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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쓰는 밸런스 파괴범이 되었다-13화 (14/36)

제 13화 본격적인 연결고리(1)

단번에 대련장을 뒤덮은 폭발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태산호 교관의 등 뒤에서 일어난 폭발을 시작으로, 기관총이 연사되듯 무분별한 공중 폭발이 일어났다.

- 콰광! 콰과광!

귓가를 강타하는 폭발음과 쉴 새 없이 타오르는 불길들.

그 자리에 있던 생도들은 순간 빌런들의 습격으로 오인하고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뭐, 뭐야! 갑자기 폭발이라니? 설마 아카데미에 테러라도 일으킨 거야?"

"하지만 빌런들이 아카데미 내부에 침입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우왕좌왕하는 생도들.

몇몇 이들은 이미 반격할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지만, 그마저도 긴장을 숨키지 못했다.

싸늘한 기운을 내뿜던 미츠키 역시 재빨리 검을 뽑아 나타날 적을 향해 치켜세웠다.

하지만 폭음만이 계속해서 울려퍼질 뿐, 그 누구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제서야 생도들은 다시금 대련장으로 눈을 돌렸다.

"···말도 안돼. 설마 지금 이 폭발을 그레이가 일으켰다는 거야?"

그들의 시야에 태산호 교관을 향해 손을 뻗은 채로 폭발을 제어하고 있는 내가 들어왔다.

자칫 테러라고 착각할 수 있는 연쇄 폭발은 정작 교관의 주변에서만 머물고 있었다.

"크으윽!"

데미지가 생각 이상인지, 몸을 비틀며 전신을 충격파로 감싸는 태산호 교관.

일시적인 방어였기에 효과는 미미했지만, 예고도 없이 일어난 기현상으로부터 빼앗긴 정신은 간신히 되찾은 듯 했다.

"···2차 각성자라니, 기가 차는군. 최강의 방패와 창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니."

그는 숨을 헐떡이며 마력을 정돈했다.

나 또한 연쇄 폭발의 지속 시간이 끝자락에 다다른 상황.

한쪽에서는 고밀도의 마력이 끓어오르기 시작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여지껏 본 적 없었던 커다란 붉은 점이 빛을 내며 폭발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절정에 치다른 각 기세가 충돌하려는 그때.

엘게나 학장이 거대한 불기둥을 소환하며 대련장에 난입했다.

"그만!"

족히 수십 미터는 되보이는 거대한 불기둥의 존재감에 들끓던 기세가 가라앉았다.

'불기둥이라··· 그로고보니 엘게나 학장의 이명이 화마였지.'

불을 다루는 악귀라는 별칭의 소유자답게 그 화력은 대단한 열기를 자랑했다.

마력을 다루지 못해 신체 강화를 못하는 내게 있어선 뼛속같이 뜨거워지는 느낌이었다.

"보아하니 대련이었던 것 같은데, 이제 충분해. 어디 건물이라도 하나 날려먹어야 만족할 셈이야?"

그녀가 엄한 목소리로 태산호 교관을 질책했다.

내 쪽을 향해서도 엄격한 눈초리를 향했지만, 그건 그저 연기였다.

엘게나 학장은 불기둥을 거둔 후 즉각 다가와 걱정어린 어조로 내 몸가지를 살폈다.

"그레이 생도, 괜찮은 거야? 어디 아프거나 한 곳은?"

"괜찮습- 윽!"

전혀 문제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대련이 끝나자마자 온 몸에 힘이 빠지며 심한 어지러움이 엄습했으니까.

'고밀도로 휘몰아치는 마력에 너무 오래 노출되어 있었어.'

이전 마도왕과의 결전 때에는 '절대 정신'이 마력으로 인한 두통을 막아주었지만, 이번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뇌리 깊숙히 울릴 정도의 어지러움이 찾아올 줄은 몰랐으니.

아무리 게임을 오래 플레이했더라도 각성조차 하지 못한 일반인을 캐릭터로 키운 것은 아니었기에 당연한 수순이었다.

몸이 점점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자, 태산호 교관 역시 조심스럽게 다가와 나를 부축했다.

"너무 무리했나 보군. 천천히 몸에 힘을 빼고 마력을 정돈해라, 그레이 생도."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내게는 불행하게도 정돈할 마력이 없었다.

결국 나는 눈을 감은 채 바닥으로 쓰러졌다.

"뭐야?! 그레이 생도, 그레이 생도! 괜찮은 건가?"

"태산호 교관, 대체 얼마나 밀어붙였길레···! 빨리 회복실로 옮기도록 해요!"

'시끄러워···.'

정신을 잃은 것은 아니었기에 호들갑을 떠는 둘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들렸다.

덕분에 어지러움도 더 심해졌고.

"그레이 생도는 내가 직접 회복실로 데려갈게요. 태산호 교관은 남아서 대련을 마무리하세요."

아니, 그럴 수는 없었다.

클라디스와 미츠키를 비롯한 주조연들의 현재 실력을 확인해야 했으니까.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시야를 회복한 뒤, 당장이라도 날 회복실로 옮기려하는 엘게나 학장을 말렸다.

"학장님, 잠시만요. 이제는 괜찮습니다. 저는 마저 남아서 다른 생도들을 관전하고 싶습니다."

"그레이 생도, 지금 제대로 일어서지조차 못하고 있어. 그러다 괜히 후유증이라도 생기면···."

"걱정해주셔서 감사하나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단순히 체내에 마력이 존재하지 않기에 생긴 거부 반응일 뿐, 부상을 당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 또한 알고 있었기에, 한숨을 내쉬며 고집을 꺾었다.

"당사자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별 수 없지만··· 대신 본인의 몸을 소중히 여기도록 해."

그녀의 눈동자가 잠시지만 아련하게 흔들렸다.

'아마 실험체로 쓰였던 자신의 딸이 생각나는 거겠지.'

엘게나 학장이 그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나자, 난 태산호 교관의 부축을 받으며 대기석으로 돌아왔다.

"후우···. 감사합니다, 교관님."

"통증이 심해진다면 언제든지 회복실로 가도 된다. 명심하도록."

진중한 목소리로 타이르는 그의 모습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몇 번 없을 대련 구경을 놓칠 수는 없지.'

목을 뒤로 젖히고 크게 심호흡을 반복하자, 두통이 점점 사그러들었다.

핵을 발동시켜 즉시 치료할 생각도 했지만, 오늘 하루 사용할 기회가 1번 밖에 남지 않았기에 아껴두기로 했다.

스토리가 진행되고 있는 이상, 언제 무슨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자, 다음 두 사람 올라오도록!"

빠른 걸음으로 대련장으로 올라간 태산호 교관이 대련을 재개하자, 내게로 잔뜩 몰려있던 시선이 제자리를 찾아갔다.

덕분에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관전할 수 있었다.

"지금 싸우는 사람들, 어떻게 보고 있나요?"

별 생각 없이 잡생각을 하며 구경하던 도중, 옆자리에서 청아한 음색이 들려왔다.

은은하게 느껴지는 라벤더 향.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자, 올리비아가 입가에 미소를 그린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글쎄, 굳이 한 마디 하자면··· 다들 실력들이 쟁쟁하다는 것 정도려나."

"푸, 푸흐! 푸하하하!"

차가운 성격으로 알려진 성격과는 어울리지 않는 깔깔거리는 웃음소리.

그녀가 이내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아, 미안해요. 무뚝뚝하다고 생각했는데 꽤 재치있는 성격이었네요?"

"음, 방금 한 말이 그렇게 웃겼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설마 진심으로 한 말이었어요?"

진심으로 한 말이라니.

그럼 거짓말이라도 했을 거라 생각한 건가?

"그레이 씨와 태산호 교관님이 보여준 싸움에 비해서는 장난질이나 다름없잖아요. 이거 참, 겸손한 건지 아니면 기만적인 건지. 후훗."

"내가 그 정도로 꼬인 성격은 아니야. 솔직한 감상이었을 뿐이니까."

"솔직한 감상이라."

재미있네요, 라고 중얼거린 올리비아는 다시금 대련장으로 눈길을 돌렸다.

바로 이전 차례, 이름 모를 두 생도들의 대련에서는 지루함으로 가득찼던 그녀의 두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드디어 두 번째로 기다리던 대결이 나오네요. 클라디스와 미츠키라."

기대된다는 듯 손깍지를 끼는 그녀가 뜬금없이 내게 물어왔다.

"혹시 궁금하지 않아요? 왜 저 둘의 대결이 두 번째인지?"

글쎄.

그걸 내가 어떻게 알까.

무슨 뜻이냐는 시선으로 응시하자, 작은 웃음소리와 함께 그녀가 대답했다.

"바로 당신이요. 태산호 교관님이 직접 나설 줄은 몰랐지만요. 하지만 덕분에 훨씬 대단한 구경을 했네요."

'··· 올리비아 그란데가 원래 이런 성격이었나?'

게임 내에서 불렸던 그녀의 별명은 다름 아닌 '얼음 마녀'.

히로인 시점에서 플레이 할 수는 없었기에 그녀들의 사정을 알 수는 없었지만, 내가 기억하던 올리비아와는 너무 달랐다.

"이제 시작하네요."

- 스릉.

대련장 위에서 서늘한 칼날음이 울려퍼지며, 클라디스와 미츠키가 각자 검을 빼들었다.

클라디스는 서양식 검술을 구사하기에 롱소드를, 미츠키는 반대로 일본도를 손에 쥐었다.

둘의 차이는 단연 무기의 종류만이 아니었다.

차분함을 유지하며 자세를 잡는 클라디스와는 달리 미츠키는 상대를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쏘아보고 있었다.

자신의 열등감을 자극하는, 그 누구보다 이기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적수.

라이벌이라 불리기렌 훨씬 앞서나가는 경쟁자.

그 때문에 미츠키는 평정을 다스리지 못한 채 칼을 휘둘렀다.

"하압!"

기합과 함께 내질러진 칼날이 공기를 가르며 클라디스를 향했다.

미츠키의 초능력인 그림자가 덧씌워진 강력한 일격이었지만, 클라디스는 고요히 응수했다.

허공에 수놓아지는 은빛 실선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초인적인 움직임이 잔상을 흘리며 부딪혔다.

흐릿해졌던 잔상이 사라지고 둘의 모습이 드러나자, 미츠키의 표정에는 독기가 서려 있었다.

휘둘러도 닿지 않고, 넘어서고자 해도 넘겨지지 않는 클라디스라는 벽은 언제나 미츠키의 역린이었다.

- 츠즈즈.

빠른 속도로 발 밑에 퍼진 그림자들이 지면을 벗어나 위로 솟구쳤다.

솟구친 그림자는 칼날의 형태로 변해 상대의 급소를 파고들었다.

하지만 클라디스의 검이 빛살처럼 춤을 추자, 시커먼 그림자들이 힘없이 바닥으로 쪼그라들었다.

게임 '엘 시드'의 주인공의 트레이드 마크격인 각성 능력, '검기'였다.

그야말로 소드마스터라는 표현이 어울릴만한, 검에 한해서는 절대적인 능력.

미츠키가 아무리 이를 악물어도 도달할 수 없는 재능의 영역이었다.

- 채챙! 채채챙!

허공에서 불꽃을 튀기며 부딪히는 두 칼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멀쩡한 클라디스와 달리 미츠키의 몸에는 자상이 늘어갔다.

"전투 양상을 보니 슬슬 끝날 것 같네요."

올리비아의 말대로였다.

클라디스가 롱소드를 높게 치켜들어 검기를 두르자, 미츠키 역시 그림자의 칼날을 그녀의 일본도에 휘감았다.

- 카앙!

굉음과 함께 충돌하는 두 개의 일격.

예상대로 승자는 클라디스였다.

"크으윽!"

미츠키가 마지막 힘을 다해 허공에서 그림자 칼날을 조작해 날렸지만, 살짝 스치는 데에 그쳤다.

"대련 종료! 승자는 클라디스 에버란트다."

롱소드를 검집에 집어넣은 클라디스는 힐끗 미츠키를 흘겨본 뒤 가벼운 발걸음으로 대련장에서 내려왔다.

반면, 미츠키는 충혈된 눈으로 피가 흘러나오는 입술을 짓씹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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