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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소소한 꿀팁방송-2화 (2/191)
  • 2화. < ep1. [수정]소소한 삶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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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왔구나.

    회귀자. 이강서는 중얼거렸다.

    이강서는 지구에 일어난 균열과 함께 지구에서 사라졌었다.

    정신을 차린 곳은 공허한 공간이었다.

    공허한 공간속에서 어떤 이유에서인지 윤회의 저주를 받았고, 그로인해 수천 개의 세계, 수만 개의 인생, 수십만 번의 죽음을 맞이했다.

    황제, 천마, 국왕, 대공, 기사, 영웅, 용사, 악마, 성인, 무림맹주, 무사, 검귀, 장사꾼, 리치, 엘프 등등 안 해본 것이 없었다. 세계단위의 수행과제를 가졌다는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모든 인생을 살았다.

    수많은 생을 살고 강력한 저주의 굴레가 옅어져 풀리게 되며 지구로 돌아오게 되었다.

    아직 실감이 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수많은 죽음 속에서 감정이 마모된 것인지. 이강서는 특별한 감흥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다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본생(本生)으로 돌아오기 이전 이강서는 1년간 튜토리얼이라는 것을 겪었다. 이강서는 튜토리얼을 회상했다.

    튜토리얼은 수많은 세계와 인생을 넘나들며 망가진 이강서의 정신을 위한 시스템의 안배였다. 튜토리얼 속에서 이강서는 돌아올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볼 수 있었다.

    이강서가 기존에 살았던 방과 똑같이 생긴 방 안에서, 내려다보듯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볼 수 있었다. 1년간 지구의 이모저모를 탐방한 결과, 지구의 생태는 자신이 살던 시대와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균열 이후 생겨난 ‘던전’이 최대 이슈였다.

    지구의 생태는 이제 이 ‘던전’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이강서는 회귀 전에도 어디에 적을 두지는 않았었다. 고아로 태어나서 열심히 일해 자기 명의로 되어있는 투룸짜리 방을 하나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튜토리얼에서 나와 정신을 차린 공간도 그곳이었다.

    이강서는 침대에서 반쯤 몸을 일으키며 습관적으로 왼쪽 손목에 손가락을 데었다.

    “아..”

    하지만 스마트 워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튜토리얼 방에 풀어놓고 왔기 때문이었다.

    모든 지난 시간을 잊고 수행과제에서 말한 것처럼 ‘삶다운 삶.’을 살아보자는 생각에서 그리했던 것을 깜빡했던 것이다.

    조금은. 아련한 기분이 들었다.

    *

    이강서가 균열에 빨려 들어간 뒤 시대는 15년이 지나있는 상태였다.

    균열이 일어나고 곳곳에 ‘던전’이 생겨난 지 15년. 던전은 완벽하게 지구에 자리 잡았다.

    오히려 없으면 큰 일 나는 사회의 필수적인 부분이 되었다. 던전에서 나오는 마나석과 몬스터의 부산물은 인간의 산업에 크게 영향을 주었고, 몬스터 산업은 시장에서 가장 큰 파이를 차지하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그에 따라 헌터들도, 헌터들을 위한 산업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헌터는 나라에서 환영받는 확실한 신분이 되었다.

    게다가 균열을 겪으며 많은 사람들이 실종되고 사망처리가 되며, 신원확인의 절차가 간소화된 상태였다.

    그래서 강서는 어려움 없이 헌터의 이름을 팔아 신원정보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다만-

    “....고지서는 생각도 못했는데.”

    이강서 앞으로 고지서가 좀 많이 쌓여있었다. 얼추 이것저것 합쳐서 1000만원이 좀 안 되는 양의 돈이었다.

    나라도 균열로 적지 않은 피해를 받아 이런저런 모든 것들을 지원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산사람도 챙기기 벅찬 데 죽은 거나 다름없는 사람까지 챙기는 건 불가능 했던 것이다.

    “하하...그래도 다행이십니다. 유럽에서 여기까지 걸어온다는 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제가 말씀드린 부분 꼭 신경써주시고요-”

    이강서는 대충 균열당시 유럽에 있었는데 헌터 생활에 치여 살다가 이제야 한국에 돌아왔다고 둘러댔다.

    사실 원래 지구에서의 일은 거의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기 때문에 별달리 말할 것이 없었다. 그나마 맞아 떨어질 것 같은 헌터를 떠벌릴 수밖에.

    “아! 혹시 헌터 활동도 하셨다고 했죠? 제가 해외 제도는 잘 모르는데, 요즘 검증절차가 간소화 되어서 간단한 인증만 거치면 예비 단계이지만 헌터 라이센스도 바로 발급해드리거든요.”

    이강서는 딱히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을 하려 했지만 공무원은 신원확인증에 서류를 하나 붙여 함께 넘겨주었다.

    “이거 가지고 여기 옆에 가시면 각성판정기에 손만 대시면 됩니다. 아마 등급은 다시 올리셔야 할 거에요. 가장 낮은 단계는 이렇게 제가 지역복합센터에서 발급해 드릴 수 있지만 그 위 단계부터는 헌터협회에 직접 방문하셔야하고요.”

    기분좋은 웃음으로 설명해주는 직원에게 됐다고 하기가 무안했던 강서는 그가 시키는 데로 옆창구로 갔다.

    “어서오세요~”

    각성판정기 앞에서 전담 직원에게 서류를 건네자 각성판정기에 손을 대어 달라고 안내했다.

    “잠깐 숨 들이마시고 3초만 손만 대고 계시면 돼요~ 하나, 둘 됐습니다.”

    각성기를 확인한 직원은 강서에게 카드를 하나 건냈다.

    “여기서는 각성게이지 체크 같은 것은 어려워서, 아마 그런게 궁금하시면 협회쪽으로 가셔야합니다! 양성판정 나오셨구요. 9티어 헌터는 협회 인증을 거쳐서 던전에 출입할 수 있고요. 자세한 사항은 여기 팜플렛 읽어보시면 됩니다.”

    이강서는 라이센스를 대충 주머니에 쑤셔 넣고 복합커뮤니티센터에서 나와 고지서를 뒤져 보았다.

    ‘당장 일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이강서는 돈이 분명 필요하기는 하다는 생각을 했다. 직원이 당장 처리해야할 문서를 알려주기도 했고.

    투룸에서 쫓겨나는 일이 그렇게 유쾌한 기분이 아닐 것은 그 상황이 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강서는 튜토리얼 방에서 자신에게 금제를 걸어놓은 상태였다.

    영겁의 시간동안의 경험들과 힘, 기술들이 축적된 강서의 본신은 지구의 그 누구도 감당 못할 거대한 크기였다.

    강서가 원하는 것은 소소한 삶이었다. 헌터 생활을 하면 금방 돈을 벌수는 있을 것이었지만 평범한 일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본신의 힘 거의 대부분을 눌러놓는 8중 금제를 둘러놓았다.

    채용정보를 확인하러 자신의 투룸으로 돌아가는 길에 강서는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뭐지..?’

    -아니, 이게 무슨 일이래!

    -왜 던전이 여기 있는 거여!

    “던전?”

    사람들이 모여있는 공간은 공원의 한복판 이었다. 분수대 한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아니, 공원한복판에 던전에 생기는 법이 어디있어.”

    “그러게 말이야. 아이들이 잘못하고 들어갔다가 무슨 사단이 날라고.”

    “그러니까! 발견해서 다행이지, 헌터관리국은 도대체 뭐하는 거야.”

    인스턴트 던전이었다. 인스턴트 던전은 이렇게 가끔 예상치 못한 공간에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던전을 말하는 것이었다. 흔한 일은 아니었지만 있을 수 없는 일도 아니었다.

    “아니 근데, 아까 빨려들어간 그 처자는 괜찮은 거여?”

    “처자? 무슨 처자?”

    “아 왜 검은색머리에 피부 하얗고 이쁘장했는디...”

    “처자혼자 저기를 들어갔다고? 이 영감탱이야 그럼 진작에 신고부터 했어야지. 아이고 어쩌냐.”

    그 때, 던전에 가까이 온 강서의 몸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던전의 입구를 알리는 오묘한 빛깔에 홀린 듯이 다가갔다.

    -어?

    -어어? 저기 청년 어디가는 겨. 저길 왜 들어가!

    -이봐! 자네!

    알 수 없는 끌림이었다. 이강서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직였고,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던전의 안쪽이었다.

    [‘던전:오키아의 구덩이’에 입장하셨습니다.]

    던전은 동굴처럼 생긴 공간이었다. 대충 2M정도 되어 보이는 낮은 높이에 폭도 넓지는 않았다.

    “꺄아아악!”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강서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그리고 비명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했다.

    생각보다 나쁘지는 않았다. 전투는 불쾌감이 느껴질 줄 알았지만, 시스템이 주는 수행과제가 아니라는 것만으로 훨씬 나았다..

    비명소리의 주인은 밖에서 할아버지가 말한 여성인 것 같았다. 검은색 생머리에 새하얀 피부가 대조적인 여성이었다.

    강서는 몬스터의 정체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여성을 위협하는 몬스터의 정체는 <오키아>였다. <일리아 군도>의 9급 괴수. 외눈에 목이 없는 4발 짐승 형태의 괴수였다.

    “에너지볼트! 에너지볼트으! 아 왜 안 먹히는 거야!!”

    픽-

    여성은 마법을 사용하는 것인지 마법진을 그리며 영창을 했지만 그 마법들은 오키아에게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오키아는 거리낌 없이 여성에게 다가오는 중이었고 여성은 마법을 포기했는지 더 이상 주문을 외우지 않았다.

    강서는 바닥에서 돌을 하나 주워들었다.

    “오키아에게 무성(無性)마법은 먹히지 않습니다. 3클래스 정도까지 올라가면 물리력으로 피해를 입힐 수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쓰지 않는 것이 상책입니다.”

    “응...?”

    “오히려 이렇게-”

    강서는 주워든 돌을 강하게 던져, 오키아의 외눈을 맞추었다.

    끼엑!

    외눈을 맞은 오키아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부들부들 떨더니 땅에 고꾸라졌다.

    “에? 이렇게 간단히...”

    “외눈을 맞추면 바로 기절시킬 수 있습니다. 오키아의 신경이 눈에 몰려있기 때문에 가장 예민한 부위라.”

    강서는 천천히 걸어가 오키아의 외눈 아래에 있는 급소를 눌러 단번에 목숨을 끊고, 땅에 주저앉은 여성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 주었다.

    [오키아 한 마리를 처치했습니다.]

    “....”

    “아, 저는 박하린이라고 해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마터면...”

    하린은 강서의 손을 잡으며 활기찬 목소리로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엉덩이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고 뭔가 생각났다는 표정을 짓더니 왼손의 소매를 걷었다.

    ‘저건...’

    익숙한 것이었다. 영겁의 시간동안 강서와 함께한 스마트워치. 그것과 똑같이 생긴 물건이었다.

    “여러분! 박하린의 좌충우돌 던전기! 오늘도 사냥 성공했습니다!”

    “여러분...?”

    “오늘의 사냥 대상은 무려 ‘오키아’였는데요! 쉽지 않은 상대였지만 우연히! 여기 화면밖의 남성분의 도움으로 성공했습니다! 오키아 사냥의 핵심은 오키아의 눈을 공략하는 것이라고 하시네요. 많은 초보헌터분들이 간과하는 부분이지만 던전사냥을 들어올 때에는 몬스터에 대한 파악도 잊지 말아주세요! 저 처럼 그냥 들어오지 마시구요..헤헤  그럼 잠시 정비시간을 가지고 다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하린은 그렇게 말한 뒤 스마트 워치를 조작하고 강서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턱을 엄지와 검지로 쓰다듬으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이강서의 몸을 여기저기 살펴보았다.

    30여초를 그렇게 강서를 둘러보던 하린은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강서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저씨 혹시 방송에 관심 없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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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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