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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쓰는 밸런스 파괴범이 되었다-26화 (27/36)

제 26화 재능의 개화

"씨발··· 더 이상은 무리야. 온몸의 관절이 부서질 것 같다고!"

프레드릭이 울부짖었다.

혼신의 힘을 다한 방어에도 지치지 않는 듯 계속해서 몸통을 날려대는 마수의 집념에 전신이 깎여나가고 있었다.

그가 원망 가득한 눈으로 최준혁을 노려봤다.

그러나 최준혁 또한 뾰족한 수는 없었다.

마력을 담으면 담을수록 그저 마수의 화만 돋구게 할 뿐.

점점 바닥을 드러내는 마력을 마지막까지 끌어모아 조금이라도 화살의 위력을 높이려 했지만, 그마저도 한계에 부딪혔다.

화살촉 끝에서 미약하게 흔들거리던 마력의 푸른 빛이 결국 완전히 꺼져버린 것이었다.

"나보고 어쩌라고! 넌 그나마 마력이라도 남아있지, 난 아예 없어. 애초에 1학년 수준으로 C급 마수의 가죽을 어떻게 뚫으라고!"

최준혁이 사납게 치켜세운 프레드릭의 눈초리를 정면에서 쏘아본다.

결국 마력고갈이 찾아와 힘이 풀린 두 다리가 애처롭게 후들거린다.

둘이 서로를 향해 책임을 미루는 와중에도 마수는 다시금 먹잇감을 향해 돌진했다.

화들짝 놀란 프레드릭이 서둘러 방패를 치켜들었지만, 이미 팔꿈치 관절이 빠진 상태.

손에 쥐고 있던 방패와 함께 지면에서 튕겨져 날아갔다.

- 쾅!

허공을 날던 프레드릭의 몸체가 다시금 지면과 맞닿는 순간, 둔탁한 파열음이 울려퍼졌다.

최준혁은 절로 찌푸려지는 눈가를 내버려두고 서둘러 자신의 귀부터 막았다.

직후 들려올 시끄러운 비명소리 때문이었다.

"-아아아아악!"

갈비뼈가 박살나는 고통에 프레드릭이 몸부림쳤다. 방패 뒷면을 지탱하던 그의 손가락들 또한 반대 방향으로 휘어져 있었다.

"이런 미친, 방패가 나가떨어지면 나는 어쩌라고!"

마력을 담지 않은 화살은 의미 없는 발악과도 같았다.

차라리 휘두르기식 타격이 더욱 위력적이었기에 최준혁은 울며 겨자 먹기로 활을 고쳐잡았다.

마치 야구방망이라도 들고 있는 듯한 우스꽝스러운 자태.

그는 비장한 표정을 지은 채로 눈앞의 상대를 주시했다.

거대하게 부푼 마구의 다리 근육에 힘줄이 솟아나며 수축한다.

파앙!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마수의 모습이 사라졌다.

"뭐, 뭐야!"

최준혁은 당황을 숨기지 못하며 좌우로 흔들리는 활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태산호 교관이 본다면 곧바로 웃음이 터져나왔을 만큼 멍청한 짓거리였다.

마수가 이내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에는, 이미 최준혁의 머리위에서 꼬리를 살랑거리며 흔들고 있었으니까.

이상함을 느낀 최준혁이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의 눈에 흐릿한 잔상이 비춰진다.

"···어?"

가시가 촘촘히 박힌 꼬리가 최준혁의 어깨에 틀어박혔다.

뾰족한 흉기가 살갗을 뚫고 뼈를 쑤지자, 그의 목청에서 신음이 터져나왔다.

"―아악! 아아아악!"

시뻘건 선혈이 흘러내리는 어깨를 부여잡고 발버둥쳤지만, 마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쿵. 쿵.

육중한 무게를 자랑하는 마수가 점점 가까워졌지만, 할 수 있는 것 따윈 아무것도 없었다.

뇌리에 깊숙히 침투한 공포에 최준혁이 바짓가랑이가 샛노란 액체로 물들었다.

결국 코앞에서 마주해버린 괴물의 아가리에 실신해버리기 직전, 그의 주변 공간이 암흑으로 물들었다.

* * *

미츠키가 실전에 강한 인간이라는 추측은 정확했다.

훈련할 때는 번번히 실패했던 '그림자의 영역'을 단번에 전개할 줄이야.

언제나 성공하기 직전에 벽에 막혀 실패하는 느낌이었지만, 검을 버린 채로 전투에 임하니 현저히 달랐다.

실시간으로 높낮이가 바뀌며 춤을 추는 그림자는 그칠 줄 모르고 그 크기를 키워갔다.

C급 마수 하나 겨우 덮을만한 정도에서, 이 넓은 필드의 반절까지.

'확실하다. 게임에서보다 성장이 빨라!'

평생을 함께하던 검이 잠시 떠나간 그녀의 두 손은 유난히 허전해보였다.

하지만 그림자는 그 반대였다.

평소와는 비교하기조차 민망한 강렬한 기세.

그것은 불안정한 대신, 자유로웠다.

'검'이라는 족쇄에서 해방된 미츠키의 각성 능력이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었다.

- 키아아아!

기습으로 쓰러졌던 마수 한 놈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방금 날렸던 일격은 C급 마수 하나를 완전히 처리하기엔 부족한 위력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약하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충격의 피해가 남아있는 듯, 다시 일어난 놈이 균형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린다.

그리고 미츠키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만 질척거리고, 죽어."

현란한 움직임으로 마수의 발톱을 피하던 미츠키가 지면에 눌러붙은 그림자 아래로 모습을 감췄다.

일류 암살자를 떠올리게 하는 기현상에 꼬리를 휘둘러대던 두 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 크르륵?

놈들이 코를 킁킁거리며 이 잡듯이 미츠키를 찾아 헤맸다.

그럼에도 흔적 하나 잡아내지 못하자, 결국 내게로 눈길을 돌렸다.

"미안한데 아직은 내 차례가 아니라서."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바닥에서부터 거대한 그림자 칼날이 빠르게 날아갔다.

마수의 측면을 향해 궤적을 그리는 금속 빛깔의 실선이 공기를 갈랐다.

촤악!

사방으로 산개하는 마수의 핏물.

두 놈은 치밀어오르는 고통과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며 흉기와 같은 꼬리를 휘둘러댔다.

하지만 무의미한 발악이었다.

모서리부터 서서히 튀어나오는 그림자 칼날들이 날카로운 예기를 발하며 떠오른다.

차분하고 조용하게 하나씩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칼날.

마수들은 눈치채지 못하고 씩씩거리며 발을 쿵쾅대고 있었다.

- 스르릉.

10개의 칼날 중 마지막 조각이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미츠키 또한 그 아름다운 외형을 자랑하며 나타났다.

"와···."

그야말로 게임 속에서만 보던 광경이었다.

총탄과도 같은 속도로 쇄도한 그림자 칼날들이 마수들의 육체에 들이박혔고, 그에 그치지 않고 더욱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생살이 갈려나가는 격통에 놈들이 괴성을 질러댔다.

'육성 효과 한 번 확실하네. 역시 다들 이맛에 캐릭터 키우는 건가?'

나는 마음 가득히 차오르는 뿌듯함을 만끽하며 미츠키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표정에는 여지껏 본 적 없는 미소가 자리해 있었다.

새로운 영역에 발을 디뎠다는 고양감과 부족했던 자신의 모습을 극복했다는 희열감.

평생 겪어본 적 없었던 '기쁨'이라는 감정이 한데 버무러져 미츠키의 이목구비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어?"

일말의 예고도 없이, 미츠키의 손끝이 사시나무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여파였을까, 그림자의 영역이 희미해지며 색을 잃어갔다.

무자비하게 마수들을 후벼파던 그림자 칼날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을 저지하던 무기들이 소멸되자 잔뜩 열 받은 마수들이 사나운 발톱을 꺼내들었다.

"아, 안돼! 이럴 수는 없어!"

손끌에서만 머물 것 같던 떨림이 빠른 속도로 미츠키를 장악해간다.

손에서 팔로, 팔꿈치에서 어깨로, 마지막으론··· 몸 전체까지.

그녀의 인생에 있어 처음으로 얻은 고양감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햇살을 연상케 하는 미츠키의 환한 웃음 또한 빛보다 빠른 속도로 사그라들었다.

이윽고 그녀의 내면을 차지한 것은 무력감.

또다시 뒤처지고 실패할 것이라는 자기혐오였다.

하지만 저 현상은 미츠키의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응축되어 있던 그림자의 능력이 한순간에 터져나와 통제를 벗어났어.'

미츠키의 각성 능력, '그림자 마스터리'는 잠재력으로만 따진다면 오히려 클리디스를 능가한다.

최종적으로 성장한다면 '왕'급에 입성한다 해도 무리 없을 정도.

다만, 그림자에 한해서는 절대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만큼 시전자에게 가해지는 부담감 또한 상당하다.

아무리 한 달간의 집중 훈련으로 실력을 끌어올린다 한들 그림자의 영역을 마음껏 다루는 것은 불가능했다.

오히려 저만치나 보여준 미츠키의 활약이 뛰어났으면 뛰어났지, 절대 모자라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미츠키가 느끼고 있을 부정적인 감정들은 그녀를 다시금 바닥으로 끝어내릴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네."

나는 재빨리 발을 떼 어금니로 입술을 찢어대는 미츠키에게 걸어갔다.

접근을 눈치챈 듯, 그녀가 노기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제는 신경써줄 필요 없어. 너도 나같은 년한테 시간낭비 그만하―"

"조용히 하고, 집중해. 반드시 끝까지 도와줄 테니까 절대 포기하지마."

"···!"

망연자실해 축 늘어진 어깨에 손을 얹어 따뜻한 온기를 나눴다.

그러자 소나기처럼 눈물을 흘러보내는 눈동자가 흠칫했다.

【'투시안'을 발동합니다.】

【'감각 동기화'를 발동합니다.】

미츠키의 통제를 벗어난 그림자의 감각이 차츰 회복되기 시작했다.

바닥을 향해 꼬라박혔던 그녀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떠지며 생기를 되찾았다.

"아, 이건···!!"

- 촤아아!

전신을 휘감았던 떨림이 다시금 제자리를 찾아간다.

몸 전체에서 어깨로, 어깨에서 팔꿈치로, 그리고··· 팔꿈치에서 손끝으로.

그리고 미츠키의 아리따운 손끝에 응축된 떨림은 곧 거대한 마력으로 전환되었다.

밤하늘보다도 진하고, 흑요석보다도 찬란하게 반짝이는 그림자의 장막.

예술품보다도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기도 잠시, 다시 한번 바닥으로 스며들어 대낮의 햇빛을 집어삼켰다.

"하아, 하···."

미츠키가 차분히 숨을 들이마시며 헐떡이던 호흡을 가라앉혔다.

그녀는 눈을 감은 상태에서 느릿하게 숨을 고르며 발밑에서 꿈틀거리는 그림자를 느끼는 듯했다.

'뭐지? 이상할 정도로 움직임이 없는데?'

분명 '감각 동기화'는 효과가 있었다. 그런데도 어째서 움직이지 않는 거지?

열심히 다리를 놀리며 접근해온 마수들이 아가리를 벌리며 포효한다.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지만, 만약을 위한 보험이었던 나조차 '감각 동기화' 도중이라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잠깐만···! 이건 좀 위험―?"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 눈을 질끈 감은 그때, 장인이 심히 공들여 세공한 듯한 미츠키의 눈매에서 자줏빛 이채가 흘러나왔다.

그와 동시에, 필드 전체를 뒤덮을 크기의 그림자의 영역이 전개되었다.

필드에는 갖은 인공 조명이 가득했지만, 내 감각 동기화로 강화된 미츠키의 능력은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완전한 어둠이 공중을 유영한다.

깨우면 안될 것을 깨운 듯한 불길한 감각에, 팔 표면에 소름이 오른다.

잠시 후 그림자의 영역이 걷히고 내 눈에 들어온 광경은 오직 하나.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이 난도질 당한 마수들의 시체 위에서 나를 향해 질척한 웃음을 짓고 있는 미츠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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