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소소한 꿀팁방송-13화 (13/191)

13화. < ep3. [수정]던전 밖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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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할아버지는 정말 강한 사람이었어요. 시스템에 도움 없이도-

하린이 중얼거렸다. 그렇게 말하는 하린의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입가에는 씁쓸함이 묻어났다.

“그래 보이네요.”

강서는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하지만 하린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고 있었다.

“저희 아버지와 어머니는 균열 때 돌아가셨어요. 제가 정말 어릴 때였는데, 다른 사람들을 몬스터로부터 지키다가 돌아가셨죠.”

“...”

“원망하지는 않아요. 아버지와 어머니가 선택한 것이 옳았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말하면서 가슴이 욱신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하린은 강서에게 소파 자리를 손으로 안내해주며 물었다.

“커피? 녹차? 다른 것도 많이 있어요. 이름을 모르는 차도 하나 있고요.“

“이름 모를 차로 하죠.”

킥- 역시 이상한 아저씨야.

하린이 중얼거렸다.

주방으로 간 하린은 티스푼과 찻잔이 부딪히는 팅팅-소리를 몇 번 내더니, 찻잔을 두잔 내어왔다.

“여기 이상한 차에요. 이상한 아저씨.”

찻잔을 강서에게 내밀며 하린은 말을 이어했다.

“저는 아무것도 모를 때였지만, 할아버지는 화가 많이 나셨었나 봐요. 그날 이후로 집에 들어온 적 없으셔요.”

“집에 들어온 적이 없다고요?”

“네. 하프라인 밖에서 들어오지 않으셨어요. 하프라인을 구축할 때부터.”

“...”

“몬스터들을 싸그리 말릴 때까지 저를 볼 낯이 없다니 뭐라나.”

하프라인. 균열에서 나온 몬스터들로부터 인류는 본래의 영토를 전부 수복하지 못했다. 총력을 다해 반쯤 수복해 한계치에 도달했을 때 즈음에 설치한 인류의 방어막을 하프라인이라 불렀다.

신전의 도움을 받아 설치한 이 강력한 방어막은 아직까지 어떤 몬스터라도 뚫지 못했고, 알아차리지 못했다.

때문에 지구는 크게 하프라인 밖과 안으로 나눌 수 있었는데, 하프라인 안쪽의 주인은 인간이었지만 하프라인 바깥의 주인은 몬스터였다.

던전속의 몬스터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강력한 몬스터들...

가히 몬스터의 세상이라 불러도 과하지 않았다.

“정말 강한 분이신가 보네요.”

“치- 강하든 말든 별로 상관없는데....지금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몰라요. 15년간 코빼기도 안 보였어요.”

하린은 차를 후릅-하고 마시면서 말했다. 강서도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맛을 음미하며 강서가 가볍게 차의 이름을 맞추었다. 하린은 별로 상관 없다는 듯 대꾸했으나 다시 한 번 차를 홀짝였다.

“찔레꽃차네요.”

“흠...그렇게 한번 마셔보고 알 수 있나요?”

“약초꾼 생활을 한 적이 있어서요. 꽤 압니다.”

사실 강서는 꽤 안다고만 말할 수준이 아니었다. 종류는 물론이고, 지구에 있는 모든 꽃의 꽃말까지도 알고 있었다.

일리아 군도에서 허브마스터(herb master)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강서는 <허브마스터 페닝>으로서의 생을 클리어하고, 지구에서 환생했을 때 약초들에 대해 알아 둔 적이 있었다. 찔레꽃에 대해서도 그 때 알게 되었다

“아마, 포기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그래요.”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말은 하린의 마음에서 맴돌았다.

그냥 스쳐지나가는 말치레로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왜인지 그랬다.

강서는 눈을 감고 차를 들어 찔레꽃차의 향을 맡았다.

‘찔레꽃차라...“

“향이 좋네요. 찔레꽃의 꽃말을 아나요?”

“꽃말이요? 아니요. 알 리가 없죠. 찔레꽃차인 것도 지금 알았는데.”

“고독입니다. 그리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죠-

나지막히 읊조린 강서의 말에 하린은 자신의 가슴 어림께에서 무언가 몽글거리는 것을 느꼈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정적이 이어졌다. 강서는 찔레꽃차를 음미했고. 하린은 찔레꽃차의 꽃말을 속으로 되뇌였다.

더이상 '잠깐의 정적'이라고 표현하기 애매한 시간이 흐렀을 때 즈음. 초인종 소리가 정적을 깨었다.

띵동-

‘초인종소리?’

한참 상념에 빠져있던 하린은 의아함을 느꼈다. 하린의 집에 초인종은 울리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택배같은 것은 정문에 택배함이 따로 있었으며, 애초에 택배가 올만한 일이 없었다.

하린은 거실 모니터를 틀고 정문의 카메라로 화면을 돌렸다.

그러자 화면에 붉은 생머리를 올려묶고 흰 가운을 입은 뿔태안경의 여성이 있었다.

“....신승아 박사?”

하린도 익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세계최고의 괴수생물학자이자 동시에 세계최고의 마도공학자. 희대의 천재였다.

18세의 나이로 8개학과 학사학위를 모두 취득하고 물리학, 기계공학, 생물학 동시 박사학위과정을 밟다가 괴수생물학과 마도공학 분야가 신설된 이후 모두 내팽개치고 달려가 그분야의 선두가 되었다.

현재29세의 나이로 30세가 되지 않는 나이에 가장 활성화된 두 개의 연구 분야에서 최고라는 칭호를 받은 사람이었다.

‘저 사람이 여길 왜...?’

연결점이 없었다. 하린의 집에 가끔 팬들이 찾아오기는 했지만 신승아 박사가 하린의 팬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한국대학교에서 교수직위를 받고도 수업한번 하지 않은 채 지하 독립연구실에 틀어박혀, 한 달에 한번 나올까 말까라는 이야기는 이미 하린도 알고 있었다.

확실히 신승아의 목적은 하린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역시...아저씨?’

강서의 경우. 신승아 박사가 찾아올만했다. 그가 보여준 대단한 것들은 아마 학계에서도 밝혀지지 않은 것 같았으니까.

오키아의 고기를 만든 장면 같은 경우 충분히, 괴수생물학 분야에서도 관심을 가질만한 것이었다,

하린은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유명하다고 해서 좋은 사람이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아무도 모르는 것이지만 신승아 박사도 그런 류의 사람일 수도 있었다.

[누구시죠?]

[한국대학교.괴수생물학 연구실에서 나왔습니다.]

[...]

목소리는 신승아의 것이 아니었다. 동행인 듯, 조금은 굵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오지 말고 있어요. 아마 아저씨 찾으러 온 것 같아요.”

“네, 그러죠.”

하린은 문을 그 자리에서 열어주는 것이 아니라 강서에게 자리를 지킬 것을 말하고 자신이 정문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신승아 교수와 상진이 있었다.

하린의 집은 상진이 알아낸 것이었다. 본래 하린의 방송을 보았었던 지라, 하린이 자신의 집에 대해 자랑했던 방송을 기억하고 있었따.

특징이 명확한 집이라 관련자를 통해 알아내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오, 진짜 맞네요.”

“네?”

“아, 팬입니다. 하린님. 그 닉네임 ‘척척석사’라고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아! 척척석사님. 알고 있죠. 이 쪽은...신승아교수님 맞죠?”

하린이 아는 체를 하자. 신승아 교수가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알고 있으니까. 얘기가 빠르겠네. 그 ‘판다’라는 사람 연락처 좀 주라. 꼬맹이.”

빠직-

하린의 미간이 한껏 찌푸려졌다. 동시에 상진이 머리를 짚었다.

‘아, 망했다. 역시 혼자 왔어야 됐어.’

상진은 하린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꼬맹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어린시절부터 방송을 시작해서인지 하린이 계속해서 들은 말 중에 하나였는데, 하린은 그 말을 제일 싫어했다.

한 번은 멀쩡하게 방송을 마친 뒤. ‘하린방송에서 예고없이 블랙을 당했다’는 항의게시글이 게시판에 엄청나게 올라와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하린이 댓글을 일일이 대조해보고 꼬맹이의 '꼬'자만 보여도 모조리 블랙을 걸어버렸던 것이다.

항의 게시글에 대한 하린의 언급은 단 한마디였다.

‘꼬맹이 방송 보지 마세요. 법에 걸려요.’

그 뒤로 하린방송에서 꼬맹이라는 단어는 금기어가 되었다.

하린이 그 단어를 얼마나 싫어하는 지는 이 사건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상진이 급하게 수습해 보려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하린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하린님! 그게아니라...”

“싫은데요.”

“뭐? 너 같은 꼬맹이랑 실랑이할 시간 없어. 지금 이 순간에도 너 때문에 버려지는 시간이...”

신승아 교수는 하린의 기세에 밀리지 않고 짜증을 부렸다. 세상이 자신의 페이스대로 굴러왔던 신승아 교수에게 남을 신경써주길 바라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신승아 박사는 자신이 남에게 맞출 바에는 혼자 하는 게 났다는 주의. 그래서 지금 연구실도 지하에서 혼자 진행하고 있었다. 자신의 영향력이 더컸고 언제나 마지못해 다른 사람이 신승아 박사에게 맞춰왔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렇게 얼렁뚱땅 일사천리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방송이나 열심히 봐요 사생팬처럼 집 찾아오지 말고. 빨간머리 노처녀야.”

“....노처녀? 야 나 아직 30살도 안됐...”

쾅-

신승아 교수는 하린의 노처녀 발언에 바로 반박하려 했지만 하린은 그 말을 끝까지 들어주지 않았다.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진 신승아교수를 보며 상진은 아찔함을 느꼈다.

“이 꼬맹이가....”

신승아 교수가 강서를 찾아온 이유는 당연하게도 연구 때문이었다.

아르망의 우유에 담겨있는 효소가 오키아의 암탈에 반응 하는 것을 보고 신승아교수도 경악했다. 수많은 연구와 실험.

그 어떤 실험에서도 암탈이 반응을 보인 적은 없었는데, 아르망의 우유와 닿자마자 암탈이 격렬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심지어 강서가 언급한 커피물은 그 반응을 더 강화시켰다. 커피에 들어있는 성분이 아르망의 우유와 암탈의 매개체 역할을 한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다른 몬스터의 사체에도 실험을 해보았지만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 방법은 오키아에게만 해당된다는 이야기.

신승아는 그가 궁금했다. 그 한없이 가벼워보이는 말투에서 비식용 몬스터가 식용이 될 수 있다는 엄청난 사실이 밝혀졌다.

신승아 박사는 그것을 다시 떠올리자 자신의 심장이 뛰기 시작한 것을 느꼈다. 지적 호기심, 신승아를 자극하는 연료는 오직 그것 뿐이었다.

강서의 지식은 가히 괴수산업에 한 획을 그을 만한 것이었다. 그에게는 소소한, 그러나 결코 소소하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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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들고 다시 와야겠군.”

신승아는 그렇게 말하고 몸을 돌려 하린의 집을 나갔다. 상진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그 뒤를 따라 나섰다.

*

“누구에요?”

"아저씨가 말한 '소소함'이랑은 거리가 있는 사람이에요."

"그런가요."

강서도 크게 관심이 있어 물어본 것은 아니었는지 하린의 애매한 대답에도 더 물어보지는 않았다.

한모금 더 차를 마시는 강서에게 하린이 말을 걸어왔다.

“그보다, 저희 다음 던전 골라요.”

“....? 다음 던전이요?”

강서는 하린의 어리둥절한 제안에 찻잔을 기울이던 손을 멈칫했다.

“네! 저희 집에서 지내시고요!”

하린의 막무가내식 반짝이는 눈빛에 강서는 다시 한 번 고개를 가로저었다.

'참 마이페이스야.그래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꼭 그사람 같다니까.'

강서는 하린의 대책없는 발랄함에 자기도 모르게 끌려가며 기억 저편에 있던 누군가를 떠올렸다.

"가요. 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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