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 ep9. 새로운 사건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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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유흔결계에서 나오지 않았을 때, 헤타이로로 가루다를 빨아들이고 난 뒤, 세 가지 문장이 강서의 눈앞에 나타났다.
[수행과제를 모두 해결했습니다.]
[잠시 후 유흔결계에서 귀환합니다.]
[추가 ‘소지’할 물품을 한 가지 선택해주시기 바랍니다.]
‘...?’
강서가 유흔결계에 들어올 때에는 분명 세 가지를 선택해 달라고 했었다. 헌데 이번에는 추가 소지할 물품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강서가 회귀하며 겪은 유흔 결계는 이렇지 않았다. 유흔결계에는 두 가지 원칙이 있었다.
첫째는 세 가지 물품을 가지고 가서 그대로 돌아온다는 원칙이었다.
둘째는 빙의되는 동안, 정신적인 요소를 제외한 모든 본신의 능력은 유흔결계내에서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
둘째원칙은 특별한 경우도 예외인 것도 있었지만, 첫째 원칙에서 벗어난 유흔 결계를 강서는 아직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다.
그래서 강서는 유흔결계에 들어올 때 방송을 위한 <스마트 워치>와 자신임을 나타내는 <판다가면>, 그리고 <항마석>을 가져왔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항마석을 헤타이로에 넣고 격을 상승시켜 가지고가는 것이 강서의 계획이었지만...
[추가 소지할 물품으로 <아티팩트:헤타이로>를 선택합니다.]
그건 강서로서도 놀랄만한 것이었다. 신격을 지닌 아티팩트를 그대로 가지고 나갈 수 있다는 것. 단순히 결계속의 허상이 아니었다.
그 말은 즉, 이 유흔결계가 생성될 때 애초에 아티팩트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게다가 추가소지가 가능하도록 설계가 되어있다는 것은...
‘이건...’
마치 아티팩트를 보관하기 위한 장소를 만든 것 같았다.
* * *
던전에서 귀환한 뒤 바로 승아, 하린과 함께 균열 사후연구기지로 향한 강서는 아그다드의 던전에서 얻은 항마석을 <헤타이로>에 넣고 갈아버렸다.
[<항마석>이 격을 초월합니다.]
[<항마석> → <파마의 성수>]
[초월에너지가 전부 소모되었습니다.]
[현재 에너지: 0%]
헤타이로 속에 들어간 항마석은 ‘파마의 성수’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단순히 마(魔)의 기운에 저항하는 돌이 아니라 기운을 깨뜨리고 파괴하는 성수가 된 것이다.
헤타이로 안에는 주황빛 넘실거리던 기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푸른빛을 띠는 액체가 자리하고 있었다.
“뭔가 방 공기가 달라진 것 같아요.”
하린이 중얼거렸다.
그건 파마의 성수 때문이었다. 파마의 성수가 가진 성스러운 기운이 방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마치 경건한 성지에 온 것과 같은 분위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들썩-
“...!”
그리고 거짓말 같이 그동안 한 번의 미동도 보이지 않았던 ‘블랙 독’이 조금이지만 움직였다. 그 기척을 느낀 승아가 놀란 눈으로 블랙 독을 돌아보았다.
강서는 예상했다는 듯, ‘파마의 성수’가 담긴 헤타이로를 통째로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블랙독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대로 ‘파마의 성수’를 ‘블랙 독’에게 끼얹었다.
[‘파마의 성수’가 ‘마수의 기운’에 상쇄됩니다.]
치이익!
하얀 김이 올라오며 ‘블랙 독’이 비명을 질렀다. 몸에 베베 꼬이며 고통이 극심했는지 입에서 피를 토해냈다.
카학-
“....?”
승아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블랙독의 피부가 벗겨지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피부에 씌워진 무언가가 벗겨지고 있었다.
승아는 강서가 던전에 들어가기 전 했던 말을 떠올렸다.
‘마수의 새끼가 아니라던 게...’
한참을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하던 ‘그 생물체’에게서 마수의 기운이 벗겨질수록, 본 모습이 드러났다.
흰색 털에 푸른 갈기가 드러났고, 마수의 기운으로 감싸져 있던 황금색 뿔이 드러났다.
부들부들 떨리던 몸이 멈추고, 비명이 멎었을 때 그곳에는-
“......고양이?”
“사자....쪽에 가깝겠네요.”
정체모를 뿔 달린 생물체가 있었다.
* * *
캬오-
승아는 믿을 수가 없었다. 강서의 어깨위에 앉아있는 저 앙증맞은 새끼사자가 방송 속에서 보았던 끔찍한 가루다와 같은 수준의 생물이라는 것이.
“...<영물(靈物)>이라고 부릅니다. 신격에 도달할 가능성을 가진 특별한 고대종이죠.”
“도저히 그 가루다라는 놈이랑은 매치가 안 되는데...”
“맞아요! 너무 귀엽잖아요!”
그렇게 말하는 하린의 눈에서는 꿀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끌어안기 위해 달려들 것 같은 눈빛.
사자를 닮은 영물도 그것을 알았는지 강서의 어깨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근데 그러면 위험한 거 아니야?”
승아는 심각한 눈빛으로 강서에게 물었다. 지금당장이야 그 정도로 위험해 보이지 않았지만, 영상 속에서 보았던 가루다의 힘은 정말 끔찍한 수준이었다.
신격이라는 말이 헛되지 않다고 증명하듯, 한 번의 휘두름에 수백을 녹여내는 그 장면을 회상하며 승아는 자기도 모르게 몸서리가 쳐졌다.
적절한 질문이었다.
유흔결계 안에서 아우헤타이로가 싸우는 장면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아 사람들은 알지 못헀지만, 아우헤타이로는 8중금제가 걸려있는 현실의 강서보다 강했고, 단번에 녹아내린 국왕도 ‘1티어 헌터’라고 부르는 이들의 힘에 버금가는 정도였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그런 그들을 단번에 압도할 정도의 힘을 가졌던 게 바로 신조 가루다였으니까.
그런 승아의 말에 강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영물들 중에서도 실제 신격에 도달해서 신수(神獸)가 되는 것은 극히 일부 중에 일부입니다. 그리고 돌연변이더라도 근본적으로는 동물이라서-”
강서는 어깨에 올라와 앉아있는 사자를 닮은 신수를 쓰다듬었다.
“잘 키우면 됩니다.”
강서의 손길에 영물이 그르렁 소리를 내며 머리를 비볐다.
“...영물이 아니라 그냥 고양이 같은 데.”
“꺅! 너무 귀여워! 저도 한 번만 만져 봐도 돼요?”
하린이 그렇게 말하며 강서를 바라보자, 눈을 감고 손길을 느끼던 영물이 갑자기 눈을 뜨며 고개를 저었다. 마치 하린의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말이다.
“...?”
“아. 말 그대로 좀 영험한 부류라서 간단한 말 정도는 눈치로 알고 의사표현도 가능합니다.”
강서의 말에 끄덕이며 다시 눈을 감은 영물은 강서의 손에 머리를 비볐다. 거절받은 하린은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고 그걸 본 승아는 깔깔대며 웃었다.
“아 모르겠다.”
하린의 표정을 보고 웃던 승아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기대를 너무 많이 했다.
마수의 기운을 직접 연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파마의 성수와 마수의 기운은 서로를 상쇄하며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물론 영물이라는 것도 충분히 연구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그녀가 그동안 급한 성격에도 진척없는 ‘블랙 독’연구를 포기하지 못했던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블랙독이 무슨 생물이냐는 호기심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마수의 기운 그 자체였지.
‘차라리 아까 그 액체를 붓기 전에 조금 덜어 놓았으면....’
승아는 고개를 저으며 상념들을 털어내었다. 이미 지난 일이었다.
지나간 일에 착념해봤자 아무 의미 없는 법.
무엇보다 자신의 것도 아니었고.
‘그래도 최근, 덕분에 연구가 꽤 진척되어 완성단계에 와있으니까.’
승아는 강서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얼마나 걸릴지는 몰랐지만 그래도 강서가 ‘암탈’에 대한 실마리를 주지 않았다면 이 정도까지 도달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고마워.”
“...?”
맥락없이 튀어나온 승아의 말에 강서와 하린이 의문 가득한 시선을 보내었다.
무엇이 고마운지 왜 고마운지에 대한 의문이기도 했지만, 그 말이 승아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 자체에 대한 의문이기도 했다.
고맙다는 말은 승아와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뭐야, 왜 그런 눈으로 봐?”
승아가 하린과 강서를 번갈아 보았다.
“너무 안 어울려서요. 뭐가 고마운지도 모르겠고.”
하린이 대답했고, 강서가 끄덕였다.
강서의 어깨에 있던 영물도 하린을 한번 보고, 강서가 끄덕이는 것을 올려다보더니, 눈치를 보며 고개를 약하게 끄덕였다.
“할 수는 있어. 잘 하지는 않지만...”
반박을 하듯 말했지만 승아의 말에는 확신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한 고맙다는 말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으니.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부탁합니다.
아마 한 손이면 다 셀 수 있을 것이었고, 어쩌면 없을 수도 있었다.
승아가 16살 이후로 그런 말들을 한 것은.
대가없는 호의는 받지 않는다. 주고받는 건 항상 거래로. 그게 승아의 모토였다. 약해보이면 당할 뿐이니까.
띠리링!
승아의 스마트 워치에서 소리가 울렸다.
전화가 온 것이었다. 승아는 스마트워치에 부속으로 달려있는 소형 이어팟을 꺼내 귀에 꽂았다.
“어, 왜.”
전화를 받은 승아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것이 분명해보였다.
“...알겠어.”
듣고만 있던 승아는 심각한 표정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강서를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약 10여초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뭔가를 말할 듯 말 듯 하며 입을 오물거리던 승아는 입술을 한번 질끈 깨물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어색한 모습으로 강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땅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부탁해....아니,”
부탁합니다-
.
.
.
.
.
“....”
작은 목소리였지만, 거기에는 승아의 진심이 담겨있었다.
* * *
“그러니까...몬스터병(monster disease)에 걸린 사람들이 모여 있는 섬이 있고, 그 사람들은 거기에 격리되어 살아간다는 거죠?”
승아는 부탁한다는 말을 하고 강서에게 한국 대학교로 움직일 것을 제안했다. 강서는 끄덕이며 그에 응했고 하린과 아직 이름없는 영물도, 당연히 강서의 뒤를 따라왔다.
“...네, 저희 연구실에서 제일 주안을 두고 있는 문제도 거기이고요. 신승아 교수님이니까 지원금 끌어와서 쓸 수 있는 거지 어떤 나라든 덮어놓고 모른 척을 하고 있는 실정이라...”
“흠...”
이동한 한국 대학교에는 척척석사, 상진이 자리하고 있었다.
승아는 그에게 ‘내가 하니까 진심이 잘 안 담기는 것 같아.’라고 말하며 상진에게 대신 설명하도록 시키고 자신의 연구실로 내려갔다.
몬스터병.
몬스터 체내에 있는 ‘암탈페리네플루스’가 체내에 축적되어 면역력 자체가 떨어지고 다양한 합병증으로 이어지는 증세를 가진 병이었다.
암탈에 대한 연구가 전혀 진행되고 있지 않았을 때, 멋모르고 몬스터를 먹은 자들은, 예외없이 이 병에 걸렸다..
“국가에서는 격리라 표현하지 않아요. 그런데 암탈페리네 플루스의 증상악화를 막는 지연제를 그 섬 내에서만 가용하게 해놓았으니 사실상 격리죠.”
상진은 균열사후분석기지 지하에서 승아가 했던 것처럼 똑같이 고개를 숙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조금 더 절실해보였고, 목소리에 결연함이 서려있었다.
“부탁드려요. 저희 어머니도 그 곳에...”
“그래야죠.”
상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서는 대답했다.
그리고는 하린을 바라보았다.
“그럼 이번 주는 조금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 같은 데...”
하린은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상관없다는 의미.
그런 하린을 보고 나서 강서는 고개를 돌려 상진또한 쳐다보며 말헀다.
“상진씨도 해주실 일이 있어요.”
.
.
.
.
.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