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소소한 꿀팁방송-34화 (34/191)
  • 34화. < ep8.아우헤타이로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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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양, 새, 제물.”

    채팅방의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첫인사 후로 줄곧 가만히 있던 수혁이 입을 열었다.

    -??

    -무슨. 말. 그게.

    -이거. 유행. 요즘?

    “마탑에서 ‘아우헤타이로’라는 이름과 함께 밝혀낸 단어들입니다.”

    -??? 이름만 간신히 알아낸 거 아니었나?

    -ㄹㅇ이었네 소문은 들은 적 있었는데

    -ㅇㅇㅇ 수혁좌가 농담할 성격도 아닌데...

    -병풍좌. 발언. 집중.

    마탑에서 영웅들의 이름과 함께 몇 가지 단어를 밝혀냈다는 사실은 일반인들에게 그리 알려지지 않은 사항이었다.

    단어를 함께 밝혀낸 영웅도 있었지만, 아무 단어도 알아내지 못한 영웅이 반절이 넘었기 때문.

    딱히 발설을 금지하는 비밀은 아니었지만, <누군가를 위한 비석>에 기록하기도 애매하여 빠져있었다. 그러다 보니 명확한 사실여부는 밝혀지지 않은 채 찌라시처럼 떠돌기만 했던 것.

    ‘그래서...’

    수혁은 화면 밖 왼편에 쌓여있는 진실의 서들을 보았다.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놓여있었지만, 수혁의 인생에서 이보다 더 어이없는 장면도 얼마 없었다.

    그 귀하다는 진실의 서를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한 묶음으로 쌓아놓다니.

    속으로 투덜거리듯 중얼거렸지만-

    두근두근.

    수혁의 가슴은 뛰고 있었다. 이제야 이해가 갔다. 강서가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그가 자신에게 맡긴 일이 무엇인지 이해가 갔고, 그가 했던 질문들이 이해가 갔다.

    강서가 그 사실들을 어떻게 알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무엇을 해야 할 지는 명확해졌다.

    “확실히 여기까지 들었을 때 근거가 의심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수혁은 그렇게 말을 늘이고, 진실의 서 한 장을 잡아들어 자신의 앞에 놓았다.

    진실의 서 한 장이 수용 가능한 것은 단 하나의 명제. 수혁은 마음속에 정해둔 하나의 문장을 유려하게 써내려갔다.

    [하프 드워프 ‘아우헤타이로’는 제1망록시기에 살았던 대장장이다.]

    -와 저거 진실의 서 아니냐?

    -마탑 후원 개빵방하네 물론 저렇게 물 쓰듯 써도 재정에는 1%도 영향 안가겠지만.

    -마탑이 그렇게 돈이 많냐?

    -ㅇㅇㅇ진짜 우리가 평생 써도 다 못쓸 걸

    문장을 완성한 수혁은 그 문장의 진실여부가 확인되기도 전에 화면을 향해 내밀었다. 본래는 확인을 하고나서 시청자에게 보여주는 것이 순서에 맞을 것이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문장은, 어차피 진실일 테니까.

    수혁의 예상대로, 아니 확신대로. 쓰여진 문장에 거짓이 없음을 의미하는 새하얀 빛이 ‘진실의 서’를 감쌌다.

    .

    .

    .

    .

    “태양과 제물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그게 더 궁금하네요.”

    * * *

    ‘패크다방’님이 ‘10,000원’을 후원!

    [앗...아앗...]

    ‘한입만’님이 ‘20,000원’을 후원!

    [아앗....]

    -사탄: 아니 교수님 다시는 너무 하잖아요;;

    -모르모르쿤....

    -설마 만드는데 필요한 마지막 재료가 모르모르의 어금니일 줄이야...

    마지막 재료인 모르모르의 어금니까지. 강서는 11가지의 재료를 모두 모으고 맨 처음 있었던 대장간으로 돌아왔다.

    강서는 이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땔감이 타들어가는 소리와 쇠가 그을리는 텁텁한 향. 이제 막 기울기 시작하는 노을을 배경으로 완벽하게 어울렸다.

    헤타이로가 완성되는 날. 마지막 야장질을 하는 그 날이었다. 유흔결계는 그 시간으로 강서를 빙의(憑依)시켰다.

    강서는 잠시 그 풍경을 바라보다가 대장간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끼익-

    문을 천천히 밀자. 나무문이 삐걱대었다.

    아우헤타이로의 대장간은 그리 특별할 게 없는 공간이었다.

    엄청난 장비도 없었고 훌륭한 조수도 없었다.

    단지, 오른다리가 조금 더 긴 아우헤타이로의 체형에 알맞게 조금 기울어진 발판과.

    손잡이가 부러졌지만 한 번도 바꾼 적이 없는, 조금은 짧은 망치.

    그리고 다 헤진 가죽장갑이 있었을 뿐.

    아우헤타이로의 대장간은, 정확히 무기를 만들기 위한 대장간. 그 본래의 목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공간이었다.

    다만 다른 대장간과 눈에 띄는 차이가 있는 장소가 있다면-

    무기고. 무기고가 달랐다.

    ‘오늘 저녁은 모르모르’님이 ‘10,000원’을 후원!

    [와......]

    -ㅗㅜㅑ....

    -저게 다 뭐냐 진짜 말이냐 저게;;

    -와 내가 아는 검만 몇 개야 저기

    -킹우헤타이로...

    -진짜 킹설적인 갓장장이가 맞기는 했나보네.

    강서가 무기고의 문을 열자 시청자들이 ‘ㅗㅜㅑ’를 남발했다. 무기고 안이 딱 봐도 범상치 않은 무기들로 가득 차있었고, 그 중에는 시청자들이 알만한 엄청난 무기들도 있었기 때문.

    그 경광을 보며 남다르게 감탄하는 사람이 한명 있었으니, 바로 김수혁이었다.

    “....”

    그는 말없이 입을 벌렸다.

    평소 김수혁은 마법공부의 일환으로 신화를 공부하고는 했다. 신화는 상상력의 보고라는 말처럼 마법에 영감을 주는 부분이 분명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화에 대해 빠삭하게 아는 그의 눈에 아우헤타이로의 무기고는 말그대로 보물창고나 다름없어 보였다.

    하나라도 흘릴만한 신화가 없던 것.

    강서는 무기고를 둘러보며 간단히 설명했다.

    “이 곳은 아우헤타이로의 무기고입니다. 아마 이 중에는 여러분들이 알고 계신 무기들도 꽤나 있을 거에요.”

    <헤타이로>를 만들기 위해 망치질을 하려면 태양의 힘이 가장 약해지기 시작하는 10시가 되어야 했다. 이제 막 해가 지기 시작했으니 시간이 좀 남아있었다.

    강서는 그 시간의 틈을 이용해 시청자들에게 아우헤타이로의 무기고를 보여준 것이다.

    아우헤타이로는 강서가 아는 한 지구에서 두 손가락 안에 드는 최고의 대장장이였다. 그가 만든 무기들이 바로 그 증거.

    ‘가방이방가’님이 ‘10,000원’을 후원!

    [와...저거 <커타나>아니냐?]

    한 시청자가 그중 한 검을 거론했다.

    그리고 그 도네이션은 진실의 서를 사용한 이후 줄곧 침묵하고 있던 김수혁의 입을 열었다.

    “커타나...자비의 검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하죠. 사람을 죽이지 않기 위해 그 검날의 끝을 만들지 않았다는. 망록시기 이전에 살았던 ‘롤랑’이라는 영웅이 사용했다고 전해졌는데.... 제1망록시기에 만들어졌을 줄이야...”

    김수혁은 단번에 자신이 가진 신화적 지식을 쏟아내었다.

    -오 병풍좌 진화해버렸자너;;

    -설명충좌...

    -ㅋㅋㅋㅋㅋㅋ빠삭하네

    -???: 발언시간 1분 드리겠습니다.

    “프랑스 같은 경우에는 왕의 대관식 때 아직 커타나를 따서 만든 검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영웅 ‘롤랑’을 기념하는 의미죠...이제 커타나가 제1망록시기에 만들어 진 것이 밝혀졌으니 조금 달라질지도 모르겠네요.”

    강서가 보여준 것을 수혁은 당연하게 기존의 신화보다 우선으로 여겼다.

    이미 강서를 완전히 신뢰하고 있었던 것이다..

    진실의 서로 돈을 좀 소비하기는 했지만 그건 ‘판다지아’의 수익으로 금방 채워질 것이었다. 게다가 그가 가져다주는 지식적 쾌감은 김수혁이 바라마지 않던 것.

    항상 새로운 지식에 목말라있던 김수혁에게 강서는 마치 사막에서 만난 샘물 같은 존재였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무한히 솟아나는 지식의 샘물같은 강서를 보고, 또 진실의 서를 통해 그가 하려는 일을 보고 조금씩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고, 자기 자신도 아직 완전히 자각하지 못했지만.

    그랬다.

    .

    .

    .

    .

    .

    .

    그렇기 때문에 김수혁은 강서의 말에 더 충격을 받았다. 그가 한 말이 거짓말일리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그거 아우헤타이로가 망치질 하다 재채기가 나와서 너무 강하게 때려 버려가지고 부러진 걸로 알고 있어요.”

    ‘커타나’님이 ‘10,000원’을 후원!

    [?]

    ‘병풍좌’님이 ‘50,000원’을 후원!

    [??]

    -ㅋㅋㅋㅋㅋㅋㅋㅋ재채깈ㅋㅋㅋ

    -ㅋㅋㅋㅋㅋㅋ자비의 검은 무슨

    -재채기의 검이자너;; 에취의 검

    -ㅋㅋㅋㅋㅋㅋ에취의 검ㅋㅋㅋㅋ

    -재채기 침투력 무엇ㅋㅋㅋㅋㅋㅋ

    수혁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새로운 지식으로 차올랐던 충만감과 신화에 대한 기대감이 강서의 한마디로 단번에 무너져 내렸기 때문.

    그리고 그런 절망감 서린 수혁의 표정을 보며 시청자들은 어딘가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어디선가. 어디선가 본 듯한...

    ‘몽둥이’님이 ‘10,000원’을 후원!

    [모르모르 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오늘 채팅 미쳤냐고;;

    -ㅋㅋㅋㅋㅋㅋㅋ 아 배아팤ㅋㅋㅋ

    -속보) 인간의 탈을 쓴 모르모르 발견 돼.

    -???: 모르모르, 대마법사로 환생하다!

    ‘123123’님이 ‘10,000원’을 후언!

    [이거 진실의 서로 확인 안 해봐도 돼요? 탑주님?]

    -이건 프랑스입장도 들어봐야 한다.

    -킹직히;; 이미 사실이든 아니든 의미 없을 듯zzz

    채팅방에는 난리가 났지만 강서의 표정은 덤덤했다.

    시청자들에게는 자비의 검이 에취의 검(?)으로 타락하는 과정이 배꼽을 잡을 정도로 웃겼지만, 강서에게 그 검은 처음부터 별거 없는 검이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인기가 많아서 여기저기 레플리카로 많이 팔려나가더라고요.”

    -ㅋㅋㅋㅋㅋ킹우헤타이로 갑자기 극호감

    -ㅋㅋㅋㅋㅋㅋㅋ재채기좌

    “...”

    김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진실의 서에 글씨를 휘날리려는 마음을 가까스로 참아내었다.

    채팅창에 한바탕 웃음바다가 펼쳐진 후, 강서는 그 외에도 시청자들이 거론하는 몇 가지 검을 보여주고 무기고를 나섰다.

    슬슬, 망치질을 시작할 때였기 때문.

    "오, 아저씨! 이제 시작하는 건가요?"

    하린이 그런 강서를 보고 말했다. 동시에 시청자들의 시선도 집중되었다.

    무기고의 훌륭한 걸작들 보다 강서가 최고의 역작이라고 한 '헤타이로'.

    그리고 그 헤타이로가 도대체 어떻게 생긴 것인지, 그리고 그 헤타이로를 만드는 과정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네. 이제 10시가 다 되었네요."

    강서는 가죽장갑에 양 손을 끼워넣으며 능숙하게 망치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화덕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후욱- 후욱-

    화덕 앞에 있는 상자모양의 '발풀무'를 밟아 불을 피워올렸다.

    한번 밟을 때 마다 불은 거세게 흔들리더니 점점 점점 그 크기가 커졌다.

    그그극-

    불이 적당히 타오르자 강서는 화덕 앞 작업대에 미리부터 놓여있던 사람머리만한 원기둥 형의 무언가를 끌어 당겨 자신의 앞에 놓았다.

    정사각형의 받침대 위에 넓적한 원기둥이 놓여있는 모양을 가진 그것은 아무런 장식도 없이 투박한 회색빛이었다. 용도를 알수없는 모양.

    그리고 강서는 그것을 내려다보며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게, <헤타이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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