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ep2. 처음, 던전.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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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이 많이 나오는 쪽이 왼쪽인데요? 더 강한 쪽을 먼저 처리하는 거 아닌가요?”
“....?”
하린은 강서의 말에 순간 움찔했다.
그렇다. 강서는 스테이지형 던전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다.
강서가 겪은 오키아의 굴은 말 그대로 던전같은 특별한 형식이 아니라 야생 그대로의 오키아의 굴. 항상 목적은 오키아의 몰살이었고 최선의 방법은 강한 놈들부터 잡아나가는 것이었다.
-zzzzzz
-ㅋㅋㅋㅋㅋㅋㅋ판다곰아재 방송감ㅋㅋㅋㅋㅋ
-하린 어떻게든 업혀서 가려다가 카운터로 뚜드려 맞아버렸네~
-판다아재 빌드업;;; 방송월클이자너. 내가보기에는 방송활동 중인 사람인 듯
-킹다곰갓재;;
-속보)하린 명치에 카운터맞아 실신해.
“...그래요 그쪽으로 가요....”
하린은 시무룩해 보이는 리액션을 하며 강서가 가리키는 방향을 터덜터덜 걸어갔다. 물론 계산된 리액션이었다.
-린무룩ㅋㅋㅋㅋ
-킹다아재ㅋㅋㅋㅋ갓직히 방금 빌드업은 초심자의 것이 아니었음.
-돌멩이>>>하린이자너
-ㅋㅋㅋㅋㅋㅋㅋ돌멩이 왜 자꾸 나오냐곸ㅋㅋㅋ
“...?”
강서는 여전히 하린이 왜 그러는 지 이해하지 못했다.
*
강서와 하린은 발걸음을 옮겨 다음 스테이지에 도착했다.
발걸음을 옮기는 동안에 하린의 시청자는 점점 불어나고 있었다. 방송을 보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다른 방에 소문을 퍼트려 시청자들을 모았기 때문이었다.
스테이지 진입을 알리는 초록빛 투명막 앞에서 하린은 다음 스테이지의 난이도를 관찰했다.
‘하나, 둘, 셋....여섯?’
생각보다 많은 숫자의 오키아들이 있었다. 다행히도 오키아들 중 다른 색의 오키아는 없었으나, 그것을 고려함에도 여섯은 많은 숫자였다.
오키아의 동굴은 총 5개의 스테이지로 이루어진 던전이었다. 일부러 난이도가 높은 쪽을 선택했지만 하린은 계속해서 높은 쪽을 선택하면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스테이지는 잠깐 정지하고 미리 이야기해서 쉬운 쪽으로 가야겠어.’
-난이도 급상승이자너;;
-???:그따위 오키아 여섯 마리 돌멩이 6개면 충분하다.
-일절만;;
-222222
‘여기는 이렇게 찔끔찔끔 나오는 구나. 이게 던전과의 차이인가보네.’
강서가 튜토리얼에서 세상사를 조금 엿보았다 하더라도 그저 겉핥기식으로 본 정도였다. 직접 경험하지 않은 세부적인 사항까지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강서가 일리아 군도에서 경험했던 오키아의 굴은 야생의 그것 그대로. 굴 전체의 오키아가 쉴세 없이 몰려들어서 꽤나 버거웠던 기억이 있었다. 그때 선택되었던 직업은 약초꾼. 싸움에 재능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몸이었다.
‘그때는 꽤 버거웠었는데, 이정도 씩이면 소소하니 좋네.’
난이도 급상승이라는 시청자의 반응과는 다르게 강서가 소소하다는 생각을 하는 동안 한 시청자가 강서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치킨집사장’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앞에 6마리 다 돌멩이로 잡으면 오늘 치킨 산다.]
-오오오, 치킨미션 빠른데?
-근데 아무리그래도 6마리는 좀 너무하지 않냐.
-벌써 치킨이라고? 치킨이면 원래 안 되도 되게 해야지.
-절.대.치.킨.해
치킨. 50000원 후원을 뜻하는 시청자간의 은어였다. 그리고 이 치킨을 내걸고 시청자가 미션을 던지면, 그 것을 치킨미션이라 했다.
하린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타이밍이라면...놓칠 수 없는 기회인데.’
<치킨미션>은 그 기본 액수가 크기도 하였지만 방송에서 <치킨미션>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치킨미션을 진행하면서 오는 긴박감과 치킨미션을 성공시켰을 때 일어나는 후원잔치 등등 치킨미션이 가지는 의미는 상당했다.
말하자면, 일종의 발화점같은 역할이었다.
“사장니임~ 감~사합니다. 치킨 잘 먹을게요! 판다아저씨 가능해요?”
“저거 돌멩이로 다 잡는 거요?”
“네, 돌멩이로요! 아까처럼 슈슉!”
“흠...치킨이 그렇게 맛있습니까?”
-ㅋㅋㅋㅋㅋㅋ판다아재 ㄹㅇ 방송 처음임?
-속보) 하린 치킨먹방으로 전향해.
-순진미 끝내주자너~
-ㅋㅋㅋㅋ킹직히 이정도면 하린이 게스트 아니냐.
“아니 그게 아니고요! 일단 가능해요 안 가능해요?!”
“....해보죠 뭐. 치킨을 그렇게 먹고싶다...”
“아니라니까요!!”
하린은 일부러 리액션을 더 격하게 하면서 채팅방의 열기에 불을 지폈다. 강서는 하린과의 대화를 마치고 천천히 돌들을 주워들었다.
하린은 강서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몰랐다. 다만 미션의 내용을 듣고도 여유있는 강서의 모습에서 알 수 없는 신뢰감이 들었다.
하린의 입장에서는 묘한 사람이었다. 갑자기 나타나 자신을 구해주더니, 지금은 망할 뻔한 방송도 구해주었다.
자신있게 달려든 던전이 오키아의 던전이어서 꼼짝없이 방중(방송중지)으로 구독자 수가 떨어지겠구나 싶었는데, 아무도 몰랐던 획기적인 정보들로 방송의 컨텐츠를 채워주었던 것이다.
‘거의 구원자네 구원자.’
-하린님 안 배워요?
-하린 배워야지. 언제까지 근무태만할 거야.
-킹직히 에너지볼트보다 킹팔매질이지;;
-어떻게 돌멩이 잘 던지는 지 알려달라고 물어봐주세요!
“판다아저씨!”
“네?”
“시청자분들이 어떻게 하면 돌팔매질을 잘 할수 있는지 물어보는데요!”
“돌팔매질이요? 흠...”
강서는 하린의 물음에 채팅창을 한번 훑고 돌을 손에 쥐었다.
“돌팔매질을 잘하는 법은 간단합니다.”
-오오, 판다아재 또 개꿀팁 푸나요.
-하린 방제 바꿔라 전혀 소소하지 않다. 갓직히 이정보들 팔았으면 서른마흔오백만원 벌었음;;
-판다아재한텐 소소할 수 있자너;;
-이것이 판다의 『소소함』...
-ㅁㅊㅋㅋㅋㅋㅋㅋ
강서가 입을 열자 채팅방은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앞서 강서가 말한 정보들이 모두 실전에서도 알기 어려운 꿀 같은 정보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하린의 방송은 현장에서 뛰고 있는 헌터들도 꽤나 많은 수가 보고 있었다.
의외로 헌터들은 인터넷 방송을 많이 보는 편이었는데, 던전은 중간중간 쉬는 시간을 가져줘야 해서 그 텀나는 시간에 정비가 모두 끝나면 인터넷 방송을 보곤 했다.
-두구두구두구두구
꿀-꺽!
시청자들은 너도나도 ‘두구두구’를 외쳐대며 강서의 입이 벌어지기만을 기다렸다. 하린 또한도 그랬다.
방송인이면서 동시에 헌터에 도전하는 그녀였다. 강서의 입에서 나오는 꿀팁들은 하린에게도 관심대상이었다. 그렇게 뜸을 들이던 강서의 입이 벌어지는 순간-
“많이 연습하면 됩니다.”
“...에?”
-...?
-??
-판다아재 너마저...노오오력이라니...
-갓직히 판다곰아재 천재파일 것 같긴 하지.
-돌멩이 잘던지는 법 = 천재가 됩시다.
김빠지는 소리였다. 사람들에게 이미 노력을 해야된다는 말은 타고나야 한다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노력으로 하면 된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었고, 사람들의 생각에는 노력으로 되지 않는 것이 분명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누가 그랬던가. 같은 말이라도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고.
강서의 <노력>이라는 단어에는 80만 번의 죽음과 가늠할 수도 없는 영겁의 시간동안의 노력이 담겨있었다. 강서는 그냥 뱉은 말이 아니었다. 강서의 돌던지기를 <노력>보다 더 잘 표현할 말은 없었다.
다만 그 이면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 말이 조금 거만하게 들렸을 뿐. 전 우주를 뒤져보아도, 강서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본 사람은 없었다.
강서는 돌을 집어 들며 채팅창을 보다 아련한 기분이 들었다.
지나온 세월이 머릿속에 스쳐갔기 때문이었다. 뭔가 입이 근질근질했다.
‘이제는...별로 상관없겠지.’
강서는 자신이 환생한다는 사실을 알린 상대가, 자신이 죽어 회귀함과 동시에 모든 것을 잊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었다. 그 이후로 누구에게도 이야기하게 않겠다 다짐했다.
하지만 이제 그럴 필요는 없었다. 강서의 회귀는 멈추었다. 들어줄 사람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보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었다.
회귀를 멈춘 강서의 인생에서, 그것이 가장 큰 변화였다.
이야기를 듣고 기억하며, 대화할 사람이 생겼다는 것.
“돌을 던지는 것만 연습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강서는 자신이 ‘다비드 하븐’이라는 이름으로 환생했던 때를 떠올렸다.
파론왕국이라는 국가의 족보없는 평민집안 양자였다.
그때의 수행과제는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왕이 되는 것이었다.
다비드로 환생해서 회귀4회차 즈음에, 시스템이 ‘돌’은 무기로 인식하지 않는 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돌팔매질을 연습했었다.
“제가 세는 것을 좋아해서 한 번 세어 보았는데 대충 5억 번은 던져본 것 같네요.”
-방송고수 판다아재 허언루트 탓자너;;
-역시 방송고수 캐릭터 설정력 무엇...
-5억 번의 돌던지기... 말이 됨?
-1초에 한번 씩 던져도 16년인데? 이건 불편러 등판 각이지.
-갓직히 구라자너;;
시청자들 중에 강서의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이들에게 돌 던지는 일은 일종의 ‘하찮은’일 이었고, 이것만 주구장창 연습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강서가 말한 횟수는 연습할 경우 한 사람이 평생 동안을 투자해도 반의 반 도달하기 어려운 숫자. 믿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린은 강서의 돌발적인 언행에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내가 제재시켜야하나?’
방송의 캐릭터를 잡으려는 시도는 좋았으나 하린이 보기에 강서는 <허언증 캐릭터>를 수행할만한 경력이 되지 못했다.
방송계에서 허언증이란 일종의 계륵이었다. 적당한 허언증은 분명 재미와 컨텐츠를 보장했으나 잘못하고 선을 넘어버리면 시청자들이 비난을 하며 방송의 분위기가 완전히 저하되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선을 지킨다는 것이 개인마다 기준이 다르다는 것. 그래서 BJ들도 <허언증캐릭터> 수행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하린이 보기에 강서의 ‘5억’발언은 선을 넘을 수도 있는 수위의 발언이었다.
-선 넘네;;
-재미도 감동도 없네요. 제가 허언을 좀 싫어해서
역시나, 시청자들 사이에서 강서의 과한 거짓말을 지적하는 댓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린이 안되겠다 싶어 나서려는 순간 강서의 입이 열렸다.
“그래서 방법은 딱히 알려줄 만한 게 없고, 얼마나 연습해야 하는지 알려드릴게요.”
그렇게 말하며 강서는 하린이 말릴 새도 없이 스테이지 안으로 발을 들였다. 하린이 뒤늦게 잡아보려 했지만 강서의 발은 이미 스테이지를 넘었고 스테이지가 활성화 되었다.
“잠깐! 저는 아직 준비가-”
[스테이지2에 진입하셨습니다.]
스테이지에 진입하자 오키아들이 강서를 감지하고 동시에 달려오기 시작했다. 오키아가 몬스터 중에 느린 편에 속하기는 했으나 6마리가 동시에 달려오는 모습은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강서는 돌멩이 하나를 앞으로 던지며 입을 열었다.
휙-
“천번을 던지면 이렇게 하나의 돌을 정확히 던질 수 있습니다.”
강서가 던진 돌은 그대로 날아가 가장 선두에서 뛰어오던 오키아의 눈알을 맞추었다. 오키아는 그 자리에서 뒤로 나가떨어지면서 기절했다.
-확실히 5억 번은 아니어도 잘 던지긴 하네.
-5천 번은 연습했을 듯. 깔끔하네.
거기 까지는 사람들의 반응도 일반적이었다. 확실히 강서의 돌던지기는 준수했으니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