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의 신형이 땅에 내려서자 세 명의 무사가 달려 들었다. 절제된 검격에는 한치의 틈도 보이지 않는다.
휘의 좌수가 한자 앞까지 다가온 검 하나를 순간적으로 후려쳤다.
쩡!! 우웅!!
"크윽!"
검면을 가격당한 무사가 검은 놓치지 않은 채 뒤로 주르륵 물러서고, 휘의 신형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헛!"
휘의 등에 회심의 일격을 가하며 내심 득의한 표정을 짓던 무사가 당황하며 사방을 둘러 보는 순간.
"허공이다! 피해!"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와 함께 가공할 경력이 머리를 짓누르고.
"크억!"
눈이 뒤집어지며 쓰러지는 자를 놔둔 채 다시 세 명의 무사들이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그러자 휘의 신형이 허공에서 천천히 떨어져 내리며 걸음을 옮겨간다. 천중무!
묵직한 기운이 내리누르자 날아오르던 무사들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그러더니 신음과 함께 날아오르던 것보다 더 빨리 떨어져 내렸다.
"우욱!"
"커윽!"
"물러서!"
보다 못한 웅경이 일권을 내지르며 소리쳤다. 영호련도 입술을 잘근 깨물며 소검을 앞세우고 신형을 날렸다.
휘가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웅경의 권력이 다가오자 그 힘을 이용해 이장을 더 올라갔다. 순간, 간발의 차이로 영호련의 소검이 발 밑을 스치고 지나간다.
허공으로 치 솟아오른 휘의 신형이 한바퀴 회전을 하더니 일순간, 그의 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조심!!"
땅에 내려서서 허공을 바라보던 웅경이 놀라 소리쳤다.
어둠에 녹아 든 휘의 종잡을 수 없는 움직임은 상대에게 두려움을 안겨 주고 있었다. 그것은 웅경 자신도 예외가 아니었다.
웅경이 급박하게 소리칠 때, 휘의 신형은 이미 사공민의 일장 앞에 내려서고 있었다.
휘의 손이 만양을 잡아간다. 뽑혀 나온 만양의 나신이 연붉은 빛을 흩뿌리며 좌우로 쓸어 간다.
"헉!"
사공민의 입에서 경악의 신음이 흘러나왔다.
휘는 그의 얼굴에 바짝 만양을 내밀며 씩 웃었다. 반갑다는 듯.
사공민은 대경하며 뒤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휘와의 간격은 조금도 멀어지지가 않는다.
‘이런!’
싸움을 단원들에게만 맡긴 채, 미처 검을 뽑지도 않고 있던 사공민이었다. 그가 이를 악 물고 검을 빼려 할 때였다.
<검을 빼면 죽는다!>
고막을 울리는 전음에 사공민의 표정이 시커멓게 죽어버렸다.
그가 망설이는 사이, 휘의 좌수가 피보다 더 붉은 혈련화를 어둠 위에 그렸다. 급히 몸을 틀어 피하려 하지만 눈이라도 달린 듯 휘어지며 가슴을 파고 든다.
검을 빼지도 못하고 내력을 있는 대로 끌어 올려 좌장을 내쳤다. 순간, 좌장의 한 가운데가 뻥 뚫리고.
팍!
질려 있는 사공민의 가슴에 한송이 혈련화가 피어났다.
"크윽!"
뒤로 튕겨지는 사공민의 얼굴이 사색으로 굳어지고, 그걸 보는 휘의 얼굴에 짓궂은 표정이 떠올랐다.
'사공민, 나중에 정식으로 무릎을 꿇려 주마. 그 때까지 나의 흔적을 잊지 말거라. 후후후...'
사공민이 몇 수만에 튕겨 나가자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무사들의 표정이 해쓱하니 굳어 버렸다.
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웅경과 영호련을 바라보았다.
잔뜩 공력을 끌어올린 그들의 얼굴에서 단호한 표정이 보인다.
어찌 그러지 않으랴. 자신들과 별 차이가 없는 사공민이 단 몇 수에 당해 버렸다.
아무리 어둠 속이라지만 자신들도 일류고수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몇 수 견디지도 못하고 당했다. 암객들과의 싸움을 보고 자신들보다 강할 거라 생각은 했지만, 현실은 그 정도가 아니었다. 차이가 나도 너무 난다.
결국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인가.
두 사람이 휘에게 한 걸음 다가가자 철혈단원들도 굳은 얼굴로 휘를 에워싸 간다.
휘는 다가오는 사람들에게서 눈을 돌려 풍인강 쪽을 바라보았다.
풍인강은 조국령과 일전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한치도 물러섬 없는 그의 검격에 조국령의 얼굴도 딱딱하니 굳어 있었다.
두 사람의 전신에는 크고 작은 상처가 나 있었다. 다행이라면 두 사람의 싸움에 다른 무사들이 끼어 들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마 조국령의 자존심이 작용했으리라. 게다가 충분히 제압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을 테고. 사실이 그러했으니까. 그러나 정면대결로는 쉽게 밀릴 풍인강이 아니었기에 아직도 승부는 나지 않고 있었다.
문제는 초평우가 조국령의 대원 한 사람과 격전을 벌이며 정신 없이 밀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른 네 사람은 초평우와 대원의 싸움을 바라보며 상황을 즐기고 있을 뿐이었다. 이미 그들의 손아귀에 들어 왔다는 듯.
휘는 그런 두 사람을 그대로 놔두었다. 풍인강이 밀리긴 해도 금방 끝날 싸움이 아니었고, 저들이 초평우를 죽이려 하지 않는 이상, 오히려 저런 격전은 초평우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너무 심한 상처만 입지 않는다면 말이다.
'초형이 오늘의 일을 견딘다면 적지 않은 발전이 있을 것이다.'
휘는 생각을 갈무리하며 주위를 에워싼 사람들을 돌아 보았다.
죽이려 한다면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신비세력의 무사들과는 달리, 철혈성의 무사는 함부로 죽일 수가 없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부님과의 약조를 어길 수는 없으니까.
-철혈성과의 문제는 오직 철혈의 도전을 통해서만 해결한다.-
그리고 또 한가지, 훗날 자신의 생각대로 된다면 자신의 손발이 될지도 모르는 자들이 아니던가.
문득 영호련의 눈과 마주쳤다. 휘의 입가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졌다. 휘가 말했다.
"거기! 물러선다면 보내 주지!"
영호련이 아미를 치켜 세웠다.
"흥! 누가 누구를 보낸단 말이냐?"
"나는 철혈의 도전을 했을 뿐이다. 이렇게 쫓길 이유가 없다. 거기도 철혈성의 무사라면 그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휘의 말에 영호련의 반달같은 눈매가 가늘게 떨렸다. 어찌 모를까.
성에 무사로 들어오며 숱하게 들었던 말이거늘. 하지만...
"철혈의 도전은 사라졌다. 그걸 모르고 본 성의 무사를 공격했단 말인가?"
"훗! 임가형은 자신의 자존심을 걸고 나와 싸웠다. 거기가 왈가 왈부 할 일이 아니지."
말끝마다 거기, 거기다.
영호련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자세를 하고.
그 때였다. 숲 속에서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철군명이 걸어 나왔다.
"폐지된 철혈의 도전을 들먹이며 임가형 분타주를 쓰러뜨린 것은 중죄지. 결코 본 성의 분노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나왔군.'
마침내 그가 나왔다. 철군명이.
아마 풍인강과 초평우가 자신들에게 거의 잡히다시피 한 이상 휘가 쉽게 움직이지 못하리라 계산을 했을 것이다. 게다가 휘 역시 세 명의 대주를 비롯해 철혈단의 무사 십 여명에게 둘러싸여 있으니, 제 아무리 고수라도 일시지간 자신을 어찌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 했을 터였다.
시간을 끈 목적이 달성되자 휘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마침내 게으른 주인이 나왔군."
철군명의 눈이 분노로 불타 올랐다. 그러나 쉽게 움직이지는 않았다. 아직은 자신의 패가 유리하니까.
"후후후... 네 놈의 동료를 생각한다면 쉽게 말을 뱉어 선 안될 것이다."
"글쎄..."
휘가 하얀 웃음을 지었다.
"누가 누구를 생각해야 하는지 모르겠군."
말이 끝남과 동시에 휘가 일보를 내딛었다. 순간적으로 그의 신형이 흔들렸다.
"엇!"
철군명이 놀라며 다급히 물러섰다. 앞에 철혈단의 무사들이 휘를 에워싸고 있지만 안심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그가 보여 줬던 움직임을 생각한다면.
아니나 다를까, 휘의 신형이 좌우로 갈라지더니 다섯의 환영이 생겨났다.
"막아!!"
잔뜩 웅크리고 있던 영호련의 가느다란 고성이 울려 퍼지고.
"억!"
단말마와 함께 두 명의 무사가 뒤로 튕겨졌다. 그 사이로 휘의 환영이 춤을 추듯이 빠져 나간다. 극한의 빠름으로.
휘의 환영을 향해 영호련과 웅경이 덮쳐 갔다.
철군명은 다가오는 휘의 환영을 바라보며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휘의 환영이 일장 앞에 이르자 그의 검이 뽑혀져 나왔다.
일순, 벼락같은 일검이 휘의 환영을 양단해갔다.
"놈!!"
팍!
환영 하나가 허공에서 사라지자 철군명의 검이 다시 좌우를 베어 간다. 뭉실거리는 검기를 가득 실은 채.
휘의 신형이 검기가 가득 실린 철군명의 검을 타고 옆으로 흘렀다. 찰나, 번쩍!
만양이 뽑히며 붉은 번개가 철군명의 검을 내리쳤다.
쾅!
"욱!"
물러서는 철군명을 한 번 바라본 휘가 빙글 돌아섰다. 눈앞에 웅경과 영호련의 얼굴이 보인다. 빙긋 웃은 휘의 신형이 두 사람 앞에서 어른거렸다. 또 다시 갈라지는 휘의 환영.
웅경이 사방을 향해 권력을 난사하고, 영호련의 소검이 파란 검기를 동반한 채 갈지자로 허공을 그어 간다. 헌데.
째쟁!!
"커억!"
"우욱!"
엉뚱한 곳에서 느닷없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다급히 고개를 돌린 그들의 눈에 어이없는 광경이 들어왔다.
초평우를 공격하던 무사가 피를 토하며 튕겨져 나가 버렸다. 둘러 서있던 네 명의 무사가 힘겹게 검을 들고 물러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풍인강마저 혼신을 다해 조국령의 검을 떨치고는 휘의 옆으로 물러서 있다. 조국령은 감히 휘의 곁으로 갈 생각도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다.
그 모든 일이, 자신들이 휘의 환영에 헛손질을 하는 사이 벌어진 일이었다.
‘대체 언제...’
휘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철군명을 바라봤다.
"아직도 그대가 유리한가? 어디 다시 시작해 보자구."
철군명의 안색이 딱딱히 굳어졌다.
휘가 일보를 옮기자 불에 덴 듯 뒤로 주르륵 물러섰다. 그러더니 일그러진 표정으로 명령을 내렸다.
"모두 쳐라!"
차마 철군명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는 무사들이 모두 신형을 날렸다.
나아가던 휘의 신형이 또 갈라진다. 그러나 이번엔 다섯이 아니다.
다섯이 다시 다섯으로 갈라진다. 스물 다섯의 환영이 무사들의 정면을 가로막자 대경한 무사들이 자신도 모르게 멈춰서 버렸다.
스르륵 안개가 스며 들 듯 휘의 환영이 어둠을 파고 들었다.
"으악!"
"어억!"
"커억!"
순식간에 일곱 명의 무사가 사방으로 튕겨졌다. 바로 옆에 동료가
있는 상황, 그들로선 검을 휘두를 수도 없다. 급급히 피하는 무사들 사이로 휘의 환영이 빠르게 흘러갔다.
영호련의 당황한 모습이 보인다. 휘가 씩 웃으며 영호련을 바라보다가 그대로 영호련의 머리를 타 넘었다. 순간 웅경의 쌍권이 강력한 권력을 일으키며 휘를 쳐 온다. 휘의 좌권이 웅경의 권에 정면으로 일권을 내질렀다.
쿠궁!!
주르륵 뒤로 세 걸음을 물러선 웅경의 눈이 크게 뜨였다.
'이.이.이 권세는!!??'
놀랄 사이도 없이 휘의 그림자가 철군명을 덮쳐 간다.
철군명은 어둠 속에서 휘의 신형이 나타나자 이를 악 물고 검에 혼신의 내력을 주입했다.
검신을 타고 내력이 폭발할 듯이 넘실거린다. 그러다 한순간, 검 끝에 파란 기운이 뭉치더니 한자가량을 죽 뻗어 나갔다. 지금껏 어느 누구에게도 보여 주지 않았던 검강의 경지였지만, 지금은 이것 저것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빠르게 다가가는 휘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철군명이 이장 앞에 있다. 찰나간의 거리. 헌데 그의 검에서 검강이 형성되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상황, 그렇다고 망설일 시간도도 없다.
파앗!!
만양이 어둠을 연붉은 빛으로 물들이고, 번쩍 허공이 갈라졌다.
콰쾅!
미끌리듯이 물러서는 철군명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해 버렸다. 주춤 멈춰 선 휘의 눈빛도 신중하게 굳어졌다.
일시지간에 끌어올린 기운이 제대로 검에 실리지를 못했다. 그래선지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한 듯하다.
‘상대를 경시하다니... 어리석은!‘
후웅!
가볍게 만양을 휘돌렸다.
만양의 끝에서 피어 오르는 연붉은 아지랑이. 화르륵, 붉은 강기가 검날을 달려 뻗어 나간다.
"다시 한 번 받아 봐라!"
스윽...
미끄러지며 다가간 휘, 만양이 어둠을 찢어 버리며 붉은 강기를 떨구어 냈다.
뒤로 주르륵 물러선 철군명이 검을 중단으로 끌어 올렸다. 가공할 기운에 절로 눈이 부릅떠진다.
'제기랄, 할 수 없다.'
그 때였다. 뭔가 결심을 굳힌 듯 이를 악문 철군명의 눈이 암흑으로 물들어 간다. 그러더니 끝내는 흰자위조차 사라져 버렸다.
미끼는 싱싱할 수록 좋다?
순간, 그의 검 끝에서 묵빛 암흑의 기운이 실처럼 뻗어 나오더니, 악마의 이빨을 들이대며 달려 들었다.
그러자 휘의 만양에서 생성된 강기가 한줄기 붉은 번갯불만을 남긴 채 어둠을 양단했다.
콰과쾅!!!
"크윽!"
이장 밖으로 튕겨진 철군명의 머리가 풀어 헤쳐져 날리고, 입에서 가느다란 피를 흘리며 몸을 일으키는 그의 눈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흡떠져 있다.
휘도 세 걸음을 물러서서 놀라움이 담긴 차가운 눈으로 철군명을 바라보았다.
첫 번째 검격과는 천양지차의 기세였다. 뭔가 알 수 없는 어둠의 기운, 만양에 잘려지면서도 끈끈하게 버티던 그 기운은 결코 철혈성의 무공이 아니었다.
사이하면서도 파괴적인 힘. 암울한 암흑의 마기. 그 힘이 휘의 내부를 흔들어 버렸다.
휘는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핏물을 그대로 삼켜 버리고, 철군명의 흰자위가 보이지 않는 시커먼 눈을 바라보았다.
"마공인가?"
휘의 말에 철군명의 눈이 어둠으로 일렁인다.
"흐흐흐... 네 놈이 상관할 일이 아니지..."
“하기는, 내가 상관할 건 없겠지.”
차갑게 말을 맺은 휘가 우수에 들린 만양을 가볍게 흔들었다.
순간적으로 붉은 기운이 넘실대며 피어오르다가 검첨에 맺혔다. 철군명의 두 눈에서도 시커먼 암흑의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천천히 들어 올려진 휘의 만양이 허공에 한 송이 꽃을 그려 간다. 그걸 보며 철군명의 눈이 괴이하게 일그러졌다.
“뭐 하는 짓....”
휘가 씩 웃으며 혈련화의 마지막 꽃잎를 그려 가고, 순간, 보통 때보다 더 커다란 혈련화가 허공에서 꽃잎을 벌렸다. 그리고...
“직접 봐! 가라!”
휘의 입에서 터진 나직한 외침에 둥실, 허공에 떠 있던 혈련화가 철군명을 향해 벼락처럼 튕겨졌다.
혈련삼화의 두 번째, 몽여화(夢餘花)! 그 초현이었다!
고오오오....
“헉!!”
철군명의 시커먼 두 눈이 걷잡을 수 없이 흔들렸다. 혈련화에서 전해지는 강렬한 천양의 기운에 암흑의 기운이 격렬하게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이다.
“으아아!!”
솟구치는 마기를 참을 수 없는지, 괴성을 내지른 철군명이 혼신의 힘으로 혈련화를 향해 암흑의 마기가 서린 검을 내질렀다.
일순간, 혈련화와 암흑의 기운이 허공에서 부딪치고, 엉켜들다가, 끝내 터져 버렸다.
콰르르르... 콰쾅!!!
“크어억!”
“으음...”
터져나간 두 가지 기운에 대기가 비명을 지르고, 두 사람이 튕겨져 나갔다.
"쿨룩! 웩!!"
이장 밖으로 나가 떨어진 철군명이 한웅큼의 선혈을 토해내며 떨리는 무릎을 세웠다.
주르륵, 네 걸음을 물러선 휘도 창백하게 굳은 안색으로 기혈을 가라앉혔다. 그런 그의 두 눈에 진한 갈등이 어렸다.
본시 휘는 사부와의 약조가 어겨지더라도 철군명만은 철저히 응징을 하려 했었다. 그런데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자꾸 휘의 마음을 잡아 당기고 있었다.
저자에겐 암울한 어둠이 깃든 무언가가 있다. 어쩌면 뭔가를 알아낼 수있을지도...
'아까운 기회이긴 하지만... 미끼는 싱싱할수록 좋다 했으니...'
휘가 갈등을 하는 사이, 두 사람의 격돌을 질린 안색으로 보고 있던 웅경과 영호련등이 재빨리 철군명의 앞을 가로 막았다.
다른 철혈단의 무사들도 떨리는 검을 치켜 세운 채 휘를 에워쌌다.
하늘의 달도 구름사이로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사위가 달빛을 받아 밝아져 온다. 일그러진 보름달이 무슨 일인가 하고 고개를 내밀자 상황이 달라졌다.
휘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내기를 가라앉히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달빛조차 없을 때는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밝은 달빛이 있는 상황서는 결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적들은 미처 그 차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휘는 충분히 깨닫고 있었다.
어둠이라는 원군이 없는 이상, 계속 싸운다면 이길 수는 있어도 많은 손해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는 아무런 이득도 없다.
휘는 만양을 검집에 집어 넣고 차갑게 입을 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따라온다면 막지는 않는다. 그러나 죽음을 각오해야 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