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화 새로운 수석 입학생(1)
순식간에 사나웠던 기세를 잠재운 엘게나 학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떻게··· 단 한 줌의 마력도 느껴지지 않을 수 있지?"
마력.
엘 시드 세계관의 모든 생명체를 구성하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
신체 강화마저 불가능한 일반인은 물론이고, 동물이나 심지어 길가의 식물조차 태어나면서부터 마력이 깃들어 있다.
이런 세계에서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했다.
하나는 빈틈없이 자신의 마력을 숨길 수 있는 실력이 있거나.
아니면 모종의 일로 마력을 잃어버렸거나.
하지만 엘게나 학장은 현재 눈앞의 상대를 가늠하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한 상태였다.
그렇다면 설령 일류 암살자라고 해도 마력을 숨긴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이 소년의 육체. 허약해도 지나치게 허약해.'
시험장에서 보였다는 모습은 마치 거짓말 같았다.
그녀는 재빨리 마력을 끌어올려 강화된 탐지력으로 소년을 살폈다.
"너··· 어떻게 이 상태로 살아있는 거니?"
어느새 울먹이며 눈물을 보이는 그녀.
엘게나 학장은 그 누구보다 소년이 간직한 아픔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몇 년 전 빌런 조직에 납치되었던 그녀의 딸이 생체실험을 당한 대가로 마력을 잃었으니까.
'이 찢어죽일 놈들, 설마 아직도 그딴 짓거리를 계속하고 있었던 거야?'
생물체에게 있어 필수불가결인 마력을 강제로 제거하는 실험.
마력의 제한을 초월한 압도적인 강함을 목적으로 자행된 실험은 수많은 아이들을 희생시켰다.
대부분이 고아였지만, 가능성을 보인다는 이유로 납치된 이들도 상당했다.
엘게나 학장의 어린 딸 또한 마찬가지였다.
현역 S급 영웅 중에서도 급이 다르다고 평가받는 엘게나 가츠필드의 핏줄은 놈들에게 있어 더없이 매력적이었다.
아무리 강하면 무슨 소용일까.
납치된 제 딸 하나 되찾아오지 못했는데.
이를 악문 그녀는 소년, 아니 그레이의 손을 따뜻하게 마주잡았다.
"과거 사정은··· 물어보지 않을게. 아카데미에 입학하고자 하는 특별한 목표가 있는 거니?"
* * *
부담스럽다.
빈말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감정이었다.
다짜고짜 밀어붙이던 표독스런 눈빛은 증발하고, 대신 온화한 분위기를 풍기며 내 손을 마주잡는 그녀의 태도 변화는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그녀의 설정을 떠올리자마자 쉽게 그 영문을 알 수 있었다.
'마력의 부재.'
처음 그녀가 내 마력에 관해 언급했을 때는 어떻게 속여넘겨야 하나 당황했다.
다른 세계에서 왔다고 사실대로 말해도 딱히 믿지는 않을 테지만, 더 수상하게 오해받고 싶지는 않았으니.
다만, 그녀의 생각은 달랐다.
프로젝트 '레볼루션'.
S급 빌런 크레모어가 수장으로 있는 빌런 집단, 적월단에서 진행한 인체 실험.
놈들은 마력의 축복이 오히려 인간의 강함을 제한하고 있다는 정신 나간 사상으로 무장하여 마구잡이라 아이들을 학살했다.
'엘게나 학장의 딸, 리나도 납치되었었지.'
그 아이는 점조직처럼 뒷골목에 숨어드는 놈들을 제시간안에 찾지 못해 결국 끔찍한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 일 이후로 엘게나 가츠필드는 현역임에도 불구하고 일선에서 물러나 국제 영웅 아카데미의 학장직을 맡고 있었다.
"너··· 어떻게 이 상태로 살아있는 거니?"
물기 가득한 목소리로 조심스레 묻는 그녀의 반응에, 난 확신했다.
아, 이 사람 나를 실험의 희생양으로 착각하고 있구나.
'나쁘지 않아.'
속이는 건 마음에 조금 걸렸지만, 최선의 방안이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을 테니까.
겸사겸사 도움도 받을 수 있을 테고.
그녀의 울먹임에도 태연하게 묵비권을 행사하자, 엘게나 학장은 오히려 더욱 부드러워진 태도로 내게 물었다.
과거 사정은 캐묻지 않을 거라고. 그리고 특별한 목표가 있냐고.
'있기야 하지. 이 세상을 클리어하고 집에 돌아가는 것.'
다만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치료와, 복수··· 입니다."
"아···!"
엘게나 학장은 안타까움을 표출하며 크게 탄식했다.
그녀는 처음 보였던 까칠했던 태도를 진심으로 고개숙여 사과하며 내 눈을 마주보았다.
"아카데미 입학은 오늘 시험 성적이 그대로 반영되서 정상적으로 처리될거야. 그리고··· 힘든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나를 찾아오렴."
간절한 말투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자, 만족스럽다는 웃음을 지으며 그녀는 나를 정성스레 배웅해주었다.
* * *
국제 영웅 아카데미 입학식 날.
신입 생도 전원은 대강당의 중앙에 앉아있었고 학부모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길드 관계자들과 기자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각국의 영웅 협회 고위 간부부터 타국의 길드장들, 그리고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상위 영웅까지 한데 모여있었다.
전세계의 차세대 영웅들을 모아놓은 곳인 만큼, 아카데미는 이른 아침부터 세계 각지에서 온 인파로 북적였다.
"파이리 헌터 길드장 세레스틴이다! 그 프랑스의 S급 영웅!"
"저기 봐. 미국 영웅 협회의 이사진도 와있어!"
"S급 영웅 차은하다!"
세계의 질서를 앞장서서 주도하는 인기 영웅들의 등장에 곳곳에서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이윽고, 단상 위의 조명이 환하게 빛나며 엘게나 학장이 올라왔다.
"국제 영웅 아카데미 입학식에 오신 여러분들, 환영합니다."
웅장한 행사에 걸맞는 장엄한 목소리가 강당에 울려퍼졌다.
기본적인 인삿말부터 시작해서 아카데미 생도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 그리고 주의사항 등등.
게임의 엔딩까지 플레이했던 내 입장에서는 모두 알고 있는 점들이었지만.
'···피곤하네.'
다른 생도들은 긴장감과 기대감에 잔뜩 들떠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나는 너무 졸렸다.
그렇다고 해서 입학식에서 졸았다가는 귀찮아질 테니 노곤해진 정신을 깨우기 위해 주변으로 관심을 돌렸다.
마침 옆에 서 있던 교관들이 열중한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선배, 이번에 입학 시험 결과 봤어요? 진짜 미친 것 같아요."
"그래, 이번 기수는 완전 다르던데. 황금 세대라고 불리는 이유가 있다니까."
아카데미의 전투 교관 김정환 역시 끼어들어 입학 시험 당일날을 떠올리며 말했다.
"클라디스 가츠필드, 그 애 별명이 차기 검성이라지? 왠만한 고학년들과도 비교가 안 되더군."
"게다가 올리비아는 어떻구요. S급 영웅, 현자의 하나뿐인 제자잖아요. 아깝게 2위 했던데."
"그래, 대단한 재능이더군."
'2위라고?'
"잠깐만요, 선배들. 그러면 1위는 누군데요?"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신입 교관, 소피아가 자그마한 목소리로 의문을 제기했다.
그녀의 기억으로는 입학 시험 2위는 다른 생도였기 때문이다.
"누구긴 누구야. 당연히 클라디스 가츠필드지. 이미 관련 기사 수백개가 떴는데, 못 본 거야?"
"아니, 어제자 기사 못 보셨어요? 특별 시험 입학자···."
화제의 특별 시험 입학자.
단신으로 마도왕을 쓰러뜨렸다는 한 생도의 소문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아, 그거? 당연히 거짓 기사지. 뭐 마도왕을 죽였다느니, S급 마수를 일격에 녹였다느니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인지."
"소피아 교관, 설마 그 찌라시를 믿는 거야?"
교관들은 헛소문이라 치부하며 웃어넘겼다.
단 한 사람, 그날 있었던 강백호 교관을 제외하고.
'아니, 그 소년의 강함은 진짜다. 이미 인간성을 초월한 무력이었어.'
그는 시종일관 창백한 안색을 유지하며 한 사람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레이.
손짓 하나로 기상 현상마저 조종해 초거대 낙뢰를 일으키는 괴물.
'과연 이 아카데미가 감당할 수 있는 인물이 맞는 것인가?'
학장님은 대체 무슨 생각이신지.
그는 사색에 잠기며 다시금 울려퍼지는 엘게나 학장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였다.
"이상으로, 개회식을 마치겠습니다. 이제 우수 입학생도 5명을 호명하겠습니다. 이름을 불린 생도는 단상 위로 올라와 주세요."
설렘으로 웅성거리는 생도들.
1위부터 3위까지는 어느 정도 기정 사실이었지만, 4위와 5위의 자리는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에 모두들 잔뜩 긴장했다.
"입학 시험 5위, 김호락 생도."
자신의 이름이 불린 것을 기뻐하며 거대한 덩치의 소유자, 김호락이 일어섰다.
그는 육체계 각성자라는 것을 과시하듯 우락부락한 근육을 뽐내며 단상 위로 올라갔다.
"축하합니다. 앞으로도 더욱 정진하는 모습 기대하지요."
"감사합니다!!"
김호락은 웃음을 숨기지 못하며 차렷 자세를 유지했다.
"다음은 입학 시험 4위, 미츠키 생도."
"어라? 그 미츠키가 4위라고?"
"나도 당연히 3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커져가는 웅성거림 속에서 짙은 검정색 머리칼을 휘날리는 아름다운 소녀가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고혹스러움을 강조하는 눈가의 눈물점은 뭇 남생도들의 시선을 앗아갈 만큼 본연의 매력을 부각시켰디.
다만, 기뻐하던 김호락에 비해 꽤나 열받은 듯한 표정을 지은 그녀는 단상 앞에 서는 그 순간까지 불쾌함을 지우지 못했다.
"그 다음, 입학 시험 3위."
본래 4, 5위와는 달리 1위부터 3위까지는 대부분이 알고 있는 기정사실들이기에,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부동의 3위를 유지했던 미츠키가 4위로 하락했다.
그에 생도들은 하나같이 의문을 품었지만, 엘게나 학장의 한마디는 더욱 커다란 파동을 가져왔다.
"올리비아 생도. 올라와 주세요."
S급 영웅, 현자의 하나밖에 없는 제자이자 마력의 천재로 이름을 떨친 올리비아 생도가 3위라는 사실에 강당 안의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뭐라고? 그 올리비아가 3위라니. 대체 어떻게 된 거야?"
"2위가 따로 있는 건가?"
당사자인 올리비아 역시 멍한 표정으로 단상 위로 올라갔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기자들은 놀라움에 휩싸여 플레시를 터트렸다.
"다음으로는, 입학 시험 2위."
올리비아를 제치고 2위를 차지한 신예의 등장에 모두가 귀를 쫑긋했다.
"대체 누구야? 올리비아는 클라디스를 제외하고는 넘사벽 아니었어?"
"마력의 천재를 넘겼다고? 우리 또래에서 그게 가능한 거야?"
장 내에서는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채 고성들이 오갔지만, 엘게나 학장이 직후에 내뱉은 한 마디는 공간을 침묵시켰다.
"클라디스 에버란트 생도. 올라오세요."
- 와락.
잔뜩 구겨지는 클라디스의 표정.
다른 이들 역시 예상조차 하지 못한 듯, 멍한 표정으로 단상만을 주시했다.
파이리 길드의 길드장이자 S급 영웅인 세레스틴 역시 마찬가지였다.
'클라디스, 그 아이의 재능은 여타 S급 영웅마저 압도할 정도던데. 1위가 아니라고?'
누구이길레 그 불세출의 천재를 뛰어넘고 1위를 한 거지?
모두의 의식이 한데 집중된 가운데, 엘게나 학장이 입가에 옅은 호선을 그리며 입을 열었다.
"입학 시험 역대 1위, 그레이 생도."
"단상으로 올라와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