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 ep8.아우헤타이로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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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헤타이로.
누구나 알고 있는 6글자였다. <누군가를 위한 비석>에 쓰여 있는 이름 중 하나였으니까.
동시에, 누구도 그 이름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다. 외모도, 성격도, 한 일도.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
강서는 한 던전 앞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 옆에는 늘 함께하던 하린도 없었다. 처음으로 혼자, 던전에 진입하려 하고 있었다.
강서 앞에 있는 던전은 F급 던전이었다. 가장 낮은 등급의 던전. 아니, 그건 던전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수준의 공간이었다.
어떤 몬스터도 존재하지 않는 좁은 동굴과 벽면에 쓰여 있는 알 수 없는 문자 몇 개. 그게 F급 던전의 전부였다. 하지만 왜인지 그런 아무것도 아닌 공간을 쳐다보는 강서의 얼굴은 조금은 아련했다.
이제는 강서의 상징이 되어버린 <판다가면>을 머리에 빗겨 쓰고 강서는 던전에 진입했다.
F급 던전은 아무것도 표기 되지 않았다. 던전분석기로도 상태창으로도 말이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아닌 던전. 강서는 그 의미없는 공간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벽면에 쓰여 있는 문자를 바라보았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문자였지만, 강서는 그 문자를 알고있었다.
벽면에 새겨진 문자를 나지막히 읊조렸다.
“걸작을 지으리라.”
아우헤타이로-
강서의 중얼거림과 함께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그동안 무슨 짓을 해도 아무 반응 없었던 F급 던전에서 시스템 데이터가 반응을 한 것.
[유흔 결계의 키워드가 일치합니다]
[‘유흔결계: 아우헤타이로’가 발동됩니다.]
[지구]
[롤플레잉: 대장장이]
[시대: 제1망록시기]
[수행: ‘헤타이로’의 완성과 신조 ‘가루다’의 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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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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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지’할 물건 세 가지를 선택해 주시기 바랍니다.]
익숙한 문장들과, 익숙한 빛 무리와 함께 강서의 시야가 점멸했다.
* * *
“여러분 안녕하세요! 하린입니다!!”
-??? 우리 킹 판다 어디감
-방송을 잘못 들어온 것 같네요. 여기 판다방송 아닌가요?
-맞는 것 같은데...
하린이 방송을 켜고 인사를 하자 시청자들이 평소처럼 판다를 먼저 찾았다.
판다를 찾는 시청자들의 댓글에 평소라면 조금 진부하긴 해도 풀이 죽은 리액션을 해야 할 타이밍이었지만, 하린은 왜인지 당당했다.
그리고 평소와 다른 것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근데 왜 실내임.
-하린 드디어 일상방송 시작?
하린이 방송을 켠 공간이 아무리 보아도 실내로 보인다는 것.
“맞습니다! 오늘 저는 던전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대신- 던전방송의 중계를 할 예정입니다!”
하린이 폭탄선언을 했다.
자신은 던전에 들어가지 않고 던전 밖에서 중계를 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렇다면 그 중계의 대상이 될 사람은 판다가 되는 게 당연한 노릇.
-ㅋㅋㅋㅋㅋㅋㅋㅋ날먹충 등판
-식은 죽을 빨대로 먹어버리네ㅋㅋㅋㅋㅋㅋㅋ
-청출어람 수준;; 바꿔서 굴려버리자넠ㅋㅋㅋㅋㅋ
-재주는 판다가 부리고 돈은 킹갓린이 받자너;;
-속담의 실제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거든요! 수익은 아마 공정하게 나눠질거에요. 비율같은 건 모르지만 그런 행정적인 처리는 다 마탑에서 알아서 해줄 거거든요.”
하린의 말에 시청자들이 '?'표시를 했다. 마탑으로부터의 스폰에 대해 들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와. 마탑 판다스폰설 진짠가 보네
-찌라시로만 흘리고 공식입장 안 밝히더니 방송 중에 폭탄선언 해버리자너;;
강서와 수혁간의 계약이 있고 <파충계열용 판다지아>가 정식으로 런칭된 후에도 마탑에서는 별다른 공식 발언을 하지 않았다.
파충계열용 판다지아가 어느 정도 자리 잡고 다른 판다지아를 동시 출시할 때 발표하기 위한 것이었다.
함께 터트려 시너지효과를 노리려했던 것이다. 시간이 좀지나고.
하지만 바로 오늘 모든 종류의 판다지아가 출시되었다. 예상보다 훨씬 빠른 출시였다.
판다지아가 예상보다 빠르게 출시된 원인은 바로 강서였다.
‘설마 10%를 하루에 거덜 내 버릴 줄이야...’
방송화면 밖에 서있는 김수혁은 아직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 같았다. 확실히 그건 전례없는 소비였다.
다행히(?) 10%를 소비하는 데에서 강서의 폭력적인 구매는 그쳤지만, 마탑의 기둥에 금이 갔다고 할 만한 소비였다.
수혁은 계약을 파기해야하나 고민을 했지만 강서가 엄청난 소비를 했다 해도 ‘판다지아’의 가능성을 계산해 보았을 때, 아직까지는 판다지아가 가져다 줄 게 더 많았다.
하지만 수혁은 몰랐다. 정말 이때라도 강서에게 가서 빌었어야 했음을.
소비력이라는 건 그런 숫자놀음으로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정말 추호도 몰랐다.
“그럼 소개하겠습니다! 오늘의 게스트 ‘한국의 마탑주 김수혁’님입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죠?”
하린은 방송화면을 살짝 우측으로 틀어 김수혁을 비추었다.
-?????
-아니 수혁좌가 방송을 나온다고?
-킹수혁과 갓승아의 총애를 받는다니....판다...당신은 대체...
-이ㅏ니;;무슨 방송이 볼 때 마다 경악이냐;; 소소한 꿀팁방송 맞음?
-킹킹한 갓갓방송임;; 최소 킹, 갓은 되어야 출현가능
김수혁의 방송출연은 가히 충격적이라 할 수 있었다.
김수혁은 기본적으로 유명인이었다. 한국단위에서도 세계단위에서도. 신승아와함께 희대의 천재로 불리며 사람들에 머리속에 각인되어있는 만큼,
김수혁의 성격도 유명했다.
그는 가장 싫어하는 두 가지를 뽑으라면 ‘쓸데없는 인간’과 ‘쓸데없는 일’을 말할 정도로, 낭비와 비효율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 경악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김수혁의 시선에서 방송이 효율적으로 생각되지는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방송을 하며 시청자들과 소통하는 것 보다는, 그 시간에 혼자 돈을 벌거나 마법 연구를 진행하는 쪽이 훨씬 더 김수혁에게 어울렸다.
“마탑주 김수혁입니다.”
김수혁은 고개를 살짝 숙여보였다.
‘착한가격’님이 ‘10000원’을 후원!
[맙소사...]
-???: 엄마 내 뺨 좀 때려줘. 이건 꿈이야.
-???: 대.
-상상도 못했자너...
-어쨌든 오늘도 개꿀인듯 ㅎㅎㅎ
확실히 시청자들의 생각처럼. 김수혁은 방송따위는 시간낭비라고 생각했다.
물론 모든 방송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도 길드나 마탑 수준에서의 공략영상은 유의미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시간으로 던전을 도는 모습을 찍으며 농담따먹기를 하는 방송은 수혁에게 그보다 더 비효율 적으로 보일 수 없었다. 그 시간에 몬스터 한 마리를 더 분석하고 잡는 것이 더 효율 적이리라.
김수혁은 그리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수혁이 이렇게 하린 방송에 게스트로 출연한 이유는 하나였다.
[...을은 갑이 원할 시에 상기한 인터넷방송에 출연해야할 의무를 가지며 을이 영위하던 생활을 현저하게 저해할 정도로 횟수가 증가할 시에 을은 갑에게 조정 요청을 할 수....]
강서와의 계약 조건에 방송출연이 기재되어 있었기 때문.
* * *
“저보고 방송을 출연해달라는 말씀이신가요?”
방송을 출연해 달라는 강서의 요청은, 계약당시 김수혁을 가장 당황하게 했던 것 중 하나였다.
“네. 부탁하고 싶은 역할이 있습니다.”
한 번도 직접 출연해보고 싶다거나 재미있겠다고 생각해본 적 없던 수혁이었다. 판다지아의 계약권이 달려있는 건이라 승낙을 하기는 했지만 그리 내키지 않는 것이 사실이었다.
강서는 수혁에게 방송출연을 부탁하며 조금은 이상한 것을 물었다. 바로 <누군가를 위한 비석>에 대한 건이었다.
“<누군가를 위한 비석>에 대해 아십니까?”
“그럼요. 마탑에서 세운 비석인데요.”
“혹시 이름 외에 다른 정보는 없을까요?”
강서는 비석에 기록된 이름 외에 추가적인 정보는 없는지 물었다. 하지만 수혁은 고개를 저었다. <망록시기>의 기록은 누가 제거했는지 정말 놀라울 정도로 깨끗하게 지워져 있었다.
간신히 그 이름들이라도 알아낼 수 있었던 것도 한 사람이 기적에 가까운 능력을 펼쳐서 가능했던 것이고, <이름을 알아낸 이>의 말에 의하면 그 이름들은 아마 당시에는 잊혀질 거라 상상도 못했을 정도로 위대한 업적을 세운 인물들이었을 것이라 했다.
그 말은 즉, 그 정도의 사람이 아니라면 이름을 찾아내지도 못했다는 것. 수많은 영웅들이 <망록시기>라는 시대의 이름으로 뭉뚱그려져 역사의 뒤안길로 내려앉았다는 이야기였다.
“아.”
그 때 고개를 젓던 수혁의 머릿속에 한 가지가 스쳐갔다.
“몇몇 사람들은 두세 개 정도 단어도 같이 남아있기는 한데...”
이름을 알아내며 일부는 단서라 할 만한 단어를 함께 밝혀내긴 했다. 하지만 그 단어들 간의 연관성이 너무 떨어졌기에 그 단어들만으로는 마탑에서 어떤 것도 추론할 수 없었다.
심지어는 알 수 없는 고유명사가 반절이 넘을 정도.
수혁은 그 것의 무의미함을 강서에게 잘 설명했지만, 강서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아주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게, 수혁님이 해주실 역할입니다.”
* * *
상념에 빠진 수혁을 깨운 것은 하린의 톤높은 목소리였다.
“지금! 신호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중계방송 설명은 여기까지 하고 이제 여러분이 사랑해 마지않는 판다님 영상으로 돌려보도록 할 텐데요. 저희도 딱히 설명을 듣지 못해서. 어떤 던전을 돌파하게 될지는 전혀 모르겠어요. 그렇죠 탑주님?”
“...”
‘탑주BB’님이 ‘1000원’을 후원!
[멍~]
-ㅋㅋㅋㅋㅋㅋ탑주좌 멍때리네
-처음하면 그럴 순 있지만...이거 병풍각 재어봐야 할 것 같은데?
-아니 이 새끼들 킹수혁을 모르네. 지금 22000개의 대답 중에 어떤 게 가장 효율적인지 고민 중이자너;;
-이거맞다ㅋㅋㅋ고민빌런ㅋㅋㅋㅋ
“그렇습니다.”
하린의 정신없는 멘트에 순간 대답타이밍을 놓친 수혁은 뒤늦게 대답을 하기는 했지만 역시 방송은 ‘타이밍’이 중요했다.
애매-한 질감의 분위기가 찰나지만 방송을 덮었다.
-ㅋㅋㅋㅋㅋㅋ이건 병풍이다.
-병풍좌 무엇;;
-???: 아이씨, 나 안해.
-ㅋㅋㅋㅋㅋㅋ 이만 이천 분의 일의 킹렇네요.
수혁의 방송 컨셉이 ‘허당’으로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하린은 프로답게 능숙한 멘트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옮겼다.
“아! 지금 넘어갔어요! 여러분, 판다님의 화면을 띄워드리겠습니다.”
하린이 화면을 바꾸자 화면의 질감이 확 바뀌었다.
익숙하지만 어색한 소리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깡! 깡!
치이익-
-?
-???이게 던전이라고?
-판다좌 얼굴공개???
-아니, 저거 킹다아재가 아니잖아. 체형이 너무 달라.
-ㅇㅇㅇ 그게 다가아니라 아무래도...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대장간의 소리였다. 야장질을 할 때에 나는 특유의 쇳소리와 물 끓는 소리가 오디오 가득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곳에는-
제1 망록시기에 살았던 전설적인 대장장이이자,
신화 속에 전해지는 수많은 아티팩트들을 제작한,
하프 드워프 ‘아우헤타이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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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다가면을 빗겨 쓴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