소리였다.
뻐억-
뼈 부러트리는 소리를 내며 몸통에 박혀 들어가는 주먹을 마지막으로 마인이 옅게나마 흘리던 신음소리마저 멎었다.
마인은 겉보기에 온몸이 너덜너덜한 것이 죽은 듯 했으나, 그렇지는 않았다. 강서가 딱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패고 죽이지는 않은 것. 그 잔혹한 사제(?)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침음성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베게베개’님이 ‘20,000원’을 후원!
[아재요 그럴 거면 아까 담배 불 피운 것처럼 마법으로 보내주는 게...]
-일어난 게 그리 큰 잘못입니까....
-야 어디에 감정을 이입하는 거야ㅋㅋㅋㅋㅋㅋ
-???: 차라리 죽여...
시청자들이 보기에는 마인이 두들겨 맞은 횟수가,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만큼 마인의 몸이 너덜너덜해지기도 했고.
“죽이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나단 가이스트에게는 지켜야 하는 계율 있었기 때문이죠.”
강서는 마인의 손목을 집어 들고 움직이며 말했다. 강서가 향하는 방향은 마인이 달려온 방향.
마인이 튀어나오며 조금 기울어진 십자가가 있는 곳이었다.
“그 첫 번째가 <살인하지 말라>였기 때문에. 죽이지 않은 것입니다.”
강서의 그 어이없는 설명에 채팅창이 물음표로 가득 찼다.
-?
-....?
-??????
-아재요?
‘살인하지 말라’는 법은 성흔계약 때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조건이었다.
3티어에 도달해서 신전과 계약 하에 성흔 사용을 허락받을 때 성흔의 사용조건의 하나로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사람들도 그 말에 대해 알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 말의 뉘앙스와 강서가 실천하고 있는 모습이 많이 달랐기 때문.
‘데쓰데쓰’님이 ‘20,000원’을 후원!
[네…? 살인<은> 하지마라요?]
‘데쓰데쓰’님이 ‘20,000원’을 후원!
[‘살인하지 말라’가 그 뜻이 아닐 텐데...]
-이거 맞다. zzzzzzzz
-ㅋㅋㅋㅋㅋㅋㅋ살인은 하지마라ㅇㅈㄹㅋㅋㅋㅋㅋ
-죽이지는 마라였자녘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살려는 드릴께
"....?"
채팅을 보며 강서는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였다.
강서의 생각에서도, 그리고 사실 문장만 본다면 실제에서도 문제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
살인하지 말라는 계율이 있었고, 그것을 지켰다. 그뿐 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그래 지키긴 지켰지
-???: 안 죽였잖아요?
-정보) 이 사람은 사제다.
-정보2) 이 사람은 판다다
채팅이 올라오는 순간에도 강서는 계속 발을 움직이고 있었다. 강서가 도착한 곳은 마인이 튀어나온 역십자가 앞이었다.
강서는 조금 기울어져 있는 십자가를 다시 바로 꽂았다.
그리고는 마인을 그 앞에 무릎을 꿇려 앉혔다. 마인은 당장이라도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강서가 머리를 붙잡고 있었기 때문에 앉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강서는 잠시 눈을 감고 중얼 거리더니-
마인의 머리를 십자가 쪽으로 세게 눌러 땅에 박아버렸다.
쾅!
동시에- 강서가 오른손에 낀 장갑 손등 쪽으로 빛무리가 감싸였고 하나의 인장이 나타났다. 나타난 인장은 강서의 손등뿐 아니라 강서가 찍어 누른 마인의 뒤통수에도 자리 잡았다.
[인장이 마인(魔人)을 속박합니다.]
마인의 머리에 인장이 새겨지자 손을 뗀 강서는 손을 모은 채 다시 중얼거렸다.
“아-멘”
-아멘은 무슨.....
-머리 처박는 쾅소리 때문에 ‘아’소리는 잘 들리지도 않는데 쾅멘으로 통일하죠.
-ㅋㅋㅋㅋㅋㅋ쾅멘ㅋㅋㅋㅋㅋ
-판-다로 하던가.
사람들이 강서의 ‘아멘’이라는 말에 그렇게 반응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세계 각 곳에 존재하는 신전들은 신을 상징하는 인장도 다 달랐고, 신전의 모양도 예법도, 성흔의 계약, 사용조건도 다 신전마다 달랐다.
하지만 공통점이 딱 두 가지 있었는데, 바로 기도의 끝에 ‘아멘’이라는 말을 붙인다는 것과 신을 상징하는 <인장>에 작게든 크게든 십자가가 꼭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사제들이 말하는 ‘아멘’은 <참으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 보통 신에게 기도를 하고 말미에 사용했다.
그런데 강서가 마인을 죽일 듯이 두드려 패고 ‘아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니 그것이 사람들에게 상당히 아이러니 하게 다가온 것.
그렇게 강서는 아멘이라 중얼거리고 나서, 십자가를 향해 몸을 조아린 마인의 등에 손을 짚었다.
그러자 마인의 등에 마인의 뒤통수에 새겨진 인장이 더 크게 새겨지며 땅이 마인을 삼킬듯이 아가리를 벌렸고, 마인은 그 아래로 빨려 들어갔다.
콰과곽!
그렇게 5초가 채 되지 않아 마인이 있던 자리는 평평한 땅이 되었다.
‘판---다’님이 ‘20,000원’을 후원!
[그러고 보니 인장도 처음 보는 거네.]
-그러게 저런 인장 본 적 없는데.
-인장이 너무 심플한 거 아니냐;;
-아직 성흔계약 맺은 적 없는 곳인가.
나단 가이스트의 손을 통해 새겨진 인장은 단 세 개의 획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십자가를 이루는 가로획과 세로획 그리고 그 가운데 교차점을 중심으로 하는 작은 원.
그게 나단 가이스트가 모시는 신의 인장이었다.
"...."
그리고 수혁은 그보다 더 심각할 수 없는 표정으로 강서의 그 인장을 바라보았다.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인장. 사람들은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그건 그렇게 가벼운 의미가 아니었다.
명확히 말하자면 아직 알려지지 않은 신전의 인장 같은 것은 없었으니까.
일반인들에게는 숨겨져 있는 인장이 있었다. 인장을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성흔의 힘이 강력하다는 독톡한 조항을 가지고 있어, 헌터 들이 필사적으로 숨기는 경우가 그러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수위를 다투는 대형길드의 길드장이나, 마탑의 탑주쯤 되면 그런 인장들도 파악하고 있었다. 당연히 수혁도 그러했고.
하지만 강서가 보인 인장은 수혁이 알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수혁이 모른다면 한 가지 경우밖에 없었다.
그 인장의 주인이 되는 신이 하프라인 내부에 신전이 없는 경우.
다시 말해, 신전이 존재하지 않는 신과 성흔계약을 맺는 경우밖에 없었다.
그리고 수혁은-
‘설마 또 있었을 줄이야...’
하프라인 내에서 유일하게 거기에 해당하는 사람이었다.
.
.
.
.
우그극!
어디선가 마인이 내었던 소리와 똑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하나가 아니었다. 지평선 멀리서 수십의 마인이 강서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땅속에 뭍힌 마인이 강서를 보며 겁을 먹었었다는 걸 증명하듯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강서는 그 모습을 보며 미리 말아두었던 마리주아나를 하나 꺼내들어 입에 물었다.
그리고 불을 붙이며 천천히 원래 있던 앉아 있던 문 앞으로 걸어갔다.
‘마법쓸줄몰라요’님이 ‘10,000원’을 후원!
[아재요. 근데 여기가 지구가 맞아요? 사람이라곤 하나도 안 보이는데요.]
-???: 아, 당신도 포함이요.
-ㅋㅋㅋㅋㅋㅋㅋㄹㅇ
-괴-물
-그렇긴 함. 분위기 자체가 좀 다른데. 해도 없고...
“정확히 말하자면 여러분들이 살아가는 곳은 이쪽입니다.”
강서는 시청자들의 질문에 그렇게 대답하며 손가락으로 뒤쪽에 존재하는 문을 가리켰다.
"이게 지옥문이고요."
그 말을 하며 강서는 조용히 자신이 걸터앉았던 십자가를 주워들었다. 3M는 족히 되어 보이는 그 거대한 십자가를 어깨에 걸치고 강서는 몸을 돌렸다.
강서의 ‘지옥문’이라는 말에 뭔가를 알아차린 하린은 강서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그 말은...”
나단 가이스트가 마리주아나의 연기를 한번 뱉으며 별거 아니라는 듯 가볍게 읊조렸다.
후우-
“이곳이 지옥이라는 의미죠. 지옥의 최상층인 5층 인옥(人獄).”
***
"...."
종탑 오큘러스의 주인이자 마탑의 수장인 에스티아 마리아.
그녀가 자신의 집무실에서 앉아, 더 없이 심각한 표정으로 강서의 방송을 보고 있었다.
지옥.
그 단어가 결국 강서의 방송에서 나와 버리고 말았다. 정말 말도 안 되는,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던전인건가요...”
지옥을 언급하고 알고 있는 것을 떠나서 그 말도 안 되는 강서의 ‘히든 던전’은 지옥의 본래 모습까지 구현해 내고 말았다.
그녀가 우려하던 대로 강서가 ‘지옥’에 대해 알고 있을 가능성이 끝도 없이 올라갔다.
아니 이 정도면 모르고 있는 것이 더 이상했다. 더 이상 두고 보기만은 할 수 없는 상황. 원래라면 100% 확신이 들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았을 테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100%가 되는 날을 기다린다면, 그동안의 모든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 버릴지도 모르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그가 보인 인장.
그건 에스티아도 알지 못하는 인장이었다. 에스티아가 모른다면 하프라인 내에서 그 누구도 모른다는 의미였다. 그녀는 하프라인 내에서 가장 ‘진실’에 가까운 인물이었으니까.
신전에 간택을 받은 사제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신성마법>을 사용하는 것을 보아 그 <나단 가이스트>가 섬기는 신이 실존한다는 것은 확실했다.
그리고 그 인장을 보며 <판다>라는 자는 아무런 언급이나 당황도 없었다. 그동안의 행보를 보면 그 또한 그가 알고 있는 것일 가능성이 높았다.
수혁이 가지고 있는 것과는 다른 인장이었지만, 만약 그가 <신전없는 신의 인장>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면, 그녀가 간신히 틀어막은 수혁의 <성흔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었다.
“만나봐야겠네요.”
에스티아는 우선 죽이 되든지 밥이 되든지 저 <판다>라는 사람을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수혁을 위해서든, 아니면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든,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데 문 밖에서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누구시죠?”
“접니다. 탑주님.”
총무의 목소리였다. 에스티아는 의아해 했다.
에스티아는 자신의 일을 하기 위해 대부분의 권한을 총무에게 넘겼다. 정치나 행정적인 일까지 맡아보기에는 할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정기보고 시간이나, 손님이 찾아오는 경우가 아니라면 총무가 직접 찾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는데, 에스티아가 기억하기로 오늘 미리 찾아오기로 약속이 잡혀있는 사람은 없었다.
“무슨 일이세요?”
“그게...”
총무의 짤막한 보고와 함께 에스티아의 표정이 강서의 방송을 볼 때보다 더 심각하게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