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 쓰는 밸런스 파괴범이 되었다-10화 (11/36)

제 10화 첫 수업

태산호 교관이 진심을 다해 마력 지배를 발동하자 나를 제외한 1학년 A반 모두가 나가떨어졌다.

'···난감한데, 이거.'

각자가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지켜보느라 정신이 팔려 적당히 쓰러질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이제와서 어설프게 연기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더욱 골치가 아파왔다.

심지어 다른 생도들에게서는 이미 마력 지배가 거두어졌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눈빛을 빛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경외가 가득담은 거북한 눈빛을 한 채로.

"···이제껏 수많은 생도들을 보아온 본 교관으로서도 놀랍군. 설마 이 정도까지 버틸 줄이야."

태산호 교관은 어울리지 않게 혀를 내두르며 씩 웃었다.

"자, 그렇다면 과연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볼-"

평소와 달리 평정을 잃은 그가 마력을 한차례 더 끌어올리려는 순간, 교실 내부에 경고음이 울려퍼졌다.

- 삐이이!

"무슨 일입니까?!"

"1학년 A반에서 경고음이 울렸습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소리를 듣고 달려온 선도대와 경비팀이 식은땀을 흘리며 주위를 경계했다.

혹시 모를 적의 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아카데미 내부는 빌런이나 마수의 침입에 대비하여 항시 경보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었으니까.

일정 이상의 마력 활성화 수치가 감지된다거나 직접적인 피해가 발생하면 방금과 같이 시끄러운 경보가 발동하는 구조였다.

설마 그 경보가 교관의 마력 저항 시험 때문이라는 것은 전혀 몰랐을 테지만.

뒷머리를 긁으며 자초지종을 들은 선도대와 경비팀은 그제서야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으며 조용히 교실을 나갔다.

그중 한명은 "괴물같은 신입생···." 이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질린 듯한 표정이었다.

다른 생도들 역시 마찬가지.

특히 김호락은 그 특유의 호쾌한 목소리로 우렁차게 소리쳤다.

"과연 이정도는 되야지 역대 1위의 성적으로 입학하는 거구나! 대단한데?"

"김호락 생도의 말이 맞다. 훌륭한 성취로군."

태산호 교관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아카데미의 경보 시스템을 발생시킬 정도의 마력 지배를 아무렇지도 않게 견뎌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난 여전히 이러한 관심들이 부담스러웠다.

'전형적인 유리대포의 숙명이랄까···.'

현재로서 내게 주어진 무기는 하루 3번의 핵, 그것밖에 없었다.

다른 이들은 아카데미를 다니며 수련을 통해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이룩할 수 있겠지만, 내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마력 하나 없는 내가 수련을 해봤자 동네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수준과 비슷하니까.

결국 유일한 방법은 기연을 독점하는 건데···

'이것도 나름대로 큰 문제가 되지.'

작중 뿌려진 기연은 저마다 걸맞는 주인이 있다.

주조연들에게 돌아가야 하는 것들을 내가 먹는다면 자칫하다가는 에피소드 클리어 자체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었다.

게다가 마력의 부재라는 단점은 기연에도 적용되서, 내가 애초부터 사용할 수 없는 종류가 대다수였다.

"아무튼, 이 이상 시험을 진행할 수는 없을테니 이만 마무리하도록 하지. 전원 수고했다."

남의 속도 모르고 기대하고 있다는 듯 너털웃음을 내뱉는 태산호 교관이 대뜸 원망스러워 지는 순간이었다.

* * *

'놀랍군. 정말 놀라워.'

태산호 교관은 주체할 수 없이 올라가기 시작하는 입꼬리를 진정시키며 눈앞의 생도를 바라보았다.

그레이.

어느날 혜성처럼 등장했지만 가족 관계와 과거 이력, 심지어 정체도 불분명한 소년.

국제 영웅 아카데미의 수석 교관이자 인사위원회 이사직을 맡고 있는 그는 이미 그레이의 과거가 협회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실제로 강백호 교관이 그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었다.

지금은 그에 관련한 어떤 일언반구도 하지 않지만.

그러나 태산호 교관에게 있어 그런 사소한 문제들은 무의미했다.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

'영웅으로서의 자질, 국제 영웅 아카데미의 생도에게 있어 그보다 중요한 요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레이는 태산호 교관의 기준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인재였다.

아니, 인재라는 평범한 단어는 아까울 정도의 '천재'였다.

여타 재능있는 몇몇과는 다른, 대영웅의 자질이 보이는 진짜 천재.

본인이 진심을 보이며 펼친 마력 지배를 아무렇지도 않게 버텨내는 모습은 진심으로 감탄스러웠다.

'꽤나 특이한 부분도 있는 녀석인 것 같긴 하다만.'

입학식에서부터 그의 모습을 지켜봤었지만, 가끔 이해할 수 없을 행동을 할 때에는 고개가 갸웃거렸다.

입학식에서 유일하게 졸았던 생도로도 유명했지만,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무심한 눈빛에 나른한 태도는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을 연상케 했다.

인상적인 것은 방금의 마력 저항 시험에서도 변함없는 태도를 유지했다는 점.

다른 생도들은 제대로 버티지도 못한 채 탈락한 것에 비해, 너무나도 무신경했다.

익숙함.

녀석의 표정에서 느낄 수 있는 단 하나의 감정.

전신을 터트리고자 압박하는 마력의 힘이 익숙할 정도의 삶을 살아왔다는 뜻이었다.

'재능도 모자라 경험까지 겸비하고 있을 줄이야···.'

그야말로 기존 생도의 레벨에서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그는 속으로 흐뭇함을 삼키며 강의를 계속했다.

* * *

"지금으로부터 약 수백 년 전. 세계 각국의 도시 한복판에 게이트가 열리며 '마수'라고 불리는 괴물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엘 시드 세계관의 시발점이 된 사건, 통칭 제 1차 대공습.

인간들로서는 도저히 대적할 수 없는 강력한 신체와 압도적인 살상력.

처음 마수들이 그 모습을 드러낸 날, 수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된 저항 한 번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너희들도 잘 알다시피 그날 인류는 뼈저리게 느껴지는 무력감을 곱씹었다. 그날을 기점으로 '대 마수 병기'의 개발에 박차가 가해지기 시작했다."

"영웅들이 있는데도 굳이 병기 개발을 할 필요가 있었나요?"

한 생도가 손을 들고 질문하자, 태산호 교관은 고개를 저었다.

"영웅들이 언제 최초로 탄생했는지 알고 있나?"

"게이트 생성으로 인한 마수 발생, 그 직후라고 알고 있습니다."

"틀렸다."

그는 칠판에 타임라인 하나를 그려넣으며 설명을 계속했다.

"제 1차 대공습과 최초의 영웅이 그 모습을 드러낸 시점에는 10년 가량의 차이가 있다. 바로 암흑기라고 불리는 시대이기도 하지."

타임라인 속 비워진 공간에 커다란 글씨로 '암흑기'가 써넣어졌다.

'공백의 10년이라 불리는 그때인가 보네.'

다행히도 암흑기 이후 게이트로부터 뿜어져나온 마나가 세계 곳곳에 머금어지기 시작하면서 마수에 대항하는 힘을 가진 '각성자'가 탄생했다.

그들은 개개인에 따라 각자 다른 초능력을 각성했다.

불을 다루거나 하늘을 날 수 있는 이들부터, 맨손으로 땅을 으깨버릴 수 있는 괴력의 소유자까지.

능력의 종류는 다양했다.

"게다가 아무리 본연의 능력이 출중하다 한들 장비에 의존하지 않을 수는 없다. 현역 영웅들마저 신중을 가해 장비를 챙기고들 하니까."

"현역 영웅들마저··· 교관님, 그럼 대체 마수들은 얼마나 강한 겁니까?"

"흠, 아무리 신입생이라지만 A반인데도 실전 경험이 없는 건가?"

교관의 지적에 얼굴이 붉게 물든 생도 하나가 고개를 푹 수그렸다.

그 모습에 태산호 교관은 정정하듯 말을 덧붙였다.

"모자라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충분한 준비 없이 마수와 싸우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특히나 B등급 이상의 마수들은 A급 영웅들이 아니면 죽을 확률이 높다."

"A, A급 영웅들이요?"

"그래, 그리고 A급 마수의 경우 S등급의 영웅들마저 위험할 수 있다. 마수의 위험성은 너희들의 상상 이상이다."

정확한 설명이었다.

보통 같은 등급이라도 마수의 강함은 영웅들의 강함보다 한 층 더 높았다. S급 마수같은 경우는 숫자는 별로 없지만 토벌이 불가능해 '퇴치 불가 판정'을 받은 놈들이 대다수였다.

"그리고 마수가 아니더라도 빌런들 역시 상당히 위험하다. 다들 7년 전 일어났던 유엔 총회 테러 사건은 기억하고 있나?"

그러자 올리비아가 자신감에 찬 눈동자를 빛내며 대답했다.

"후훗, S급 빌런 3명이 연합을 하여 세계 각국의 정상들을 습격한 사건이었죠. 막아내는 과정에서 수십 명의 영웅과 S급 영웅도 2명 전사했고요."

"정확하다. 빌런들 역시 각성자인만큼 마수에 필적하는 강함을 지니고 있다. 아마 지금 너희들 수준에서는 전원이 덤벼도 A급 빌런 한 명 이기지 못할 거다."

당연한 소리다.

A급 빌런이면 A급 영웅에 필적하는 놈들이다.

현역은 커녕 실습도 안 나가본 우리들이 맞닥뜨린다면 바로 개죽음일 터였다.

하지만 태산호 교관은 내 쪽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레이 생도를 보니 설령 A급 빌런이라 해도 사뭇 의외의 결과가 나올 거란 생각이 드는군."

······잠깐, 지금 뭐라고요?

"그래서 말인데, 그레이 생도. 혹시 네 초능력이 무엇인지 얘기해 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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