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9화 (189/200)

심지어 어둠 속에서 무공을 익혀 온 자신들보다도.

그것이 암객들의 최대 실수였다.

바람을 타고 어둠을 유영하던 암객팔호의 눈이 경악으로 흡떠졌다. 

한 자루 소전을 쏘아 보내고, 허공으로 신형을 날려 바람을 타고 목표의 머리위로 접근할 때였다.

문득 자신과 함께 건너편에서 목표를 향해 떨어져 내리는 암객육호가 보인다. 붉은 서기가 그의 허리에 걸쳐진 것이 눈에 들어온다. 

순간, 한줄기 무엇인가가 허리에서 분수처럼 뿜어진다. 혈우였다. 

미처 놀랄 사이도 없이 자신의 몸도 붉은 서기가 일으킨 동선에 놓여졌다. 그것은 어둠을 가르는 한줄기 핏빛 번개. 

대경하며 본능적인 움직임으로 몸을 뒤집었다.

'흡!'

뇌리에서 경고를 발하기도 전에 붉은 서기가 어깨를 훑고 지나간다. 

이를 악물고 뒤로 몸을 튕겼다. 

이장을 물러선 그의 눈이 잘게 떨렸다. 저 만치 무언가가 땅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맙소사! 저것은 내 팔!

'크읍!'

뒤늦게 그의 목구멍에서 소리없는 신음이 터져 나왔다. 

두 명을 베어낸 휘의 신형이 지붕을 박차고 솟아 올랐다.

적들이 암흑의 공간을 누비면서 원을 그리고 돌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두 명이 순식간에 당하자 쉽게 다가오지 못하고 기회를 노리는 것 같다.  

어둠 속에 흑의인들, 나머지는 여덟.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숫자를 줄여야 한다. 

아직 오지 않은 자들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는 상황이니까.

암인의 눈에 허공에 떠오른 목표가 흐릿하니 보였다.

손을 들어 목표를 가리키고는 자신도 신형을 날렸다. 허공에 떠 있는 상황이라면 절호의 기회.

좌우에서 암객들이 소리없이 날아 올랐다. 손에는 어둠에 물든 흑색의 검을 들고. 

    

흐릿하던 휘의 신형이 한순간 다섯으로 갈라졌다. 날아오르던 암객들의 눈에 당황이 떠오른다. 

휘가 허공을 힘있게 내딛자, 어둠의 대기가 비틀리며 일그러지는 암흑의 공간에서 강력한 힘이 일었다. 천중무!

가장 먼저 휘에게 다가가던 암객 삼호의 신형이 주춤거리더니 가슴을 짓누르는 충격에 절로 입이 벌려졌다.

다섯의 환영이 내딛는 천중무의 일보에 두 명의 암객이 피를 토하며 뒤로 튕겨지고.

우르르릉....

우레소리가 산중을 울리며 어둠을 부숴 버렸다. 

천붕신권의 권력에 휩쓸린 세 명의 암객들이 훌훌 날아간다. 

휘의 환영이 날아가는 암객들의 뒤를 쫓아 움직였다. 이어지는 붉은 그림자.

유성낙월에 이은 유성난산분!

달빛을 자르듯 암객구호의 검과 팔을 한꺼번에 잘라내고, 흐르던 만양의 그림자가 암객사호의 목을 스쳐 지나갔다.

그 때, 땅에 내려서자마자 등 뒤로 다가오는 바늘 끝같은 살기.

죽음을 도외시한 암객들의 광기서린 일격이 다가온다.

빙글, 몸을 돌린 휘의 눈에 일장 앞에 접근한 두 명의 암객이 보였다.

츠읏!

땅을 끄는 기이한 소성이 울리더니 휘의 신형이 앞으로 한 걸음, 일순간에 여섯자로 좁혀진다. 

암객들의 차가운 눈빛이 격하게 흔들렸다. 찰나.

번쩍!

찔러 오는 검날에 만양이 달라 붙었다. 

휘링!

한 번 휘돌리자 방향이 틀어지고, 휘의 신형이 좌우로 갈라졌다.

암객들의 뾰족한 첨검이 휘의 그림자를 난도질하며 지나가지만 빈 허공만 베고 지나간다. 

대경한 암객들의 신형이 번개처럼 돌아 섰다.

그 때였다.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졌다. 

붉은 벼락이. 허공에 두 줄기 피비를 뿌리며.

목이 반쯤 잘린 암객들이 힘없이 나뒹굴자, 휘의 앞 이장의 거리를 두고 암인의 신형이 우뚝 멈춰 섰다. 

무저의 늪처럼 어둠에 잠겨 있는 휘의 눈이 암인을 바라본다. 

툭!

들고 있는 만양에서 한방울 피가 맺혀 떨어졌다.

순간 암인의 분노에 찬 외침이 막산의 이름없는 계곡에 울려 퍼졌다.

"이.이놈!!!"

난생 처음 느끼는, 참을 수 없는 두려움이 깃든... 그런 외침이었다.

다섯이 죽고, 하나가 어깨가 잘린 채 쓰러져 꿈틀거린다.

꿈에도 생각을 못했던 상황. 임가형이 육초 만에 무너졌다고 했을 때만 해도 설마 했었다. 설사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자신이 있었다. 

자신들이 누구인가. 신마천궁의 암객들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런 자부심이, 이름도 알 수 없는 중원의 청년고수 하나에게 무너져 나뒹굴고 있다.

파르르 떨리는 암인의 눈에서 불길이 피어오른다. 

이제 죽고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남은 것은 오직 하나, 암객들의 자부심을 무참히 짓밟아 버린 저자를 죽여야 한다. 처참하게...

손에 들린 검날 끝이 휘어진 기형검이 피를 구하며 요동을 치자,

암인의 입이 가늘게 열렸다.

"지옥에 같이 가자!"   

말이 끝나기도 전, 흐릿한 잔상만을 남긴 채 암인의 신형이 사라졌다. 암인이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휘의 눈이 더욱 더 깊게 가라앉았다. 

어둠이 출렁이는가 싶더니 정수리를 향해 송곳같은 살기가 떨어져 내린다. 좌우와 뒤쪽에서도 소리없는 살기가 접근하고 있다. 넷 모두가 동귀어진을 각오하고 공격해 온다.

휘의 입가에 가는 미소가 걸렸다. 

전격적으로 손에 사정을 보지 않고 친 계획이 성공했다. 시간을 주면 다른 생각할 여유를 갖게 될 것이고, 결국은 풍인강이나 초평우를 잡을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 되면 휘의 행동에도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었을 것. 저들도 그러한 정도는 알고 있었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은 동료의 죽음에 이성을 잃고 오직 자신만을 공격하고 있다. 그것이 휘가 바란 바였다. 

자신이 강하다 여기는 자일수록 자존심이 무너지면 견디기가 더욱 힘든 법이니까.

쿠르르릉....

만양의 검면이 빙글 돌며 이동하는 휘의 신형을 따라 휘돌자 대기가 요동치고, 정수리를 향했던 살기가 목표를 잃고 비틀거린다.  

휘돌던 휘의 신형이 어둠 속에서 갈라지더니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다섯, 오보천환의 일보에 갈라진 환영들이 모두 만양을 치켜 들었다. 

차갑고 무심한 다섯의 진조여휘. 

연붉은 다섯 자루의 만양. 

암객들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따당!

허공에서 방향을 틀어 짓쳐 들던 암인의 기형검이 튕겨 나가자, 비어있는 좌수의 검지가 허공에 점을 찍었다. 

쩡!

어둠을 찢고 퉁겨지는 지력에 암객일호의 검이 허공으로 들리고,

만양의 요요로운 그림자가 어둠을 갈라 간다.

'크읍!'       

소리없는 신음. 

튕겨져 나가는 암객일호를 쳐다보지도 않고 암객십호의 시커먼 도신이 휘의 환영 하나를 잘라냈다. 

허공에는 튕겨진 암인이 다시 떨어져 내리며 환영의 머리에 소검을 쑤셔 넣고, 뒤에선 암객칠호가 날린 세 대의 소전이 환영의 머리를 뚫고 지나갔다. 

다섯의 환영이 사라졌다. 

암객들의 눈에서 당황의 빛이 어렸다. 목표는 어디에? 

사라지는 환영을 바라보며, 전장에서 일장을 벗어나 있던 휘의 가라앉은 눈에 붉은 열기가 찰나간에 떠 올랐다. 천양의 기운이 척추를 타고 전신으로 퍼져 가더니 만양의 연붉은 나신이 더욱 붉게 달아 올랐다. 

화르르르!!

빙글 돌며 허공으로 날아 오른 휘의 신형이 순식간에 세 바퀴를 돌더니 암객들의 머리 위에 불꽃을 쏟아 낸다. 

만양이 어둠을 십자로 갈라 버렸다. 유성십자참!

정신없이 뒤로 물러서는 암객들을 향해 검기가 불화살이 되어 쏘아져 간다.

콰광! 떠더덩!!

땅에 내려선 휘의 신형이 옆으로 주욱 일장을 미끄러졌다. 암객십호의 눈이 크게 뜨였다. 흑색도신을 들어 올려 휘를 베어 온다. 

휘의 입가에 차가운 웃음이 걸리고, 만양이 어둠을 양단했다. 단천락!

쾅! 챙그랑!

도의 허리가 부러져 나가며.

"끄으으..."

어깨에서 옆구리까지 길게 갈라져 버렸다. 

결과는 보지도 않은 채 휘의 신형이 허공으로 튕겨졌다. 

소전 하나가 발 밑을 스치며 지나간다. 휘의 발이 소전을 내차며 허공을 유영하고, 방향이 틀어진 소전이 암객십호의 이마에 박여 들었다. 동시에 만양의 검첨에 붉은 구슬이 맺혔다. 

혼신의 내력을 쏟아 던진 소전이 암객십호의 이마에 박혀 들자, 일그러진 암객칠호의 눈이 암울한 절망으로 물들었다.

"피해!!"

그는 암인의 다급한 외침에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튕겨져 오른 휘의 만양에서 한 송이 붉은 꽃이 피어나는 게 보였다. 

붉은 꽃이 눈동자를 가득 메웠다.

온 세상이 붉게만 보인다. 그리고 그의 이마에 혈련의 낙인이 찍혔다.    

"으아아!!!"

암인이 형제들의 죽음에 절규하며 달려든다. 

시커먼 검기가 넘실거리는 한자 반길이의 소검에 혼을 담고서. 목숨 따위는 내던져 버리고.

휘의 차가운 눈빛이 암인의 눈동자에 틀어 박혔다. 

천천히 들어 올려지는 만양의 연붉은 빛이 어둠을 길게 가르며 쓸어 간다. 천양의 힘이 실린 절혼광에 대기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잘려 나갔다.

스으... 쩍!

시커먼 검기덩어리를 무우 베듯이 베어 버린 만양이 암인의 가슴에 붉은 그림자를 남기고 사라졌다. 

우뚝, 다섯 자 앞에서 암인의 신형이 멈추어 섰다.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고 있다. 그의 기형검 끝이 휘의 어깨에 맞닿은 채 멈춰 있다.

그가 핏물이 넘어오는 입을 열어 휘에게 묻는다.

"대체... 어떻게... 우리보다 어둠을 잘 알 수있단 말인가?"

휘가 조용히 대답했다.

“차라리 완벽한 어둠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쉽게 이기지 못했을 거야. 나는 어둠속에서 태어나고 자랐지. 어둠은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거든.”

밤하늘을 조용히 울리는 휘의 목소리, 천천히 무너져 가는 암인의 눈에 어이없다는 빛이 떠 올랐다.

“크.크.크..... 웃기는... 그것도 모르고...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은...”

그의 말이 끝나 갈 때쯤, 어깨가 잘린 채 한쪽에 너부러져 있던 암객구호의 손에서 신호전이 어둠을 밝히며 쏘아졌다.  

휘의 눈이 잠시 신호전의 꼬리를 쳐다보더니, 암인의 감겨져 가는 눈을 향해 말했다. 지옥을 가는 도중에도 잊지 말라는 듯.

“물론, 아직 끝나서는 안 되지...”

다 감긴 암인의 눈이 가늘게 떨린다. 무슨 뜻이지??

휘는 자신의 몸을 돌아보았다. 

허리쪽의 옷이 찢어져 있다. 그 곳에서 가는 피가 새어 나온다. 암객의 일도가 스치고 지나간 곳이다. 

어깨 쪽에서도 따끔거리는 통증이 전해 온다. 암인의 검기에 하마터면 뚫린 뻔했던 곳이었다.  

움직일 때는 미처 몰랐는데 싸움이 끝나고 보니 제법 자잘한 상처가 많이 나 있다. 만일 놈들이 무기에 독이라도 발랐다면...

그랬다면 이기고도 지는, 그런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아무래도 더욱 조심해야 겠구나.’

전쟁에서는 그 어떤 경우라도 용납이 된다. 속임수든, 독이든, 그 어떤 암수든... 당하지 않으려면 오직 조심하는 수 밖에 없다.

그리고 휘는 전쟁과 철혈의 도전, 양쪽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휘가 쓰러진 암인의 곁을 지나서 목옥 쪽으로 가려 할 때였다.

“초형, 조심!”

쩌정!

풍인강의 목소리와 함께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 온다.

“음?”

목옥의 반대편 쪽이었다. 그 곳에는 풍인강과... 초평우가 있다.    휘의 신형이 허공에 떠오르더니 어둠 속에 녹아 들어 갔다.

초평우와 풍인강은 싸움이 끝났다는 것을 알고 목옥의 뒤에 있는 고목의 아래 피신처에서 빠져 나왔다. 

그런 초평우의 표정은 참담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약하기에, 너무 약해서 적에게 이용당할까 봐 이렇게 피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를 못 견디게 하고 있는 것이다. 

풍인강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도 차갑게 굳어 있었다. 자신의 마음과 비슷한 것일까? 아니다, 풍인강은 자신에 비교할 수 없이 강하다. 그럼 자신을 지키느라 싸우지 못해서 그런 걸까?

“이 봐, 풍가. 너무 실망하지 말라고.”

풍인강이 초평우를 돌아보았다.

“대체 저 사람은 뭐지? 어떻게 저리 강할 수가 있는 거지?”

피신처에 나있는 구멍으로 흐릿하나마 싸우는 것을 보았다. 정면대결을 빼고는 다른 싸움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풍인강에게 휘와 암객들의 싸움은 충격이었다. 

그것은 생존의 경쟁이었다. 자비도 없고 법도 없는. 죽이지 못하면 죽는.

한숨을 내 쉬고 휘가 있는 곳으로 몸을 돌리려던 풍인강의 발걸음이 멈칫했다. 일순간, 그의 눈이 번쩍 빛을 발하더니 검을 잡아갔다.

“초형, 조심!”

일갈을 내지르며 검을 빼 들어 내질렀다.

쩌정! 

한 자루 비수가 허공으로 튕겨졌다. 그러자 풍인강이 싸늘한 눈으로 숲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누구냐?“

어둠에 잠긴 숲은 고요하기만 했다. 최소한 겉으로 보기에는. 

풍인강은 한시도 눈을 떼지 않은 채 숲을 주시했다. 그러자 어느 순간, 숲의 어둠을 뚫고 냉랭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쥐새끼가 제법이군.”

눈매를 꿈틀거린 풍인강이 어둠을 직시하고 소리쳤다.

“숨어 있는 놈이 쥐새끼 아닌가?”

풍인강이 그답지 않게 농담조로 말하며 소리치자 숲의 오른 쪽에서 나직한 한소리가 흘러 나왔다. 

“조대주! 말싸움하려고 온 것이 아니다. 잡아라.”

“단주님의 명이시다. 잡아라!”

순간.

촤아악!

숲이 갈라지며 네 명의 무사가 뛰쳐나왔다. 그들은 나오자마자 풍인강과 초평우를 향해 검을 휘둘러 갔다.

풍인강의 눈도 차갑게 가라앉았다. 자신이 비록 인간 같지도 않은 진조여휘에 비해선 약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한테나 무시당할 정도는 아닌 것이다. 

"와라!"

철군명의 눈이 싸늘히 빛나고 있었다.

멀리서 지켜 본 바람에 정확하게 볼 수는 없었지만, 어둠 속에서 벌어진 싸움은 멀리 떨어진 그의 가슴을 서늘하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흐릿한 잔상 속에 피어나는 절제된 살기, 한 점의 망설임도 없는 살수. 게다가 대기와 함께 암인의 검과 몸을 갈라 버린 마지막 일검. 과연 자신이라면 막아 낼 수 있었을까? 

'이 자리서 죽여야 한다. 지금 죽이지 못한다면, 어쩌면...'

떨리는 속마음을 감추고 옆에 서있는 세 명의 대주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도 충격으로 굳어 있었다. 

문득 웅경이 철군명을 바라본다. 휘가 아닌 그의 동료로 보이는 자들을 공격하라는 철군명의 명령을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이다.

웅경이 입을 열려 하자 철군명이 냉랭히 말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죽여야 한다. 굳이 이유를 설명을 할 필요는 없겠지?"

웅경의 눈이 흔들렸다. 불만이 있지만 지금 그것을 말할 수는 없다. 우선은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으니까. 

웅경의 흔들리는 마음은 본체 만체, 철군명은 냉랭한 목소리로 명을 내렸다.

"저 두 놈은 조국령에게 맡기고 삼대주는 목표를 공격한다. 가라!"

목옥의 지붕에 내려서자 상황이 한 눈에 들어 왔다. 

초평우와 풍인강이 다섯 명의 무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숲에서 튀어나온 자들은 두 사람을 사로 잡으려는지 당장 살수는 쓰지 않고 있었다. 그걸 보자 휘의 눈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저 정도도 견디지 못한다면 어차피 다른 상황서도 힘들 터...'     

휘가 고개를 돌려 숲 속을 바라봤다. 순간, 숲 속에서 십여개의 그림자가 튀어 나온다. 

소리없이 움직이는 그들을 바라보던 휘의 눈에 기광이 번뜩이더니, 입가에 하얀 웃음이 맺혔다. 

선두에 여인으로 보이는 무사가 한 자루 짧은 검을 들고 몸을 날리고 있었다. 헌데 그녀의 얼굴은 휘가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여인 중 하나가 아닌가. 

'영호련이라 했던가? 후후후...'

그녀의 뒤에 커다란 덩치의 웅경이 보이자, 휘의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휘의 웃음에서 차가운 한기가 피어 올랐다. 

웅경의 뒤에 키가 큰 무사가 수하들을 대동하고 조심스레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사공민, 바로 그였다. 

'그렇군. 네가 왔구나, 네가... 철.군.명!'

철혈단의 대주들이 모두 모습을 드러냈다. 결국 철혈단 전체가 움직였다는 말, 그렇다면 당연히 그도 있을 것이다. 

휘의 입이 천천히 열리고.

"철군명! 겁이 나는가? 왜 나오지 않는 것이지?"

차가운 일갈에 계곡의 공기가 가라앉았다.

느닷없는 휘의 외침에 다가오던 무사들은 주춤 걸음을 멈추고, 

영호련과 웅경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놈은 우리들을 알고 있다.- 

역시 영호련의 말대로 자신들을 유인한 것인가? 

그러나 누구보다도 가장 놀란 것은 철군명이었다. 놈이 자신을 알아 볼 이유가 없다. 강호행을 거의 하지 않은 자신을 알아볼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더구나 아직 모습도 보이지 않았거늘... 

철군명의 가슴이 싸늘히 식어 갔다. 대체 저 놈은 누구인가?

숲 속에서 아무런 대답이 없자 휘의 하얀 웃음에 서리가 맺혔다.

"게으른 주인을 나오게 하는 법을 하나 알고 있지. 원한다면 보여 주지."

가볍게 일보를 내딛었다. 주욱 나아가던 휘의 신형이 이장을 미끄러지다가 그대로 꺾어져 내렸다. 

목옥을 에워싸고 있던 무사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에는 영호련과 웅경의 눈도 있었다. 언뜻 휘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

-거기!-

-계집도 아니면서 면사는 왜 쓴 거지?-

제법 마음에 들었던 사람들이었다. 말투나 행동이나. 하지만 지금은 추억을 되새길 때가 아니었다.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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