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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쓰는 밸런스 파괴범이 되었다-5화 (6/36)

제 5화 충격의 여파(1)

하늘을 가르며 우렁차게 울부짖는 번개가 구름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며 모여들었다.

연신 우렁차게 울려퍼지는 막강한 천둥소리.

이슬비가 흩날리는 흐린 날씨를 무색하게 만들어버릴 정도의 밝은 빛이 아카데미 전체를 에워쌌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초자연적인 광경에 시험장 안의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열 수 없었다.

시야를 가득 메우는 황금빛으로부터 혼미해진 정신을 부여잡은 것도 잠시, 더욱 말도 안되는 괴현상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내가 대체 뭘 보고 있는 거지?"

허공을 잔뜩 메운 번개들이 하나의 축으로 모여 창의 형상을 갖춰나갔다.

자연현상을 마음대로 가지고 농락하는 것도 모자라, 아예 자신의 의지대로 부리고 있었다.

재능이라는 쓰레기같은 단어로 수식하기에는 가히 신에 가까운 권능이었다.

"내리쳐라."

말이 끊긴 시험장에서 드디어 들려온 한마디.

그 직후, 고막을 쉴 새 없이 강타하던 거대한 번개의 창이 지상의 마수를 향해 떨어졌다.

언듯 육안으로 보기에도 상상을 초월하는 파괴력을 자랑하는 일격이었다.

- 콰르르르릉!

S급이라는 등급이 무력하게, 마수는 신랄한 비명소리를 내지르며 소멸당했다.

퇴치가 아닌, 소멸.

말 그대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뜻이었다.

"어, 어어···."

"이, 이게 그러니까···."

베테랑 영웅으로 이름을 떨쳤던 강백호도, 전직 S급 영웅이었던 대형 길드의 수장들도 눈만을 껌뻑거리며 가만히 서 있었다.

아직도 충격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시험장 안은 고요했다.

그저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는 기계음만이 장내에 울려퍼질 뿐이었다.

<경고! 수용 가능한 피해치를 넘어섰습니다. 작동을 정지합니다.>

<경고! 수용 가능한 피해치를 넘어섰습니다. 작동을 정지합니다.>

<경고! 수용 가능한 피해치를 넘어섰습니다. 작동을 정지합니다.>

마지막 가상 마수가 쓰러진 후 몇 분이 흘렀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움직일 수 없었다.

사회적 위치나 강함에 상관없이, 모두가 공통된 감정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경외, 그리고 공포.

전세계적으로 거대한 악명을 떨치던 마도왕이 한순간이지만 불쌍해질 정도였다.

저런 공격에 당해서 죽었다니, 상상조차 하기 두려웠다.

그런 와중, 이상을 감지한 엘게나 학장이 시험장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방금 그건 뭐야?"

"하, 학장님···!"

그녀의 등장에 구세주라도 발견한 듯이 강백호 교관의 눈빛이 아른거렸다.

생전 처음 보는 그의 유약한 모습에 엘게나 학장은 눈썹을 치켜들었다.

"빨리 설명해, 강백호 교관. 가상 마수가 무슨 문제를 일으키기라도 했어? 아까 그 노란빛은 뭐냐니까?"

"그, 그게 아니라··· S급 마수를 상대로 저 새, 생도가 발동한 능력입니다."

"······뭐?"

그 말에 그녀의 눈동자가 무섭도록 커졌다.

"사실이야?"

"마, 맞습니다."

'미친 거 아니야?'

마도왕을 죽였다는 남자의 소문.

언론에서 이미 화제가 된 주제였기 때문에 그녀도 대강 알고는 있었다.

그레이, 저 소년이 소문의 그 '마도왕 살해자'일 수도 있다고. 그날 찍힌 사진과 그의 모습이 의심의 여지 없이 일치했으니까.

게다가 엉덩이가 무겁다고 소문난 한국 영웅 협회장이 직접 나서서 상전 대하듯이 하는 태도까지.

하지만 눈앞에서 그 증거를 직접 보는것은 실로 경악스러웠다.

'방금 그 공기를 잡아 찢는듯한 괴랄한 뇌격을 고작해야 입학 시험생이 한 거라고?'

두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지나가는 개도 비웃을 만한 말이었다. 다만, 문제는 그게 진실이라는 것.

그러거나 말거나, 여전히 무심한 눈빛으로 허공을 쳐다보던 그레이가 엘게나 학장을 향해 걸어왔다.

"이정도면 합격입니까?"

"어···?"

"입학 시험이었잖습니까. 저 합격한 겁니까?"

"······"

그레이의 나른한 말투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입에서는 대답이 나오지 못했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계속해서 머무르고 있었던 탓이었다.

'이 사람을 진정 아카데미에 입학시켜도 되는 건가?'

아카데미는 배움을 위한 장소다.

영웅으로서 활약하고 질서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힘을 수련하기 위한 양성 기관.

단신으로 마도왕을 잡아 죽이고, 손짓 한 번으로 S급 마수를 없애버리는 괴물이 들어올만한 곳은 아니었다.

"이, 일단은 보류로 처리될거야. 이런 저런 심사가 아직 남아있으니까."

그 말에 소년의 얼굴에서 아쉬움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엘게나는 당황했다.

'진심으로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싶어하는 거라고?'

대체 왜?

뭐가 모자라서 이런 기행을 벌이는 거지?

이 정도 강함이라면 마도왕을 이은 새로운 왕이 탄생할 지경이었다.

길드 차원을 넘어서서 각국 정부에서 눈에 핏대를 세우고 차지하기 위해 덤벼들만한 인재였다.

아무리 국제 영웅 아카데미의 위상이 높다 한들, 감당하기 힘들었다.

엘게나 학장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발걸음을 돌리자, 어느새 다가운 박태호 협회장이 그녀를 막아섰다.

"잠시 이야기 좀 할 수 있겠나?"

간절해보이는 눈빛과 떨리는 목소리.

엘게나 학장은 절로 눈쌀을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좋아, 따라와. 여기는 곧 난리가 날 것 같으니까."

* * *

아무런 대화 없이 학장실로 걸어들어간 둘은 마주보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저거 뭐야?"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엘게나 학장이었다.

그녀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박태호 협회장을 노려보았다.

"대답해! 역대급 인재라고 청산유수로 혓바닥을 놀려대기에 마련한 자리였는데, 무슨 생각인 거야?!"

"···누가 들으면 내가 거짓말이라도 한 줄 알겠군."

"말장난이 나와?"

예상과는 달리 가시 돋친 반응에 박태호 협회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가 문제인데 이러는 건가? 더없이 훌륭한 인재잖세."

"인재? 저게 인재로 보여?"

도저히 화를 주체할 수 없다는 듯, 그녀의 목소리가 커졌다.

"인재에 천재는 개뿔! 그냥 괴물이잖아! S급 마수를 한 번에 때려잡는 사람이 미쳤다고 신입생으로 입학을 해?"

"···요구 사항이었네."

가라앉은 목소리로 항변한 협회장이 조용히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와 처음 대면했을 때, 한국에 남아달라고 부탁을 했네. 그는 흔쾌히 수락하는 대신, 국제 영웅 아카데미 입학에 손을 써달라고 했지."

"···그래서?"

"그저 시험을 친 기회를 마련해준 것 뿐일세! 오히려 편견을 담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자네 아닌가!"

편견?

그녀는 머리쪽에 피가 쏠리는 것을 간신히 내려앉히며 이를 악물었다.

"일단 이거부터 물어보자. 마도왕을 죽인 그 사람, 맞지?"

"맞네. 숨길 필요도 없지 않은가? 기사마다 실린 내용일텐데."

"기자 놈들 찌라시 퍼트리는게 한두 번이야? 난 솔직히 안 믿었어. 이제 18살인 놈이 마도왕을 죽인 걸 믿으라고?"

"이제는 믿겠군."

"그게 문제지."

두 사람은 서로 교차하는 시선을 거두지않은 채 서로를 노려보았다.

"난 허용 못해. 저런 위험 요소를 아카데미 내부에 들일 순 없어."

"엘게나 학장!"

"내 입장에서는 당연한 조치 아니야? 양성 기관이라 한들 결국 생도들의 안전이 최우선이야."

"그 무슨!"

발끈해서 벌떡 일어난 박태호 협회장과 엘게나 학장의 마력이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위험 요소라니, 그는 마도왕으로부터 서울을 구한 영웅일세!"

"과거 행적은 눈을 씻고 찾아볼 수도 없는데다가 기껏 있는 신원은 너희 쪽에서 급조한 거지. 내가 모를 줄 알았어?"

협회장은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말은 조목조목 따져봐도 틀린 구석 하나 없었다.

신원도 확실하지 않은 사람인데다가 지나치게 강한 이라는 것은 사실이었으니.

"막말로, 그가 빌런 측 사상을 가지고 있다면? 마도왕을 죽였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선인으로 단정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야. 무작정 그러기에는 너무 강해."

"그럼 한 번 만나보기라도 하게. 내가 본 바로서는 그저 순박한 소년일 뿐이야."

"아까 당신도 떨고 있는거 다 봤는데, 무슨 헛소리야?"

엘게나 학장이 쏘아붙였다.

그러자 협회장은 더 이상 수가 없다는 듯, 진중한 어투로 내뱉었다.

"나는 그에게 목숨을 빚졌네. 그리고 그가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최고의 전력이 될거라 생각하지.

만약 그로 인해 문제가 일어난다면, 한국 영웅 협회와 나 박태호의 이름을 걸고 모두 책임지겠네."

영웅 강국 통일한국에서 협회장을 맡고 있는 그의 단언에 엘게나는 입술을 다물었다.

박태호 협회장, 그 이름 석자가 지니는 영향력은 상당했다.

아무리 국제 영웅 아카데미 학장이라도 쉬이 무시할 수는 없었다.

"알았어. 지금 불러올테니까 자리 좀 비켜줘."

"고맙네."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나는 그를 뒤로하고, 엘게나 학장은 강백호 교관을 호출했다.

"그레이 입학 시험생 학장실로 올려보내요."

"학장님 그게···"

강백호 교관이 뒷말을 얼버무리자 엘게나 학장은 또 뭐가 문제냐는 듯 그를 닥달했다.

"개인 면접이니까 일단 올려보내요."

"그런 문제가 아니라··· 주변 인파가 어마무시합니다. 당장은 접근조차 힘들 정도입니다."

"···하."

'쯧, 하긴. 두 눈으로 직접 봤다면 들이대지 않을 수가 없겠지, 그 작자들.'

길드장들부터 정부 인사들까지.

서로 차지하려고 안달이 나다 못해 속이 타들어갈 것이었다.

엘게나 학장은 벌써부터 몰려드는 피로함에 짜증을 담아 다리를 박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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