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 ep3. 던전 밖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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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관리국 던전관리과 3팀장은 인스턴트 던전이 흰무리에 휩싸이는 것을 보고 의아해 했다.
‘협회소속이 이렇게 강했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헌터들이 길드들을 마다하고 협회에 소속되는 이유는 <자신이 원하는 길드에서 콜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떤 길드든 헌터가 선택하여 들어가면 길드원을 함부로 스카웃하지 않는다는 길드간의 암묵적인 룰이 있었다.
물론 진짜 인재는 어떻게든 데려가고는 했지만 어중간한 정도에서는 스카웃이 온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길드에 들어가지 않고 ‘나 아직 소속 안 되었어요.’하고 협회의 소속이 되는 것이다.
흰 빛줄기와 함께 나타난 인영은 총 5명이었다. 협회소속 헌터 3명 그리고-
스마트 워치에다 대고 혼자 중얼거리는 흰 피부의 소녀와 덤덤히 자신의 몸에 묻은 먼지를 털고 있는 판다가면의 남성.
그들의 장난기 가득한 모습과 그들 뒤에 쌓여 있는 오키아들의 시체의 언밸런스함에 팀장은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그럼 이것으로 방송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다음에 봐요~ 씨유레~”
“수고하셨어요.”
‘이게 무슨 조합이야.’
팀장은 먼저 협회소속 헌터들에게 감사인사를 했다.
“수고셨하습니다. 관련 수당은 협회 현장지원과 편으로 보내드릴 테니 확인하시고 문의 사항은 저에게 주시면 됩니다. ”
“아...네, 그래요.”
“부산물은 저희 쪽에서 현물로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확실히 말씀하신 것처럼 협회소속이라고 무시하지 못하겠네요. 하하 세 명이서 이 정도 속도라면....”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던 헌터들은 호탕하게 웃으며 자신들을 칭찬하는 팀장의 말을 끝까지 듣고 있지 못했다.
“아니요.”
“...예?”
“오늘은 저희가 딱히 한 게 없네요... 2스테이지도 도착하기 전에 끝났습니다.”
“예?? 그럼 이 오키아 시체들은...”
“아마 저분들이 헌터인 것 같습니다. 그럼, 저희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헌터들은 자리를 떴다. 그들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던전을 두 명이서 가뿐히 클리어했고, 한 쪽은 해봐야 20대 초반일 것 같은 어린 소녀.
심지어 가면을 쓰거나 하는 여유로운 모습까지 보이는 강서와 하린을 보고 자격지심이 들었던 것이다.
떠나는 그들을 보내고 팀장은 갸우뚱 했지만 곧 자신이 해야할 일을 깨닫고 몸을 돌려 하린과 강서에게 딱딱하게 말했다.
“두 분.”
강서는 이 사람이 누군지 왜 말을 걸어오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래서 고개를 갸우뚱 했지만 하린은 그가 왜 말을 걸어오는 지 아는 듯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
“아하하...”
“헌터이십니까?”
3팀장으로서는 둘이 헌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협회소속 헌터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데 던전이 클리어 되었으니까.
아무리 E-급이라고 해도 던전은 던전이었다. 일반인이 클리어 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하린은 헌터 라이센스의 앞면을 내밀어 보였다.
“여기요. 9티어 헌터에요. 지나가다가 갑자기 던전이 생겨서 실수로 들어가 버려서...”
실상은 방송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들어간 것이지만.
“박하린씨고....이 쪽 분도 같이요? 라이센스 있으세요?”
3팀장은 냉랭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런 일에서는 기싸움을 이겨야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헌터들 중에는 아닌 사람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이 선민 의식을 가지고 있어 비협조적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거 말인가요?”
“....헙!”
“왜 그러시죠?
“아..아니에요..”
강서가 9티어 헌터 자격증을 꺼내들자 하린이 갑자기 헛바람을 들이키며 놀랐다. 강서를 직접본 사람으로써 강서의 티어를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팀장이 의아해 물었지만 하린은 아니라고 둘러대었다.
팀장은 의심의 눈초리로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9티어 헌터 둘이서?’
그럴 리가 없었다. 아무리 실력이 있는 헌터라도 9티어 헌터 둘이서 던전을 클리어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뭔가 냄새가 나는군.’
“두 분 다 라이센스 뒷면에 신원확인사진과 얼굴이 대조될 수 있도록 잘 들어주시고요. 이강서씨는 가면 좀 벗어 주세요?”
“아.”
강서는 잠시 멈칫하더니 하린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꺼졌나요?’
‘네네 아까 꺼졌어요.’
방송이 확실히 꺼졌는지 확인한 것이다.
‘확실히 뭔가 있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그 속내를 파헤쳐주지. 어디 한 번 잘 감춰보라고’
하지만 팀장은 그것을 곡해했다. 둘이 뭔가 작당을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 모습을 보며 팀장은 한번 피식이며 웃음을 짓고 강서의 가면을 잡은 것이다.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시면 안 됩니다. 써야 할 문서들만 늘어나요. 안 그래도 인스턴트 던전 무단으로 침입한 사건들이 요즘 많아져서 관리과에서도 강하게 단속 중인....”
명확히 강서와 하린을 무시하는 말투였다. 마치 그들을 범죄자 취급하듯이.
“야!!!!!”
그렇게 강서의 가면을 벗기려고 당기는 순간 어디선가 노호성이 터져 나왔다. 화들짝 놀란 팀장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던전관리과의 과장 김만식이 조금 전 밥을 사오라 시켰던 종혁을 대동한 채 씩씩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팀장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저 양반이 왜?’
김만식은 일종의 엉덩이 무거운 양반이었다. 사무실에서 잘 나오지 않는.
인스턴트 던전 발생이 중요한 사항이긴 하지만 전국적으로 따지면 드문 일도 아니었다. 쉽게 말해, 이건 헌터관리국 과장정도나 되는 인사가 나올만한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왜인지 머리끝까지 화가나 있는 상태 같았다. 그 대상은 자신인 것 같았고.
“당장 그 손 안 떼!”
눈빛으로 옆에 있는 종혁에게 말을 걸었지만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신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에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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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호성을 터트리면서 다가온 과장 김만식은 강서와 하린에게 반색하며 웃는 얼굴을 보였다.
“하하하! 두 분은 먼저 들어가 보세요. 일은 제가 잘 처리하겠습니다.”
“...?”
“...?”
“제 딸아이가 팬입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방송해주시기 바랍니다!”
“아! 팬이시라고요? 네 그럼요!!”
“이쪽 판다분도. 하린님 방송에 자주 나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 잘 봤어요.”
당황해 하면서도 팬이라는 말에 하린은 기뻐했고, 옆에 있던 강서는 떨떠름해하면서 끄덕였다.
3팀장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항의 했지만, 만식에게 그 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아니, 과장님 그냥 보내시면 신원 확인도 못했....”
“야 임마, 관리과 게시판에 행동지침은 내가 폼으로 달아놨냐?”
“....”
“1번이 뭐야.”
“...일반인이든 헌터든 최우선은 안전이다.”
“물어봤어 안 물어봤어.”
“안 물어봤습니다.”
김만식은 울그락불그락 해진 얼굴로 옆에 있던 종혁을 불렀다. 종혁은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대답을 했다.
“야 종혁아. 인스턴트 던전에서 사람이 나왔을 때 가장 먼저 해야하는 질문이 뭐냐?”
“다쳤는지, 죽은 사람은 없는지. 외관으로 보이는 것 외에 다른 문제는 없는지 물어야 합니다.”
“그래. 근데, 말단 신입도 아는 걸 팀장이라는 놈이 몰라!? 일 하루이틀해!!”
“...”
“네가 그러니까....”
.
.
.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그거부터 챙기고 태도도 좀 고쳐라.”
“....예”
한참을 이어지던 과장의 분노는 어느정도 마무리 되는 듯 했다.
“그리고- 헌터들 들여보냈냐? 내가 들여보내지 말라했는데?”
하지만 마법의 단어 ‘그리고’와 함께 3팀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거야 헌터인지 몰랐으니까...아셨으면 미리 말좀...”
“....내가 너한테 헌터다 아니다 보고를 해야 돼? 그래서 진입하지 말라했잖아!!! 이...”
과장의 딜량에 팀장은 거의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대로 녹아내렸다.
“...가죠.”
강서와 하린은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나왔다.
* * *
“아...”
“그래서 그렇게 말씀을 드렸던 건데...참..저도 난감하네요.”
강서는 하린의 차를 타고 이동해 주민센터로 왔다. 부랴부랴 문서를 들고 왔지만 이미 전산시스템 서버는 닫힌 상태.
문제의 문서는 강서의 투룸에 관련된 문서였다. 최근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었는데, 균열로 인해 실종상태였던 사람들이 돌아와서 신원확인을 받으면 주택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부채가 껴있을 경우 십수년간 축적된 이자로 인해 바로 채권자가 경매에 넘길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국가에서 대신 변제를 해주긴 했지만, 현행법상 국가에서 변제해주기 전에 경매에 넘어가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주민센터 직원이 가장먼저 처리하라고 말을 했지만.
“이미 경매로 넘어가 버렸네요...어쩌죠. 이건 경매로 다시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아...그렇습니까.”
강서는 우선 주민센터에서 나왔다.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강서에게 익숙한 공간이었다. 그 공간이 사라졌다고 슬픈 감정이 올라오는 건 아니었지만 고민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 때, 하린이 조금은 붉어진 얼굴로 한 가지 제안을 해왔다.
“우, 우리 집에서 며칠 지내실래요?”
“예?”
“무, 물론 공짜는 아니고...제 방송에 출연해주신다는 조건 하에!”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여자 혼자 사는 집에 들어가요? 그냥 밖에서 좀...”
“혼자사는 집 아니에요!”
“...?”
의문을 표하는 강서의 팔을 잡고 하린은 막무가내로 차를 가리켰다.
“일단 오늘은 저희 집으로 가요. 정 불편하면 저는 별관에서 자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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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놀라요?”
“네? 뭘요?”
“저 스무살인 데? 이런 집에 사는 데?”
하린은 자신의 집을 강서에게 보여주며 허리에 손을 집고 한껏 콧대를 높였지만 강서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확실히 자랑할 만한 집이었다.
스무살이 가지기에는 거대한 저택이었다.
땅은 하린의 것이 아니었기에 혼자 장만했다고 하기는 어려웠지만 그 위에 지은 저택과 별관은 대부분 하린이 보수하고 재건축한 것이었다.
“아, 꽤 크네요.”
“...”
하린은 생각했다. 이 남자의 무반응은 어디까지일까. 보통 스무살이 차를 몰고 다니는 것만 해도 놀라곤 하던데.
이 사람이 놀라는 건 볼 수나 있을까?
하지만 하린이 몰랐던 것이 하나 있었다.
강서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궁전에서도, 저택에서도 살아보았다.
이정도 저택이 스무살이 가지기에 큰 편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큰 감흥은 없었던 것이다.
끼익-
“됐네요. 들어오기나 해요.”
“아까, 누가 계시다고 하지 않았어요?”
“...지금은 없으니 괜찮아요.”
강서를 보며 질렸다는 표정을 지은 하린이 대문을 열자 적당한 마당에 조경이 갖추어져 있었고 돌바닥으로 길이 나 있었다.
강서와 하린은 돌길을 따라 본관으로 향했다.
하린의 집은 고딕양식의 뾰족한 지붕을 가지고 있었다.
말하자면 근대 영국풍 3층 건물. 돌출된 창문과 벽돌 장식으로 특징지어지는 빅토리안 양식의 저택이었다.
쉽게말해, 강서가 감흥이 없었다 뿐이지 하린의 집은 굉장히 눈에 띄는 집이었다.
[홍채인식 중입니다. 잠시 멈춰 주십시오]
[인증되었습니다. 문이 열립니다.]
문을 열고 강서를 집안으로 들이자마자 하린은 별다른 안내없이 익숙하게 거실로 향했다.
강서도 하린을 따라 거실로 향했다.
거실에는 큰 스크린이 있었고 그 위에 커다란 액자가 하나 있었다.
그 안에는 무게감 있어 보이는 한 남성의 낡은 사진이 있었다.
“이분인가요? 같이 산다는 게.”
“아니요. 우리 할아버진데 지금은 같이 안 살아요.”
그렇게 말하는 하린의 표정에는 씁쓸함이 묻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