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 쓰는 밸런스 파괴범이 되었다-9화 (10/36)

제 9화 마력 저항 시험

다음 날 아침.

국제 영웅 아카데미의 첫 수업이 시작되는 날이다.

"음, 조금 늦게 일어났네."

첫날부터 지각을 할 수는 없으니 재빨리 샤워를 마치고 교복을 차려입었다.

기숙사 정문을 나서자마자 따뜻하게 내리쬐는 햇살.

아카데미 본관으로 향하는 등굣길은 상당히 공들여 꾸민듯한 조경이 갖춰져 있었다.

그와 반대로, 난 속으로 스멀스멀 올라오는 긴장감을 감추기 힘들었다.

게임 속에서만 주구창창 보아오던 아카데미의 웅장한 자태.

실제 세상에 구현된 그 모습을 두 눈으로 직접 보자 이곳의 생도로 입학하게 되었다는 현실이 와닿았다.

'하지만 이대로 감상에 잠겨있을 수만은 없지.'

엘 시드 세계관은 지옥 난이도라 불리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수많은 위험이 난무했다.

개중에서도 네임드 보스들은 하나하나가 유저들 사이에서 공포의 상징으로 화자될 정도였다.

고작 하루 3번이 한계인 핵만 믿고 있다가는 길가다가 비명횡사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 내게 걸린 '트레스의 저주'와 '반사경의 저주'는 생전 들어본 적도 없는 것들이였기에 마땅한 해결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쩌겠냐.

일단 아카데미에서 캐릭터들이나 키워올려야지.

그래야 본래의 게임 스토리대로 클리어가 진행될 수 있을 테니까.

"쟤 맞지? 그 역대 입학 시험 1위···!"

"그정도로 강한 놈이 왜 이제와서 모습을 드러낸 거지?"

"가서 한번 말이라도··· 걸어볼까?"

생각에 빠진 채 걷던 와중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슬쩍 눈을 이리저리 돌리니 어느새 등교하다 말고 멈춰 선 다른 생도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애써 무시하고 계단을 올라 교실로 들어가자, 어제 단상에서 보았던 인원들을 포함한 20명 전원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뒷 줄에 앉아있는 이들은 김호락, 미츠키, 올리비아, 그리고 클라디스.

나머지 인원들도 한 가닥 해보이는 쟁쟁한 녀석들이었다.

'확실히 A반 생도들이라 그런지 나한테 신경을 별로 안쓰네.'

국제 영웅 아카데미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할 정도면 죄다 주변 배경이 화려하다 못해 금빛으로 빛나는 놈들일 테니까.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그들 역시 마찬가지로 일제히 눈을 돌려 내게 시선을 고정했다.

오히려 다른 생도들보다 더욱 열정적으로 쏘아보는, 흡사 좀비물을 방불케하는 분위기.

나는 자연스레 앞줄에 앉으려던 발걸음을 돌려 맨 뒷줄로 향했다.

그리고 하염없이 창밖을 통해 먼산만을 바라보았다.

"저 녀석인가···! 대망의 입학 시험 역대 1위라는 신인이!"

"그러게 말이야. 대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 미치겠어."

"이미 각 길드장들 사이에서는 충돌이 일어났다던데. 소문으로는 청천 길드까지 나섰다 하더라고."

"이시아 영웅님까지?! 진짜 대박이네···."

···그만해.

뒷담이라면 모를까 대놓고 앞담을 까고 있으니 당사자로서 참 난처했다.

정작 본인들은 내가 들을까 조심하면서 저들끼리 속닥거리는데.

그게 안 들리겠냐.

하지만 그 정도는 양반이었다.

김호락, 미츠키, 올리비아, 클라디스

이 4명의 우수 입학 생도들은 대놓고 나와 시선을 마주치고 있었다.

김호락은 열의를, 올리비아는 호기심을, 그리고 클라디스는 동질감을 눈동자에 담은 채로.

'얘네들은 뭐 그렇다쳐도, 미츠키는···.'

미츠키 히메노.

그녀는 다른 3명과는 다르게 노골적으로 악의 가득한 분위기를 내풍기고 있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그건 경계심에 가까웠다.

'역시나 열등감인가.'

게임 속에서의 주인공은 클라디스였지만, 개인적으로 내 최애캐는 미츠키였다.

닌자 속성의 검사라 내 취향을 저격한 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품고 있는 잠재력이었다.

열등감과 자기 비하 등 스스로를 좀먹는 감정들을 극복한다면 나중에 가서는 주인공에게 결코 밀리지 않을 수준으로까지 성장할 수 있었다.

그래서 게시판에서는 심심찮게 '미츠키를 주인공으로!' 라는 댓글이 눈에 띄기도 했다.

"다들 조용."

내 등장으로 어수선해진 교실에 담당 교관이 도착했다.

그가 주먹으로 칠판을 탕탕 두드리며 이목을 집중시키자, 곳곳에서 놀라움에 가득찬 탄성이 터져나왔다.

나 역시 놀란 것은 마찬가지였다.

태산호 수석교관.

교탁 앞에서 엄격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남자는 이 아카데미에서 제일가는 교관이었다.

한때 S급 영웅의 자리까지도 올라갔었던 그는 많은 A급 영웅들을 길러냈기로도 유명했다.

하지만 내가 놀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원래 1학년 A반을 담당하는 것은 다른 교관이었을 텐데?'

아마도 강백호 교관인걸로 기억한다.

태산호 교관은 아카데미에서 최중요 요소로 취급되는 졸업준비생들, 3학년을 고정적으로 담당하는 교관이었다.

황금 세대라고 치켜세워지긴 하나 신입생 딱지도 떼지 못한 애송이들을 맡는 사람이 아니었다.

게임속에서도 입학하자마자 태산호 교관의 반에 배정되는 루트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렇다면···

'설마 나 때문인가?'

협회장과 학장을 비롯한 국내 주요 인사들 사이에서 내 이름이 퍼진 사실은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다.

특히 엘게나 학장은 의도치 않은 착각으로 인해 내게 큰 호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설마 이렇게 나비효과가 되돌아올 줄은 몰랐지만.

"인사하지. 이번에 1학년 A반을 담당하게 된 태산호 교관이라고 한다."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인삿말.

그러나 생도들은 입학하자마자 태산호 교관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잔뜩 들떠있었다.

잔뜩 눈쌀을 찌푸린 채 나를 노려보던 미츠키마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정면을 응시했다.

'다들 신나보이는 구나.'

이해한다.

졸업생들조차 경쟁이 치열한 기회를 신입생으로서 거저 먹게 된 셈이니까.

실상을 알고있는 나만이 사뭇 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자, 정숙하도록."

여전히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생도들을 바라보며 태산호 교관이 입을 열었다.

"나는 보통 3학년을 비롯한 졸업준비생들을 도맡아 왔기에 너희들은 이례적인 케이스다. 허나, 그렇다고 해도 내 방식을 변경할 생각은 없다."

그 말에 생도들은 어리둥절해하며 의문을 품은 눈빛을 그에게 보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런거다."

- 화악!

그에게서 갑자기 뿜어져나오는 거대한 기세가 반 전체를 감싸눌렀다.

육중한 질량이 전신을 옥죄듯 압박해오는 마력에 몇몇 생도가 정신을 놓고 쓰러지기 시작했다.

'역시나 예상을 빗나가진 않네.'

의외로 많은 이들이 모르는 태산호 교관의 또다른 이명.

통칭 악마교관.

그는 아카데미의 최고 교관인 동시에 가혹할 정도로 생도들을 몰아붙인다고 평가받는 냉혈한 이기도 하였다.

"크윽-!"

"제, 젠자앙···!"

"수, 숨을 쉴 수가···"

한때는 S급 영웅으로서 활동했던 그의 전통적인 첫 수업에는 관례가 있다.

마력을 끌어올려 전신의 마나를 조작함으로써 상대를 압박하는, '마력 지배'.

일전에 마도왕이 서울 상공에 모습을 드러내었을 때 사용했던 기술이기도 했다.

"큿!"

"엄청···나구만, 이거! 역시 악마교관은 달··· 크헉!"

"치잇!"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는 생도들이 점점 늘어나자, 태산호 교관의 마력 지배는 점점 강해졌다.

어느덧 남은 인원은 단 5명.

나를 포함한 우수 입학생도들이었다.

태산호 교관은 슬쩍 마력을 조종해, 쓰러진 생도들에게서느 마력 지배를 거두었다.

그들을 차가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태산호 교관의 목소리가 낮게 흘러나왔다.

"이건 너희들을 평가하기 위한 마력 저항 시험이다. 마력이 이 세계를 구성하는 근본적인 요소인 이상, 전투에서도 이러한 마력의 활용은 필수적이지."

그제서야 자신들이 첫 시험에서 탈락했다는 것을 알게된 생도들은 고개를 내리깔았다.

"앞으로 영웅으로서 현장에서 활동한다면 이딴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견뎌내야 한다. 아니, 곧 투입될 실전 훈련에서도 마찬가지겠지. 적어도 지금까지도 버티는 저 5명처럼··· 음?"

순간, 말을 하다 멈칫한 태산호 교관의 냉철한 표정이 흔들렸다.

다 죽어가듯 비틀거리는 4명과는 달리, 전체 수석인 나는 아주 편안한 기색으로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상황을 눈치챈 나는 속으로 당황을 삼켰다.

'맞다, 난 마력이 없어서 이런 시험이 의미가 없을 텐데!'

괜히 어중간한 착각은 더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뒤늦게라도 연기를 하려한 찰나.

태산호 교관의 입가에 섬득한 웃음이 머물었다 바로 사라졌다.

직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기세가 우리를 덮쳤다.

"크으윽!"

"어억!"

"꺄아악!"

"아윽···!"

비명을 내지르며 순식간에 나가떨어진 4명에게서 마력 지배를 거둔 그는 곧바로 내게 온 마력을 집중시켰다.

가히 가공할만한 화력.

힘 깨나 쓴다는 빌런조차도 버틸 수 없는 강도였다.

그때가 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아저씨가 지금 나를 시험해보고 있다는 것을.

신입생으로서의 내가 아닌, 역대 입학 시험 1위를 한 나를.

내가 마력이 없어서 망정이지, 설령 있었다면 진작 거품을 물고 졸도했을 것이다.

"정말 대단하구나. 소문이 과장된 것이 아니었어. 어디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보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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