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7화 (197/200)

검에는 검

높이 일만척 태웅산의 십삼 준봉 중 비천봉 아래자락에 늘어선 거대한 전각군. 일필휘지 용사비등한 글씨체의 현판이 내 걸린 은룡전의 이층에는, 식은 찻잔을 앞에 놓고 백미 백염의 노인과 둥근 얼굴 얇은 눈의 중년인이 마주 앉아 있었다.  

헌데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지, 고개 숙인 중년인을 바라보는 노인의 굳어진 눈에서 한광이 흘러 넘친다.  

"놈들이 이 곳으로 오고 있다고?" 

"그렇습니다. 주군!" 

"대체 귀마련 놈들은 뭐 한 거야? 계집 하나도 못 죽이고!" 

"예상 외의 인물들이 끼어 들었습니다. 종남의 유현명은 물론이고 우진자까지 나타났다고 합니다. 게다가... 정체 불명의 고수가 백풍표국에 고용되었는데, 흑살지주조차 그를 당하지 못하고 달아났다 합니다." 

"정체 불명? 언제부터 자네가 그런 말을 했나? 본 궁의 정보를 책임진다는 사람이, 뭐라? 정체 불명?" 

"저... 그게... 이제 이십대로 보이는데... 어디에서도 그에 대한 정보가 없는 걸로 보아 강호초출이 아닌가 생각을...." 

"강호초출이... 귀마련의 오사 중 하나인 흑살지주를 개 쫓듯이 쫓아 버렸다? 그걸 나보고 믿으라, 그 말인가?"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지금 그자가 문제가 아니지 않는가? 음... 안 되겠어..."  

노인이 잠시 망설이는 듯 하더니 가늘게 떨리는 눈을 들어 중년인에게 물었다.  

"북두검회에서 온 놈들은?" 

"지금 묵룡단과 함께 움직이고 있습니다." 

노인이 차갑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 놈들, 천검보라면 이를 가는 놈들이니... 의외의 성과가 있을 수도..." 

노인의 말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중년인이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헌데... 장단주가..." 

"그도 이일에 끼어 든 이상 어쩔 수 없어! 내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말게." 

"알겠습니다. 주군." 

"방심하지 말아! 실패하면 궁주를 따르는 놈들에게 칼 한자루를 더 쥐어 준거나 마찬가지니까!" 

"명심하겠습니다!" 

                *        *         * 

신향 남쪽 백여리, 초여름 적산평원의 메마른 대지를 가르며 한대의 마차가 달려간다.  

마차 위에는 백풍표국의 표기가 바람에 휘날리고, 앞뒤로 천검보의 무사들이 호위하는 마차의 행렬은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 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마차의 마부석, 휘는 나른한 오후 햇살을 즐기며 오적상과 나란히 앉아 있었다. 유현상이 말 한 마리를 건네주며 타고 가라 했지만 휘는 정중히 사양했다. 마차를 타고 가며 생각할 것이 있다는 대답과 함께. 그리고 속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말을 타 봤어야 타지.... 이거 빨리 배우든가 해야지.... 원...'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고 달린 덕에 이제 신향이 백여리도 남지 않았다. 그 곳에서 모용서하를 넘겨주면 낙양으로 내려갈 것이다.   

비록 그녀는 용혈궁까지 같이 가 주기를 바라지만 신향에서 그녀를 보호할 사람들을 만난다면 굳이 같이 갈 필요는 없을 듯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한 없을 것 같던 적산평원이 끝나 가더니, 양 옆으로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늘어선 송림이 시작되고 있었다.  

송림으로 들어선지 일각가량이 지났을 때였다. 마차의 마부석에 앉아 느긋하니 싸한 솔향을 음미하고 있던 휘의 가늘게 뜨인 눈이 

번쩍였다.  

휘는 고개를 돌려 사람들의 표정을 살펴 보았다. 아직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는지 시원한 그늘이 펼쳐진 대로를 빠르지 않은 속도로 달리는 사람들의 표정은 한결 느긋해져 있었다. 

휘가 유현명을 보며 말했다. 

"유대협, 속도를 좀 늦춰야겠습니다." 

유현명이 휘를 돌아보았다. 그러다 휘의 표정이 살짝 굳어 있는 것을 보더니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손님이 온 것 같습니다." 

휘의 말이 끝나자마자 마차 안에서 모용서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상당히 강한 기운이에요. 멀지 않아요." 

이미 그녀의 능력을 알고 있는 유현명으로선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말이었다. 

"속도를 늦추시오!" 

유현명의 일갈에 앞에서 달리던 혁무성이 뒤를 돌아 보았다. 

"무슨 일이오?" 

"손님이 오신 듯하오." 

"손님? 적?" 

혁무성이 빠르게 주위를 돌아 보았다. 천위단 무사들은 속도는 늦춘 채, 사방을 경계하며 혁무성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마를 찌푸린 혁무성이 유현명을 보며 말했다. 

"사람의 기척은 없는 듯하오만..." 

사실 유현명도 확신을 할 수는 없었다. 자신 역시 느끼지 못하고 있었으니. 하지만 휘나 모용서하의 능력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그로선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유현명은 대답을 하지 않고 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휘가 나직한 목소리로 초평우에게 말했다. 

"초형, 느껴집니까?" 

"예? 뭐가 말입니까?" 

"새든 짐승이든 뭐든, 자연에서 살아가는 온갖 살아있는 것들의 순수한 기운 말입니다." 

잠시 주위를 둘러 보던 초평우가 고개를 저었다.    

"안 느껴지는데요." 

당연히 느낄 수 없었다... 그의 능력으로는... 

"순수한 기운은 없고 다른 이를 죽이지 못해서 발광하는 살기만 느껴지니.... 후우... 꼭 찍어서 먹어 봐야 아는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하려니 피곤하군요. 초형, 나를 믿습니까?" 

초평우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대답했다. 허리도 직각... 

"믿습니다!! 형님!!" 

그러자... 

"나도... 믿습니다." 

풍인강도 한 소리했다.  

어이가 없는지 혁무성이 벙찐 표정으로 휘를 바라본다. 그러자 휘가 우진자를 보더니 손으로 앞쪽을 가리켰다. 

"우진자 선배님의 목소리가 크니 소리 한 번 치시지요." 

더구나 듣기 싫은 목소리라면 더 효과가 있을 것도 같고.... 

"음? 뭐라고...?" 

"그냥 아무 말이나 하세요. 도적들처럼 숨어 있는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못하겠습니까?" 

휘의 유난히 큰 목소리에 우진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흠... 하긴..."    

하지만 굳이 소리까지 칠 필요가 없었다. 우진자가 앞으로 나서자 백여장 앞쪽의 소나무 숲에서 십여 명이 걸어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을 바라 본 혁무성의 미간이 와락 구겨졌다. 다른 사람이 알아 본 것을 자신은 몰랐다는 것에 공연히 노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것도 하필 기분 나쁜 저 젊은 놈이 알아 본 것을... 

"웬 도적 놈들이냐?!" 

그러다 보니 목소리가 고울 리 없었다. 혁무성의 물음에 가시가 돋친 것을 알았는지 다가오던 자들 중 하나가 나서며 소리쳤다. 

"우리는 도적이 아니다, 혁무성! 함부로 말하지 마라!" 

상대가 자신을 알아보자 혁무성의 눈이 싸늘하게 굳었다. 자신을 알면서도 마주 소리친다? 그것은 상대 역시 그만큼 자신감이 있다는 말. 

다가오는 자들을 자세히 살펴봤다. 그 때였다. 무얼 보았는지 혁무성의 눈매가 싸늘히 굳어지고, 입에선 냉랭한 한풍이 흘러나왔다. 

"그러고 보니... 북두검회의 도적 놈들이었군!" 

그는 본 것이다. 상대의 어깨 위로 솟은 검병에 그려진 일곱 개의 별을. 오직 하북의 대검문 북두검회에서만 사용하는 북두칠성의 신표를.  

그렇다면 자신을 알아 본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놈들은 천검보에 관해선 무엇이든 병적으로 조사를 했을 테니까. 

북두검회(北斗劍會)!! 

모두가 놀란 얼굴로 멀리서 다가오는 자들을 바라보았다. 

다가오던 자들은 모두 열 네 명이었다. 언뜻 열 네 명으로 뭘 할 수 있을까 생각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했다가는 큰코 다치기 십상이었다. 저들은 소수정예라는 북두검회의 검귀들인 것이다. 

앞장서서 한 사람이 걸어오자 휘가 초평우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역시 자동... 

"북두검회는 하북의 팽가와 함께 하북의 양축을 이루고 있는 대문파입니다. 항상 일곱명씩 조를 이루어 움직이며 하나하나가 일류고수급의 검귀들만 모아놓은 곳이 바로 북두검회입니다. 천검보와는 만나기만 하면 검부터 빼 들 정도로 앙숙입지요. 아마 천검보에게 밀려 칠패에 끼지 못했다는 것에 한을 품은 듯합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천검보주 천수검왕(千手劍王) 사공천과 북두검회주 북두신검(北斗神劍) 동방백이 원수지간이라는 말도 있던데..." 

초평우의 말이 끝나 갈 때쯤, 천검보의 무사들이 모두 앞으로 나섰다. 그들의 표정은 대적을 앞둔 전사의 표정, 바로 그것이었다.  

심지어 마차의 호위조차 신경을 쓰지 않고 오직 북두검회의 무사들을 향한 적개심만을 뿜어내고 있어, 그들의 목적이 마차의 호위인지, 아니면 북두검회와 싸우려는 것인지를 분간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걸 보고는 유현명이 한마디했다. 

"천검보와 북두검회가 만났으니 조용히 지나가긴 틀렸군요." 

그러자 우진자도 뒤지지 않고 말을 보탰다. 

"저래서야 무슨 호위를 하겠다고.....쯔쯔..." 

상황을 지켜보던 휘가 마차에서 일어서며 사위를 훑어 보았다. 

"단단히 각오들 하셔야 합니다. 

초평우가 휘를 바라보았다. 북두검회와 천검보의 힘은 비슷하게 보였다. 그렇다면 그리 염려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유현명과 우진자, 거기다 휘가 합세하면 북두검회의 저지를 뚫고 나가는 것은 그리 어려워 보이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건 그거고, 초평우는 휘의 말이라면 무조건 '믿습니다.'였다.  

"풍가야! 형님이 각오하란다!" 

풍인강이 차갑게 굳은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하고 있소." 

그 역시 '믿습니다.'였다. 

천천히 북두검회의 무사들에게 다가가던 혁무성이 검을 빼들었다.  

"이곳까지 오다니 죽으려고 환장했군. 북두검회의 개." 

북두검회의 무사들 중 앞장서서 오던 자가 하얗게 웃는다. 

"후후후... 나 육진평에게 개라는 놈이 다 있다니...." 

그의 말에 혁무성의 안색이 차갑게 굳어졌다. 

"육진평? 요동의 마검 육진평?!" 

"그래도... 이름은 들어 봤나 보군." 

"들어 봤지. 들어보고 말고... 요동에 미친 들개 한 마리가 있다는 말을 듣고 어떤 놈인지 궁금했지... 그러고 보니 개가 맞긴 맞군." 

순간 육진평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지더니. 

"네 놈이... 감히..." 

쩡! 

검이 뽑혔다 싶은 순간, 번개 한 줄기가 육진평의 어깨에서부터 뻗어 나왔다. 삼장의 거리를 두고. 

혁무성도 칼같은 눈빛을 반뜩이며 검을 내 쳤다. 신형을 날리며. 

떠더더덩!!! 

일순간에 팔검이 교차했다. 힘대 힘으로. 

주르륵 뒤로 물러선 두 사람의 굳어진 눈에서 살광이 번뜩이다가 서서히 늪속 깊숙이 가라앉았다. 한치의 양보도 없는 일수격검으로 상대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실력이라는 것을 둘 다 절감한 것이다.  

뒤에 있던 천위단의 무사들이 혁무성을 중심으로 날개를 펴며 북두검회의 무사들을 압박해 간다. 북두검회의 무사들도 검을 빼 들고 마주쳐 간다.  

두 무리가 내뿜는 기운에 휩쓸린 초목들이 갈가리 부서지며 허공에 휘날렸다.  

그들의 대치를 바라보던 휘가 난데없이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왔군." 

뭐가 왔단 말인가?  

미처 의혹을 느낄 시간도 없이, 우진자는 자양신공의 기운을 끌어냈다. 그도 느낀 것이다. 송림을 조여 오는 끈적끈적한 살기를. 

"대체 어떤 놈들이기에...?" 

챙! 

우진자에 이어 유현명도 검을 빼 들었다. 한순간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 검을 빼 드는 시간조차 아껴야 하는 것이다.  

마차를 중심으로 네 명이 둘러서자 휘가 마차 안을 향해 말했다. 

"위험할 수도 있소." 

마차 안에서 모용서하의 대답이 들려 온다. 

"우리는 걱정마세요. 나름대로 대비는 하고 있으니까요." 

그럴 것이다. 단 둘이서 귀마련의 고수들 손에서 빠져 나와 장안까지 간 사람들이다. 단순히 운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마차를 신경쓰며 싸울 수는 없는 일. 모용서하가 걱정 말라면 그만한 자신이 있어서일 터였다.  

휘는 고개를 들어 숲 속을 바라보았다.   

스스스.... 

살기가 밀려 온다. 점점 가까이... 끈적끈적한 습기를 머금은 안개처럼... 

유현명의 검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고, 우진자의 검에선 자주색 기운이 넘실대며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츠르릉.... 만양의 연 붉은 검신이 요요로운 나신을 드러냈다. 

순간, 소나무 사이의 자잘한 잡목 사이로 수십 명의 복면인들이 모습을 보였다.  

절제된 움직임, 말없는 행동. 결코 뜨내기 무사들이 아니다. 그렇다고 사악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다. 그들에게선 오직 하나, 살기만이 뿜어지고 있을 뿐이다. 

휘의 눈빛이 깊게 침잠되어 들어갔다. 

'복면을 했다는 것은 숨길 것이 있다는 말이겠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망설이지 않겠다!' 

그 때였다. 복면인들의 뒤에서 나지막하면서도 단호한 명령이 떨어졌다. 

"시.작.해!!" 

명령이 떨어지자 복면인들이 신형을 날린다. 도검을 앞세우고, 마차를 향해서. 

"타앗!" 

격돌은 풍인강의 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쾅! 

풍인강의 무지막지한 검격에 달려들던 복면인 하나가 주르륵 물러선다. 그러자 다른 복면인이 풍인강의 옆구리를 노리며 검을 날렸다.  

"감히!" 

우진자의 노호성이 터지며 자주색 검기가 허공 가득 자색매화를 흩날린다. 화산에서 오직 그만이 익혔다는 자운매령(紫雲梅翎)이었다. 

유현명의 검이 긴 동선을 그리며 두 복면인의 머리 위를 덮쳐 간다. 절운검이라는 그의 별호처럼 구름이 긴 검의 궤적에 걸려 조각조각 부서져 나가는 듯하다. 

떠더덩! 콰광!! 

폭죽이 터지듯 검력이 터져 나가며 달려들던 자들이 주춤거린다. 

"크윽!" 

"어헉!" 

강렬한 일격에 내부가 흔들린 복면인들이 피를 토하며 나 뒹군다. 

이마에 매화 한송이가 틀어 박히자 복면을 타고 흘러 내린 시뻘건 선혈이 온 몸을 적신다.  

검의 궤적에 걸려 가슴이 벌어진 복면인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다.  

한순간이었다. 서너 수만에 네 명의 복면인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동료들이 힘없이 쓰러지자 복면인들은 우진자와 유현명이 막아 선 두 곳을 피해서 신형을 날렸다. 마차의 정면, 휘가 막아선 곳으로.      

순간 휘의 입가로 차가운 웃음이 떠 올랐다.  

'검을 들이대는 자에겐 검으로! 그것이 강호의 법칙이라면!!'   

묵양도 장국령

복면인 세 명이 동시에 달려드는 것을 보며 만양을 들어 올렸다. 거리는 일장, 검과 검을 내 뻗으면 맞닿을 거리. 

후웅!  

만양이 연붉은 기운을 내 뿜으며 허공을 갈라 버렸다. 유성파벽! 

쾅! 쨍! 

귀청을 찢는 굉음과 동시에, 세 자루의 검이 허리가 부러진 채 허공에 떠 올랐다.  

"끄으으...." 

억눌린 신음을 흘리며 세 명의 복면인이 훌훌 날아간다. 뒤이어 달려들려던 복면인들이 놀란 눈을 크게 뜨고 주춤 멈춰 섰다.  

찰나, 휘의 신형이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며 흔들렸다. 

주욱 나아가던 신형이 허공에 다섯 개의 환영을 만들어 내며 갈라진다. 다섯의 환영이 만양을 들어 복면인들을 향해 흔들었다. 유성낙화우! 

붉은 검기가 하늘에서 우박처럼 흩뿌려지며 떨어져 내린다. 

"조.조심해!!!" 

처음으로 복면인의 입에서 다급성이 튀어나오고, 분분히 물러서는 복면인들 사이를 뚫고 두 개의 검이 쏘아져 온다.   

떨어져 내리던 만양이 옆으로 흐르며 베어 오는 검을 휘감아 흘리더니, 찔러 오는 검의 검첨을 후려쳤다.  

쩡! 츠르르...  

튕기듯 밀려 가는 검을 따라 미끄러지며 복면인의 가슴을 후비고.  

스스슥!  

예리한 칼날에 종이가 잘려 나가는 듯한 소음이 천둥처럼 복면인들의 귓전을 파고 들었다. 순간. 

파팟! 시뻘건 선혈이 분수처럼 뿜어지며 두 명의 복면인이 그 자리에서 무너져 간다.  

달려들던 복면인이 달려들던 속도보다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수적인 우세도 너무 차이가 나는 힘 앞에선 소용이 없었다. 경악으로 일그러진 눈들에선 공포가 스며 나오고 있었다. 

순식간에 다섯 명이 무너져 내렸다. 미친 듯 달려들던 복면인들이 급살이라도 맞은 양 우뚝 멈춰서 버렸다. 그제야 휘는 무심한 표정으로 사위를 쓸어 보았다.  

삼십여장 떨어진 곳에서는 천위단과 북두검회의 무사들이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다. 

유현명과 우진자는 차분히 복면인들을 몰아치며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있었다. 

풍인강은 한기를 풀풀 날리며 복면인 둘과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고, 초평우는 한 명의 복면인과 마주 서서 사생결단을 낼 듯이 도를 휘둘러 대고 있었다. 죽을 둥 살 둥 모르고 신이나 있어 보는 사람이 불안할 지경이다. 어찌나 살벌하게 싸우는지 옆에 있는 복면인이 끼어 들지도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아직 이십 여명의 복면인들이 남아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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