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 ep5. 누군가를 위한 비석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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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아 교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괴수생물학 연구실의 석박사생들이 가져온 오키아의 고기를 처음 먹었을 때 보다 더 한 냄새였다. 코로 숨을 쉬느냐, 입으로 숨을 쉬느냐 하는 것은 더 이상 그녀의 통제아래 있지 않았다.
“...”
그녀의 코는 필사적으로 공기를 들이쉬었다. 이 경이로울 정도의 향기를 조금이라도 더 담아두기 위해서였다.
지글지글-
꿀-꺽
코의 감각에 집중하기 위해 그녀의 눈이 거의 감길 정도가 되었을 때.
“...적당히 해요. 내가 다 부끄러워 질 것 같으니까.”
‘아.’
하린의 일갈과 함께 신승아는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 지, 무엇을 하러 왔는지를 떠올렸다.
“큼...흠.”
승아는 주먹을 말아 쥐어 입을 가리고 헛기침을 했다.
“그래서...”
“먹고 하죠. 다 됐네요.”
본론을 꺼내려는 신승아의 입을 강서가 막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로코크 고기로 만든 양념구이가 한 일이었지만.
강서는 갈색 빛으로 잘 익은 양념구이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랐다. 한마디 정도 되는 두께로 두껍게 구운 로코크 양념구이는 양념이 깊숙이 배어들어 딱 보기에도 부드러워 보이는 육질을 가지고 있었다.
승아를 일갈하기는 했지만 로코크 양념구이를 눈이 빠져라 보고 있는 것은 하린도 마찬가지였다.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음식이 맛있어 미칠 듯한 냄새를 풍기며 눈앞에 있다면 아마 누구라도 그렇게 되리라.
강서는 다 자른 양념 구이를 접시에 옮겨 담았다.
살이 꽉 찬 로코크 양념구이는 돼지갈비와 비슷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냄새도 달랐고, 더 오동통한 느낌이 있었다.
“드세요.”
“...”
“...”
강서의 그 말과 함께 꿀-꺽하면서 침을 삼킨 두 여성은 동시에 로코크 양념구이를 젓가락으로 집고 입안에 넣었다.
“아...”
승아는 터져 나오는 육즙과 달콤 짭조름한 양념의 조화를 느끼며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뱉었다. 입안 가득 퍼지는 깊은 풍미와 약간 배어있는 불향에서 오는 감질 맛.
더할나위 없이. 더할나위 없이 훌륭한 맛이었다.
“혹시 냉면있나...?”
승아는 자신도 모르게 떠오른 한마디를 뱉어버렸다. 간절했다. 냉면이 먹고 싶었다. 이 경이로운 음식과 냉면이 가져올 조화가 궁금했다. 참을 수가 없었다.
“....저는 밥가져 올게요.”
말할 것도 없이. 그건 하린도 마찬가지였다.
* * *
하린과 강서가 던전에서 나오고 나서 마주친 것은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은 대부분이 길드관련 요원들, 기자들이었고 심지어는 길드장들도 직접 오툰의 숲 던전 앞에 나와있었다.
전국의 오툰의 숲 던전은 다 뒤져서 강서와 하린이 들어간 곳을 추적해 대기하고 있던 것이다.
-저희 청룡길드에서는....
-판다님! 꼭 저희 길드에...
-일약스타가 되신 기분은 어떠하신가요!
도저히 뚫고 나갈 수 있는 인파가 아니었다. 모두가 자신의 길드에 들어와 달라고 소리치던 그 때.
나타난 것은 신승아였다. 물론 구하러 온 것은 아니었고 신승아도 강서에게 볼일이 있어 찾아온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신승아는 강서와 하린을 구해내었다. 타고 온 마도공학비행체 의 기술을 이용해 인파 중에서 그들을 낚아챈 것이다.
그래서 하린이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그녀를 자신의 집에 들인 것이고 말이다. 어찌 되었든 도움을 받았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거래를 하고 싶어. 일하나만 도와줘.”
“어떤 일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승아는 강서 쪽으로 몸을 기울이면서 한 가지 제안을 했고 강서는 되물었다.
“어려운 일은 아니야. 보고 몇 마디 해주기만 하면 돼.”
“굳이 제가 해야 하는 일인가요?”
강서는 차를 홀짝이면서 물었다. 어떻게 보면 거절처럼 느껴지는 한 마디였지만 강서는 그저 물어보았을 뿐이었다.
“어. 지금까지 아무도 못한건데. 넌 할 수 있을것 같거든.”
“...”
“ 내가 기브앤테이크는 확실한 사람이라. 뭘 좋아할 지는 잘 모르겠지만...”
승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계약서를 한 장 꺼내들었다. 그 계약서에는 여러 가지 상투적인 내용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지만 핵심 내용은 이것 이었다.
‘이강서의 시간 하루를 빌리는 대가로 소유한 퀘스트형 던전 ’아그다드의 동굴‘의 1회 입장권한을 이강서에게 양도한다.’
“퀘스트형 던전이요?”
“그래, 네 실력이면 클리어도 해본 적 있을 것 같다만...나쁘지 않잖아. 원하는 다른거 있으면 말하고”
하린은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다가 화들짝 놀랐다.
퀘스트형 던전.
스테이지형, 그리고 필드형과는 다르게 과제가 주어지고 과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클리어가 이루어지는 던전이었다.
던전에 따라 과제는 천차만별.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일 수도 있었고 도망을 다니는 것일 수도 있었다. 상상치도 못한 기괴한 과제들도 존재하기도 했다.
“흠..."
"아, 반말하는 건 이해좀 해줘 외국에 오래살아서 존댓말 어색해 죽겠더라."
하린이 화들짝 놀란 것은 퀘스트형 던전의 가치 때문이었다. 다른 던전들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는 것들이 많았고, 독점 던전이 일부 있는 수준이었지만 퀘스트형 던전은 달랐다. 모든 퀘스트형 던전은 이미 어딘가에 독점되어 있었다.
그것은 퀘스트형 던전의 개수가 적은 이유도 있었지만, 본질적인 것은 퀘스트형 던전 자체가 주는 메리트가 강했기 때문이었다.
퀘스트형 던전은 특이하게도 헌터가 귀환을 원하는 즉시 귀환할 수 있었다. 퀘스트형 던전에 진입하면 왼쪽 손등에 귀환 마법진이 생겨나는데, 그 곳에 손을 데고 마력을 불어넣으면 바로 던전밖으로 귀환되었다.
즉, 리스크가 없는 던전 레이드가 가능했다.
또 하나는 퀘스트형 던전 만이 가진 것이었는데, 퀘스트 클리어 시 받게 되는 보상이 따로 있는 것이었다.
퀘스트형 던전을 몇 개 클리어 했느냐에 따라 길드가 중형이냐 대형이냐를 갈라 이야기할 정도로 퀘스트형 던전을 클리어 했을 때 받게 되는 보상은 막대했다.
그렇기 때문에 길드들도 비싼 세금을 들여가며 독점을 하고 하나하나 공략법을 작성해가며 정성껏 클리어를 시도했다.
‘아그다드라...오랜만이네.’
기억 저편에 묻혀있던 것들을 조금 회상하며, 강서는 하린쪽을 돌아보았다.
“어때요? 어차피 갈 거면.”
강서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두 번째 방송을 마치면서 던전방송에서 자신이 소소한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그것은 던전이 얼마나 대단하냐, 몬스터가 얼마나 대단하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강서가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소소한 교류. 자신의 행동에 따라 울고 웃는 시청자들의 반응 그 자체였다.
영겁의 시간동안 아무와도 생을 공유할 수 없었다. 강서가 만나는 사람들은 회차를 반복할 때 마다 같은 행동에 같은 반응을 반복했고 같은 말에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런 그들을 그때마다 진심으로 대하는 것은 바보짓이었고, 비참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 순간순간을 공유하고 교류할 수 있었다. 실로 소소한 일이었지만 강서에게는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 전에 그 일이란 게 뭔지 알아야 하지 않아요?”
하린은 자신에게 물어오는 강서에게 그렇게 말했다. 사실 강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아무렇지 않게 해결할 것 같았지만, 신승아 박사가 어떤 인물인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어떤 거래가 될지는 모르는 노릇.
퀘스트형 던전이라고 덥석 받아버릴 수는 없었다.
“간단해 남쪽에 섬이 하나 있는 데 거기서 내가 하는 프로젝트가 있어. 보고 코멘트만 해주면 되는 거야. 위험하지 않은 건 내 이름을 걸고 보장하지.”
“프로젝트요?”
“뿔 달린 강아지가 한 마리 있거든.”
“...”
승아는 완전히 알려주지 않고 궁금할 정도로만 이야기를 꺼내었다.
만약 강서가 자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면 퀘스트형 던전보다도 궁금증에 끌릴 것 같다는 생각에서 그리했던 것이다.
승아의 생각이 들어맞았는지 강서는 거기까지 듣고 하린 쪽을 보며 말했다.
“저는 좋은 것 같은데.”
“그래요 그럼. 퀘스트형 던전이 확실히 쉽게 접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하린의 말처럼 퀘스트형 던전은 일반 헌터가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입장 허용인원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었다.
필드형이나 스테이지형의 경우 헌터관리국 측에서 진입에 대한 조절을 하기는 했지만 던전 자체에 허용인원이 정해져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퀘스트형 던전은 입장 허용인원이 정해져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대형길드에 속해 있는 헌터라도 쉽게 들어갈 수 없었다. 길드에 막대한 보상을 가져다 줄 금광같은 공간이었는데 아무에게나 맡길 리가 없었다.
보통은 길드의 엘리트로 뽑히는 이들이 정기적으로 공략을 진행했다.
“근데-”
그렇기에 승아가 가져온 입장권의 가치는 정말 엄청난 것이었다.
길드가 존폐위기에 처해있을 때 급전이 필요하면 사용하는 마지막 수단이 퀘스트형 던전 입장권 판매였다.
판매한 측이 던전을 클리어 할 수도 있다는 리스크를 감수해야만 하는 급한 상황에서나 발매하는 것이었다.
“...그건 어떻게 구한 거 에요? 아그다드의 동굴이라면 분명...”
게다가 아그다드의 동굴은 그 돈 많다는 한국의 ‘마탑’소유 던전. 하린으로서는 돈으로 목욕을 한다는 그 마탑이, 던전입장권을 판매해야만 하는 상황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어른들이야기는 몰라도 돼 꼬맹이.”
빠직-
승아가 다시 한 번 하린의 역린을 건드렸다. 하린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토해내려 했으나 승아는 잽싸게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거기 주인이 좀 아는 놈이라서.”
승아는 그 말과 함께 문소리를 내며 하린의 집에서 나가버렸다. 승아의 작은 복수였다.
하린의 머릿속으로 비슷한 경험이 떠올랐다. 저 문소리는 분명 저번의 일을 기억하며 일부러 낸 거라고 하린은 생각했다.
하린은 강서를 보며 물었다.
“그게 그렇게 궁금해요?”
“네? 뭐가요.”
“왜, 그 뿔 달린 강아지? 그거 듣고는 승낙하셨잖아요.”
“아니에요 그거 듣고 승낙한 거.”
“...?”
“그냥 하린님 또 던전 고르려면 귀찮을 것 같아서. 저번에 되게 이것저것 그리면서 골랐잖아요.”
승아는 알지 못했지만-
생각보다. 별 거 없는 이유로 거래는 성사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