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 ep6.아그다드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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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에엑!
강서가 하린에게 던진 것은 ‘판다지아’였다. 챙겨온 판다지아가 한 병이 아니었던 것이다.
던진 판다지아 병은 터져나가며 하린의 주변에 흩뿌려졌고, 아바무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ㅋㅋㅋㅋㅋㅋㄹㅇ악마 한 병이 더있었다니
-사탄 좀 보고 배워라;;
-???: 교수님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 거죠? 최소한의 선은...
아바무들이 거리를 벌리며 도망갔고, 강서는 천천히 걸어 하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하린이 사용했던 검을 주워들었다.
‘오도아게르.’
하린은 그 시절을 떠오르게 했다. 트라우마로 검을 사용하지 못했던 것도, 그리고 그 검이 지향하는 방향성도 하린은 오도아게르를 닮아있었다.
물론, 오도아게르의 생을 마감할 때의 검격과는 비교도 불가능 하겠지만, 풍기는 냄새가 정확히 같았다.
최적의 검로, 최상의 효율. 그건 오도아게르의 것이었다.
사실 그래서 강서도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마음이 쓰였다.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일들을...
강서는 하린의 검을 들고 하린이 베어 넘긴 아바무 중 한 마리를 잡아 꼬리를 잘라내었다.
그리고 이제는 익숙하게 멘트를 하며 방송을 이어갔다.
“아바무의 꼬리는 굉장히 좋은 재료입니다.”
* * *
[체력회복량이 15분간 소량 상승됩니다]
[체력의 일부가 즉시 회복됩니다]
두 개의 알림음과 함께 하린이 눈을 떴다.
오감이 천천히 돌아오고 있었으나 아직 다 돌아오지 않아서인지, 뭔가 웅얼웅얼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그렇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열심히 하시면 누구나 다...”
-아...그렇군요...
-여러분 <이 사람은> 지금 요리로 길드에서 판매하는 포션보다 높은 효과를 만들고 <누구나 다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굳건우유’님이 1000원을 후원!
[사실 판다가 정상인거고 우리가 다 힘을 숨기고 있는 거 잖;;]
-이거 맞다. 사실 내가 저 정도는 다 하는데...ㅅㅂ
-그러냐?ㄱㄷ 엄마한테 물어보고 옴
-ㅋㅋㅋㅋㅋㅋ채팅 미쳤ㅋㅋㅋㅋ
“일어나셨네요.”
강서는 하린이 일어난 기척을 느끼고 말을 건넸다.
“네...혹시 다음 던전 진행은...?”
“아직 유예시간이에요. 기절한지 20분도 안 지나셨어요.”
[03:22]
유예시간은 퀘스트와 퀘스트 사이간격에 놓여 있는 시간적 텀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15분이 모두 지나 첫 번째 퀘스트가 종료되고 아바무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하린이 기절해 있는 동안 다 지나가 버린 것이다.
하린은 생각보다 자신의 몸이 멀쩡한 것을 느꼈다. 정신적인 데미지는 강력했으나 신체적인 데미지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던 것이다.
하린은 잠시 눈을 감고 명상을 했다.
‘나 부터가 쳐지면 안 되지.’
이왕이면 즐겁게. 하린이 맨 처음 방송을 시작하면서 했던 다짐이었다.
결과적으로 트라우마를 이겨내고자 가상현실게임을 시작했고, 혼자보다는 낫겠다 싶어 시작한 방송이었지만 그거 하나만큼은 지키고 싶었다.
이왕이면 즐겁게. 이왕이면 즐겁게.
하린은 속으로 그 말을 되뇌였다.
‘제주초코’님이 ‘1000원’을 후원!
[하린 ㄱㅊ?]
마침 하린의 안부를 물어오는 채팅이 있었다.
하린은 생각했다. 굳이 숨길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트라우마가 있었지만.
숨겨야 될 것 같아서 숨겼지만, 정면으로 부딪혀보고 드는 생각은 그럴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네! 괜찮습니다아 사실 좀 트라우마가 있어서요. 몬스터와 검으로 싸우는 게 너무 힘드러요”
‘제주초코’님이 ‘1000원’을 후원!
[괜찮! 아바무랑은 더 싸울 일 없을 것 같은 데? 판다아재 판다지아 더 있어.]
“....?”
그 채팅을 보고 하린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강서를 처다 보았다. 시청자들은 알고 있었지만 하린은 강서에게 판다지아가 더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아, 이거 비밀! ㅎㅎ
-ㅋㅋㅋㅋㅋㅋㅋ야 임마ㅋㅋㅋㅋ
-비밀 ㅇㅈㄹㅋㅋㅋㅋㅋㅋ
-천기누설빌런ㅋㅋㅋㅋㅋㅋ
하린이 계속해서 강서를 처다보자 강서가 특유의 탄성을 내뱉었다.
“아”
그리고 나서 품을 뒤지더니 주섬주섬 판다지아 한병을 꺼내어 하린에게 내밀었다.
-심지어 또 있어ㅋㅋㅋㅋㅋ
-아 미치겠닼ㅋㅋㅋㅋㅋ
-주섬주섬ㅋㅋㅋㅋㅋ몇 개 더나올 듯
하린은 강서를 노려보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피식- 웃음을 지었다.
즐거우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이 사람들과 함께라면 즐거울 수 있겠구나. 하린은 그런 생각을 했다.
[유예시간이 종료됩니다.]
유예시간이 모두 지나자 알림음이 뜨면서 동굴 공동 전체에서 지진이 난 듯 진동이 울렸다
구구궁!
그러면서 돌들이 마치 퍼즐같이 움직여 수십 개의 문이 공동 테두리에 나타났다.
-여기가 그 구간인가.
-마탑도 애를 먹은 마의 구간;;마마구...
ㄴ별걸 다 줄이네 ㄹㅇ;;별다줄;;
*
두 번째 퀘스트. 미궁
내용: 아바무의 파도에서 살아남은 당신 앞에 수많은 길이 펼쳐져 있습니다. 어느 길이든 보스룸으로 도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에 무엇이 있을지, 도착하는 데 얼마나 걸릴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보상: 연계 퀘스트 획득, 하급 마나석 2개
보스룸까지 도착하는 41개의 미궁이었다. 한번 문으로 들어가면 다시 나올 수 없었고 그길로 쭉 가야하는데 그 사이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구간이었다.
레이드를 시도할 때마다 문들의 위치가 바뀌었고, 밖에서는 안쪽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때문에 마탑에서도 적당히 인원을 분배하여 운이 좋으면 통과하고 운이 나쁘면 포기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던 구간이었다.
하린도 그래서 공략영상을 보며 이 구간이 가장 답이 없다고 생각했다.
운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맡길 곳이 하나 더 있었다.
하린은 자신감 있는 목소리와 태도로 시청자들 앞에서 힘을주며 말했다.
“훗 여러분 이 미궁을 풀 수 있는 열쇠가 저에게 있습니다.”
‘융키’님의 ‘1000원’후원!
[에이 ㄹㅇ이면 도네 쏜다. 마탑도 못 풀었는데 그 공략영상보고 열쇠를 찾았다고?]
-진짜임?
-이 미궁에 답이 있었나. 맨날 바뀌던데
“그건 바로-”
“...?”
강서였다. 하린은 강서를 앞으로 떠밀며 말을 이었다. 하린이 말한 열쇠란 바로 강서를 말한 것.
“판다아재입니다. 어떻게든 해주겠죠.”
아바무를 베어넘기면서 하린은 자신의 의견을 포기하기로 했다.
적어도 당분간은, 적어도 던전 안에서 만큼은 그저 강서를 믿고 따라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ㅇㅈ도네쏴라
-2222무조건 인정이지;;
-하린이 드디어 진리를 깨달았다;;
-만능열쇠행ㅋㅋㅋㅋ
강서는 빙둘러 세워져있는 41개의 문을 한 번 둘러보았다.
익숙했다.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느낌이 있었지만, 강서는 이 41개의 문들을 보고 확신했다. 이 던전은 사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물론 직감적으로 실제로 경험했던 그 공간과 정확힌 동일한 것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지만, 적어도 모양과 형태, 그리고 원리는 동일했다.
강서는 이 공간을 알고 있었다.
본래라면 41개의 문에 엄격한 제약을 걸어둔 공간. 강서는 문들 중 하나에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았다.
“방법이 있나요?”
-근데 여기는 마탑에서도 못 찾았잖아.
-추적마법도 안된다던데, 탐색꾼들 다 죽 쒔잖아.
사실이 그랬다. 마탑에서 추적마법도 사용했지만 왜인지 하나도 들어 먹히지 않았고, 고 티어의 탑색꾼이 스킬을 사용해도 똑같았다.
그래서 원래라면 강서도 방법이 없었어야 했다.
어디까지나 원래였다면 말이다. 강서는 41개의 문 앞에 3초 씩 서서 동굴 앞에서 냄새를 맡고, 벽면의 흙을 찍어 먹어보았다.
‘룬 마법이 아니다.’
고대 마법의 정수 ‘룬 문자’를 사용한 마법이 아니었다. 본래라면 오감을 차단하는 완벽한 차단마법이 문마다 걸려 있어야 했지만-
“찾았네요. 아그다드.”
후각과 미각. 두 가지가 차단되지 않았다.
그리고 강서는 아그다드의 냄새와 아그다드가 갇혀있던 궁의 습하고 비릿한 흙맛을 기억하고 있었다.
* * *
아그다드. 강서에게 익숙한 이름이었다. 그의 손으로 직접 죽인 항마(降魔)괴수 중 하나였으니까.
파이베브스 시절, 그의 지고한 경지를 시기한 자들이 자신들의 마법실력과 지식을 쌓겠다고 몬스터를 데려다가 실험체로 사용한 적이 있었다.
마법실험 자체가 엄청난 데미지를 동반했고, 웬만한 몬스터들은 몇 번 버티지 못하고 죽어나갔다. 거기까지는 강서도 별 생각이 없었다.
몬스터들에게 그렇게 한다고 문제를 삼을 수도 없을뿐더러 그들이 실험을 하는 이유가 <파이베브스>의 마법실력이었는데 하지 말라고 말한다고 들을 리도 없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몬스터로 만족하지 못한 그들은 힘을 합해 <고대룡 마우레니아>의 가디언을 포획해 실험체로 삼았다.
물론 강력한 가디언은 아니었고 하급의 가디언들 이었지만, 마우레니아로부터 몬스터를 지휘할 권한을 얻은 가디언이라면 뭔가 다를 거라는 생각에서 발로한 것이었다.
결과는 그들이 예상하는 대로였다.
얼마든지 마법실험을 해대어도 가디언들은 고통만 느낄 뿐 회복을 시키면 다시 마법실험을 할 수 있었다. 계속 쓸 수 있는 실험체가 생긴 것이다.
아그다드도, 그 가디언 중 하나였다.
* * *
“보스룸, 도착했네요.”
“와...”
[유예시간 19:59]
-이게 던전이냐;;
-야 말이 되냐;; 인생 불공평
-않이;;
강서가 고른 곳은 41개 문 중 단 하나, 아무 것도 중간에 나오지 않는 정답인 문이었다. 마탑이 공략할 당시에도 정답인 문이 있기는 했으나 사람들은 설마설마했다.
하지만 강서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 정답을 골라버렸다.
‘이리이리’님이 ‘1000’원을 후원!
[이젠 그냥 인정하자. 판다는 인간보다 뛰어난 생물이다 그냥 힘을 숨긴 것 뿐임;;]
-ㅋㅋㅋㅋㅋ한 사람으로 서열정리 되버렸자너;;
-아니지 판다아재한테 ‘판다’를 고유명사로 줘야됨. 그 곰팅이들을 흑백곰 뭐 이렇게 부르던
-ㅋㅋㅋㅋㅋㅋ흑백곰ㅋㅋㅋㅋ
-바둑곰ㅇㅈㅋㅋㅋㅋㅋ
“20분 정도 시간이 남았는데...뭐할까요?”
하린이 검을 만지작 거리며 그렇게 말했다.
강서는 보스룸을 잠시 응시하더니-
뒤로 돌아 하린을 보며 말했다.
“아그다드 이야기 좀 들어보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