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 쓰는 밸런스 파괴범이 되었다-2화 (3/36)

제 2화 중반부 보스, 마도왕

제네피우스 라우뢰.

영웅과 빌런 전부를 통틀어서 가장 강한 5인 중 하나로 손꼽히는 남자.

S급 영웅들과 비교해도 격이 다른 강함을 지녔다는 이유로, 또한 인간 중에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힘을 지녔다는 이유로 최강의 5인은 각자 '왕'으로 불리었다.

그러한 왕들 중에서도 마력에 한해서는 최정점에 도달했다는 마력의 지배자, 통칭 '마도왕'.

마음만 먹으면 국가조차 뒤흔들 수 있다는 힘을 지닌 괴물이 서울 상공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아, 아아······."

"흐으, 흐으으···."

"사, 살려줘···."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초월한 패도적인 마력에 시민들은 공포에 떨고 있었다.

마도왕은 영웅이 아닌, 드높은 악명을 가진 빌런이었으니까.

대다수는 이미 입에 거품을 문 채로 기절했지만 몇몇은 여전히 의식이 남아있었다.

그나마 버티는 이들 역시 찍어누르는 듯한 마력의 힘에 패닉에 빠져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반면, 나는 마도왕 제네피우스의 등장에 당황했을 뿐 마력으로 인한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웠다.

다른 사람들처럼 마력에 몸을 떠는 일은 전혀 없었다.

'혹시 마력이 아예 없기 때문에 마력 지배에 영향을 받지 않는 건가?'

일리 있는 추측이었다.

마나라고는 일절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온 내게 마력이란 것이 존재할 리가 없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나는 슬쩍 눈을 올려 제네피우스를 올려다봤다.

그는 무감각하고 권태로운 눈빛을 한 채 길바닥의 시민들을 벌레 보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자신은 이따위 생물체들에게는 일말의 관심도 없다는 듯이.

"협회장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건가."

같은 인간이 낸 목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는 서늘한 파동음에 절로 몸이 움츠려졌다. 하지만 그가 방금 내뱉은 말은 절대 그냥 흘려넘길 수 없었다.

저 남자가 한국 영웅 협회의 수장을 찾는 이유는 오직 하나였으니까.

'한국 영웅 협회장 피살 사건.'

명분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갑작스러운 마도왕의 습격에 협회장을 포함한 국내 S급 영웅들 3명이 죽임을 당하고 나라는 혼란에 빠졌다.

이 일로 영웅 협회 전체가 휘청거리며 영웅들의 위세가 크게 줄어듬과 동시에 빌런들이 더욱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이때 죽은 S급 영웅 중 한명이 바로 주인공의 아버지, 권성이었기 때문에 주인공의 멘탈이 흔들리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나로서는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리 주인공이 중요하다 해도 눈 앞에 있는 마도왕은 같은 '왕'급이 아니면 상대 자체가 불가능하다.

마도왕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빌딩만한 마력창을 만들어 쏴대는데, 나 따위는 손짓 한 번에 세상에서 삭제될 게 분명했다.

그러니 안타깝지만 조용히 자리를 벗어나는 것만이 내게 있어선 유일한 길이었다.

'침착하게 자리를 벗어나자. 들키면 무조건 죽는다.'

하늘에 떠있는 마도앙은 협회장을 찾는데 신경을 집중한 듯, 제 발 밑에는 전혀 관심 없어 보였다.

이때가 아니면 사건에 휘말려 죽을 거라는 생각에, 난 온 힘을 다한 까치발 뛰기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한 가지 간과한 점이 있었다.

마력의 지배자라 불릴 정도의 마도왕이 근처에서 뛰어 도망치는 사람 하나 감지 못할 리가 없다.

나는 단순히 마력이 없기 때문에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움직임으로서 그가 미세한 파동을 느낀 것이었다.

"내 마력 지배에 저항하다니··· 벌레치곤 쓸만한가 보구나."

조용히 내게로 눈길을 돌린 마도왕이 입가에 비릿한 웃음을 그렸다.

이내 팔짱을 풀어 손을 곧게 뻗은 그가 주먹을 쥐자, 주변에 산개한 잿빛 마력이 파도처럼 일렁였다.

- 퍼버버벅!

나선형으로 뭉친 마력은 시민들에게 돌진하더니, 그들의 몸을 꿰뚫으며 무차별적인 학살을 이어나갔다.

살과 피가 튀고, 곳곳에서 난무하는 비명은 흡사 지옥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참사에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온 몸이 마비된듯 간신히 서 있기만 할 뿐이었다.

손짓 한 번에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광경은 평화로운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던 내게 있어 너무나도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그러한 내 모습이 마도왕에게는 다르게 다가왔던 모양이다. 그는 공허한 눈길을 집어치우고 번뜩이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기 시작했다.

"호오, 눈 하나 꿈쩍 않을 줄이야. 겉모습과는 다르게 상급 영웅이라도 되는 건가?"

- 쿠구구구.

마도왕이 주먹을 쥐자, 주변에서 태풍처럼 몰아치던 마력이 한데 뭉치기 시작했다. 이윽고 모인 마력은 거대한 창날의 모습으로 변해 내 머리를 향해 겨눠졌다.

"이래도 아무 반응이 없다고···?"

마도왕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기이할 정도로 아무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 눈앞의 작은 존재가 서서히 거슬리기 시작했다.

실상은 공포로 인해 전신이 얼어붙어 움직일 수 없었지만, 마도왕은 눈앞의 상급 영웅이 주제도 모르고 거드름을 피운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자신의 마력 지배를 견뎌낼 수 있는 영웅은 몇 명 되지 않을 테니.

"이 나를 앞에 두고도 건방을 떨다니. 공포에 몸부림치며 죽어가게 해주마."

그가 굳게 말아쥐었던 주먹을 펼치자, 거대한 마력 창이 내게로 돌진해오기 시작했다.

피할 수도, 막을 수조차도 없는 즉살의 일격이 쇄도해오자 허탈감이 밀려왔다.

'이렇게 아무것도 못 해보고 죽는다니······.'

그때였다.

- 띠링!

[사용자의 목숨이 위협받습니다!]

[시스템, '뉴클리어 런쳐'가 자동으로 활성화됩니다!]

【'절대 정신'을 발동합니다.】

"잠시만, 뭐라고?"

불현듯이 허공에 나타나는 알림창.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랄 만한 일이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딴 게 아니었다.

난생 처음보는 학살의 현장에서 받은 충격은 온데간데없고, 청명한 기운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나가고 있었다.

'뉴클리어 런쳐라니···, 설마?'

말도 안되는 예상이었지만,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난 하나뿐인 희망이 제발 들어맞길 바라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막아라."

마도왕이 쏘아보낸 일격이 코앞까지 도달하기 직전, 허공에 또다시 알림창이 나타났다.

【'아이기스의 방패'를 발동합니다.】

내 한마디에, 정면에 푸른 빛을 내뿜는 장벽이 생성되어 마도왕의 일격을 완벽히 막아냈다.

그의 일격은 방벽에 흠집 하나 내지 못하고 말라비틀어졌다.

"뭐, 뭐라고?! 네놈, 대체 어떻게?"

안색이 흑빛으로 물든 마도왕이 당황한듯 소리쳤지만, 더이상 귀에 그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서는 이미 천상의 하모니가 재생되고 있었으니까.

'최소한의 양심은 있었구나!'

무일푼으로 게임 속에 들어온 줄 알았더니, 그 누구보다 강력한 힘을 이미 손에 넣은 채였다.

뉴클리어 런처, 게임의 핵을 같이 가지고 들어오다니.

"대답해라! 대체 네놈의 정체가 무엇이냐?"

마도왕은 왕급으로서의 위압감을 집어던진 채 떨리는 목소리로 추궁해왔다.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혼자서 게임을 클리어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이 있는데, 중반부 보스 따위가 눈에 들어올리가?

'이렇게 된 이상, 이곳에서 마도왕을 죽인다.'

아무리 핵이라 한들 만만찮은 상대는 아니니, 싸움이 길어지면 도시 전체에 큰 피해가 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는 단 한방에 끝을 내야 한다.

마도왕의 일격을 아득히 능가하는 강력하고도 날카로운 공격으로 추가적인 후속타 없이 죽인다면 가능했다.

그래, 마치 번개 같은.

"내리쳐라."

【'제우스의 철퇴'를 발동합니다.】

"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냐···?"

우왕좌왕하는 마도왕의 머리 위로 황금빛의 전류가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마치 황금을 녹여 조각한 듯한 번개의 예술적인 자태에, 시전자인 나조차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본신의 아름다움을 뽐내기도 잠시, 굉음을 흩뿌리며 하늘을 집어삼킨 번개가 하나의 줄기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마도왕 제네피우스에게 빛의 속도로 낙하했다.

"말도 안된다! 이런 괴현상은 상식적으로 설명이-"

- 콰르르르릉!

차마 말을 끝내지 못한 채, 제우스의 철퇴에 직격당한 마도왕은 힘없이 땅에 떨어졌다.

그의 육체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고, 온몸에서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엄청나네···."

게임 속에서만 쓰던 핵을 직접 보니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신화에서나 볼 법한 거대한 낙뢰가 실제로 떨어지니 되려 현실감이 없는 기분이었다.

"그럼 이제 혼자서 최종보스까지 클리어하고 원래 세계로 돌아가면 되는 건가?"

절망감에 빠져 허우적거렸던 것이 거짓말처럼 느꺼졌다. 이제 순식간에 엔딩을 보고 귀환할 수 있다!

이 핵만 있다면 빌런은 물론이고 에피소드 보스마저도 손쉽게 죽일 수 있었다.

"끄으으······."

느닷없이 들려오는 신음소리에 난 고개를 돌렸다.

뭐야, 저거 살아있었어?

일격에 죽였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명줄이 질긴지 간신히 숨은 붙어있었다.

"깔끔하게 마무리 되진 않았던 모양이네."

마도왕을 확실하게 죽이기 위해 난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다시 한번 제우스의 철퇴를 발동시킬 생각이었다.

【경고! 트레스의 저주로 인하여 하루 3번을 초과한 발동은 불가능합니다.】

【경고! 반사경의 저주로 인하여 24시간 내에 반복 발동은 불가능합니다.】

···뭐라고?

"잠깐만, 이건 아니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