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 ep11. 나단 가이스트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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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하라-, 나단 가이스트.”
어두운 동굴 안에서 판다가면을 빗겨 쓴 강서가 중얼거렸다. 그곳은 역시 이전과 같은 F급 던전.
강서가 다시 유흔결계를 찾은 것이었다.
[유흔 결계의 키워드가 일치합니다]
[‘유흔결계: 나단 가이스트’가 발동됩니다.]
[지구]
[롤플레임: 사제]
[시대: 제1망록시기]
[수행: 계율을 지키며 지옥문이 닫힐 때 까지 수호.]
.
.
.
[트라이]
.
.
.
[‘소지’할 물건 세 가지를 선택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의 빛무리가 강서의 눈을 가리고, 다시 시야가 회복 되었을 때에는 주변의 풍경이 바뀌어 있었다.
회색빛 황야. 희미하게 시야를 밝히는 핏빛.
거꾸로 박힌 수백 개의 십자가.
반쯤 열려있는 지옥의 문.
판다가면을 빗겨 쓴 강서. 아니, 투사제(關司祭) <나단 가이스트>는 그 앞에 뉘여져 있는 거대한 나무 십자가에 걸터 앉아있었다.
[23:59:59]
'....'
강서는 앉은 채로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는 스마트워치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리시나요!”
그건 하린의 목소리였다.
-ㅗㅜㅑ....분위기 뭐야 이거
-이번엔 잘생겼네.
-공동묘지 같은데??
-십자가가 몇 개야 도대체...이거 다 아재가 미리 박아놓은 거에요?
-이것도 제1망록시기인가요? 지구가 이런 적이 있었다고?
평소와 다르게 ‘판-하’나 ‘판-다’같은 인사가 올라오지 않았다. 하린과 수혁이 중계방송을 하다가 넘어와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시청자들이 잠시 멈칫 할 정도로 화면 속 분위기가 압도적이었기 때문.
나단 가이스트는 사제임을 증명하듯 십자가가 그려진 검은색 사제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것이 공간의 분위기와 이질적이면서도 묘하게 어울렸다.
게다가 하나 더 특이한 것은 나단가이스트가 십자가에 걸터앉아 있었다는 것. 경건한 사제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독특한 모습이었다.
“네 잘 들리네요.”
-ㅗㅜㅑ....목소리 허스키하다.
-중-후
-정보) 이번 영웅은 미중년이다.
그 말 그대로. 나단 가이스트는 미중년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하얀 피부에 푸른색 눈, 건장한 체격, 턱수염까지 연결되는 구렛나루.
게다가 중후하고 약간 긁는 듯한 목소리까지. 그야말로 ‘터프가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남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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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다갓재 이번에도 비석에 있는 이름인가여]
“네. 나단 가이스트라는 성직자. 사제였던 인물입니다.”
강서는 그렇게 말하면서 속에서 메스꺼움이 올라오며 시야가 어둑어둑 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
그러면서 무언가를 떠올린 듯 품에서 손바닥만 한 흰색 종이와 유리병을 하나 꺼내었다. 유리병에는 어떤 식물의 이파리를 바싹 말린 듯한 갈색의 자그만 덩어리들이 있었다.
슥슥-
강서는 갑자기 꺼낸 종이에 신성마법진을 그린 뒤, 유리병의 코르크 마개를 땄다.
뽁-
그리고는 종이 한쪽 끝에 침을 바른 후, 종이를 펴 갈색 말린 잎들을 조금 쏟아 붓고는 돌돌 말았다. 그리고 그 모습은 현대의 ‘담배’를 연상케 했다.
강서는 왼손 검지와 중지사이에 그 담배를 끼고,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화륵.
그러자 그 담배 비슷한 것의 끝에 푸른색 불이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강서는 공기를 빨아들이고 있었고, 담배에는 불이 붙어있었다.
스읍-
-…?
-???: 요즘 사제들은 다 핍니다;
-요즘 사제: 예?
-이거 십자가에 앉아있는 것부터 뭔가 느낌이 스멀스멀...
후우-
강서는 한 모금 빨아들인 연기를 가볍게 뱉어 내쉬며 동굴 바닥을 긁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담배가 아닙니다. 같은 방식이긴 한데... 이곳의 기운을 견디는 데에 도움을 주는 약초죠.”
강서가 메스끼움을 느낀 것은 나단 가이스트가 있는 공간전체에 서린 핏빛기운, 즉 마기(魔氣)때문이었다. 인간의 몸으로 마기가 서린 공기를 통해 호흡하고 있었으니 몸이 부하를 느낀 것.
신성력이 깃든 사제복을 입고 있었음에도 호흡기로 침입하는 마기까지 막기는 부족했던 것이다.
그래서 종이에 신성마법을 불어넣어 정신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는 약초 마리주아나와 함께 담배형태로 흡입했던 것이다.
마기에 장기간 노출될 경우 정신을 놓고<마인화(魔人化)>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물론, 본신의 강서였다면 그런 것에는 영향을 받지 않았을 테지만, 유흔결계 안에서 만큼은 <나단 가이스트>였기 때문에 마리주아나가 필요한 몸이었다.
-....한입만?
-ㅋㅋㅋㅋㅋㅋ빠지지 않는 한입만ㅋㅋㅋ줘 패야 됨 아주.
-그래서 여기도 제1망록시긴 가여? 뭐하는 사람이었어요?
“네, 제1망록시기입니다.”
강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말하고 마리주아나를 한 모금 더 들이마셨다.
후우-
강서는 호흡을 들이키며 메스꺼운 속과 조금 어둑어둑하던 시야가 나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사제였죠.”
“사제라면... 어떤 신을 섬기는 거에요?”
질문을 한 것은 하린이었다. 현대에도 신전이 여럿 존재했으니까. 혹시 그 중에 나단이 믿는 신이 있는지 물은 것.
균열 때 마수들을 몰아내고 하프라인을 구축하며 건설한 신전들은 이제 완전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물론 일반인은 평생 경험할 일이 없었고, 헌터도 3티어가 된 후 <신전의 시험>을 받아 인장을 받기까지는 신전에 출입할 일도, 할 수 도 없었다.
하지만 <성흔>을 통해 신이라는 존재가, 그를 섬기는 사제가 실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일상 속에서 경험할 수 있었다.
하린의 질문에 잠시 침묵하던 강서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모릅니다.”
“.....네?"
하린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되물었다. 자기가 믿는 신도 모르는 사제라니.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일이었다.
강서는 그 반응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이었다.
“나단 가이스트도 자기가 믿는 신이 누군지를 몰랐습니다. 그저 신성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을 뿐이었죠.”
실제로 강서는 나단 가이스트의 생(生)을 살 때, 자기가 믿는 신이 누군 지 몰랐다. 신성력만 쓸 수 있으면 되지 크게 중요하다고 생각 하지도 않았고. 애초에 지구에서의 첫 생애에서 신격을 얻은 <가루다>를 잡은 강서였다.
분명 신이라는 존재는 인간을 초월한 존재이며, 범접할 수 없는 대단한 존재였지만,
그건 일반적인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것이었고, 강서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으그극
-...?아재요 무슨 소리 안 들려요?
-뭔가 사람 목소리 같은데...
-뭐임?
어디선가 목 긁는 듯한 쇳소리가 들렸다. 시청자들의 질문세례에 강서가 앉아있던 거대한 십자가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앉아있던 자세에서 일어나니 나단 가이스트의 다부진 체격이 더욱 드러났다. 사제복의 팔뚝 부분은 이두박근이 꽉 차올라 주름 하나 없이 펴져있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당장 옷감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강서는 다 태운 마리주아나를 가볍게 뱉어 떨어뜨리고 다시 한 장을 말아서 입에 물었다.
으극 하며 쇠 긁는 소리가 다시 한 번 들리더니 거꾸로 박혀있는 수백 개의 십자가 중 하나가 흔들거렸다.
퍼석-
그러더니 그 십자가 아래 흙속에서 검은색 피부를 가진 괴인이 나타났다.
“마인이네요.”
강서가 마인이라 칭한 괴인은 인간의 형체를 가지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마수의 기운을 옅게나마 온몸에 두르고 있었으며, 눈에 동공은 없었고 흰자위에 붉은색 실핏줄 터진 자국만이 남아있었다.
“마인은 마기(魔氣)로 호흡하며 살아가는 악마의 하수인입니다. 인간과 같은 형체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치익- 후우-
강서가 마리주아나에 다시 한 번 불을 붙이며 말을 이었다.
“근본적으로는 다른 존재라 생각하면 됩니다. 악마와 계약이 되어있기 때문에 저들의 마음은 악(惡)만을 추구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으으’님이 ‘10,000원’을 후원!
[와 그럼 저 십자가 수백 개에 다 저게 묻혀있는 거?]
시청자 하나가 그렇게 물어오자 강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품에서 반 장갑 하나를 꺼내 오른 손에 끼웠다. 장갑의 손등 쪽에는 강서가 마리주아나에 그린 마법진과 비스무리한 마법진이 하나 그려져 있었다.
으그극!
마인은 흙에서 튀어나오자마자 강서를 향해 달려왔다. 그건 사람들의 생각보다 훨씬 빠른 속도였다. 구울류의 언데드계열 몬스터들은 대부분 엄청나게 느린 속도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상한 게 하나 있었다.
움찔-
-언데드계열은 속도에 제약이 다 있긴 한가보네.
-오초에 한 번 씩 경직되는 구나.
-근데 기분 탓인가...점점 느려지는 것 같은데.
마인의 속도가 강서를 향해 달려오며 점점 느려지고, 마인의 몸이 한 번씩 경직된다는 것. 사람들은 그것이 마인의 특징이라 생각했다.
‘아니...’
수혁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수혁이 보기에 그건 언데드가 아니었다. 직접 본 것이 아니라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언데드의 경우 체내에 악성마나가 돌아야했다. 하지만 마인은 피부가 검을 뿐 악성마나가 돌 때의 여러 특징들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마수의 기운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죽음을 의미하는 악성마나와 마수의 기운은 엄연히 다른 것이었으니까. 언데드라고 단정지어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5초에 한 번 경직되는 게 아니라 시선이 판다님과 마주칠 때마다 경직되는 것 같습니다만...”
-...?
-그럼 느려지고 경직되는 게 설마...
수혁이 말하는 동안 마인은 거의 강서의 지척에 다가와 있었다. 하지만 마인은 더 이상 전과 같은 속도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처음 시청자들을 놀라게 한 속도에 비해 훨씬 느려진 속도.
그리고 그건-
십자가 아래 산채로 묻히기 전, 나단 가이스트에게 두드려 맞았던 기억이, 지옥문으로 향하려는 마음과 계속해서 충돌했기 때문이었다.
턱-
마인이 거의 앞에 다가오자 2M에 달하는 나단 가이스트의 거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손으로 달려오는 마인의 얼굴을 덮듯이 잡았다.
달려오던 힘의 영향인지 마인의 하체가 앞으로 나가며 몸이 허공에 눕듯이 떠올랐다.
으그그그극!
그 순간 마인이 발버둥을 쳤지만 나단 가이스트의 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붙잡은 얼굴을 그대로 땅을 향해 던져버렸다.
쾅!
바닥에 금이 갈 정도로 강력하게 바닥에 부딪힌 마인의 머리는 얼마나 강하게 부딪혔는지 다시 원래의 높이로 떠올랐다.
강서는 떠오른 머리를 이번에는 뒤통수를 잡아 몸을 돌려 땅바닥에 박아버렸다.
콰과곽!
마인의 머리가 땅에 밀리며 울퉁불퉁한 회색빛 땅이 평평하게 갈려나갔다.
그리고 당연한 수순으로 마인의 몸이 축 늘어졌다. 마인의 몸이 늘어지는 것을 보던 강서는 손을 모아 고개를 숙여 중얼거렸다. “아멘.”
그 순간 채팅방과 두 명의 중계자의 입이 다물어졌다. 나단 가이스트보다는 마인 쪽에 감정이 이입되었기 때문.
"...."
나단 가이스트의 그 폭력적인 퇴마의식(?)을 보며 모든 사람들은 움찔 거릴 만 했다고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더 경악스러운 것은.
아멘-하며 잠시 묵념한 강서가 늘어진 마인의 몸을 두고 반무릎을 꿇으며 다시 주먹을 쥐어들었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