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 ep4. 두번째, 던전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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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린은 황급히 뒤로 돌았다. 그곳에는 강서가 말한 것처럼 필드 ‘오툰의 숲’의 주인. 보스몬스터 <오툰>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필...’
상황이 좋지 않았다. 하린은 방금 세 마리의 로코크에게 연달아 <에너지볼트:폭사>를 사용하느라 마력을 거의 소모한 상황. 쥐어 짜봐야 한 번 정도 날릴 수 있을까 말까한 상태였다.
강서 쪽을 슬쩍 바라보자. 강서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긴장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얼굴. 강서가 있어서 ‘위험하진 않겠지’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하린의 몸이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와...나 실제로는 처음 봄.
-근데 이렇게 빨리 보통 필드보스를 만남? 찾아가야 하지 않나?
-쯧. 던알못;; 로코크의 숲부터 이미 필드 정중앙이다. 찾아간 거나 다름없지.
강서는 툭툭 하고 땅바닥에 몽둥이를 튕겼다. 몽둥이의 내구도를 체크한 것.
몽둥이가 부러지지 않았으면 했다.
그래서 계속 조심하면서 타격했던 것이었다. 부러진다고 큰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지만 될 수 있으면 부수지 않고 싶었다.
처음 하린이 준 나무막대가 부러지며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너무 세게 때리면 부러질 텐데.’
그대로 휘두른다면 오툰을 때려잡을 수야 있겠지만, 그런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기 위해선 이정도 내구도의 몽둥이가 부숴지는 것도 감수해야했다.
그래야만 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우선은 해보기로 했다.
강서가 치명타를 입히지 못하면, 하린의 '마법실력수준'에서 오툰은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하툰보다 거대한 흰색 체구에 훨씬 거대한 청록빛 몽둥이를 들고있는 하툰의 돌연변이.
돌연변이라 체구가 더 크고 몸 색이 다르며, 추가능력이 있다는 다른 점이 있기는 했지만 전체적인 밸런스가 잘 갖추어져 있다는 특징은 똑같이 가지고 있었다.
-그르르르
먼 거리가 아니었다. 20M정도의 거리. 오툰의 체구는 거의 3m에 달하는 크기였다. 달려들려고 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단숨에 뛸 수 있는 거리였다.
-근데 둘이서 오툰 사냥이 가능하냐?
-오툰정도야 뭐...킹-판다니까
-아니 친구들 잠깐....촉이 왔어 이건...
- ㄴ?
- ㄴ무슨 촉?
‘slayd’님의 ‘1000원’후원!
[치킨의 촉이지요. 판다아재 몽둥이로 때려잡으면 치킨삽니다.]
눈에 보이는 표정변화는 없었지만 강서는 속으로 피식 웃음이 나왔다. 경험한 적이 있는 것이었다. 던전을 마치고 하린이 열성으로 설명한 <치킨미션>.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목숨이 걸렸다는 비장함도 없었고, 이번에 끝내지 못하면 회귀해서 다시 해야 한다는 끔찍한 부담감도 없었다.
처음 방송이니 뭐니 해서 귀찮은 일이 더 생긴 것 같았지만, 솔직히-
‘즐겁다.’
강서는 즐거웠다. 마모된 마음에서 그 마음을 확신하기 쉽지는 않았지만. 소소한 정도였지만, 즐겁다는 감정을 기억해낸 것 같았다.
-오오 치킨
-ㄱㄴㅇ
-보여주나여
-킹무몽둥이ㄱㄴㅇ
채팅에 대답을 하지는 않았지만 강서는 땅으로 향해있던 몽둥이를 올려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오툰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럭?
오툰은 의문을 표하는 듯한 울음소리를 내더니 강서가 채 세 번째 발걸음을 내딛기 전에 강서에게 달려들었다.
단 한 번의 도약.
3m의 거구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엄청난 순발력이었다. 단번에 강서에게 달려든 오툰은 강서를 향해 청록빛 몽둥이를 내려찍었다.
쾅-!
보지 않았다면 지진이 났다고 오해할 정도의 엄청난 소리. 물론 강서가 그 몽둥이에 당한 것은 아니었다. 한걸음 옆으로 옮겨 교묘하게 몽둥이를 피해낸 것이다.
그리고는-
파악-!
-ㅗㅜㅑ
-아...소리
-누가 맞는 걸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해 본 건 처음이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때리면 저런 소리가 나냐. 귀가 정화된다.
-내가 판다였으면 맨날 내 허벅지 몽둥이로 때렸음;;
-가학on
-변태on
특유의 경쾌한 타격음이 방송을 타고 시청자들의 귀에 들어갔다. 강서의 타격음에서 시청자들이 ‘아름답다’라는 생각이 든 것은 소리가 가진 안정감 때문이었다.
금제로 인해 힘과 속도에 제한이 걸리고, 마력도 사용할 수 없었으며, 육체적인 한계도 존재하는 상태였지만, 한가지만은 건제했다. 바로,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랜 기간 동안 쌓아온 숙련도.
강서의 손끝에서 이루어지는 교묘한 제어가 한 치의 낭비도 없는 휘두름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 결과가 바로 아름답다 생각이 들 정도로 안정감이 느껴지는 타격음이었다.
오툰은 횡으로 몽둥이를 휘두르며 반격했지만 그때는 이미 강서가 반대쪽으로 움직인 상태였다. 몽둥이의 리치가 닿기 버거운 자리로 이동하며 강서는 오툰을 타격 했다.
쾅-!
팍-!
파악-퍽!
파앗!
그 다음은 비슷한 패턴의 반복이었다. 내려찍는 오툰의 묵직한 몽둥이를 강서가 피해내고 강서의 몽둥이가 오툰의 몸에 경쾌한 타격음을 울렸다.
강서는 몽둥이를 맞부딪히지 않았다. 오직 피하고, 때렸다.
강서의 발걸음은 여유로웠고, 그의 빠른 손에서 나오는 수번의 타격음이 오툰의 몸에 남김없이 적중했다.
하지만-
-야...저거 데미지가 들어가고 있는 거 맞냐?
-아닌 것 같은데...
-지금 맞은 것만 해도 벌써 50대는 넘은 것 같은데 오툰 끄떡도 없음.
-프로 마사지사 판다;;
사실상 큰 데미지가 들어가고 있지 않았다. 물론 데미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강서가 반복해서 오른쪽 발목을 때렸기에 처음보다 오툰의 운신이 느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저, 딱 그 정도였다. 압도적이지 않았고, 움직임이 조금 느려진 것 말고는 오툰이 입은 피해는 없었다. 강서가 질 것 같은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단시간에 큰 피해를 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아저씨!”
갑자기, 하린이 강서를 불렀다. 강서가 뒤돌아 하린을 찾아보니 하린이 에너지 볼트 구체를 만들어 띄우고 있었다.
확실히 하린이 앞서 보여주었던 에너지볼트 폭사가 오툰에게 적중된다면, 큰 피해를 줄 수 있을 것임은 분명했다. 하툰의 상반신을 흔적도 없이 날려 보낸 그 위력이라면 말이다.
-아...치킨 포기?
-근데 하긴 혹시 위험해 질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뭔가...
-흠...
하지만 채팅장은 아쉬운 여운이 가득했다. 보스, 오키아 킹 때를 생각하면 너무 아쉬운 전개였기 때문이었다.
강서가 오툰의 발목을 한번 더 타격하고 거리를 벌렸다. 이번에는 빡- 소리가 나며 타격이 있었는지 강서 쪽으로 단번에 달려들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크르락!
어째서인지 강서는 오키아의 구덩이에서 보다 크게 활약하지 못했고, 오툰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주지 못했다.
오키아의 굴에서 그의 실력을 두 눈으로 목도한 하린은 그게 그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나무 몽둥이를 부숴트리기 싫다는, 어찌보면 정말 별거 없는 마음 때문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그래서 치킨미션을 포기하면서까지 에너지볼트를 만들어내었다. 한번 맞추기만 하면 강서가 강화시켜준 이 에너지볼트는 오툰을 적어도 반죽음상태로 만들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오잉 무의미하자너;;
-버퍼없는 파티에서....
하린이 에너지볼트를 만들기는 했지만 오툰에게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특수능력이 하나 있었다.
[매직그립]
오툰이 레이드하기 어려운 보스몬스터에 속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건 5인 이상인 정상 스쿼드의 경우에 해당되는 말이었다.
대부분의 5인 이상 스쿼드는 일원으로 ‘버퍼’를 가지고 있다.
버퍼의 가장 중요한 필수스킬은 ‘디스펠’. 바로 상대의 스킬발동을 취소시키는 것이었다. 오툰을 잡는 데에는 버퍼가 가장 중요했다.
마법을 멈추는 특수능력인 ‘매직그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 날아오는 마법을 허공에 멈추는 능력이었다. 디스펠 스킬만 있다면, 누구나 풀 수 있는 별 거 아닌 능력이었지만,
지금 하린에게는 디스펠 스킬도 없었고, 남은 마력도 없었다.
만들기는 했지만 이도저도 못하는 상태. 차라리 기습이었다면 오툰이 공격을 인지하기 전에 맞출 수 있었지만 그건 지금의 대치상황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이건 퍽퍽박사가 돌멩이를 드는 수밖에 없자너;;
-하린 킹멩이 빌드업 ㅇㅈ
-ㅇㅇ 에너지볼트 날려봤자 그립당할텐데
-타격음은 좋은데 확실이 돌멩이쪽 클래스나 고유능력 아닐까
이도저도 못하던 하린은 순간 기시감이 느껴졌다. 익숙한 기분. 오묘한 이상함. 비슷한 상황을 경험한 적이 있었던 것 같았다.
이상했다. 분명히 긴장되는 상태이고 대처할 방법은 없으며 오툰은 당장이라도 달려 들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더 이상 마력이 남지 않았고, 에너지볼트를 던지면 막힐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그걸 여기서 꺼내기에는....최후의 최후로 미룰 생각이었다. 지금은 마력이 아예 고갈되어서 될지 안 될지도 모르고.
즉, 다시 말해 대책이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안정감이 들었다. 하린은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던 하나의 생각을 알아차렸다.
‘아저씨가 이걸 몰랐을까?’
하린이 에너지볼트를 쏜다고 이야기 했을 때 강서는 순순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오툰의 마법제어를 몰랐을 수도 있었지만, 적어도 ‘강서’의 한해서는 그것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말하는 족족 아무도 몰랐던 몬스터에 대한 꿀팁들을 뱉어내는 강서가 오툰의 특수능력을 모른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그 말은 즉슨, 강서에게 뭔가 생각한 방법이 있다는 것. 하린의 생각이 거기까지 도달했을 때 강서는 이미 하린보다 조금 뒤쪽에 자리를 잡고 서있었다.
가면을 쓰고 있었기 때문인지 무표정의 판다얼굴은 언 뜻 보기에는 도망가는 게 아닐까 싶은 모양새였다.
-엌ㅋㅋㅋ손절해 버리자넠ㅋㅋ
-판다아재 하린 손절?
-아니 미친놈들아 심각한 상황이잖아;;
-아닐껄? 저 표정을 봐 얼마나 여유로워
-정보) 판다아재는 가면을 쓰고 있다.
강서는 하체를 고정한 채 상체를 당기듯 뒤로 틀며 하린에게 말했다.
"이쪽으로 날려요."
"...네?"
"에너지 볼트요. 오툰의 매직그립은 패시브가 아니라 액티브스킬입니다-"
강서가 그 말을 했을 때, 오툰은 발목이 회복 되었는지 한번 움츠려 힘을 모은 뒤 단번에 뛰어올랐다. 그 육중한 몸이 ‘난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높이 뛰었다.
오툰은 하린이 앞에 있음에도 무시하고 바로 강서 쪽으로 뛰어올랐다. 한 번에 강서가 있는 곳에 도달할 것 같을 정도로 엄청난 점프력이었다.
고민할 시간 조차 없었다. 오툰이 강서에게 도달하는 데에는 2초도 안걸릴 것 같은 상황.
"아저씨니까 믿는거에요!!"
하린은 뭐라 더 물어보기 보다 강서를 믿고 에너지 볼트를 강서에게 쏘아내었다.
덮쳐오는 오툰에도 흔들림 없는 강서의 자세를 본 한 시청자가 오키아의 동굴을 떠올렸다. 돌멩이를 던지는 강서의 폼이 마치 투수와 같았다면 지금의 자세는 마치-
타자. 홈런을 노리는 타자의 자세였다.
-설마...
“그 말은 즉, 인지하기 전에 날려보내면 된다는 거죠.”
스팟-!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에너지볼트에 강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비틀었던 상체를 허릿심으로 당기며 몽둥이를 휘둘렀다. 몽둥이에 맞은 에너지볼트의 구체는 스치는 듯한 소리를 내며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오툰을 향해 날아갔다.
강서의 절묘한 기교였다. 날아온 속도를 손끝의 조절로 그대로 유지하며 휘두르는 힘까지 더해 날려보낸 것. 그 두가지 힘의 축적은 눈으로 보기힘든 속도를 만들어 내었다.
강서의 말대로 매직그립은 액티브스킬. 써야한다는 생각을 해야 쓸 수 있었다.
크르...?
구체는 강서의 몽둥이질 소리만큼이나 속 시원한 속도로 오툰에게 날아갔다.
입안에 무엇인가 들어간 것 같은 느낌에 오툰이 의문성 울음소리를 내었을 때는 이미 오툰의 입안에 에너지볼트가 들어간 후였다.
콰광!
뒤이어 하린이 눈치있게 발동한 폭사와 함께 오툰의 머리가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
채팅방이 얼어버렸다.
하린이 채팅금지를 따로 건 것도 아니었고, 프로그램에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니었다.
오직 강서가 만들어낸 전율적인 장면. 그 것이 있었을 뿐이었다.
-홈런이다...
그 장난스럽지만 진심이 담긴 댓글을 시작으로 도네이션과 함께 댓글들이 쏟아져 나왔다.
‘드루노’님의 10000원 후원!
[믿었습니다. 킹갓...]
‘slayd’님의 50000원 후원!
[일동-차렷! 경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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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다
-대-판다
-킹-판다
-ㅗㅜㅑ...
-명장면을 위한 엑스트라자너;;
-하린 볼보이행ㅋㅋㅋㅋㅋ
-그걸 쳐서 날려버리네. 상상도 못했자너;;
-고럼 몽둥이는 공을 치라고 있는 것이제
-키야....ㅁㅊㄷ진짜
-속보)판다 또 ‘판-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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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는 미친 듯이 올라오는 무수한 채팅들을 보다가 오툰의 손에서 청록색 몽둥이를 빼어 든 뒤 로코크 한 마리를 바라보며 나지막히 말했다.
“...로코크 고기는-”
“...”
“양념구이가 맛있죠.”
멍하니 있던 하린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던전 밖으로 향하는 강서를 따라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