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 ep10. 소소한 간식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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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
하린의 입이 다물어졌다. 구운 것도, 끓인 것도 아니었다. 강서의 질문에 하린이 선택한 것은-
바사삭.
튀기는 것이었다.
바삭바삭
노릇노릇 튀겨진 튀김옷은 마치 씹힌 적이 없다고 시치미를 떼는 것처럼 끝없이 바삭거렸고, 살짝 데친 페스티아의 뱃살은 탱글 거렸다. 보통의 어전이나, 튀김이었다면 튀기며 육즙이 빠져나가 푸석거렸을 테지만-
페스티아의 뱃살에서는 베어 물 때 마다 육즙이 흘러내리고 그 본연의 맛을 유지했다.
그야말로 천상의 맛.
"으믐...."
뭐라 말을 하고 싶었지만 하린의 입은 이미 하린의 통제밖에 있었다. 온전히 씹고 그 맛을 느끼기 위해. 오직 그것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하린은 순식간에 강서가 만든 페스티아 뱃살튀김을 다 먹어버리고 마지막 한 점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 고개를 가로젓는 라오를 바라 보며 알아듣기 힘든 소리를 내었다.
“으므슷는글 외은믁는그즈”
‘하린번역기’님이 ‘10,000원’을 후원!
[해석: 이 맛있는 걸 왜 안 먹는 거지?]
-분명 먹다 죽은 귀신이 붙어있는 듯.
-이젠 뭐라 할 수도 없다. 그냥....먹어...다 처먹어...맛은 우리가 나중에 알아볼게.
-이게 방송이냐;;
꿀꺽-
하린이 마지막 튀김을 목구멍으로 넘기고 강서에게 되물었다.
“그러니까...이게 우리가 찾으러 온 라오먹이가 아니라는 거죠?”
그렇게 당연하다는 듯 끄덕이는 강서와 그 어깨에 앉은 채 캬오-하며 강서를 따라 끄덕이는 라오를 보던 하린은 의아해 하며 물었다.
“그럼..."
"....?"
“렙틸리스는 왜 그냥 보낸 거에요? <페스티아>도 라오의 먹이가 아니라면...렙틸리스밖에 없잖아요.”
사실이 그랬다. 이 던전 안에 페스티아보다 희소가치가 있는 생물은 하린과 강서가 처음 발견한 렙틸리스 정도 밖에 없었으니까.
페스티아조차도 오성길드가 탐사를 시작한지 3주 만에 처음 발견할 정도로 찾기 어려운 몬스터였다.
"음..."
강서는 잠깐 말끝을 늘이더니 천천히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우선, 지금 눈에 보이는 공간은 원래 바다가 있던 공간이 아닙니다.”
“네? 갑자기....설마요. 저기가 바다가 아니었다고요?”
하린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한번 짓고 강서가 보고있는 바다를 쳐다보았다.
말할 것도 없이 망망대해라 부를 만한 크기였다.
그 끝을 알 수 없도록, 수평선까지 물이 가득 차있는 저 공간이 바다가 아니었다니.
“평범한 땅이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황무지에 가까웠죠. 1년 내 비 한번 올까 말까한 척박한 땅이었으니.”
"...."
“그 척박한 땅이 바다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해룡옥이라는 하나의 보물 때문입니다.”
강서는 그렇게 말하면서 바다 쪽으로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해룡옥이요?”
“네. 그리고 렙틸리스를 보낸 건-"
움찔.
강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린은 갑자기 주변의 분위기가 소름끼치도록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순간 시야가 흐릿해질 정도의 무게감이었다. 공기 자체가 내려앉았다.
“그 해룡옥 좀 가져오라고 보낸 겁니다.”
강서가 몸을 일으키며 모래가 묻은 옷을 털었다. 강서의 시선은 여전히 바다 쪽으로 고정되어 있었고, 이제는 하린의 시선도 그곳으로 향해있었다.
아니, 갈 수밖에 없었다. 아그다드를 처음 마주했을 때와도 비교가 되지 않았다.
존재감 자체가 달랐다. 마치 바다 그 자체가 생명을 가지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하린은 생각했다.
"...."
“직접 찾기는 아무래도 힘들 테니까요. 렙틸리스가 원래 크기랑 힘을 되찾는 다는 게 좀 단점이긴 하지만...”
"...."
좀이라니. 말도 안 되는 말이었다.
하린의 눈앞에서, 본래도 거대했던 렙틸리스가 거의 두 배의 크기가 되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하린은 렙틸리스의 속도를 온몸으로 체감했기에 알 수 있었다.
지금 렙틸리스가 일부러 ‘천천히’ 걸어오고 있다는 것을.
입 안쪽에는 강서가 말한 <해룡옥>으로 보이는 구슬이 있었고, 정확히 하린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물속에서 조금씩 그 거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진짜...말 그대로 괴물이네요 이건...”
도대체 어디서 이런 괴물들만 찾아오고 만들어오는 건지.
하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항상 강서는 상상하는 것보다 한 단계 높은 무언가를 가져 왔다.
그건 하린에게 언제나 벅찼지만, 언제나 현실이었다.
강서는 발걸음을 옮겨 하린의 앞에 섰다. 그리고 하린의 검집에서 검을 뽑으며 말했다.
스릉-
“아마 저건 하린님에게 무리일 거에요.”
"....!"
하린은 그런 강서의 말을 듣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사실 언제나 무리였다. 검을 드는 것도, 몬스터를 처음 잡으려 한 것도. 아그다드와 1대1로 싸웠을 때도 언제나 무리였다.
그리고 이번에도 하린은 알고 있었다. 확실히 느껴지는 기세만으로도 자신에게 무리인 상대라고.
하지만 한 번도 강서가 ‘무리’라고 직접 이야기 한 적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하린은 강서의 말이 <이번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얌전히 숨어있으라는 말>인 줄 알았다.
하지만 강서의 말은 그런 게 아니었다. 강서는 뽑아든 검을 하린에게 내밀며-
“이번엔 정말 한계까지 해봐요. 사람은 한계치를 넘을 때 더 빠르게 성장합니다.”
더 노력하라는 말을 했다. 쉽게 말해 지금까지의 노력도 부족했다는 말.
하린은 헛웃음이 나왔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정말로 어줍지 않은 상상력으로는 재단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더 헛웃음이 나오는 것은-
착각일 수 있겠지만, 지금 들은 그 말에 그동안 한 번도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던 강서의 진심 비스무리한 게 조금 묻어있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온 건지...’
이제 하린은 강서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포기했다. 어차피 뭘 생각하든 강서는 그 상상을 뛰어넘을 테니까.
하린은 검을 들고 렙틸리스를 바라보며 강서에게 말했다.
“...저 갈비뼈도 두 개나 나갔었어요. 아바무 떼들을 베어 넘겼을 때는 기억도 잘 안날 정도였고요. 기억하는 거 맞죠?”
강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잘 알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럼에도 노력이 부족하다는 말이었고.
하린은 강서를 찾아갔을 때를 떠올렸다.
아그다드의 동굴에서 강서가 잘 보고 배우라며 보여준 가로베기를 연습했지만, 혼자서는 전혀 진전을 얻을 수 없었다.
가로베기 숙련도자체는 늘어갔으나, 강서가 보여준 격이 다른 검격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던 것.
그래서 강서를 찾아가 한 번 더 물어봤을 때, 강서에게서 돌아온 말도 정확히 지금과 같았다.
‘노력하면 될 겁니다. 될 때까지 해봐요. 그 검을 익힌다면, 조부님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진짜... 한 오조오억 번은 해야 아저씨 성에 차려나.”
[<보스: 렙틸리스>가 출현합니다.]
[<보스: 렙틸리스>가 본신의 힘을 회복했습니다.]
하린은 렙틸리스를 보고 마주섰다. 그리고 시험삼아 에너지볼트 구체를 하나 만들어 렙틸리스에게 날려 보내 폭사시켰다.
콰광!
기이잉
제 자신이 항마괴수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피격받는 순간 렙틸리스의 등이 새겨진 문자에서 주황빛을 내뿜었다. 역시, 마법에 면역된 것.
오히려 에너지볼트가 렙틸리스의 화를 돋구는 역할만했다.
렙틸리스의 눈동자가 푸른색으로 물들고,
동시에 렙틸리스의 입 안에 있는 해룡옥이 같은 푸른빛을 내었다.
렙틸리스가 앞발을 한 번 굴렀다.
쿵!
기이잉!
렙틸리스의 발 구름에 파도가 일어났다. 일어난 파도는 예상과 달리 그대로 덮쳐 오지 않았다. 푸른빛이 파도를 감싸며 파도가 새끼줄 꼬듯 나선형으로 꼬였다.
그리고 첨탑을 떠올리게 하는 뾰족한 머리를 형성하더니 그대로 하린과 강서를 향해 공격해 들어왔다.
가가가각!
도저히 물과 검이 부딪히는 소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쇠긁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밀도가.’
갑작스러운 공격에 본능적으로 검을 들어 막은 것이었다. 본래라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공격은 피하는 게 상책이었지만, 그건 피해낼 시간도 없는 속도였다.
중요한 것은 그 공격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 수개의 물줄기가 쉴 틈 없이 짓쳐들어왔다.
찌직!
몸을 비틀어 가까스로 공격을 피해내었지만, 물줄기가 들어오며 만들어지는 강한 기압차에 옷이 조금 찢겨져 나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피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린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자신도 모르게 괴상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
‘본체에 닿는 것은 확실히 무리지만....’
저 물줄기라도 갈라버리고 싶다.
첨예하게 하린을 향해 꽂아 들어오는 그 물줄기들을 보며 하린이 한 생각이었다.
그건 자살행위일뿐더러 불가능한 행위였다. 그건 이미 한 번 검으로 빗겨내며 그 물줄기를 느껴본 하린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다른 게 아니라 그게 하린의 한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그극!
다시 한 번 물줄기를 검으로 빗겨내며 반동을 이용해 하린이 뒤로 크게 뛰었다. 잠시 생긴 시간의 공백.
하린은 검을 검집에 넣고 눈을 감았다. 많이 옅어지기는 했지만 슬슬 트라우마가 올라오고 있었다.
심호흡을 하며 모든 생각을 억누르고 머리를 비웠다.
그리고 단 한 가지만 머릿속에 그렸다.
강서가 보여준 그 일검(一劍).
공간 그 자체를 잘라버린 그 검을 떠올렸다.
기이잉!
물줄기가 빠르게 회전하며 가까이 다가올 때 까지, 하린은 발도자세를 취한 채 눈을 뜨지도 몸을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몸을 그대로 꿰뚫어 버릴 듯이 꽂아 내려오는 물줄기가 코앞에 다가온 순간-
하린의 검이 검집에서 뽑혔다.
그리고 그 검은-
[<스킬:거합발도술>이 생성됩니다.]
하린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서걱-
하린은 검을 휘두르는 순간 자신의 몸에서 무언가 쑤욱-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그건 단순한 기분이 아니었다. 새로 생긴 스킬이 발동되며 하린이 가진 마력의 반이 뭉텅이로 빠져나간 것이었다.
그와 함께, 도저히 가를 수 없을 것 같았던 그 엄청난 밀도의 물줄기가 하린의 검 끝에서 잘려나가며 예리함을 잃었다.
기이잉!
하지만 하린이 베어낸 물줄기는 단 하나, 아직 남아있는 수개의 물줄기가 하린을 향해 날아들었다.
날아오는 물줄기들을 보면서도 하린은 탈력감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다음 물줄기를 막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린의 머릿속에 들어있었던 것은 오직 강서가 펼쳐보였던 그 일검(一劍)뿐이었으니까.
그렇게 하린이 포기하고 눈을 감으려던 때. 하린의 눈앞에 대나무 하나가 나타났다.
투둑.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 물줄기들을 쳐낸 그 대나무는, 강서가 휘두른 신선대였다.
‘확실히...’
확실히 닮아있었다. 오도아게르 시절 자신과 똑 같았다.
강서는 그렇게 생각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한번 고집이 발동되면 뒷일은 생각안하고 달려드는 그 융통성 없는 도전고집을 하린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같은 상황에서 오도아게르는 죽은 뒤 다시 한 번 도전을 해야 했고, 하린은 죽지 않게 할 조력자가 존재한다는 것 정도이리라.
강서는 하린에게 신선대를 쥐어 줬다.
[<아티팩트:신선대>가 <진법:방호의 술>을 활성화시킵니다.]
“그거 들고 있으면 어느 정도는 막아줄 거에요. 그리고-”
하린에게 신선대를 쥐게 한 뒤 하린의 어깨에 있는 포켓을 열었다.
“감사해....요?”
“이것 좀 빌릴게요.”
그렇게 말하는 강서의 손에는 하린의 포켓에서 꺼낸 종이가 몇 장 들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