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화 긴급 테러 발생
내가 얻고자 하는 아티팩트 두 개는 요정의 팔찌와 백귀의 유령검.
그중 요정의 팔찌는 청천 길드의 지하 창고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인천에서 열렸던 대형 게이트 사건에서 이시아 길드장이 직접 게이트를 공략하고 챙긴 전리품이었다.
아무런 제한 없이 순수하게 마나 감응력을 증강시켜주는 효과를 지녔기에 요정의 팔찌는 높은 등급을 책정받았다.
그러나, 요정의 팔찌가 지닌 효과에 대부분의 영웅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마나 감응력을 높인다고 해서 각성 능력의 화력이 강해지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아트팩트의 효과를 보기 위해선 각성 능력이 '마나' 그 자체와 연관된 연관되어 있어야 했다.
대표적으로 클라디스의 경우, 검기를 사용하기 위해선 마나를 직접적으로 다루어야 했다. 그 숙련도가 올라갈수록 검기의 강도도 증가하는 원리였다.
불을 다루거나 단순히 신체 강화가 능력인 이들은 마나 감응력이 높아져 봤자 별다른 장점이 없었다. 하나 있다면 단지 기분이 조금 더 상쾌해진다는 정도.
'반면, 본드래곤의 심장은 그 가치가 차원이 달라.'
나는 조심스레 턱을 매만졌다.
케르베로스 토벌에 협조하겠다고 큰소리를 치긴 했다만, 충분히 납득할만한 설득이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요정의 팔찌야 문제가 없지만··· 본드래곤의 심장이라."
A급 마수인 본드래곤의 사체에서 일정 확률로 획득할 수 있다는 심장.
제 1공략팀이 중국 파견 때 마주했던 본드래곤을 사냥하고 얻은 부산물이었다.
워낙에 희귀한 종류인데다 죽음 이후에는 주로 심장이 소멸되는 마수였기에 전설 아티팩트 중에서도 최상위 등급이 매겨졌다.
무리한 요구일 수도 있었지만, 유령검을 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아티팩트였다.
이시아가 소매를 걷어올려 팔짱을 끼었다.
"먼저 물건을 요구하셨단 뜻은 그것이 지닌 가치 또한 잘 알고 있다는 거겠죠?"
"물론입니다."
"후······."
그녀는 살짝 눈을 감은 채 몇 분 가량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다시 부릅뜨고선 업무실 중앙 책상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첫 번째 서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볼펜과 함께 내밀었다.
"이시아 길드장님, 이건 뭐죠?"
"계약서입니다."
"케르베로스 척살대 건이군요."
이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한 토벌전이니만큼, 그레이 군처럼 강력한 각성자의 도움은 큰 의미가 있을 거라 믿고 있어요. 제가 직접 본 것도 있으니 굳이 증명하실 필요도 없고 말이죠."
"그럼 본드래곤의 심장은···?"
"다음 주 안으로 받을 수 있을 거에요."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복잡할 거라 생각했던 일이 순조롭게 풀리니 꽤나 행운이었다.
"대신 당장 이 자리에서 명시된 고용 계약서에 서명을 하는 조건으로. 어때요?"
"좋습니다."
그 아티팩트들을 받을 수만 있다면 서명이야 얼마든지 가능했다.
애초에 떼먹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까.
"서명이 들어간 계약서만큼 확실한 신뢰의 증표도 드무니까, 이해해주는 거죠?"
"그럼요, 오히려 제가 감사하죠."
혹시라도 마음이 바뀔까 걱정하며 성급히 서명을 끝내자 그녀가 싱긋 웃음을 지으며 악수를 건넸다.
"이렇게 그레이 군과 좋은 관계를 유치하게 되서 마음에 드네요."
"네, 앞으로 잘 부탁드―"
- 쿠콰콰쾅!
건물 외벽까지 뚫고서 귓가를 강타하는 강렬한 굉음.
그와 함께, 폭발음을 앞세운 거대한 충격파가 몰려들었다.
기분 좋게 악수를 하던 중 몰려드는 충격에 난 방안의 바닥을 굴렀다.
"대체 무슨···!"
"길드장님!! 큰일입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다급히 뛰어들어온 비서의 안색은 창백하게 질려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무언가 단단히 틀어졌음을 직감했다.
"국립 유물 박물관에 대규모 테러가 발생했답니다!"
"젠장!"
육안으로는 포착할 수도 없는 속도로 도약한 이시아의 신형이 문 너머에서 사라졌다.
뒤따라 들어온 주영흔 과장이 내게 소리쳤다.
"그레이 생도님도 빨리 피하셔야 합니다! 현재 인공섬 전체에 비상사태가 선포되었습니다."
"과장님, 도대체가 어떻게 된 상황입니까?"
"A급 마수 3마리가 동시 출현하여 박물관을 점령했답니다!"
'시발?'
국립 유물 박물관을 노린 대규모 테러.
우연의 일치라기엔 너무도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난 A급 괴수 3마리.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내 뇌가 강렬히 거부하고 있었다.
'말도 안돼. 어째서···?'
지금 일어난 테러는 적어도 몇 개월은 뒤에 예정된 에피소드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마도왕과의 보스전 직전에 있을.
"미치겠네!"
"이럴 때가 아닙니다. 서두르세요!"
"주영흔 과장님! 당장 절 그곳으로 데려다주세요! 빨리요!"
"네?! 절대 안됩니다! 영웅들도 죽어나가고 있다고요. 게다가 전 가족이···"
안그래도 바쁜데 말꼬리 늘릴 여유 따위는 없다.
주머니에서 살짝 삐져나온 차키를 낚아채고는 엘리베이터로 뛰어갔다.
"어, 어어?? 잠시만요!!"
애꿎은 열림 버튼을 연타하며 지하주차장에 도착해 차키를 눌렀다.
삐빅, 하고 울리는 소리를 향해 급히 발걸음을 재촉했다.
'국립 중앙 박물관의 위치는 알고 있어.'
대학에 들어가기 전 운전 면허는 이미 따두었기에 주행은 문제없었다.
난 빠꾸 없이 급가속으로 악셀을 밟아댔다.
'그놈들이 왜 벌써 움직이는 거지?'
지금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있다지만, 이곳은 국제 영웅 아카데미가 위치한 '페이나 섬'이다.
온갖 영웅 길드 사옥이 존재하는 지역이니 상주하는 영웅들의 숫자도 압도적으로 많았다.
괜히 아카데미가 스토리 상에서도 안전 지대로 꼽히는 게 아니었다.
다만, 진짜 문제는 테러의 목적이었다.
전설 등급 아티팩트인 트롤왕의 경갑.
내 핵심 생존 장비 중 하나로 점찍은 놈이 빌런들의 손아귀에 떨어지는 꼴은 절대 볼 수 없었다.
게다가 트롤왕의 경갑이 악용된다면 끔찍한 참사가 일어난다.
테러범들이 완성하고자 하는 무기의 재료이니 만큼 반드시 내 손에 넣어야 했다.
난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닦으며 다시금 악셀을 밟았다.
* * *
도착한 테러 현장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길바닥에 내장을 쏟으며 널부러진 시체들을 보자 자연스레 구토감이 치밀어올랐다.
불행 중 다행히도 마도왕 사건 이후 '절대 정신'이 자동으로 발동되는 일은 없었다.
이미 비슷한 광경을 한 번 겪은 적 있었기에 간신히 날뛰는 맥박을 가라앉혔다.
'테러 한복판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이 마당에 그 귀중한 횟수를 날려버렸다면 지금쯤 땅을 치고 있겠지.'
건물을 잔뜩 둘러싼 채 떠다니는 초록색 가스.
나는 거칠게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팔목 부근이 늘어져 흐물거렸는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최대한 잡아당겨 면적을 늘렸다.
얼굴 하관을 덮기엔 충분한 크기였다.
마스크 대신 옷으로 입가를 가리며 국립 중앙 박물관 입구로 다가갔다.
'역시 그 빌런인가.'
피부가 녹아내리는 맹독성 가스에 C급 영웅은 접근할 엄두도 못 내고 있었고, B급 영웅 또한 간신히 상황을 통제하는 중이었다.
저 정도 독기를 다루는 각성자는 드물었다.
A급 빌런, '맹독마' 퍼시발 렌토.
마도왕이 총애하던 측근 중 하나였다.
"망할··· 마도왕이 죽었다고 너무 안일했어."
마도왕은 5명의 왕 중에서는 최약체로 평가받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왕들에 비해도 밀리지 않는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다.
구심점이 사라짐으로써 약화되긴 했겠지만, 한순간에 와해될 수준은 아니었다.
이 테러로도 알 수 있듯이, 참모와 간부들은 아직 건재할 가능성이 컸다.
- 쩌어엉!
일전에 건물에서 들었던 굉음을 능가하는, 강력한 두 힘의 충돌 소리.
공기를 손으로 잡아찢는 듯한 파공음에 발을 딛고 있던 땅마저 흔들릴 정도였다.
"꺄아아악! 사, 살려주세요!!"
"아악! ㄴ, 내 다리! 내 다리!"
"시민분들 모두 해당 방향으로 대피해주세요! 반복합니다! 시민분들 모두 이쪽으로―"
새빨간 불길이 구름에 닿을 듯 높이 치솟고 시퍼런 독기가 거리를 활보하는 광경은 마치 지옥과도 같았다.
C급 영웅들은 시민들을 대피시키는데 총력을 기울였고 B급 영웅들은 A급 영웅들을 보조하며 마수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거기 너! 아카데미 생도인가? 위험하니 시민들과 함께 뒤로 물러서!"
도성 길드 소속으로 보이는 영웅이 나를 발견하고는 호통쳤다.
하지만 그대로 무시하고 정문을 향해 뛰어들어갔다.
어느새 주변을 둘러싼 짙은 암녹색 맹독이 체내로 침투하기 위해 스며들어왔다.
"독을 막아라."
【'만독불침'을 발동합니다.】
만독불침은 모든 종류의 독에 대한 면역력을 부여해주지만, 탁월한 성능에 비해 지속시간이 짧은 것이 흠이었다.
주어진 시간 안에 퍼시발 렌토를 쓰러뜨리고 트롤왕의 경갑을 챙기려면 서둘러야 했다.
'각 길드의 주요 전력들은 대부분이 바깥의 마수들에게 발이 잡혔네.'
박물관 내부에는 훨씬 지독한 독기가 사방에 도사리고 있었다. 오죽하면 몸에 걸친 옷가지가 하나 둘씩 서서히 녹아내릴 정도였다.
어중간한 등급의 영웅들이 들어온다면 잠시라도 버티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함부로 핵을 쓸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자칫하다 건물이라도 붕괴되면 내부의 독기가 밖으로 빠져나갈 테니까.
시전자인 퍼시발 렌토를 먼저 죽여서 맹독 능력을 먼저 해제해야 한다.
나는 손에서 이는 번개의 감촉을 떠올리며 중앙의 유물 관리실을 향해 다리를 박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