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 ep9. 새로운 사건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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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죽순.
그건 A급 던전 ‘칠부바위산’에서 발견된 아이템이었다.
처음 이 율죽순이 발견되었을 때에 율죽순은 엄청난 관심을 불러 모았다.
국내에서 발견되고 첫 레이드가 된지 꽤 지난 칠부바위산에서 새로운 아이템이 발견되어서인 것도 한 몫 했지만, 정확히는 율죽순이라는 아이템 그 자체 때문이었다.
세간에서 평가하는 율죽순은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고농축 에너지원이었다.
A급 마나석에 수배에 달하는 엄청난 에너지를 축적하고 있었고, 그 에너지는 다른 형태로의 변환도 용이한 형태로 저장되어 있었다.
A급 아이템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위용.
하지만 단지 그 정도뿐이었다면 처음 발견된 당시에 센세이션이라 불릴만한 관심은 받지 못했으리라.
율죽순이 엄청난 관심을 모았던 이유는 바로 가능성에 있었다.
율죽순을 설명하는 상태창에 ‘발아형 아이템’이라는 말이 있었던 것.
이미 그 가진 에너지의 효용성과 양만 따져도 A급 아이템이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율죽순’이었다.
‘상태창의 설명대로 그것이 발아 이전의 상태라면?’
‘율죽순이 발아하여 A급 이상의 무언가가 만들어진다면?’
그런 기대감이 율죽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었던 것이다.
하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모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절대다수의 국내 연구소들이 연구를 했지만, 율죽순의 발아방법은 좀처럼 발견되지 않았다.
심지어 해외에서도 연구에 가담했으나 결과는 없었다.
반년이 지난 지금도 이렇다 할 연구성과가 없는 것이 현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강서가 이뤄낸 말도 안 되는 결과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예의바른 청년’님이 ‘50,000원’을 후원!
[실례지만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혹시, 사람이세요...?]
‘tls123’님이 ‘100,000원’을 후원!
[형... 신이야?]
‘알렉산더머왕’님이 ‘50,000원’을 후원!
[이ㅏ니;;도대체 이런 건 어디서 알아오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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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솔직히 오져버렸다;;
-그야말로『판-다』
-킹-판다
-대-판다
-갓직히 돈 주고 팔 정보자너;; 이거 보고있는 율죽순 가진 길드만 개꿀일 듯.
-정보1) 지금 경매장에는 율죽순이 없다.
-정보2) 그 율죽순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것이 판다의 《소소》....
시청자들이 경악한 이유는 간단했다.
강서가 그 누구도 키워내지 못했던 율죽순을 키워낸 것이다.
국내와 해외의 수많은 연구소들이 반년동안 단 한 걸음도 내딛지 못했던 길을, 강서가 단번에 뚫어버린 것. 게다가 그건 A급 아이템의 ‘성장’이었다.
최초였고, 아직 명명되지 않은 최고등급의 아이템이었다. 어쩌면 웬만한 아티팩트보다도 뛰어날지 몰랐다.
강서는 검은색 율죽으로 이루어진 숲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율죽순’은 여러분들이 지금 보고 계신 ‘율죽’의 순입니다. 쉽게 말해 ‘싹’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드루퍼’를 처치한 후, 강서는 경매장에서 사온 수백 개의 율죽순을 땅에 가지런히 심었다. 율죽순의 밭을 만든 것.
그리고 나서 그 밭 가운데에서 ‘새장’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드루퍼의 새장’안에서 기괴한 소리들과 함께 사념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수많은 세월 동안 새장안에 갇혀있으며 자의지(自意志)를 잃어버린 사념들은 흉포한 기운을 흩뿌리며 당장이라도 튀어나가려 했다.
하지만 새장에서 나온 사념들은 모두 율죽순의 밭을 벗어나지 못했다.
율죽순이 말 그대로 그 사념들을 집어삼키고 있었기 때문. 마치 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듯이 율죽순이 강력한 인력(引刀)으로 사념을 끌어당긴 것이다.
굳건히 입을 닫고 있던 율죽순들은 사념 하나를 삼킬 때마다 봉우리를 벌리고 매초마다 거짓말같이 솟아올랐다.
사념들이 드루퍼의 새장 안에 갇혀있으며 시간이 지나며 의지는 잃었을지 몰라도 에너지는 더욱 축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엄청난 에너지는 율죽순을 자라게 하기 충분했다.
단 30초였다. 율죽순이 자라, <율죽>의 숲이 형성되기까지 걸린 시간이 말이다.
“율죽은 대나무 중에서도 조금 재미있는 대나무인데요. 사념(思意)에너지. 즉 생각을 할 때에 나오는 에너지를 먹고 자랍니다.”
-아;;A급 이상이 확실한데 조금 재미있는 거구나...
-A급은 조금의 재미도 없는 거자너;;ㅋㅋㅋㅋㅋ
-확실한 건 우리 집에 놓으면 평생 못자랄 듯;;
-???:뭐라고? 대나무에 뭘 해? 헛소리 말고 연구나 더해
-???:연구말고 생각을 하시기 바랍니다.
- 연구소ㅌㅋㅋㅋ 생각도 안하는 머저리행ㅋㅋㅋㅋㅋㅋㅋ
“보통 신선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속세를 떠나 수련을 할 때, 이 율죽을 심었는데요. 수련이 끝나면 수련하는 동안 자란 이 대나무를 들고 다녔는데, 이 율죽의 마디수가 그 신선이 가진 도(道)의 수준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었죠.”
이제 시청자들은 강서의 말을 판단하며 듣지 않았다.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그저 하나의 옛날이야기처럼.
어찌되었든 강서의 말들은 결국 말미에 가면 절묘하게 이어지며 현실과 대충 맞아떨어지는 그럴듯한 이야기가 되었으니까.
-판다아재 이거 상태창으로 좀 띄워서 보여주면 안돼요?
-ㅇㅇㅇㅇㅇ상태창 등판
“아."
강서는 상태창을 띄워달라는 시청자의 요구에 검은 빛깔로 자라난 율죽 하나를 뽑아들었다.
그러자 강서의 시스템 데이터에 문장이 한 줄 나타났다.
[율죽: 사사로운 사념을 양분으로 자란 특별한 대나무입니다. 사기(死氣)를 흡수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내 최초의 A+....
-???:A급이요? 그게 뭐죠? 아이템인가요?
-아니 잠깐만....지금 그럼 저 수백 개가 다 A+아이템이라는 소리야?
-ㅋㅋㅋㅋㅋㅋㅋㅋ그저 웃음ㅋㅋㅋ
-양산형+국내최고등급 아이템=????
사람들은 그 표기를 보고 경악을 했다. A급 이상에 도달할 것이라고 기대되는 A급 미확인 아이템이 국내에 몇 개 더 있었지만 언제 그것이 가능해질지는 미지수였다.
말 그대로 기약없는 기다림. 지금까지는 한 번도 없었고 말이다.
그런데 강서가 이렇게 저렇게 하더니 갑자기 국내최초의 A+급 아이템을 양산형아이템 수준의 수량으로 뽑아낸 것이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아직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강서는 그것을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눕힌 그대로 미동도 없는 상진과 어느새 쓰러져 있는 하린을 바라보았다.
"두 분이 다 쓰러진 상태여서...그럼 오늘은 여기서 제가 마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강서는 스마트워치를 조작해 방송을 종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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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강서가 율죽들을 정리해서 아공간에 넣다가 멈칫했다.
사실, 강서가 말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다.
같은 종류이긴 해도 강서가 말한 신선들이 사용하는 율죽은 본래 흑색을 띄지 않았다.
신선이 들고 다니는 대나무는 격이 좀 다르기에 율죽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기도 했고.
강서가 키운 율죽들이 모두 흑색을 띠고 있는 건, 율죽순이 흡수한 에너지가 신선들의 정순한 사념에너지가 아니라 ‘새장’안에 갇혀있으며 축적된 악에 받친 사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새장안의 에너지가 율죽순을 <신선대>로 키워낼 만큼 정순한 기운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랬어야 했다.
***
[새로운 등급의 아이템. 율죽]
[율죽, 그것은 무엇인가.]
[A급을 초월하는 아이템 등장.A+급 아이템]
새로운 사건이었다.
세상이 전에 없던 정도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율죽순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도 굉장했다고 할 수 있었지만, 그 수준을 뛰어넘은 엄청난 관심.
그것은 당연하게도 한국에 새로 등장한 A+급 아이템 율죽으로 인한 것이었다. 세상의 모든 시선이 율죽에 몰려있었다.
공식적으로 국내에 A+등급의 아이템이 등장한 것도 최초였고, 그 아이템을 얻는 방법이 알려진 것은 세계에서 ‘율죽’이 최초였다.
율죽순이 얻고자 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칠부바위산 레이드에 도전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모든 길드들은 칠부바위산을 레이드하고자 하였다.
그 이유는 율죽순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 관심을 얻었던 이유와 정확히 같았다.
가능성.
판다가 방송을 통해 보여준 ‘율죽’에 대한 정보는 두 가지가 다였다.
A+등급의 아이템이라는 것과 그것이 사기(死期), 즉 죽음의 기운을 흡수하는 성질을 가졌다는 것.
아이템에 이렇게 간단한 정보만이 쓰여져 있는 경우. 범용성이 뛰어날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그것이 가공된 상태가 아니라 자연상태의 아이템일 경우에는 더더욱.
그런 관점에서 율죽은 최고의 가능성을 가진 최고등급의 아이템이었다. 오히려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문제는 율죽순이 원래부터 관심이 많았다는 데에 있었다.
[판다, 그는 선인인가. 악인인가.]
[그가 율죽순의 생장방법을 뒤늦게 공개한 이유는?]
[경매장 독점 법적인 문제는 없지만 윤리적 당위성의 측면에서...]
본래부터 율죽순을 연구하던 기업이나 길드들이 판다에게 악심을 품고 판다의 도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기사들을 써내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동안 연구하던 것이 헛고생이었다는 허탈감에 괜히 그의 명성에 시비를 건 것이었다.
제목: 야 근데 진짜 판다 다 알고 있던 것 같은데
나 판다 팬인데, 이건 좀 궁금하긴 함. 말투보면 율죽순 키우는 거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반년 죽쑤는 동안 왜 안 알려준거냐. 좀 너무한 것 같은데
-연구원님...글에 감정이 너무 많이 녹아 있습니다...
-나 판다 팬인데 = 나 00연구소장인데 ;;
ㄴ이 글이 그 정도냐? 이건 킹리적 갓심이 아니라 그냥 선동아님?;;
알만 한 사람들은 기업과 길드들이 일부러 그런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 판다의 팬들도 대부분 판다를 옹호했고 말이다.
하지만 원래 언론 플레이라는 게 다들 알면서 하는 것. 그럼에도 효과가 있으니 하는 것이었다.
-근데 확실히 좀 그렇긴 하다 알고 있었으면 알려줄 만도 했는데
-ㅇㅇㅇㅇ뭐 판다가 나쁜 건 아니지만....아쉬운 거지
-말투에 알아낸 지 꽤 된 것 같긴 했지.
명성에 금이 갔다.
라고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확실히 영향이 없지는 않았다.
그 이전까지는 100이면 100 판다를 찬양했다면 이제 100명 중 한명 정도는 그의 절대적인 명성에 의혹을 제기하기 시작한 것.
그리고 그 의혹은 점점 커졌다. 판다의 정체가 감추어져 있다는 것이 악영향을 미친 것이다.
모두 반박하는 글들이 달리기는 했지만 구설수가 전혀 없던 판다에게 흠이 생긴 것은 사실이었다.
-사실 판다가 흑막 아닐까?
ㄴ근거좀;; 괜히 시비좀 털지마라 뚝배기 깬다 ㄹㅇ
-솔직히 전세계 사람 다보는 데서 공개하는 것도 그렇고;; 국내길드만 알려줄 수 있잖아.
ㄴ굳이? 국내에서 판다한테 뭘해줌;;
김수혁은 집무실에서 그 기사와 댓글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판다를 공식적으로 후원하는 수혁의 입장에서는 눈살을 찌푸릴 만한 글들이 있었지만 그런 글들을 보면서도 수혁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나쁘지않아. 아주 나쁘지 않아.”
그렇게 중얼거리며 수혁은 집무실 뒤쪽에 있는 길쭉한 상자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사건의 중심인 <율죽>다섯 개와 강서가 필요없다며 준 <아티팩트: 제령의 목걸이>가 들어있었다.
던전에서 돌아온 강서가, 율죽순을 사며 소비한 10%를 메우기 위해 골머리를 싸매고 있던 수혁에게 선물로 준 것이었다.
율죽을 키우는 방법이 다 밝혀진 마당에 꼴랑 5개가 무슨 의미냐 할 수 있겠지만, 수혁또한 강서의 방송을 보았다. 그래서 확신할 수 있었다.
언뜻 봤을 때 방법이 밝혀져서 누구나 만들 수 있을 것 같아도, 당분간은 율죽이 생산될 일은 없을 거라고.
드루퍼의 공동묘지에서 강서가 보여주었던 방법은 <제령의 목걸이>가 없으면 시도가 불가능했다.
강서의 경우를 제외하면 ‘드루퍼의 새장’은 드루퍼와 일심동체. 드루퍼가 죽기직전 사용하는 공격인 <영체폭발>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니까.
그말은 즉 제령의 목걸이가 마탑에 있는 이상 같은 방법은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의미였다.
물론 다른 방법을 사용하거나, 다른 던전에서 사념에너지를 얻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테지만 그만한 연구가 필요할 것이 분명.
수혁의 입장에서는 그 전에 최고가를 찍었을 때, 판매하면 그만이었다.
게다가- 그 최고가를 찍는 시점을 수혁은 이미 계산 해놓았다.
율죽의 희소가치와 상징성이 만나 정점을 이루는 타이밍.
“탑주님, 부르셨습니까.”
“...기사. 내보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했다. 판다의 후원처인 마탑에서는 왜 길드들의 언론플레이에 아무 대응을 하지 않는지. 판다의 팬으로부터는 욕도 좀 먹었다.
하지만 그건, 모두 수혁의 계산 하에 진행된 일이었다.
찔끔찔끔 대응기사, 반박기사를 써내려가는 것보다, 한 번의 역풍이 훨씬 더 영향력이 강했으니까.
수혁은 총무를 불러 미리 준비해둔 기사를 내보내도록 지시하고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소리를 내보았다.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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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죽, 몬스터병 치료를 가능하게 하다.]
[최초의 몬스터병 치료약, 율죽.]
[판다, 697개의 율죽을 몬스터병 치료에 기부해.]
[판다, 또 『판-다』해.]
역풍이 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