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5화 (195/200)

꽃을 들고 있는 젊은 놈이 하얗게 웃고 있다. 

'엇! 웬 꽃이?' 

헌데... 꽃은 꽃인데... 가공할 살기가...  

혼비백산한 그가 몸을 뒤집으며 순간적으로 세 바퀴를 돌고 뒤 돌아섰을 때였다. 등 아래쪽이 시원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거기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눈을 들자 꽃이 바로 앞에 보인 것이다. 아! 씨발! 

이를 악물고 시커먼 쌍수를 들어 일순간에 십팔장을 쳐 냈다.  

쩌저저정!!! 

자신의 자랑 흑주인(黑蛛引)이 갈기갈기 찢겨지며 겨우 꽃이 부서져 나간다. 그걸 보며 흑살지주의 입가에 만족의 미소가 떠올랐다. 

"그렇게 기분이 좋소?" 

하지만 휘의 한 소리에 좋았던 기분이 일시에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다. 사실 좋아할 일이 아니었는데 왜 자신이 좋아 했는지도 의문이었다.  

눈에 힘을 주었다. 놈이 앞에 있다. 여전히 일장의 간격. 요사스런 붉은 검을 앞세우고. 

"대체 너는..." 

자신도 모르게 떨리는 목소리로 흑살지주가 휘에게 물을 때였다. 

쾅! 

"으음..." 

한쪽에서 굉음과 함께 신음이 터져 나왔다.  

유현명이 창백한 안색으로 주르륵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귀혼유사도 두 걸음을 물러섰다. 그가 혈안을 빛내며 유현명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풍인강과 오적상등이 귀혼을 몰아치고 있는 곳으로. 

그걸 본 휘가 만양을 치켜 들었다. 

"저 쪽은 놔두고 우리끼리 놀아 봅시다." 

"헉!" 

흑살지주의 입에서 다급성이 터져 나왔다.  

징그런 놈... 이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 나오려다, 휘의 만양에서 붉은 기운이 솟구치자 대경하며 몸을 튕겨 올렸다. 그러면서 한마디. 

"오늘은 그만 가마! 하지만 언제고...." 

"흥! 끝을 보자니까?!" 

날아오르는 흑살지주를 보며 휘의 만양이 길게 그어졌다. 검첨에 붉은 구슬이 맺혔다.  

"탄!"  

쐐액! 

한줄기 붉은 구슬이 탄자결에 실려 허공에 쏘아져 간다. 그러다 어둠 속에서 방향을 트는 흑살지주의 뒤쪽을 스쳐 지나갔다. 꽃봉오리를 활짝 펼치며. 

"흡! 헥!" 

가벼운 놀람에 이은 기괴한 신음. 휘의 입가에 슬쩍 웃음이 맺혔다. 뭘 봤기에... 

뒤 쪽에서도 소란스런 소리가 들렸다.  

"놈이 도망간다!" 

언제 죽을 뻔 했냐는 듯 유난히 큰 초평우의 목소리였다.  

귀혼유사가 신형을 날리고 있었다. 귀혼도 덜렁거리는 팔다리를 이끌고 자신의 주인을 따라가고 있었다. 단 둘만. 셋은 바닥에 너부러져 있었다.  

헌데 잠시 후, 흑살지주가 날아간 쪽으로 신형을 날린 귀혼유사의 웃음소리가 산속을 울렸다. 

"켈켈켈!!!! .....킬킬킬!!!" 

"퉤!" 

휘가 한모금 피를 뱉어 냈다. 흑살지주가 사력을 다해 내친 장력에 적루몽이 부서져 나갔다. 그 바람에 내기가 흔들리며 피가 끌어 오른 것이다.  

다행히 표시를 내지 않아서 쉽게 물러가긴 했지만, 계속 했다면 그자를 죽인다 해도, 휘 역시 상당한 내상을 감수해야 했을 것이다.  

'아무래도 내공연마에 좀더 신경을 써야겠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세 명이 죽고 세 명이 부상을 입었다. 유현명도 안색이 창백한 것이 내상을 입은 듯했다. 그나마 오적상은 풍인강이 날뛴 덕분에 심한 부상을 입지는 않았다. 그가 살아남은 표사들을 지휘해 죽은 자들을 한 곳으로 모으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침중하니 굳어져 있었다.  

표행을 하다보면 자주 겪는 일이긴 하지만 오늘처럼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귀마련의 오사였으니... 산 것이 다행인지도...    

떨어지는 빗줄기가 점점 굵어진다. 시간이 흐른다면 장원에 흐른 피가 조금은 씻겨져 나갈 터. 그러나 죽은 동료들에 대한 마음만은 여전히 그들의 가슴에 남아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초평우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휘에게 다가왔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휘가 빙그레 웃었다. 

"아까... 위험했습니다." 

"힘이 없으니... 죽어도 싸죠, 뭐." 

고개를 푹 숙이는 초평우의 등 뒤로 유모가 다가왔다. 

"정말 죽일 수도 있었어요. 너무 무모한..." 

휘가 말했다. 굳은 표정으로... 

"죽였다면... 그자도 죽었을 겁니다. 초형의 제단에 머리를 바쳐야 하니까." 

"예?" 

"강호는 누가 자신을 돌봐 주기 전에 자신이 살아 남아야 합니다. 그게 강호의 법칙이라고 배웠습니다. 안타까워도 어쩔 수 없습니다. 다시 그 상황이 닥쳐도..." 

-휘아야, 강호는 눈 멀뚱히 뜨고 있어도 코 베어 가는 곳이다. 항상 조심해야 돼. 누가 너를 돌봐 주기 전에 네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돼, 알았지?- 

정말 죽여도 공격했을 거라는 말. 유모가 놀라며 눈을 크게 뜨자 초평우가 씩 웃었다. 

"까짓 꺼 죽으면 한 번 죽지 두 번 죽습니까? 남에게 폐를 끼칠 것 같으면 죽어도 싸지요." 

죽는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두 남자의 말을 유모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 왜 아까는 살려 보냈죠? 죽일 수있었다면..." 

"그 자가 나와 싸우지 않고 다른 사람을 공격했다면, 그를 죽이기 전에 다른 사람이 몇은 죽을 겁니다. 손해날 장사를 뭐 하려 합니까?" 

휘가 비내리는 어둠 속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때. 

"맞아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나섰겠죠."  

"헛! 또 있다고요?" 

방에서 들리는 모용서하의 말에 초평우가 놀라며 어둠 속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모용서하가 다시 말했다. 

"아까 방으로 침입했던 자처럼 몇이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을 거예요. 최소한 둘 정도는..." 

휘의 눈이 빛났다. 자신도 신경을 곤두세워서야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두 명의 기척을 찾아냈다. 그들은 철저히 기척을 감추고 숨어 있었다. 헌데 저 여인은 아무렇지 않게 그 말을 하고 있다. 어떻게 알았을까? 장원에 들어 오기 전에도... 

휘가 의문이 담긴 눈으로 방을 바라보자 그녀의 말이 다시 들려왔다. 

"저에게 남들이 없는 약간의 재주가 있을 뿐이에요." 

기이한 여인....  

휘가 그녀에 대한 생각에 눈빛이 깊어질 때였다. 

"그런데... 아까 귀혼유사가 왜 그렇게 웃었을까?" 

휘에게 다가 온 유현명이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휘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흑살지주의 엉덩이쪽 옷이 갈라졌습니다." 

사람들의 표정이 괴이하게 일그러진다.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펴며. 순간 휘가 한마디를 더 했다. 

"마지막에 제가 날린 적루몽이 그의 엉덩이...에 빨간 꽃을 그렸지요." 

"...." 

마침내 그들의 머리 속에 한가지 그림이 그려졌다. 시커먼 늙은 거미의 엉덩이가 벌려지고... 붉은 꽃이.... 설마 한가운데...? 

"쿡! 크크크..." 

"푸하하하!!!" 

"아마 당분간은 어디에 앉지도 못할 겁니다. 그 때마다 저를 생각하겠지요." 

"호호호호!!!!" 

끝내는 방안에서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한바탕 터져 나온 웃음에 살풍경이 날아가 버렸다. 빗속에서 동료의 시신을 옮기던 사람들도 웃음을 참지 못할 지경이었으니... 그저 죽은 사람에게 미안하기만 할 뿐... 

우진자

빗줄기가 점점 거세지더니 기왓장을 부술 듯이 쏟아지고 있었다.  

쿠르릉! 쾅! 

천둥소리가 죽어간 사람들의 넋을 위로하려는 듯 천지에 울려 퍼진다. 

상황이 정리되자 방안에 사람들이 모였다.  

두 여인과 유현명과 오적상, 장호 그리고 휘 일행까지. 방안은 여전히 금령방혼진이 펼쳐져 있었다.  

사람들을 둘러보며 유현명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음... 조소협 덕분에 놈들을 물리치기는 했지만 앞길이 어찌 될 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태요." 

모용서하가 말했다. 

"당분간은 달려들지 않을 겁니다." 

"왜...?" 

"귀마련의 내노라 하는 고수들인 오사 중 둘이 패퇴하고 달아났어요. 그 이상의 전력을 어디에서 데려 온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죠." 

모용서하가 말을 하는 도중 휘를 바라보았다.    

"조소협이 있는 한 그들은 멀리서 지켜만 볼 거 에요." 

휘가 조금은 쑥스런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입을 열었다. 

"아까 하던 말을 다시 해 봅시다. 저들이 왜 소저를 죽이려 하는 겁니까?"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사람들의 눈이 모용서하를 향했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그래요. 저를 보호하려다 사람까지 죽었으니..." 

옆에서 유모가 말리려다 모용서하가 가만이 고개를 젓자 할 수 없다는 듯 물러섰다. 그러자 모용서하가 휘를 바라보며 말했다. 

"대신 한가지 약조를 해 주세요." 

휘의 눈이 깊이 가라앉았다.  

"내가 지킬 수 있는 거라면..." 

모용서하가 빙그레 웃었다. 문득 이 여인의 웃는 모습이 보기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엉뚱하게도... 

그녀가 말한다. 기대감을 품은 채. 

"조소협이 용혈궁까지 보표를 계속해 주세요." 

휘가 이마를 찌푸렸다. 낙양까지 같이 가기로 했었다. 용혈궁은 낙양에서도 사백여리 동북쪽 태행산맥의 끝에 자리잡고 있다. 그 곳까지 갔다 온다면 적어도 닷새정도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뭐, 그 정도라면....' 

답이 없자 유현명이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보수는 섭섭치 않게 주겠네." 

승낙하려 했는데 보수까지!? 그야 당연히...  

"좋소. 대신... 모든 상황을 말씀해 주시오. 아무 것도 모른 체 칼 맞긴 싫으니까." 

그의 말에 모용서하가 빙그레 웃었다. 약간은 들뜬 듯한 웃음이 입가에 스친다. 

"일단 신향까지만 가면 마중 나올 사람들이 있을지 몰라요. 만일 마중을 나온다면 어느 정도는 용혈궁에서 저를 인정한다는 뜻일 테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녀의 말끝이 흐려졌다.  

"하지만 제가 가는 목적이 꼭 그것만은 아니니 실망할 것은 없어요." 

모용서하의 눈에 슬픔이 떠 오르는 것이 그것 때문인가? 가족에게 외면 당할지 모른다는 마음 때문에...?  

휘가 모용서하의 눈빛을 생각하는 사이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조부님의 건강이 안 좋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어요. 이십년 만에 처음으로 온 소식이었죠... 어쨌든 제게 마침 조부님의 병과 관련이 있는 물건이 있어요. 해서 알리지 않고 유모와 단둘이서 살던 곳을 떠난 거 에요. 가족으로 인정을 받든 못받든, 단 하나있는 조부님의 건강만은 지켜 드리고 싶은 마음에..."    

그러나 용혈궁의 지배자들은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모용서하는 모용진광의 단 하나있는 친손녀니까. 다른 말로 모용진광이 죽을 경우 최우선의 후계자라는 말. 

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헌데... 어찌 귀혼유자가 소저의 뒤를 쫓고 있다는 것을 알았소?" 

모용서하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제가 무이산을 떠나자마자 귀혼유자가 나타났어요. 처음에는 그와 그가 데리고 있는 악귀 뿐이었죠." 

아마 용혈궁에서 정보를 주고 의뢰를 했을 것이다. 그 곳에서 소식을 전했으니 궁주의 동태를 살피던 자들이 모를 리 없었을 터였다. 그리고 그걸 저 여인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가족에게 쫓긴다는 것을 말하기 싫었을 뿐. 

"요행으로 두어 번 그들의 눈을 속이긴 했지만 계속 속일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자들까지 움직이는 같았으니까요." 

진법을 펼칠 수 있는데다 신비한 능력, 거기다 유현명과도 맞설 정도인 유모의 무공을 본다면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방향을 틀어 장안 쪽으로 올라왔어요. 그리고 마침 유대협께서 표행을 한다는 것을 알고 백풍표국에 급히 보표를 의뢰했죠. 독자적으로 움직이다가 표행에 묻어 간다면 저들도 혼란을 일으킬 테고, 유대협이라면 능히 귀혼유사를 상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다른 자가 있어도 저와 유모가 그럭저럭 상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니까요. 그리고 설령 알아챈다 해도 종남과 화산의 텃밭인 섬서에서 함부로 움직이기에는 아무리 귀마련이라 해도 쉽지 않을 테니까요." 

말을 하던 그녀가 문득 밖을 쳐다 본다. 그러자... 휘가 고개를 돌려 어둠 속을 향해 물었다.  

"귀하는 어찌 생각하시오?" 

순간. 

"무량수불, 공연히 부끄러운 짓만 한 것 같소이다." 

나직한 도호소리가 어리둥절해 있는 사람들의 귀에 울려 퍼지고, 한 사람이 방문 앞에 나타났다.  

"유모, 진을 열어 주세요." 

모용서하의 말에 유모가 나서더니 진세를 이루고 있던 곳의 나무막대기를 두어 개 비틀었다. 그러자 금빛 아지랑이가 사그라지며 세자정도의 틈이 벌어졌다. 그 사이로 젖은 도복을 입은 후줄근한 도인 한 사람이 들어섰다. 그를 보더니 유현명이 놀라 소리쳤다. 

"우진자 선배?" 

"무량수불, 오랜만이네, 유도우." 

"대체....?" 

"좀 전에 왔네만, 이미 상황이 끝난지라 나서지도 못하고.... 허허허..." 

우진자, 약간 마른 몸에 둥근 얼굴, 한자는 됨직한 기다란 턱수염. 유현명보다 열살 정도 연상인 오십대 중반의 나이에 화산의 매화오검 중 한 사람.  

성정이 묵직해서 쉽게 남의 일에 끼어 들지 않는 걸로 유명한 도인이다. 물론 화산파의 알만한 사람들만은 그렇게 평가하지 않지만...  

그가 남의 일에 끼어 들지 않는 것은 오직 한가지 이유, 귀찮아서.... 헌데 귀찮은 것을 그렇게 싫어하는 사람이 웬일로? 

"우진자 선배가 웬 일로 귀찮은 일에...?" 

유현명의 질문이 제대로 정곡을 찔렀는지 우진자의 눈이 힐끔 유현명을 노려 보았다. 그러나 곧 이어지는 너털 웃음. 

"음... 귀신들이 화산을 지나갔다고 하길래... 뭐, 재미있을 것도 같고... 허허허!!" 

유현명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그것이었다. 그는 귀찮은 일에는 절대 끼어 들지 않지만, 또한 재미있을 것 같은 일에는 절대 빠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던 휘가 물었다. 슬쩍 비꼬듯이. 

"그럼... 도사님도 이번 표행에 끼어 들겠다는 겁니까?" 

우진자가 휘를 바라봤다. 헌데 의외로 조용하다. 유현명이 어리둥절할 정도로.  

'저 마른 장작 같은 양반이...?' 

조용하다가도 한 번 불붙으면 마른 장작처럼 대책없이 타오르는 사람이 우진자거늘, 웬일로...?  

그 때 우진자의 머리 속에서는 몇 가지 생각이 빠르게 교차하고 있었다.  

'패자니... 보통 놈이 아닌 것 같은 데... 그렇다고 안 하겠다고 하면 안 끼어 줄 것 같고.... 으음...' 

어쩔 수 없었다. 저 어린 놈 말에 밀려서 그냥 지나칠 수야...  

"허허허... 여도우를 돕는 일이 창생을 돕는 일인 듯하니 내 어찌 손을 놓고만 있을 수 있겠소." 

거창한 이유를 들이 대며, 결국 그는 표행에 끼어 들기로 했다. 

휘는 모용서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입가에 가느다란 웃음이 걸린 것처럼 느껴졌다.  

그도 공연히 웃음 나왔다. 유현명의 표정을 보고, 우진자의 성정이 괴팍할 것 같아 슬쩍 건드렸더니 당장 걸려 들었다. 

'순진한(?) 도사님이군. 훗!' 

덕분에 강력한 보표를 한 명 얻었다. 공짜로... 

아침이 되자 비가 멎었다. 안개가 자욱이 피어오른 궁호산에선 간간이 새소리만이 들려 오고 있었다.  

시신들을 한쪽 방에 안치하고 부상자를 남겼다. 어차피 표행이 떠나간 이 곳을 다시 습격하지는 않을 것이니 위험할 것은 없었다. 그리고 장호가 나머지 일을 처리하기 위해 남겨졌다. 위험한 길을 같이 가는 것보다는 이 곳에 남아 뒷처리를 하는 것이 그에게 더 나은 일이라 생각한 것이다. 

안개가 자욱한 궁호산을 넘어가는데 한나절이 꼬박 걸렸다. 모용서하의 말대로 습격자들은 없었다. 멀리서 지켜 볼 지는 몰라도. 

그런데도 사람들의 표정은 어째 편안해 보이지가 않았다.  

하루종일, 우진자의 경을 외우는 소리가 궁호산을 넘어가는 내내 사람들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죽은 사람을 위해 그런다 하니 말릴 수도 없었다. 목소리라도 좋으면 그런 대로 참으련만... 

헌데 잘 참고 걸어가던 초평우가 휘에게 무슨 소리를 듣고 오더니,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한 소리 내질렀다. 

"그래 가지고 제삿밥 잘도 얻어 먹겠수. 이거 산에서 암퇘지가 뛰어 내려오지 않을지 모르겠네..." 

그랬다가 불붙은 마른 장작에 한동안 타작을 당했다. 의외로 휘가 지켜 보기만 하자 우진자는 신이나서 더욱 잘 타올랐다.  

나중에 휘가 초평우에게 슬쩍 물었다. 

"흠... 초형, 천양의 법문은 계속 외우고 있었지요?" 

초평우도 나직이 대답했다. 

"예, 형님. 형님의 손속에 비하면 별거 없던데. 효과가 있을까요?" 

휘가 빙그레 웃었다. 

"작은 불도 잘만 키우면 제법 쓸만하게 커지지 않겠습니까? 유대협에게 들으니 우진자 선배의 자양신공도 그럭저럭 경지에 이르렀다 하니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겁니다." 

마침 마차 옆에서 말을 해선지 안에서도 들은 듯했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라 조용했지만 나중에야 말 뜻을 알았는지.  

"킥!" 

"호호!" 

모용서하와 유모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우진자는 오랜만에 기분을 풀었다는 듯 의기양양하게 앞장서 걸어간다.  

그 후로도 초평우는 하루에 두어 번씩 우진자를 건드렸다. 그러면 우진자는 신이나서 타올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