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 쓰는 밸런스 파괴범이 되었다-33화 (34/36)

제 33화 암시장의 상인(2)

진흙이 잔뜩 섞인 거무죽죽한 폐수가 고여있는 길바닥.

갖가지 오물질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찰박거리는 소리와 함께 신발에 달라붙었다.

지면에서 발을 뗄 때마다 껌딱지가 들러붙은 것마냥 찐득거린다.

눈으로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절로 올라오는 쥐와 벌레들의 시체에서는 악취가 산재하다.

비위생의 극치를 달리는 최악의 장소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거리를 가득히 메운 인파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곳의 이름은 '오염된 거리'.

통일한국에 위치한 암시장 중에서도 가장 활발한 거래가 이루어지는 범죄의 낙원이었다.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상점들의 행열 가운데, 주근깨와 메부리코가 인상적인 남자가 중얼거렸다.

"이런 씨팔. 사람이 많으면 뭐하냐. 내 가게에는 파리만 쳐 날라댕기는구만."

몇 년 동안 암시장에서 조그마한 불법 상점을 운영해온 춘식은 바닥에 가래침을 내뱉었다.

샛노란 거품이 이는 타액이 떨어져 튕겨오르자, 바로 옆 상점에서 빨간코의 덩치가 튀어나왔다.

월터, 그는 암시장에서 흔히 보이는 불법체류자였다.

"춘식이 이 새끼야. 내가 분명히 바닥에 침 뱉지 말라고 했지."

"목구멍에서 지 혼자 올라오는 걸 나보고 어쩌라고. 되려 삼킬까 그럼?"

"이런 모지리가··· 나가서 쳐 뱉으라고, 나가서! 내 가게에까지 튀잖아!"

월터의 아우성에 춘식이 흘끔 고개를 돌려 월터 쪽을 바라보았다.

단촐한 천막 하나가 전부인 그의 상점은 이미 곰팡이의 꽃들이 화원을 이루고 있었다.

춘식이 비웃으며 입을 열었다.

"야야, 눈구멍이 제대로 달려있으면 니네 천막부터 보든가. 이 씨팔 곰팡이로 뒤덮인 천막에 침 좀 튀긴다고 뭐가 달라져?"

"뭐 이 새끼야?"

씰룩거리는 입술을 매만지며 둘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허공에서 눈빛을 마주치기도 잠시, 춘식이 힘없이 오른손을 내저었다.

"알았어, 알았다고. 가래침이고 나발이고 나가서 뱉으면 될 거 아니야."

사실 춘식 또한 월터를 비웃을 입장은 아니었다.

주변 상점들이 모조리 그러하듯, 하나밖에 없는 그의 상점 또한 얼룩진 천막 하나가 전부였으니까.

발 하나 제대로 디디기 힘들 만큼 좁은 건 이쪽이나 저쪽이나 마찬가지.

쓰잘데기 없는 일로 힘을 빼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월터 또한 같은 마음이였다.

"···그래, 너나 나나 팔자 조진 건 피차일반인데. 침은 나가서 좀 뱉어주라고. 곰팡이 냄새랑 섞이면 사람 하나 잡아 죽이고 싶어지니까."

"큭큭, 병신새끼. 괜히 나대다가 흑수회한테 걸리면 팔다리 날아간다."

"오염된 거리 중앙부면 모를까, 이런 초입부까지 걔네가 오겠냐?"

상황 파악 못하는 월터의 입담에 춘식이 눈가를 찡그렸다. 그는 손가락으로 삿대질까지 해가며 핀잔을 놓았다.

"멍청한 거냐, 지능이 딸리는 거냐? 오늘이 무슨 날인지 몰라?"

"뭔 개소리야. 할로윈이라면 아직 한참 남았다고."

"할로원같은 소리하네. 블랙데이잖아, 블랙데이."

"어? 아··· 벌써 그랬나? 하기사 어쩐지 사람이 많더라."

블랙데이.

한 해 동안 가장 많은 사람이 몰리는 암시장의 축제 날.

굵직한 범죄 조직들이 단체 회담을 이루는 날이자, 수많은 불법 상인들이 불법 노점을 운영하는 날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오늘 밤에는 각종 장비나 아티팩트의 경매와 유명 상인들의 물건팔이까지 이루어진다.

때문에 세계 각지에서 국적을 가리지 않고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허나 춘식과 월터는 이미 여러 번 보아왔던 광경이었기에 큰 감흥은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 블랙데이는 매출을 뻥튀기 시킬 기회였을 뿐이었다.

이상하게 이번 블랙데이에는 단 한 명도 그의 상점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뭐가 문제지··· 가격을 더 깎아야 하나? 씨부랄 재료값도 안 나올 텐데."

춘식이 텅 빈 눈동자로 팔을 휘저으며 욕지거리를 씨부렸다.

돈문제로 인한 잡범죄가 쌓이고 쌓여 암시장 바닥까지 쫓겨났지만 빌어먹을 한탕주의는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복권이나 로또 당첨을 바라는 이들처럼, 그는 언젠가 대박을 칠 본인의 싸구려 제조 포션을 나무 상자 위에 조심히 진열했다.

싼 재료를 써서 그렇지, 춘식은 제조법이나 비율 할당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가 옅은 휘파람을 불며 포션병을 손등으로 닦아내던 중이었다.

"어이, 춘식. 저기 저 녀석 좀 봐."

"누구?"

"저기 회색빛 가면으로 면상 가린 놈. 딱 봐도 눈에 띄지 않냐?"

"누가 멍청한 돼지새끼 아니랄까봐. 암시장에 가면 쓰고 오는 놈들이 몇명인데 그걸··· 음?"

월터가 가리키는 손가락 방향으로 대충 시선을 던진 춘식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군계일학.

신분을 숨기고자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방문자들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았지만, 유독 둘의 시선 끝에 머물러 있는 남자는 후광을 내뿜고 있었다.

저녁 노을에 비추어져 잘게 빛나는 회색 머릿칼은 명문 귀족 가의 도련님을 연상케했고, 이목구비가 가려져 있어도 자로 잰 듯한 유려한 턱선은 완벽한 각도를 자랑했다.

둘은 그가 평범한 신분이 아닐 거라 직감했다.

월터가 머뭇거리는 사이, 춘식은 재빨리 유리병 하나를 집어들고 가면을 쓴 남자의 앞으로 달려갔다.

"아이고 나으리~ 보아하니 귀하신 분 같은데 사제 포션 하나 생각 없으십니까? 효과는 보증해드립니다!"

방금까지 구석 의자에서 축 쳐져있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가면의 남자는 침묵을 지켰다.

조바심이 난 춘식은 손에 든 유리병을 살짝 흔들었다.

유리 표면에 철썩이는 청록색 액체가 은은하게 반짝이며 존재감을 표시했다.

가면의 남자가 호기심이 쏠린 듯이 몸을 돌려 포션을 쳐다보자, 춘식은 신나서 입술을 열었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하지만 춘식은 가면 뒤에 감춰진 눈동자에서 느껴지는 무형의 압박감에 몸이 마비됨을 느꼈다.

'뭐, 뭐야!? 쳐다보는 걸로도 이 정도 압박감이라니, 흑수회의 거물이라도 되는 건가?'

잘못 건드렸단 생각에 춘식은 식은땀을 흘리며 떨리는 두 손끝을 공손히 모았다.

"죄, 죄송합니다 나리. 제가 너무 신난 나머지 주제도 모르고 그만···"

그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밋밋한 회색 가면은 그를 향해 방향을 틀었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은 눈동자가 춘식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 * *

국제 영웅 아카데미 생도의 신분으로 암시장에 입장하기란 까다롭다.

발각된다면 정학은 기본이고 자칫하다간 퇴학으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었다.

범죄의 낙원이라 불리는 만큼 암시장에서 행하는 모든 것이 학칙을 어기며, 동시에 범법 행위이기 때문이었다.

일전에 중간고사에서 사용할 불법 각성제를 사기 위해 암시장에 드나들었던 생도가 있었다.

그는 1학년 과정을 훌륭히 끝마친 2학년 엘리트였는데도 불구하고 정학을 면치 못했으며, 연이은 적발로 결국은 퇴학까지 당했다.

아카데미 측에선 해당 사례를 본보기로 생도들의 암시장 출입을 엄격히 제한했다.

양지와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는 장비와 아티팩트들이 돌아다니는 장소.

그런 만큼 길드원들은 필수로 드나들고, 가끔가다 협회의 직원들까지 눈치를 살피며 암시장을 서성거렸다.

왜 유독 아카데미 생도들만 암시장 출입에 엄격하냐고?

'그거야 뻔하지.'

정답은 바로 안전.

일개 애송이들이 마음 놓고 돌아다니기엔 위험하니까.

암시장에서는 거물 범죄자들과 각 조직들이 어깨에 힘을 준 채 돌아다닌다.

흔히 말하는 빌런들.

개중에서도 B급 이상의 위험인자들이 심심찮게 보이니, 아카데미 입장에서는 철저히 감독했다.

'하지만 나는 상관없지.'

나는 협회장을 뒷배로 둔 상태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아카데미 측에 걸린다면 정학은 아니라도 불이익은 있을 것이었다.

게다가 암시장의 상인들에게 생도임을 들킨다면 어떤 해코지를 당할지 몰랐다.

어떤 경우에서든 내가 생도라는 사실은 들키고 싶지 않았다.

"잠깐, 거기. 보아하니 처음이신 것 같은데, 맞나?"

낮게 가라앉은 관리자의 목소리.

속으로는 놀랐지만, 애써 티내지 않으려 목청을 가다듬고는 태연히 말을 받았다.

"처음은 아니다만. 문제라도 있나?"

"그런 것 치고는 이곳저곳 두리번거리던데 말이지. 만약 쥐새끼들 쁘락치면 각오해야 할 거다."

암시장은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니만큼 그 세력을 견제하는 기관들도 많았다.

주로 정부 산하의 정보원들이나 단속반 영웅들.

그에 따라 강한 무력을 자랑하는 관리자들이 수시로 입구를 순찰했다.

C급, 그리고 B급 빌런에 준하는 그들은 인간 막장들이 넘쳐나는 암시장의 질서를 관리하고 있었다.

이는 곧 그들의 강함을 나타내는 증거이기도 했다.

"쥐새끼라니 웃기는군. 나는 엄연히 비즈니스를 논의하러 온 고객이다. 여기 들고 있는 매물은 폼으로 보이나 보지?"

나는 차분히 쏘아붙이며 손에 든 상자를 들어보였다.

전설 등급 아티팩트, 본드래곤의 심장이 들어있으니 하급 관리자라도 범상치 않은 마력이란 걸 눈치챌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미간을 좁히며 상자를 응시하던 그가 이내 태도를 뒤집었다.

"미안하오. 아무래도 날이 날인지라 조금 예민했던 모양이군."

"신경쓰지 않는다. 블랙데이니 어쩔 수 없지."

"블랙데이를 노리고 온 건가 보군. 역시, 쥐새끼는 아니었나 보오. 내 사과드리지."

'인파가 많은 날이라 입구 관리자가 만만치 않다. 빨리 자리를 뜨는 게 좋겠네.'

관리자의 사과에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내가 오늘 찾아야 하는 사람은 단 한 명, 암시장의 도시 전설이라는 소문이 도는 만물상인.

만물상인의 존재를 공상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훨씬 많지만 그는 의심할 여지 없는 실존 인물이었다.

극도로 신출귀몰하며 겉보기에는 알아보기 힘들 괴짜일 뿐.

그러나 나는 그를 단번에 찾아낼 수 있는 방법을 알고있었다.

이 드넓은 암시장에서 오직 나만 알고 있을 그 방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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