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화 변화
그림자의 영역이 해제되면서 필드 내부에는 빛이 돌아왔다.
시야가 회복되자, 나는 멍하니 앞을 주시했다.
차마 형용할 수 없는 형태로 토막당한 마수들.
심지어 D급도 아닌 C급 마수가 저리 됐다는 충격이 온몸을 엄습했다.
C급 마수부터는 아랫 등급의 마수들에 비해서 특히나 신체 능력이 월등하다.
오늘 상대했던 '쇠가시 늑대'들은 내구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지만, 발달된 다리 근육을 기반으로 하는 빠른 기동력과 위협적인 꼬리와 발톱을 필두로 하는 매서운 공격력을 자랑했다.
'설령 클라디스나 올리비아가 상대라도 한 번쯤은 스칠 수도 있었겠지.'
그렇기에 더욱 놀라웠다.
미츠키가 두 번째로 시전한 그림자의 영역이 너무 어두워 상황을 제대로 본 건 아니었지만, 그녀는 두 마리를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피 한 방울조차 흘리지 않았다.
필드 하나를 통째로 덮을 정도로 진하고 깊은 그림자.
다른 유저들이 게임에서 주로 이용했던 루트가 미츠키의 빌런화라는 사실이 떠오르자, 괜한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미츠키를 바라보았다.
마수의 조각들을 발판삼은 우아한 모델을 연상케 하는 자세.
뭇 남자라면 홀리지 않을 수 없는 미모였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은 공포에 가까웠다.
푸르게 자란 풀이나 청명하게 빛나는 하늘 같은 주변의 잡다한 요소들은 취급하지 않은 채.
그 끝을 알 수 없는 깊이 가라앉은 눈동자가 오로지 나만을 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속에서는 더욱 커다란 두려움이 피어올랐지만, 내색하고 싶지 않아 어색한 척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저··· 미츠키. 그러니까··· 그래, 수고 많았어! 확실히 훈련이 효과가 있었나 보네."
"······"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단지 그녀의 입가에 그려진 질척한 미소가 더욱 높은 곡선을 이룰 뿐이었다.
말 그대로 공포 영화에서나 볼법한 장면에, 팔에서 소름이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쉬지 않고 말을 계속했다.
어색한 대화라도 좋으니 이 공간에 자리잡은 적막을 깨고 싶었다.
"그, 어때? 내 말대로 검을 버리고 싸우니까 그림자 능력은 숙련도가 올라―"
"응, 네 말이 맞아."
소름 돋는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유려한 곡선이 유지되고 있는 미츠키의 입가에서 고혹적인 미성이 들려왔다.
조급함과 우울함에 인위적으로 높인 듯한 목소리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았으니 무겁기만 하던 가면을 벗은 듯했다.
문제는··· 저런 변화가 영웅으로서 성장하는 미츠키가 아닌, 빌런화되는 루트와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그러면 완전 나가리인데.'
기껏 키워놓은 보험이 적으로 돌아서는 것은 절대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게다가 이 성장세만 유지한다면 무리 없이 클라디스를 따라잡을 수 있을 테고, 동시에 히메노 가의 당주가 될 수 있다.
모든 것을 잃은 채 좌절하는 빌런화 루트와는 현저히 다른 상황.
오히려 미츠키 본인이 원하는 것을 쟁취할 수 있으니 미래에 히메노 가의 당주 자리에 올라 훌륭한 영웅으로 발돋음 할 것이다.
사박.
사박.
땅끝에 스치듯이 천천히, 그리고 고요히 다가오는 발걸음.
미츠키가 발을 떼면 뗄수록 점점 둘 사이의 거리가 줄어들었다.
툭.
기어이 내 코앞까지 당도한 그녀가 당연하다는 듯이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뻗어 올린다.
빛에 반사되어 광택을 내뿜는 손톱이 내 어깨를 덮은 옷가지와 살포시 닿았다.
알 수 없는 감각에 소름이 돋았지만, 미츠키는 개의치 않고 손가락을 움직였다.
양 손의 끝마디가 어깨를 타고 내려가 팔과 전완근을 거치며 미끄러졌다.
이윽고 그녀의 손가락이 도착한 종착역은 다름 아닌 내 손가락이었다.
험한 일 한 번 해본 적 없어 남자답지 못한, 고운 손이었지만 도리어 더욱 마음에 드는 듯 미츠키의 미소가 진해졌다.
멈출 줄 모르고 손가락 마디마저 파고들어온 그녀의 손톱은 결국 내 손등에 가볍게 안착했다.
"어··· 미츠키?"
졸지에 둘이 손깍지를 낀 채 마주보는 상황.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에 놀라 황급히 손을 빼려고 힘을 주었다.
그러자, 미츠키의 미간이 강하게 찌푸려지더니 입가에 드리운 곡선이 하강했다.
그와 동시에 어마어마한 악력이 내 양손을 짓뭉겠다.
"아, 아아악! 뭐하는 거―, 크윽!"
급성장한 그녀의 신체 능력은 미각성자인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괴랄했다. 손이 반으로 접힐 것만 같은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식은땀을 흘리자, 그제서야 당황한 미츠키가 악력을 풀었다.
"···많이 아팠어?"
"너, 너같으면 안 아프겠냐··· 난 신체 강화 쪽이 아니라고···."
"이상하네. 그렇게 세게 잡지는 않았거든."
나는 괜히 찔리는 마음에 미츠키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눈을 돌렸다.
그럼에도 그녀의 표정에 도사린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직 안 끝났어. 저기 프레드릭이랑 최준혁이 널부러져 있잖아. 한 마리는 내가 처리할게."
"보면 볼수록 신기하다니까?"
미츠키는 휑한 몰골로 바닥에 나뒹구는 다른 팀원들에게는 먼지 할 톨만한 관심도 두지 않았다.
그저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은근하게 내 몸을 훑어보았다.
마치 길가의 스토커가 훔쳐보는 듯한 감각이었지만, 그녀를 자극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내색하진 않았다.
"그토록 강력한 각성 능력을, 그것도 여러 개를 사용하는 상식을 뛰어넘는 능력자가··· 정작 신체 능력은 미각성자에 겨우 미치는 수준이네?"
'이 짧은 시간에 내 신체 능력을 스캔했다고?'
물론 성장한 미츠키가 게임에서 보인 모습을 떠올린다면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상정 외의 성장속도였다.
아니, 성장이 아닌 무언가 트리거를 계기로 억압되던 능력이 해방된 느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여유 부릴 상황이 아니었다.
"미츠키··· 알고 있었잖아, 내가 남들보다 각성 능력에 의존치가 높은 타입이라는 건. 진짜 시간 없어."
"그래, 알고는 있었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각성자 수준일 줄은 꿈에도 몰랐는걸?"
"일단은 실습 훈련부터··· 아니, 이거부터 좀 놔!"
다시 한번 강하게 조여오는 악력에 저도 모르게 언성을 높이니, 미츠키는 그제야 순순히 깍지를 풀어주었다.
난 서둘러 남아 있던 마수 한 마리를 향해 눈길을 돌렸다.
그곳의 풍경은 꽤나 꼴볼견이었다.
바닥에 웅크린 채 경련하는 프레드릭과 바지에 오줌이라도 지린 듯 비릿한 냄새를 풍기는 최준혁.
쇠가시 늑대가 그 거대한 이빨을 최준혁의 머리에 박아넣기 전, 가까스로 핵을 발동할 수 있었다.
"터져라."
【'연쇄 폭발'을 발동합니다.】
- 퍼퍼펑!
위기일발의 상황 속에서 간신히 최준혁을 구하자, 뭉쳐있던 긴장감이 사그러들었다.
물론 그가 실제로 죽을 리는 없겠지만, 팀원 한 명이 리타이어되면 그 조에게도 영향이 컸으니까.
다만 의아한 건 그 누구보다 점수를 걱정할 성격인 미츠키가 뚱한 표정으로 여유를 부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본래대로라면 저 둘에게 온갖 욕설을 뱉어 내면서도 자진해서 나설 텐데···?'
오직 아쉬움이라는 감정만이 남아있는 그녀의 얼굴.
나는 받아들일 수 없는 위화감에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그림자의 각성 능력은 태생적으로 암 성향을 띄고 있는 만큼, 미츠키도 그에 영향을 받은 모양이었다.
나는 쓸데없는 심력 낭비는 그만하기로 했다.
그림자의 기세가 가라앉으면 그녀 또한 다시 냉정을 되찾을테니.
"프레드릭, 최준혁. 상태는 어때?"
"뒤, 뒤질 것 같으아아···."
"제발··· 빨리 회복실로 좀!"
끊임없이 피가 흘러내리는 최준혁의 어깨와, 뼈가 부서져 우그러진 늑골을 붙잡고 있는 최준혁.
둘의 상태는 생각보다 더욱 심각해보였다.
나는 재빨리 필드 시스템에게 클리어를 선언했다.
"끝났어. 팀에 부상자가 둘이나 있으니, 서둘러 조치해줘."
[확인이 완료되었습니다.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들부터 이송을 시작합니다.]
난데없이 솟아오른 들것.
나는 최준혁과 프레드릭을 옮기고자 있는 힘껏 낑낑거렸다.
하지만 각종 장비와 무거운 무기를 몸에 매고 있는 둘을 들기엔 내 근육은 현저히 부족했다.
하는 수 없이 기어들어가는 자존심을 무릅쓰고 미츠키에게 눈길을 돌렸다.
"저··· 얘네 드는 것 좀 도와줘."
도와달라는 한마디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녀의 눈꼬리가 길게 휘었다.
"알았어."
까딱.
미츠키가 허공에 대고 손가락을 몇 번 휘적거렸다.
손짓을 신호로 바닥에서 튀어나온 그림자가 둘의 팔다리를 잡고 들것에 내던졌다.
"아, 아아악···!"
"으윽!"
한순간 고통스러웠는지 몸을 움찔거렸지만, 곧장 둘은 의식을 잃었다.
[부상자들의 이송이 완료되었습니다. 그레이 생도님과 미츠키 생도님. 수고하셨습니다.]
귓가에 내리 흘러드는 딱딱한 기계 음성을 마지막으로, 눈앞에서 푸른 빛이 번쩍였다.
잠시 뒤 눈을 부시는 빛이 사그라들었다.
그러자 시야에 들어온 것은 각자 만신창이가 된 채로 필드에서 나온 A반 생도들이었다.
"수고했고, 오늘 일정은 이걸로 끝이다. 해산하기 전에 잠시···"
덤덤하게 이번 채점 기준에 관한 안내를 전달하는 태산호 교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조금이라도 빨리 드넓은 침대가 있는 기숙사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유는 분명했다.
평소라면 채점 기준이라는 말에 집중해서 교관을 눈여겨봤을 미츠키가, 여전히 나만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