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 ep6.아그다드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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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의 검이 휘둘러지고,
하린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순간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넋이 나가있었다. 강서의 검격이 순간 주변의 모든 존재감을 앗아간 것이다.
하린은 그렇게 생각헀다.
“대체...이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검격. 군더더기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건 말 그대로 공간을 베어서 소멸시켜버리는 검격이었다.
나름대로 실력을 자부하던 하린의 검을, 비웃듯 튕겨낸 아그다드의 피부가 자로 대고 그은 것처럼 바로 잘려있었다.
하린이 이 정도 반응이었으니, 채팅방의 반응은 말할 것도 없었다.
‘제주초코’님이 ‘50,000원’을 후원!
[와....]
‘제주초코’님이 ‘50,000원’을 후원!
[이건 액수로 밖에 표현이 불가능하네요. 도대체 저 검격은... ]
‘선풍기’님이 ‘100,000원’을 후원!
[킹갓 THE 판다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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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사람이냐;;
-아니 킹갓린이 그 난리를 친 거를 한방에 베어버린다고?
-마탑에서 건드려보지 못한 건데 그냥 한 번에 썰어버리네
-속보) 중부지방에 판-다 주의보, 킹갓도 다수 예상 돼...
-판-다
-『판-다』
-진짜 미쳐 버린다;;
채팅방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아그다드를 단번에 썰어버린 강서의 검격에서 감탄을 삼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야 근데 스킬명 왜 안뜨냐.
-ㄹㅇ 그러게 저 정도 데미지면 고유스킬 아닐까?
-일해라 시데(대충 시스템 데이터라는 뜻)
고유스킬은 고유능력을 가진 자들이 성장을 하며 얻게 되는 개인고유의 스킬. 강서가 펼친 <오도아게르의 공간절삭>도 오도아게르의 고유스킬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의 관심이 강서의 스킬에 몰려있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강서의 시스템 데이터에 하나의 문장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문장과 함께 채팅방이 얼어버렸다.
[<스킬: 가로베기>를 사용합니다.]
믿을 수 없는 말이었기 때문.
‘아그다드의 동굴’에서 명장면이라고 할 만한 순간은 많았다. 강서가 판다지아를 처음 뿌린 순간, 하린이 검을 드는 순간, 41개의 미궁이 나타나는 순간 그리고 강서가 아그다드를 단번에 베어 넘기는 순간.
하지만, 훗날 큐튜브에 클립영상이 올라왔을 때 최고의 조회수를 기록한 장면은, 바로 이 장면이었다.
강서의 시스템 데이터에 <가로베기>를 사용한다는 문장이 나온 순간.
하린이 자기도 모르게 말을 뱉었다
“뭐야...”
-....?
-???
-아니
-고장났냐?
시청자들 모두가 자신의 눈을 의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가로베기>라는 스킬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검사클래스를 가진 자들이라면 누구나 가진 스킬이었으니까.
가로베기라는 스킬은 그 숙련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그냥 휘둘렀을 때 보다 보통 20%정도의 위력을 더하는 간단한 내용의 스킬이었다.
하지만 강서가 휘두른 것은 달랐다. 가까이서 본 하린이 가장 정확하게 그가 휘두른 검격이 가진 의미를 알 수 있었지만, 시청자들이라고 그 <격>의 차이를 모를 리가 없었다.
보여지는 것만 해도, 그가 휘두른 검이 단순히 ‘아그다드’를 처치했다는 면에서 대단한 게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음을 다 알 수 있었다.
‘king갓王 fanda’님이 ‘10000원’을 후원!
[???: 아아- 가로 베기라는 것은 본래 이런 것이다. 미천한 것들아.]
‘컵’님이 ‘10000원’을 후원!
[소드마스터: 오늘 처음으로 <가로베기>를 배웠습니다...]
‘방랑자B’님이 ‘30000원’을 후원!
[ㅋㅋㅋㅋ제 친구도 검산데 지금 오열중이네요. 이건 격의 차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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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이시여... 저는 천한 것입니다...
-그는 지상의 신이야...
-신: 아님니다. 제가 천계의 판다입니다.
-ㅋㅋㅋㅋㅋㅋ대 판-다
-킹갓 판-다
-이것이 판다의 《가로 베기》...
-아그다드를 그냥 썰어버렸네 진짜 개 쩐다 판다
-정보) 가로베기는 검사 기본스킬이다
-정보2) 저건 정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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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팅방의 상태는 뭐라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그나마 가장 가까운 단어를 뽑자면 ‘격렬’이리라. 그마만큼 반응은 엄청났다.
안 그래도 최고 시청자 수를 찍고 있는 하린 방송에서 사람들이 환호할만한 모든 조건을 갖춘 명장면이 나왔다.
하린은 잠깐이나마 그의 검격이 할아버지의 것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저 정도는 아니었지’
비교불가능이었다. 강서는 말 그대로 공간을 썰어버렸으니까.
[보스: 아그다드를 처치했습니다.]
[던전: 아그다드의 동굴을 클리어합니다. 귀환 시 보상과 함께 ‘던전:아그다드의 동굴’이 영구 소멸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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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 항마석, 중급 마나석 3개]
[항마석: 항마괴수의 몸 안에 있던 사리입니다. 항마의 기운이 깃들어 있습니다.]
‘마으스’님이 ‘30000원’을 후원!
[킹다곰 갓재... 어떻게 베면 가로베기가 그렇게 돼요???]
-안 돼요.
ㄴㅋㅋㅋㅋㅋㅋ씹단호ㅋㅋㅋ
ㄴㅋㅋㅋㅋㅋㅋㅋㅋ질문베기 수준;;
-거 무슨 대답할지 알면서 물어보는 거자너;;
-간만연;;
-???: 간단합니다.
강서는 하린이 떨어뜨린 검집을 줍고 시청자들이 머릿속에 떠올린 그 대답을 했다.
“많이 연습하면 됩니다.”
-ㅗㅜㅑ
-여러분 연습하면 원래 신도 될 수 있어요. 노오오오력이 부족해서 그렇지
기만이니 어쩌니 해도, 강서에게는 그것이 진실이었으니까.
이 한 번의 베어냄이 얼마나 절실하고 처절한 것이었는지는 오직 강서만 알 수 있었다. 평소라면 굳이 하지 않았겠지만 강서는 오도아게르를 떠올리며 조금 더 말을 이었다.
“한 번을 베어내서 안되면 두 번을, 두 번으로 안 되면 세 번을, 그러다가- 몇 번을 베어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숫자가 아득해지면, ...”
11번. 오도아게르가 공간절삭이라는 고유스킬을 얻기까지 걸린 회귀의 숫자였다.
강서는 그 시간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말단 용병으로 시작하여, 용병들의 나라를 건국하기 까지 걸렸던 수많은 사건과 사고들.
“그리고 그 아득함이 익숙해지면 언젠가 여러분들도 가능할 겁니다.”
‘마으스’님이 ‘30000원’을 후원!
[아 예! 잘 알아들었습니다. 너넨 안 된다는 거죠?]
-???: 응 불가능해~
-기만on
-에둘러 말하기 무엇...이것이 판다의 《배려》인가...
“아저씨 저 좀 일으켜주세요.”
하린은 가슴에 욱신거리는 통증을 느끼며 강서를 불렀다. 갈비뼈가 나가 혼자서 일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강서가 부축을 해주자 하린은 일어나면서 조용히 말했다.
“검은 진짜 조심해서 써야겠네요... 같은 던전에서 두 번은 도저히 무리 같....”
축적된 데미지 때문인지, 긴장이 풀려서인지 정신을 잃으며 그 말이 끝까지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 * *
제목: 야 지금 킹다곰 갓재가 아그다드의 동굴 클리어 한 거 봄?
글쓴이: 킹갓제네럴마제스
오져버렸다 ㄹㅇ.... 스걱하는데 내가 다 소름끼쳤음 가로베기 수준ㅋㅋㅋㅋㅋ
-ㄹㅇ 우리 킹갓이 스걱하는데 나도 모르게 도네이션 쓰다가 우리집 돈줄도 잘려나갔다;;
ㄴㅋㅋㅋㅋㅋㅋ미친 현웃ㅋㅋㅋㅋㅋ
ㄴ어머니 오열한닼ㅋㅋㅋㅋㅋㅋ
-아니 근데 진짜 격이 다른 검격임. 그게 어떻게 가로베기야.
-ㅇㅇㅇ 킹갓베기 정도만 됐어도 그냥 넘어가겠는데 가로베기는...
하린 방송의 채팅속 뜨거움은 그곳에서만 머무르지 않았다.
이제 트프리치tv의 게시판은 완전히 ‘판-다’가 장악을 하고 있었다. 최신 게시물의 절반을 훌쩍 넘는 수가 제목에 ‘판다’라는 단어를 달고 있었다.
단연 가장 화두가 되는 주제는 <판다의 가로베기>였다. 방송을 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저 ‘그게 뭐?’라고 이야기 했지만, 큐튜브에 올라온 클립영상을 본 뒤에는 다들 판다를 외쳤다.
게다가 몇몇 던전방송을 하는 방송인들은 이 주제 자체를 방송거리로 삼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김진호입니다!”
5티어 헌터 김진호는 높은 티어와 준수한 실력으로 일정량의 시청자수를 유지하는 던전방송인이었다. 검사 출신인 그는 미리 공지를 하나 올렸다.
-진하!
-찐호 ㅎㅇ
-두근두근
“오늘은 미리 공지 올려드렸던 것처럼 가로베기에 대해 이야기를 좀 드리려 하는데요.”
판다의 영상을 보자마자 기회임을 느끼고 바로 공지를 올린 것. 바로 ‘가로베기’에 대해 다루는 방송을 하겠다는 공지였다.
그의 예상대로 그 게시글은 사람들을 모았고, 평소보다 두배 이상의 시청자들이 김진호의 방송을 보고 있었다.
“이게 사실 저도 영상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가장 자주 사용하는 스킬 중에 하나가 바로 가로베기인데요...이게 참...”
‘이어프혼’님이 ‘1000원’을 후원!
[아닌데요]
-ㅋㅋㅋㅋㅋㅋㅋㅋ이거 맞다
-ㅋㅋㅋㅋ나도 판다영상 보고왔는데 진호 방송에서 가로베기 본적 없는데?
-ㅇㅇ한 번도 뵌 적이 없다 그분은...
“일단 거두절미하고 한 번 보여드리겠습니다.”
김진호는 방송을 위한 장소로 필드던전에 들어와 있었다.
선택한 던전은 ‘블루리버’ 6~7티어 헌터가 주로 진입하는 D-급 필드형 던전이었다. 단신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 더 수준 낮은 던전을 택한 것.
김진호는 블루리버에 서식하는 몬스터 중 ‘앙투’를 골랐다. 나무의 몸체를 하고 있는 생목계열 몬스터. 특별한 특징없이 외관 그대로의 몬스터였다. 긴 줄기를 이용한 공격이 ‘앙투’의 특징이었다.
김진호는 빼어든 검을 이용해 앙투에게 ‘가로베기’를 사용했다.
서걱-
그 깔끔한 일격에 앙투가 반으로 잘려나갔다. 단번에 앙투를 썰어낸 것.
하지만, 시청자의 반응은 탐탁지 않았다.
-....?
-이게 뭐라고요 진호씨?
-뭐. 가로베기?
“아하하하...제가 이럴까봐 참 걱정을 많이 했는데요. 놀랍게도 저는 5티어 중에 손에 꼽는 가로베기 숙련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강력한 한방 보다는 안정적으로 몸을 굴리는 스타일이라서 가로베기 같은 쿨타임 짧은 스킬을 선호했거든요.”
-그렇다면...판다...당신은 대체...
-판다님이 말씀하시되...노력하라...
-아아- 킹-갓을 여기서 깨닫고 갑니다. 판-멘
“가로베기를 오래 숙련해도 별로 다른 건 없습니다. 저같은 경우는 데미지가 120%증가합니다. 그냥 휘두르는 것보다 두 배 이상의 데미지를 주는데요...그분은 좀 뭔가 격이 다르더라고요.”
-고럼, 우리 갓-판다님께서는 격이 다르지
-소소하지.
“그리고 고유스킬 보다는...성흔 쪽에 가까운 것 같아요 저도 실제로 본적은 몇 번 없지만 그쪽이 느낌이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ㅇㅇㅇㅇ이거맞다 나만 느낀거 아니네
-ㅇㅈ 확실히 약간 격이 다르다는 느낌이 성흔에 가까움
-와 그럼 판다좌 최소 3티어 라는 거?
-문제는 《가로베기》라는 성흔은 없다는 거지...
성흔. 지상에 임한 신전이 하프라인을 만드는 것 외에 선사한 또 하나의 선물. 모두가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신전에서는 일정한 수준, 즉 3티어에 이른 헌터에게 기회를 주고 신전의 시험을 통과한 자에게 성흔이라는 특수스킬을 허락했다. 그 스킬은 신전의 힘을 담고 있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스킬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강서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