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데 그 때였다.
문득 복면인들의 뒤 쪽에 조용히 서있는 덩치가 큰 복면인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이들을 이끄는 수장인 듯 보였다.
언뜻 그의 눈과 휘의 눈이 마주쳤다.
복면인의 깊게 가라앉은 눈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두어 번 숨쉴 짧은 시간에 복면인들이 다섯이나 당한 것이 그에게 충격을 던져 준 듯 하기도 하고, 뭔가 망설이는 듯한 눈빛 같기도 하다.
휘가 그를 향해 손을 들었다. 검지를 세우고. 그러자 그의 눈에서 이채가 어렸다. 마치 무슨 뜻이냐는 듯...
휘가 검지를 까닥거렸다. -뎀벼!-
순간 그 뜻을 알아챈 복면인의 눈에서 분노의 불길이 쏟아졌다.
"감히! 어린 놈이!!"
일갈을 내지른 그의 큰 덩치가 허공으로 솟아 오르더니, 그의 허리춤에서 한 자루의 시커먼 도가 뽑혀져 나왔다.
쩌저적! 시커먼 도신에서 묵빛 도기가 구름처럼 피어 오르고, 뇌전이 번쩍이더니, 휘를 향해 떨어져 내린다.
휘의 입가로 진한 냉소가 하얗게 매달렸다. 독맥에서 피어난 천양의 기운이 팔을 타고 쭉 손끝까지 뻗쳤다.
'최대한 빨리 끝낸다!!'
화르륵!!
만양의 나신을 타고 흐른 붉은 불길이 검첨에 매달려 타오른다.
휘의 신형이 허공으로 쑥 딸려 올라가며 만양이 머리 위로 들렸다.
빠져 나가려 요동치는 불길로 한 송이 혈련화가 허공에 그려지고.
"가라!"
나지막하면서도 거역할 수 없는 일갈에 불꽃 혈련화가 피어난다. 적루몽!
콰아아!!!
일순간, 쩌저저!! 콰르르... 뇌전을 불꽃이 집어 삼켜 버렸다!
붉은 꽃잎을 찢어 발기며 빠져나가려는 뇌전의 몸부림이, 복면인의 눈에서 피어오르는 당황의 표정 만큼이나 처절하다.
그 때였다. 만양에서 불꽃 한 송이가 더 피어 오른다. 몽여화!
"탄!!"
휘의 차가운 한마디에 몽여화가 날아 오르더니, 적루몽의 열기에 격렬히 몸부림을 치고 있는 묵빛 도기를 감싸 버렸다.
복면인의 두 눈이 흡떠졌다. 이를 악물고 도를 휘둘러 불꽃을 떨쳐 내려 하지만, 점점 먹혀 들어가며 진저리치는 묵빛 도기의 비명성에 마음만 다급할 뿐이다.
“이야앗!!”
고오오.... 화르르륵!!
삼장 떨어진 곳에서 기회만 엿보고 있던 복면인들의 두 눈이 찢어질 듯이 부릅떠졌다. 뇌전을 집어 삼킨 불꽃이 시커먼 벼락을 토해내고 있다. 자신들의 머리 위로.
"무.물러서!!! 빨리!!"
경악성이 다급히 터져 나오고, 정신없이 물러서는 복면인들의 머리 위로 뇌전이 방향을 꺾어 떨어져 내린다.
"크억!"
"아악! 내 팔!"
뇌전의 파편이 스치는 곳마다 비명이 터져 나온다.
몽여화의 꽃잎이 박히는 곳마다 혈련화가 피어난다.
마차에 부딫친 모든 것들은 마치 철벽에 부딪친 듯 튕겨져 나간다.
휘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흠... 마차의 내부를 진으로 감싼 건가? 어쨌든 마차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군.'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튕겨져 나간 덩치 큰 복면인이 공중제비를 돌며 내려섰다.
쿵쿵쿵! 그의 걸음 걸음마다 단단하게 마른 땅이 깊이 패여 나가고.
"우욱!!"
그의 입에서는 진한 선혈이 토해져 복면을 타고 목 아래로 흘러 내린다.
마차 위로 내려 선 휘의 입가에 맺힌 하얀 웃음이 더욱 짙어져 간다. 입가로 언뜻 한줄기 가는 핏물이 보인다. 휘 역시 가볍지 않은 내상을 입은 듯. 그러나 다시 들어 올리는 만양에 서린 연붉은 검강만은 여전히 요요로운 불길을 토해내고 있다.
마차에 대한 걱정마저 덜어 내자 더욱 힘이 솟았다. 불끈!
"다시 해 보자구!"
복면인이 놀란 눈을 크게 뜬 순간, 마차 위에서 휘의 신형이 사라졌다. 극성에 이른 비월신영, 거기에 오보천환의 묘까지.
순간적으로 삼장을 이동한 휘의 신형이 겹겹이 겹치며 복면인의 코 앞에 닥쳤다. 그리고, 번쩍!! 전력을 다한 단천락!!
"흡!!"
복면인이 붉은 번개에 맞서 시커먼 도를 휘둘렀다. 그의 도에서도 묵빛 도강이 덩어리진 채 만양에 부딪쳐 간다.
한치의 양보도 없는 정면대결!
쾅!!! 주르르륵...
"크으윽! 우웩!!"
또 다시 뿜어지는 시뻘건 선혈에 가슴팍까지 젖어 버렸다. 묵도로 땅을 짚고 선 복면인의 신형이 거세게 흔들렸다.
믿을 수 없다는 눈빛에는 허탈감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의 뒤에 늘어선 복면인들도 일그러진 눈으로 상황을 주시할 뿐 움직일 생각을 못하고 있다.
우진자도, 유현명도, 싸움을 멈추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설마 했는데, 역시나였다. 흑살지주가 꽁지를 말고 도망갈 때부터, 어쩌면 휘의 무공이 자신들보다 강할지 모른다 생각했었다. 헌데 이건 강한 정도가 아니다.
맙소사!
싸움을 멈추고 눈을 동그랗게 뜬 우진자가 휘를 보며 속으로 가슴을 쓸어 내렸다.
'궁호산에서 안 덤비기를 잘 했군. 휴우...'
그러고는 덩치 큰 복면인에게로 눈길을 돌리고 물었다.
"혹시... 묵양도(墨陽刀) 장국령?"
복면인의 두 눈이 거세게 흔들렸다. 그러다 체념을 했는지 우진자를 바라보며 입을 연다.
"꼴이 우습게 되 버렸군...."
"세상에! 진짜 장도우란 말이오?"
복면인이 거칠게 복면을 벗어 버렸다. 복면에 흥건하던 핏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씁쓸한 웃음을 흘리며 장국령이 입을 열었다.
"다 늙어서 이런 꼴이라니... 크크크..."
그의 나이 육십이 다 되었다. 한때 천하의 수 많은 고수 중 도에 관한 한 십대 고수에 든다는 사람이 바로 묵양도 장국령이었다.
그런 그가 이제 이십 대에 불과한 젊은 자에게 처참한 패배를 당했으니... 어찌 비감이 서리지 않을 것인가.
장국령이 고개를 돌려 휘를 바라 보았다.
전력을 다해 단천락을 내려치고 반진력을 이용해 마차에 내려선 그의 표정은 한점 변함없이 무심하기만 했다. 금방이라도 다시 짓쳐 들 것 같은 모습 그대로.
"자넨... 누군가? 나 장국령을 무참히 밟아 버린 자넨 대체 누군가?"
기세에서도 졌고, 세기에서도 졌다. 그리고 마지막 일초로 힘에서도 밀려 버렸다. 한마디로 철저히 뭉개진 것이다.
천하에 자신을 이토록 처참히 뭉갤 사람이 몇이나 될 건가. 그래서 장국령은 궁금했다. 대체 저 괴물같은 자가 누구인지.
휘는 무심히 장국령을 바라보았다. 우진자의 놀람으로 상대가 평범한 자가 아니란 것은 알았다. 그렇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우진자가 나서지 않았다면 또 다시 공격했을 거고 끝장을 봤을 것이다. 굳이 달라진 것이라면 끝장을 보지 못했다는 것 뿐.
헌데... 너는 누구냐고?
휘가 잠깐 머뭇거릴 때였다.
숨을 헉헉거리며 복면인 하나를 눈빛으로 죽일 듯이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던 초평우가 나직이 말했다.
"형님은... 자칭 삼류무사의 아들이시지... 그리고 멋진 남자..."
폭풍처럼 몰아쳐 복면인 둘을 잠재운 풍인강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가슴이 뜨거운 남자... 사나이 인생을 한 번쯤 걸어 볼 만한..."
두 사람의 말에 휘의 얼굴이 슬쩍 달아 올랐다. 비록 면구로 인해 표시는 별로 안 나지만.
잠시 멍청하니 서있던 우진자가 어색한 표정으로 장국령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는데? 어쩔 거요? 장도우. 더 할 거요?"
장국령이 가라앉은 눈으로 우진자를 바라보았다.
"나는... 용혈궁의 묵룡단주네. 누가 뭐라 해도 용혈궁의 사람이지..."
"그런 사람이 왜 용혈궁주의 손녀를 공격한단 말이오?"
"그래서 공격한 것이네. 궁주의 손녀라는 이유만으로 어린 여인에게 용혈궁을 맡기기엔... 용혈궁을 위해 피를 흘린 사람들이 너무 많거든."
그 때였다. 마차 안에서 모용서하의 가녀린 음성이 흘러 나왔다.
"저는 용혈궁의 후계자가 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약속하라면 약속을 드릴 수도 있어요. 그래도 갈 수 없나요?"
순간 장국령의 눈이 거세게 흔들렸다.
모용서하가 후계자가 되지 않겠다면 자신이 마차를 막아 설 아무런 이유도 없다. 게다가 모용서하가 용혈궁에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이 명분을 잃게 될 것이다. 그것은 작지만 커다란 변화가 용혈궁에 일어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유야 어쨌든 모용서하를 죽이려한 사람들이 궁주의 결정에 반대했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으니까.
장국령이 결정을 못 내리고 망설이자 휘가 차갑게 웃었다.
"흥! 용혈궁을 위해서 피를 흘렸다는 사람들이 피가 두려워 옳고 그름도 분간하지 못한다면, 대체 그 동안 무엇을 위해서 피를 흘렸단 말입니까?"
휘의 신랄한 일갈에 장국령의 얼굴이 입가에 묻은 피보다도 더 붉게 달아 올랐다. 일그러진 얼굴을 들어 휘를 노려보던 그의 고개가 천천히 뒤로 돌아갔다.
그 곳에서는 아직도 천검보의 무사들과 북두검회의 검귀들이 서로를 향해 이빨을 들이대고 있었다. 바닥에 널브러진 동료들의 피를 밟으며 적의 심장에 검을 꽂기 위해 광분하고 있었다.
장국령은 참담한 심경에 입술을 깨물었다.
'용혈궁이 언제부터 외부의 도움을 받으며 지냈던가? 저들이 왜 용혈궁의 터전에서 칼부림을 하고 있단 말인가? 누가 저들을 불렀는가? 누가...? 왜....? 그런 나는 왜 막아서지를 못했는가?'
생각할 수록 허탈할 뿐이다.
"용혈궁의 일은 용혈궁의 사람들이 해결 했어야 하거늘...!"
정체가 드러나자 싸울 의지마저 무너진 장국령이 휘를 바라 보았다.
"어쩔 건가? 보내 주겠나? 끝까지 싸우겠다면 싸울 용의는 있네만!"
휘가 유현명을 돌아 보며 무심한 음성으로 말했다.
"표행의 총표두는 유대협이시죠. 저야 임시표사일 뿐..."
그 말에 유현명이 고졸한 미소를 지었다.
'총표두 보다 더 강한 임시표사라....'
용혈궁의 무사들이라는 것이 알려진 이상 그로선 쓸데없는 싸움을 계속할 필요는 없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 법, 혹여 후환이 백풍표국에 미칠 수도 있을 터, 그저 저들이 조용히 물러간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뿐.
"장대협께서 가시겠다면 막을 이유가 없지요. 다행히 저희 쪽에선 많이 다친 사람도 없으니..."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겠네... 대신 나중에 이 빚은 꼭 갚지..."
격동이 가라앉았는지 어깨의 떨림이 멈췄다. 그가 복면인들을 돌아보며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돌아간다! 묵룡단은 이 번 일에서 빠진다! 모든 뒤책임은 본 단주가 질 것이다! 소강!"
장국령의 부름에 복면인 중 하나가 앞으로 튀어 나왔다.
"예! 단주!"
"사상자를 챙겨라!"
"예! 단주!! 들었나? 단주님의 명이시다!!"
죽은 자가 아홉 명, 부상자가 십여 명이다. 한순간에 용혈궁의 정예 중의 정예 묵룡단의 무사들 이십 여 명이 쓰러진 것이다.
동료들을 챙기는 복면인들의 눈에는 묘한 빛이 떠올라 있었다. 그것은 결코 복수심이 서린 그런 눈빛이 아니었다.
안도의 눈빛, 이제야 뭔가가 제대로 흘러갈 것 같다는... 그런 기대에 찬 눈빛이었다.
벽룡 공손척
장국령이 묵룡단을 데리고 썰물처럼 빠져 나가자, 한쪽에서 벌어지고 있던 천검보와 북두검회의 싸움도 양상이 변하고 있었다.
막상막하, 한치의 양보도 없이 피를 튀기며 검을 휘두르던 북두검회의 검귀들이 뒤로 물러서 버린 것이다. 그러자 막상 천검보의 무사들도 달려들지 못하고 어정쩡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다시 싸우자면 싸우지 못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북두검회는 장국령이 떠나간 마당에 전멸을 각오하고 끝까지 싸울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천검보의 혁무성은 호위할 대상을 내 팽개친 꼴이 되었으니... 계속 싸운다는 것도 무안할 뿐이었다.
천검보의 무사들도 네 명이 죽고 다섯이 부상을 입은 상태. 혁무성은 벌게진 얼굴로 힐끔 휘를 바라보았다. 그는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자신조차 감당하기 힘든 묵령도 장국령마저 일패도지 하다니...
‘대체... 너는 누구냐?’
* * *
사람들이 떠나간 자리, 이름없는 송림에 남은 것은 비릿한 피냄새 뿐, 다가가던 짐승들조차 흠칫 떨며 두려운 눈으로 바라만 보고 지나친다.
표행이 지나가고 두 시진이 흐른 후, 새소리 하나 없이 정적만이 존재하는 그 곳에 두 개의 그림자가 조심스럽게 접근하더니 주위를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일각이 지나고, 둘 중 키가 큰 사람이 입을 열었다..
“두시진은 된 것 같은데?”
누런 황의를 입은 황발 노인의 말에-잘 보면 백의에 백발이다.- 주름진 얼굴에 거미문신을 한 회의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두시진은 됐어. 헌데 꽤나 지랄들 떤 것 같군. 사방이 온통 피로 물들었어. 니 빨간 눈처럼...”
황의 노인이 힐끔 빨간 눈을 흘겨 거미노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지은 죄가 있는지라 말은 못하고 싸움의 흔적만을 살펴 볼 뿐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의 눈이 번쩍 혈광을 발했다.
“거미귀신아! 이리 와 봐라!”
“음? 뭔 데?”
황의노인 귀혼유사의 손짓에 흑살지주는 한쪽의 부러진 소나무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 곳에는 허리어름에서 두 갈래로 갈라진 소나무가 서 있었다.
그리고 두 갈래 중 한 쪽이 강력한 타격에 부러져 있었다. 헌데 정확히 갈라지는 부분, 바로 그 곳에 한 송이 연화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세치의 깊이로...
귀혼유사가 말했다. 손가락으로 그 곳을 콕콕 찌르며. 속으로는 즐거워 미치겠다는 표정을 감추고...
“꼭... 사람의 거그 같지? 제대로 맞으면 저렇게 되는 갑다.”
부르르...
흑살지주의 전신이 학질이라도 걸린 것마냥 부들부들 떨렸다.
“그럼... 내 거기에도 저 꽃문신이....?”
“스쳐 맞았다며?”
“그래도... 자네가... 한 번 봐 주겠나?”
귀혼유사의 빨간 눈이 누렇게 변했다.
“...미쳤냐?”
* * *
하늘에 둥근 달이 유난히 붉은 기를 뿜어내는 밤.
신향 동쪽대로 영화객잔의 이층, 아홉명의 사람들이 둘러 앉은 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신향에 도착해 여장을 풀은 지 반시진, 궁주를 따르는 사람들이 모용서하를 마중을 나올 거라 기대했는데 아직 아무런 연락도 없는 것이다.
조용히 찻잔을 들어 품위있게 한 모금을 마신 우진자가 흘낏 유현명를 바라보며 말했다.
“안 올 것 같은 데?”
유현명이 심각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리 모용낭자가 따로 떨어져 살았다 해도 궁주의 친손녀이거늘....”
후르륵... 꿀꺽!
우진자가 인상을 쓰던가 말던가, 식은 차를 힘차게 마신 초평우가 차보다 더 식어 버린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거 힘 좀 냅시다! 모용소저가 처음부터 말했지 않습니까? 안 올지도 모른다고!”
그 말에 탕! 탁자를 치며 혁무성이 일어섰다.
“초소협의 말대로 어차피 뭘 기대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끼리만 가도...”
“앉아....”
난데없는 나직한 한 소리. 우진자가 얼굴을 굳히고 같잖지도 않다는 듯 혁무성을 쳐다보았다.
“자네야... 북두검회의 검귀들 나타나면 또 미쳐서 날뛸 텐데... 뭐? 호위를 자네에게 맡기라고? 쯔쯔쯔...”
우진자의 말에 혁무성이 힘없이 자리에 앉았다. 입은 있어도 할 말이 없었으니....
‘하필 그 놈들, 그 때 나타나 가지고... 개시끼들...’
다시 침묵이 방안을 무겁게 짓누를 때였다. 한쪽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휘가 고개를 들고 씩 웃었다.
“왔군요.”
“응?”
의문을 담고 휘를 바라 본 우진자, 느닷없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뭐? 또 왔어? 이 놈들이 죽으려고?!”
벌떡 몸을 일으키고는 검을 집어 들더니 금방이라도 방문을 박차고 나갈 것처럼 기운을 내뿜었다. 순간, 휘가 초평우를 향해 소곤소곤....
“초형, 봤죠? 차를 아무리 품위있게 마시면 뭐합니까? 사람이 먼저지...”
우진자가 고개를 홱 돌렸다. 그 때 휘가 손가락으로 창 쪽을 가리켰다. 그러자 우진자의 신형이 번개처럼 창 쪽으로 날아가.......려다 멈칫, 주위를 둘러 보았다.
조용... 그제야 상황을 깨달은 우진자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감히... 장난을? 나를... 어떻게 보고...!!’
또 다시 들리는 휘의 목소리.
“우리가 기다리던 사람들이 왔단 말입니다. 왜 그리 성격이 급하십니까? 그래 가지고 언제 화산의 제일고수가 될 수 있겠습니까? 성격을 조금만 누그러뜨리시면 금방 한 경지 올라 서실 텐데...”
화산제일고수? 한 경지를 올라서?
“음? 음... 그건 그렇지.... 사실 성격이 조금 급하긴 한데....허허...”
고개를 갸웃.
‘어? 내가 지금 뭐 하려다.... 가만..?!'
“뭐? 기다리던 사람? 용혈궁?”
휘가 고개를 끄덕이며 신형을 일으켰다.
“모용소저의 방에 있습니다.”
놀란 눈들이 휘를 향한다. 혁무성이 벌떡 일어섰다.
“사실이오?”
“그럼 형님이 거짓말 하신단 말이오?”
겁도 없이 초평우가 눈을 부라리며 나섰다. 하도 기가막힌 지 혁무성이 입을 벌리고 초평우를 바라보자 휘가 말했다.
“천검보가 빠진다 해서 아쉬워할 사람은 없을 것 같소만...?”
혁무성이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악물었다. 빠질 수는 없다. 그랬다간 성질 더러운 보주가 가만 두지 않을 테니까.
“끙... 가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