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6화 (196/200)

이틀이 지나 산맥군을 벗어나자, 저 멀리 거대한 황톳물이 흐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걸 본 휘의 눈이 경악으로 부릅떠졌다. 

비온 뒤에 흐르는 거대한 물결, 황하의 거센 물결은 휘의 가슴을 떨리게 만들 정도였다. 

"황합니다. 굉장하죠?" 

초평우의 말에 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놀랍군요. 세상에 저런 강이 있다니..." 

그러자 풍인강이 싸늘한 표정을 가늘게 떨며 말했다. 

"혹시 바다 아니오?"  

그도... 황하는 처음 본 것이다. 

"푸하하하!!!" 

우진자가 참을 수 없는지 대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황하는 이 땅에 있는 두 개의 거대한 강 중에 하나다. 수많은 나라가 황하와 장강을 중심으로 흥망을 반복했지." 

휘도 아버지들에게 들었었다. 황하와 장강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직접 본 황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그렇다면... 

'언제 시간 나면 장강도 가 봐야겠다.' 

그 때였다. 마차 안에서 모용서하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황하와 장강을 중심으로 천하의 힘이 모여 있어요." 

그 말을 듣자 휘의 가슴에 폭풍이 일었다.  

'언젠가는... 천하를 논할 때 그 중심에 만상문이 있게 만들 것이다. 바로 내가! 사부님의 이름으로! 아버지들의 이름으로!!' 

휘가 초평우를 보고 물었다. 

"초형, 천하의 중심에 있는 땅이 어딥니까?" 

"예? 그야... 지역으로 따지면 하남성이지요." 

휘가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런지는... 아무도 몰랐다.  

휘가 황하를 보며 가슴 벅차 할 때, 멀리서 표행을 지켜보고 있는 자들이 있었다. 그 중 하얀 얼굴이 말했다. 빨간 눈을 번뜩이며. 

"어쩔 테냐? 청부는 처리해야 하지 않겠느냐?" 

검은 얼굴이 대답했다. 줄 쳐진 사이에 얇게 떠진 눈을 가늘게 떨며. 

"네가 앞장 선다면...." 

빨간 눈이 흔들렸다. 

"음... 우진자까지 끼어 들어서..." 

얇은 눈이 조금 크게 뜨였다.  

"너도 그렇지? 아무래도 좀 더 기다리는 게..." 

하얀 얼굴이 혈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더 좋은 기회가 생길 때까지 기다리자. .....나는... 일치를 때마다 피똥 싸기 싫거든..."  

순간 얇은 두 눈이 새빨갛게 달아 올랐다. 

'띠...발...놈!' 

천위단주 혁무성

이틀을 내리 달리자 낙양의 북쪽 맹진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맹진이 보이는데도 사람들의 표정은 밝아지지가 않았다.  

장안에서 보낸 전서구가 정주의 표국에 닿았다면 맹진에서 조력자를 만날 수 있을 테지만, 그것 역시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전서구라는 것이 반드시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었으니.  

그나마 귀혼유사와 흑살지주가 쥐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으니 다행이라는 생각 뿐이었다.  

그렇다고 마음을 놓을 수도 없었다. 귀마련에 청부를 넣을 정도면 모용서하를 결코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모용서하를 해치려는 자들 쪽에서 무슨 수를 부려도 부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으니....  

두두두..... 

오시 초, 마차가 빠른 속도로 맹진에 들어서자 저 만치 백 여장 밖에서 몇 사람이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유현명이 손을 들자 오적상은 마차를 멈춰 세웠다. 

"저들은 천검보의 무사들 같은데...?" 

우진자가 눈살을 찌푸리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유현명도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저들이 무슨 일로 이 곳에...? 오라는 사람들은 안 오고..." 

말을 타고 의연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자들은 모두 다섯이었다. 하늘색 청의에 등에 삐죽 튀어 나온 검을 차고 이마엔 옷과 같은 색인 하늘색 영웅건, 그리고 가슴엔 네 자루의 검이 교차하며 하늘 천자를 그리고 있다. 

칠패 중 한 곳이며 하남의 중부 허창에 자리한 천하제일보, 바로 그 곳, 천검보 무사들의 전형적인 복장이었다.  

잠시 생각하는 사이 거리가 십여장으로 줄어 들었다.  

선두에 서서 다가오던 자가 우뚝 멈춰서자 나머지 네 명도 말을 세우고 형형한 눈을 들어 표행을 바라보았다. 

사십 초반으로 보이는 중년무사가 굵은 목소리로 물어온다. 

"거기 오시는 분들 중 혹시 모용성을 쓰시는 분이 계시는지요?" 

유현명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계시긴 하오만, 천검보의 무사들이 무슨 일로 본 표국의 표행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오?" 

중년무사가 안광을 번뜩이며 말했다. 

"본 인은 천검보의 혁무성이라 하오. 용혈궁의 의뢰를 받고 모용소저를 모시기 위해 왔소." 

꿈틀, 유현명의 눈썹이 구렁이가 기어 가듯 한 차례 꿈틀거렸다. 혁무성이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봤다. 그러나 밖으로 흐르는 기세만으로도 결코 자신의 아래로 보이지가 않았다. 누굴까? 누구기에 이 정도의 기세를 흘린단 말인가? 진짜 천검보의 무사일까? 아니면...  

그러나 의문도 잠시, 이자가 누구든 상관없었다. 표행을 막는다면 모두가 적인 것이다.  

"우리는 표행 중이오. 의뢰는 우리가 먼저 맡았소. 아무리 천검보라 해도 우리 표행을 막을 권리는 없을 것 같소만." 

혁무성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뒤에 있던 무사 하나가 나서며 소리쳤다. 

"감히 일개 표국이 천검보의 행사를 막겠다는 건가?" 

순간 유현명의 눈이 싸늘하게 빛났다. 그는 뒤의 무사는 보지도 않은 채 혁무성을 향해 말했다. 

"천검보가 언제부터 이렇게 안하무인이었는지 모르겠군." 

"물이 고이면 썩는 법이지." 

우진자도 한 소리했다. 그러자 혁무성의 눈빛이 칼날처럼 번뜩였다. 

"귀하는...?" 

"나?" 

멀뚱거리며 혁무성을 바라보던 우진자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럼,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막아 섰단 말인가!!?" 

느닷없는 고함에 혁무성이 멍하니 우진자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우진자가 한 번 더 소리쳤다. 

"잘한다! 잘해! 그럼 저 친구가 종남의 절운검 유현명인 것도 모르고 있겠군!" 

유현명이 씁쓸한 고소를 물고 우진자를 바라보았다. 

"우진자선배도 몰라 봤는데 저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어떻게든 두 사람의 이름이 다 튀어 나왔다.  

혁무성은 눈 앞에 있는 사람들이 종남과 화산의 유명한 고수라는 것을 알고 가볍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 뿐, 오히려 안광이 더욱 강렬해져 갔다.  

"미처 몰라뵈었소이다.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지요. 천검보의 천위단 단주 혁무성이라 하오이다." 

"천위단주?" 

이 번에는 유현명과 우진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뒤 쪽에선 초평우가 휘을 향해 즉시 설명을 시작했다. 완전...자동이었다. 

"천검보의 천위단은 한마디로 별동대라 할 수 있습니다. 천검보의 자랑이라는 사대 무력과는 별도로 보주의 특명을 받고 움직이는 사람들입니다. 웬만해선 강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했는데 아무래도 천검보 역시..." 

초평우가 혁무성 쪽을 한 번 바라보고는 말을 이었다. 

"작정하고 이번 일에 끼어 들기로 한 모양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휘가 한마디를 보탰다. 나직이. 그래도 못들을 사람은 없을 테니 좋은 말로... 

"꿀이 있으면 벌떼가 몰려 들기 마련이지요."   

혁무성이 칼날같은 눈빛으로 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휘는 못 본척 유현명을 보며 말했다. 

"갈 길이 먼데... 가시죠?" 

유현명이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자 휘가 슬쩍 전음을 보냈다. 

<적이든 아니든, 아쉬우면 따라 올 텐데 뭘 걱정 하십니까?>   

그랬다. 생각해 보면 그의 말대로였다.  

유현명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휘를 바라보다 풀썩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혁무성을 쳐다보며 말했다. 

"우리는 표행을 계속 할 것이니 따라 오든 말든 알아서 하시구려." 

혁무성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철심을 가졌다는 그조차 판단이 서지를 않았다.  

상대는 구대문파의 고수다. 일대 일이라면 밀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둘은 무리다. 게다가 마차 옆에서 깝죽거리는 자들도 간단해 보이지가 않는다.  

저 싸늘한 표정, 광기까지 느껴지는 눈빛. 허술한 듯 하면서도 말 한마디로 유현명을 움직이는, 지닌 바를 분간하기 힘든 자까지. 또한 젊은 자들임에도 천검보라는 이름에 흔들리지 않는다.  

그 모든 것이 혁무성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었다.  

생각도 잠시, 혁무성이 뒤를 향해 가볍게 고갯짓을 하자 무사들이 길을 터 줬다.     

마차가 나아가자 천검보의 천위단원들이 뒤를 따른다.  

슬쩍 뒤돌아 본 휘가 유현명에게 말했다. 

"유대협, 사람들이 서로 공짜 보표를 하겠다고 나서는 것 보니까 백풍표국 얼마안가서 강호제일표국이 되겠는데요?" 

물론 작은 소리로. 듣던가 말던가. 

우진자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거기에 나도 들어가는 건가? 설마...?' 

혁무성의 안광은 더욱 날이 선다. 

'대체 저놈 정체가 뭐야?   

동으로 이십여리, 백학포구가 나왔다. 강가로 나가자 거대한 황하가 누런 때깔을 뽐내며 줄기차게 흘러가고 있었다. 상류에서 적지 않은 비가 내렸는지 그 폭이 십리도 넘어 보였다. 

그 곳에는 천검보에서 준비한 한 척의 배가 대기하고 있었다. 마차를 통째로 실을 수 있도록 갑판에 넓은 판이 대어져 있는 걸로 봐서, 모용서하가 마차를 타고 온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던 듯했다.   

유현명의 미간이 보일 듯 말 듯 찌푸려졌다. 

그들이 여기까지 오는 동안 끝내 백풍표국에서 사람이 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든지, 아니면 방해를 받았다는 말일 것이다. 둘 중 어느 것이든 앞으로 길이 평탄치 않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유현명이 뱃전에 오르며 혁무성을 보고 물었다. 

"천위단의 무사는 몇이나 왔소?"  

"건너편에 열이 더 있소." 

합이 열 다섯. 천위단이라는 이름을 생각하면 적지 않은 숫자. 이 쪽까지 합하면 스물 셋.  

그러나 적을 생각하면 많은 숫자도 아니다. 갈 길은 아직도 삼백 오십 여 리 남았거늘. 

유현명이 침중한 표정으로 혁무성에게 말했다. 

"한시도 마음을 놓아선 안 될 것이오." 

혁무성의 뒤에 서 있던 무사가 냉랭히 입을 열었다. 여전히 유현명 일행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천검보의 무사가 일개 표사 같은 줄 아시오?" 

마차를 따라 배에 올라서던 휘가 무심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귀혼유사가 나타나도 그리 태연한지 한 번 봐야겠군." 

그러면서 포구 뒤편을 쓱 훑어 봤다. 

혁무성이 놀란 눈으로 휘를 보았다. 

"귀혼유사라 했소?" 

"흑살지주도 있었지? 아마?" 

우진자가 유현명에게 물어 보는 투로 말하자 혁무성이 이를 지그시 깨물었다. 

'우진자나 유현명이 거짓을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귀마련의 두 마귀가 정말 뒤쫓고 있다는 말. 게다가 그 둘 뿐이 아닐 것이다. 귀마련이 나섰다면...  

자신들이 생각하고 있는 방해자에다 귀마련, 생각보다 강한 저지가 예상되자 혁무성은 무사들을 향해 차갑게 말했다. 

"배에서 내리거든 방심하지 말고 주위경계를 철저히 하도록!" 

"예! 부단주!" 

포구에서 이백 여 장 떨어진 송림.  

한 사람이 나무 위에 내려서다 말고 깜짝 놀라 미끄러지더니, 간신히 옆으로 뻗은 나뭇가지에 걸터 앉은 채 하늘을 쳐다 보며 부르르 떨고 있었다. 

'띠...벌...!!!  왜 하필 그 때 쳐다 보는 거야!!!? 끄으으...." 

그 옆에는... 

'끄......끅끅!!' 

시뻘건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혼신의 힘으로 입을 틀어 막고 있는 낯 붉어진 하얀 귀신도 있고...  

싯누런 황톳물을 따라 빠르게 내려간 배가 산점포구까지 가는데 한 시진이 걸렸다.    

노련한 사공들이 아니었다면 뒤집혔을지 모를 정도로, 비 내린 뒤의 황하는 위험했다. 하지만 또한 그 덕분에 적어도 반나절의 시간은 벌 수 있었다. 

산점 포구에 내려서자 열 명의 무사들이 말을 탄 채 대기하고 있었다. 하나 하나가 고수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날선 검 같은 천검보의 천위단원들이었다. 

마차를 호위하며 유현명과 휘 일행이 내려서자 그들의 눈이 혁무성을 향했다. 그러자 언뜻 혁무성의 눈에 갈등이 어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혁무성이 무사들을 향해 냉랭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마차를 호위하고 용혈궁으로 간다!" 

공연한 다툼으로 전력을 소비할 필요는 없었다. 유현명이나 우진자의 명성도 명성이지만, 이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들만으로 용혈궁에 당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마차 한대를 둘러 싼 무사들이 선점포구를 떠나갈 때쯤, 백학포구에선 한 척의 소선이 포구를 떠나고 있었다. 포구에선 날강도라도 당한 듯 사공 하나가 주저 앉은 채 버럭 버럭 소리치고 있었다. 

"이 보시오! 스무 냥 짜리 배를 다섯 냥만 던져 놓고 훔쳐 가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이오?!!" 

콰르르르.... 황화는 대답없이 흘러간다. 보일 듯 말 듯 멀어진 소선에서도 대답이 없다. 

"에라이! 똥구멍에 말뚝 박혀 죽을 귀신같은 놈들! 퉤!!"  

황하보다 더 싯누런 가래침이 강물 위로 떨어졌다.  

사공은 소선이 황하의 누런 포말에 섞여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지자 옷을 탈탈 털고 일어섰다. 

"씨불 귀신같은 놈들... 가다가 콱! 빠져 뒤져라!" 

한 소리 악담을 하며 뒤돌아 서던 사공이 씩 웃었다. 

"고칠 건지, 버릴 건지 고민했는데... 다섯 냥이믄 오늘 저녁에 소월이 년하고 한잔 해두 되겠구먼. 낄낄낄!" 

짤랑, 짤랑... 사공의 손 안에서는 은전이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굴러간다. 

황하의 한가운데에선 한 척의 소선이 비틀거리며 나아간다. 

"하얀 귀신아! 너, 배 몰아 봤다며?" 

"조용해!! 힘 빠지니까!!" 

"....너 ....첨이지?" 

"...." 

부들 부들... 시커먼 얼굴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에라이..." 

두 귀혼은 주인이 힘쓰는 것을 멀뚱 멀뚱 바라 볼 뿐이고... 

"...서호에서는... 저어 봤는데...." 

마지막 변명을 하는 귀혼유사를 바라보며 흑살지주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어째 그 놈을 만나고부터 이리 재수가 없으까.... 에휴... 이제는 팔자에 없는 물귀신이 될 판이니..."  

그 때였다. 

뚝! 노가 부러지더니, 하얀귀신의 말이 떨려 나왔다. 

"물이... 샌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선점포구에서 상류 쪽 오십여리 되는 곳, 부서진 뱃조각을 부여잡은 두 사람이 강가를 기어 오르고 있었다. 

"히.히.히.... 살았다. 흐.흐..." 

"쿨룩! 쿨룩! 내가... 뭐라...했냐... 쿨룩! 호랑이한테... 물려도.. 정신만..." 

"시끄.... 빨간 눈깔 뽑아서 물고기 밥으로... 던져 주기 전에... 헥.헥...." 

"....눈에 물들어 가면... 더 빨게 지는데..." 

"지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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