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소소한 꿀팁방송-26화 (26/191)
  • 26화. < ep6.아그다드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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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지금 3분이면 지금 약효 떨어지고 아바무들이 다 일어난다는 거?

    -ㅗㅜㅑ...저 많은게?

    하린은 강서가 나지막히 한 이야기를 시청자들에게 설명했다. 물론 설명이라기엔 조금 다급하고 정신없는 주절거림 이었지만.

    꽝-!

    “아저씨!! 진짜 아무것도 안할 거에요? 지금 조금이라도 줄여놔야...”

    하린이 에너지볼트를 터트리며 강서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하린에게 10분이면 액체, 판다지아의 효능이 다한다는 것을 알려준 것은 분명 강서였다. 하지만 그 말을 하고나서 강서는 제자리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뭔가를 꾸미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다른 팁을 보여줄 기미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07:44]

    쾅-!

    채 3분이 남지 않은 시간. 하린은 점점 다급해졌다.

    아바무의 양은 확실히 이상할 정도로 많았다. 그리고 에너지 볼트로 몇 마리를 잡으면서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이건 마탑에서 레이드를 시도했을 때 나왔던 아바무들과 하등 차이가 없었다.

    수가 같아 능력에 밸런스 조절이 있는 줄 알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 말은 즉, 마탑 한국지부에서 수십 명이 스쿼드를 이루어 레이드했을 때와 똑같은 수준의 던전이 형성되었다는 것.

    몰론 마탑에서는 이 첫 번째 퀘스트를 15분 버티는데도 모자라 다 잡아버리긴 했었다. 그렇지만 그건 상위티어 헌터가 섞인 마탑 수준에서나 쉬운 일이었다.

    하린에게는 지금 당장 이것들이 움직이는 것만 상상해도 숨이 막혀왔다.

    지금이야 강서가 뿌린 ‘판다지아’로 아바무들이 널브러져 있었지만, 액체의 효능이 다했을 때 족히 수백은 되는 아바무 떼 사이에서 버티는 것은 하린이 보기에 불가능 해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저씨 뭘 보여주려고 그러는지는 모르겠는데...말이라도 좀 해주고...”

    “...”

    “아 아저씨...”

    ‘아저씨...진짜로 움직일 생각이 없어.’

    하린이 에너지볼트를 한 번 더 쏘아내고 고개를 가로젓는 강서의 눈을 보며 생각했다.

    뭐라 단서를 이야기할 수는 없었지만 강서의 눈에서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액체의 효능이 다하더라도 강서는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시청자들은 어차피 마지막에는 강서가 나서 몬스터들을 어떻게든 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하린은 그렇지 않을 것을 느꼈다.

    당연한 수순으로, 하린만이 가슴에 다급함을 가지고 있었다.

    [06:59]

    남은 시간이 2분의 선을 넘겼을 때,

    시청자들의 시선이 강서에게 집중되었다. 8분가량 미동도 하지 않던 강서가 일어난 것.

    -오. 보여주나.

    -???:오늘의 꿀팁몬은 뭘까~용?!

    자리에서 일어난 강서는 하린에게 천천히 다가가며 한 마디를 뱉었다.

    “하린님은 할 수 있어요.”

    “...?”

    하린은 강서의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에너지볼트를 저장한 메모라이즈 페이퍼도 다 사용헀고 본신의 마력도 거의 바닥이 나고 있었다.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

    강서는 하린의 바로 한발 앞까지 다가와, 하린이 오른 팔에 차고 있는 휴대용 포켓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똑-소리를 내어 연 다음, 그 안에 하나 남아있는 종이를 꺼냈다.

    강서가 꺼내든 종이를 본 하린은 동공이 흔들렸다.

    “...!”

    메모라이즈 페이퍼와는 조금 다른 종이였다. 기록된 술식이 훨씬 복잡했고, 메모라이즈 페이퍼와 비교했을 때 약간 푸른 빛깔이 도는 종이였다.

    “그건...아저씨 설마 '할 수 있다'고 말한 게...”

    [06:35]

    하린은 설마 하면서 강서를 바라보았다. 강서의 눈은 전혀 변화가 없었다.

    전혀 퀘스트에 관여할 생각이 없는 눈빛.

    강서가 하린의 포켓에서 꺼낸 종이는 단발성 아공간 페이퍼였다.

    단발성이라도 아공간 페이퍼는 굉장히 고가의 물건이었다. 족히 집 한 채를 뛰어넘는 물건. 게다가 그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너무 적어 돈이 있더라도 구하기 어려운 물건이었다.

    [06:14]

    ‘판다지아’의 약효가 다 되어 가는지 주변의 아바무들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린의 동공은 진정을 하지 못하고 계속 흔들리고 있었다. 완전한 패닉.

    강서가 말한 ‘할 수 있다’의 의미는 이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렇게 말로 뱉는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었다, 불가능했다. 하린이 느끼기에는 그랬다.

    [05:24]

    강서가 아공간 페이퍼를 찢었다.

    종이에서 푸른빛이 터져 나오며 하린이 아공간에 넣어두었던 것이 강서의 손에 놓여졌지만, 시청자들의 눈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보이지 않았다.

    하린과 강서가 너무 가까이 붙어있어 화면이 가린 것이다.

    그래서 당연히 아공간 페이퍼를 강서의 것으로 알았다. [아공간 페이퍼를 활성화합니다.]라는 문구도 강서의 시스템 데이터에 떴으니 말이다.

    -와 킹판다 돈도 많음 킹공간 페이퍼;;

    -정보) 다 니들이 쓴 돈이다

    -정보2) 오늘도 쓸 듯 헤헤

    -ㅋㅋㅋㅋㅋㅋ저축은 못해요 소비는 잘해요

    -저못소잘 ㅁㅊㅋㅋㅋㅋㅋ

    패닉에 빠진 하린이 고개를 저으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서자, 시청자들의 시야에 강서의 모습이 드러났다.

    ‘마우스’님이 ‘1000원’을 후원!

    [?? 저거 설마 검이냐?]

    강서가 투박한 검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자 시청자들의 기대감을 방증하듯 채팅이 올라가는 속도가 늘어났다.

    강서가 검으로 뭔가를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한 것.

    하지만- 강서는 시청자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을 했다.

    검을 양손으로 들고 그대로 하린에게 내민 것이다.

    -?

    .

    .

    .

    -이거 지금 하린한테 검을 쓰라는 거임?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극한의 굴리깈ㅋㅋ

    -???: 예? 저는 마법산데요?

    -???: 마력이 떨어졌으면 몸이라도 굴려야지.

    마법사에게 검을 주며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강서의 모습이 시청자들로부터 웃음을 자아냈지만,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갔다.

    ‘바스꾸티’님이 ‘1000원’을 후원!

    [근데 모르지 않냐. 하린도 한 때 킹갓린이었는데.]

    그 도네이션이 시작이었다. 채팅방의 댓글이 두 가지로 나뉘는 양상을 보였다.

    -않이;; 시키들아 게임이랑 현실은 구분해야지 마법사잖아

    -괜히 마법사 한건 아니자너;;

    -모르지 그래도 그 정도 실력인데 설마 현실에서 제로일까

    -하린이 힘을 숨김;;

    -하린이 힘을 왜 숨김 븅시나

    한쪽은 하린이 현실에서도 검을 사용할 수는 있을 것이라는 주장, 한쪽은 가능할 리가 없다는 주장.

    채팅방에 <하린논란>이 일어났다.

    하린이 본래 가상현실게임방송 1위를 하던 시절, 하린은 <넘사벽>소리를 들을 정도로 뛰어난 검술 실력을 가진 플레이어였다. 전에 없던 천재라며 칭찬을 받았었다.

    그렇게 하린은 그 전투센스와 감각에서 극찬을 받으며 방송계에서 1위를 하다가 돌연 던전방송으로 넘어갔다.

    많은 시청자들이 게임방송을 접게 된 이유와 검을 쓰지 않는 이유를 물었지만 하린은 그에 관한 이슈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시청자들이 떨어져나가며 이슈가 흐지부지 되었다.

    결국 누구도 하린이 실제에서 검을 사용할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05:45]

    채팅방의 이슈와는 상관없이 강서는 하린에게 내민 검을 그대로 들고 있었다.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긴 했다. 하지만 하린은 그것이 오늘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오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벼랑 끝에 몰린 기분이었다. 마력은 모두 떨어졌고 강서가 뿌린 ‘판다지아’의 약효도 거의 사라져있었다.

    당연한 수순이지만, 강서와 하린을 중심으로 수많은 아바무들이 말 그대로 둘러 쌓여있었다.

    마치 ‘판다지아’의 냄새가 모두 사라지기만을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다.

    “아저씨 저는...”

    하린은 말꼬리를 끌면서 강서를 바라보았다.

    “할 수 있습니다. 하지 않으면-”

    “...”

    “할 수 없습니다.”

    궤변이다.

    라고 생각했다. 하린이 생각하기에 그것은 그 정도로 당연한 이야기였다.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같은 당연한 소리를 누가 못하겠는가.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것이 그렇게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하린은 강서의 말에 마음이 쿡쿡 찔리는 것 같았다.

    [05:35]

    하린은 강서가 내민 검을 바라보았다. 더없이 익숙한 검이었다.

    비상시를 위해 아공간 페이퍼에 넣어 들고 다니던 아버지의 유품.

    아티팩트 같은 특별한 기능이 있는 검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단단한 검이었다.

    [05:34]

    하린은 강서의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판다가면에 모두 가려져 있었지만 작은 구멍을 통해 눈만은 볼 수 있었다.

    “후우...”

    [05:29]

    하린은 강서가 내민 검 위에 손을 얹었다.

    -오 ㄹㅇ 하힘숨?

    -대-마검사 하린?

    -대마검사는 너무 가지 않았냐?ㅋㅋㅋㅋ

    -보여주나?

    -ㅂㅇㅈㄴ?

    ‘바스꾸티’님이 ‘1000원’을 후원!

    [혹시 이게 킹갓린의 재림이면 치킨 두 마리 쏩니다. ㄹㅇ루다가.]

    ‘방카’님이 ‘1000원’을 후원!

    [이걸 뽕린이?]

    [05:22]

    하린은 눈을 질끈 감았다. 손이 덜덜 떨렸다.

    많이 나아졌지만 역시 아직은 불가능했다.

    가상현실 게임을 통해 검을 드는 것에 익숙해지고, 마법을 통해 몬스터를 잡는 것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검을 들고 몬스터를 잡으려하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몬스터에게 죽은 그 장면이 계속 머릿속을 스쳐갔다.

    ‘사실 지금도 아직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아마 아바무 한 마리를 베어낼 때마다 그 기억이 머리를 파고들 것이었다. 두 마리를 베어내면 더 파고들 것이고 백마리를 베어낼 때 즈음엔 아마 온 머릿속을 잠식해 버릴지도 몰랐다.

    하린은 검을 꽉 쥐었다.

    자꾸 그 말이 머리를 맴돌았다.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

    하린이 나지막히 읊조리자 강서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05:12]

    하린은 괜히 강서에게 심술을 부렸다. 그가 자신을 위해서 이렇게 하는 것임을 알았지만 긴장을 털어내기 위한 어리광같은 것이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정신을 잃고 쓰러질 것 같았으니까.

    “아저씨 진짜 악마같은 거 알아요?”

    “그런가요.”

    무덤덤하게 대답하는 강서의 대답을 들으며 하린은 검을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검집에서 검을 뽑았다.

    스릉-

    “어떻게 알았는지도 모르겠고, 왜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시는지는 모르겠지만”

    .

    .

    .

    .

    .

    .

    .

    .

    [05:00]

    고마워요-

    그 말과 함께 하린은 수백 마리의 아바무를 향해 몸을 돌렸다.

    키에에엑!

    끼엑!

    강서의 말대로 아바무들은 훨씬 더 날뛰고 있었다. 판다지아의 부작용이었다. 약효가 끝나자 반대급부로 그들의 교감신경계가 더욱 자극을 받은 것이다.

    그들의 능력이 강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뿜는 기세와 적극성이 달라졌다.

    하린의 몸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눈동자의 흔들림은 없었다.

    지금도 머릿속에 트라우마가 생생했다. 떨리는 손은 당장이라도 검을 놓칠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린은 검을 한번 크게 휘둘렀다. 속으로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는 말을 계속 해서 되뇌이며.

    서걱-

    가장 선두에서 하린을 향해 달려오던 아바무의 몸이 하린의  휘두름에 두 동강이 났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한 검격이었다.

    마치 뼈가 있기나 하냐는 듯 하린의 검은 가볍게 아바무를 베어냈다.

    -....진짜라고?

    -이걸?

    -와

    -개쩐다. 킹갓린이었다고?

    -하린 힘숨설이 팩트였다니...

    -전 겜방 1위의 무쌍.avi

    하린의 검격과 함께 반신반의 하던 사람들이 환호성을 터트렸다.

    일부는 하린의 의외성에 놀랐고 일부는 여전히 판다를 찬양했다.

    -힘숨설이 아니다;; 이건 판-다의 극한의 『굴림』일 뿐이다.

    -ㅋㅋㅋㅋㅋㅋ윗댓 ㅁㅊ놈 ㄹㅇㅋㅋㅋㅋ

    -???: 마법사가 검을 어떻게 쓰냐고요? 구르다보니까 되던데요?

    -굴림on

    그 첫 검격을 시작으로 하린의 검무가 시작되었다.

    수백 마리의 아바무 사이에서 하린은 절제된 힘으로 검을 휘둘렀다.

    하린의 휘두름 한 번에 아바무 한두 마리가 통째로 썰려 나갔으며, 적절하게 휘둘러진 검은 망설임 없이 다음 검로로 향했다.

    퍼즐 맞추듯 타이밍에 맞게 딱딱 떨어지는 검격은 사람들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할 정도였다.

    “윽-”

    20여 마리의 아바무를 베어 넘긴 하린이 갑자기 한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았다. 정신적인 데미지가 과도하게 쌓인 것.

    살짝 휘청거리던 하린은 한번을 더 검을 휘두르더니 그 자리에서 기절해버렸다.

    하린이 바닥에 누움과 동시에 아바무들이 하린에게 달려들었다. 이대로라면 하린이 큰 피해를 입거나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것을 그대로 둘 강서가 아니었다.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하린이 있는 쪽으로 힘껏 던지면서 강서는  자신이자, 자신이 아니었던 한 사람을 떠올렸다.

    '용병왕 오도아게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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