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8화 (188/200)

그렇게 평자현에 들어설 때쯤, 초평우의 모습은 완전히 변해 있었다. 

곰 같던 덩치가 단 나흘만에, 이제는 그저 키 큰 늑대 정도로 보일 뿐이었다. 풍 맞은 늑대가 아닌, 눈에서 광기가 번들거리는 진짜 광랑(狂狼).

휘는 계속 따라오는 풍인강의 사정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묻지를 않았었다. 그러자 이틀 째 되던 날, 풍인강이 무뚝뚝한 한마디 말로 자신의 입장을 밝혔으니...

"나도... 혼자요."

누가 물어나 봤나? 쌀쌀 맞기는...

그렇게 길을 가다 보니, 휘의 오른쪽에서는 미친 늑대가 눈에서 광기를 번들거리고, 왼쪽에서는 얼음덩이가 냉기를 풀풀 날리며 걷고 있었다. 

휘는 평자현에 들어서자, 보다 못해 두 사람에게 강력한 경고를 주었다.

"마을에 들어가면 그 표정들 바꾸세요. 만일 사람들 표정이 이상하게 변하면... 저 혼자 갑니다."

그 말에 초평우가 미소를 지었다. 토끼를 앞에 둔 늑대의 미소를. 

풍인강도 뒤질세라, 입술을 살짝 비틀었다. 쪼개진 얼음조각처럼.

두 사람의 괴상한 표정을 바라본 휘가 머리를 저었다.

'도대체가 멋대가리라고는... 어휴. 앞날이...'

그저 한숨만 나온다.

그나마 두 사람 덕분에 칼날같이 곤두섰던 긴장이 완화된 것에 위안을 삼는 휘였다.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쓴 웃음을 지은 휘는 오십여리 떨어진 곳에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태백산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태백산이군. 저렇게 멋진 산을 피로 물들여야 하다니...'

                 *        *         *

준양을 지나 대고평의 능선에 오르면 저 멀리 태백산의 위용이 한 눈에 들어 온다. 

그 모습이 어찌나 장관이던지, 태백산을 바라보며 술 한 잔을 하기위해 대고평의 태백객잔에 들르는 사람이 하루 수백에 이를 정도였다.

해가 서서히 서산으로 기울어가는 신시말, 태백객잔에는 십여명의 사람이 술 잔을 기울이며 태백산의 아름다움을 이야기 하느라 열을 올리고 있었다. 

칠녀봉(七女峰)이 어떻고, 상반사(上盤寺)가 어떻고... 석해(石海)를 보지 않은 사람은 태백산을 올랐다 말하지 말라는둥...

그러나 창가 한쪽의 탁자에서 만큼은, 다른 곳과 다르게 고요한 냉기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백색의 비단장포를 멋지게 차려 입은 삼십 초반의 장년인을 중심으로 둘러 앉은 삼남일녀. 바로 철혈성을 떠나 온 철군명 일행이었다. 

백의 장년인, 철군명이 이마를 찌푸리며 앞에 앉은 날카로운 인상의 청년을 바라보며 물었다.

"조국령, 놈들의 현재 위치는?"

"풍혈단의 보고에 의하면 이 곳을 떠난지 세시진, 지금쯤이면 평자현에 들어섰을 거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추측?"

철군명의 눈빛이 새파랗게 빛나자 청년의 표정이 창백히 굳어졌다.

"확실합니다. 단주!"

철군명이 우측의 커다란 덩치의 청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웅경, 우리가 곡총령의 아이들보다 놈들을 먼저 발견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은 소성주의 마음에 달려 있지 않겠습니까?"

웅경의 대답에 철군명이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내 마음이라... 나는 조금 두고 봤으면 하네만."

"무슨 이유라도 있으신지?"

좌측의 키가 큰 청년, 사공민이 이마를 찌푸리며 반문하자 철군명이 차갑게 코웃음쳤다.

"흥! 총령의 아이들이 대체 얼마만한 능력이 있는지 알고 싶거든."

"곧, 알게 될 거예요."

철군명이 흥미가 동한 눈길로 묘한 말을 내뱉은 영호련을 바라보았다.

"그리 단정하는 이유는?"

영호련이 반쯤 감은 눈으로 창 밖을 응시하며 조용히 말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 그자의 흔적을 너무나 많이 봤어요. 그건 세 가지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지요. 첫 번째는 그가 멍청하거나 무신경해서, 두 번째는 신경 쓸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자신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 있어서,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영호련이 말을 하다 말고 창 밖에서 불어 온 바람결에 휘날린 머리를 쓸어 올렸다. 순간.

"아!"

느닷없는 탄성이 객잔을 울렸다. 그러자 영호련의 눈이 날 서린 비수처럼 반짝였다. 마치, -어떤 놈이...- 하는 눈빛이다. 

'나를 무사로 보지 않고 여자로 보는 놈들은...'

하지만 영호련은 눈빛을 접고 입술만 잘근 깨물어야 했다. 네 명의 남자 모두가 입을 벌리고 있었던 것이다.

한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 보겠지만, 넷을 닦달한다는 것은 그녀로서도 무리일 수 밖에 없었다. 더구나... 철군명까지...

'제기랄! 달린 것들이란...'

"험. 그래, 다른 하나는...?"

철군명이 무안한지 재빨리 질문을 던졌다. 다른 사람들도 살았다는(?) 듯한 묘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입만 쳐다보았다. 

하는 수 없이 영호련은 눈빛을 죽이고는 입을 열었다.

"다른 하나는... 그가 일부러 그렇게 했다는 것이지요."

"일부러?"

"고의로 행적을 드러냈다고?"

사공민과 웅경이 놀라 소리치자, 철군명이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영호련에게 물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간단해요. 한중분타에 자연스럽게 들어가 임가형분타주를 무너뜨리고 유유히 빠져 나온 자가, 너무 쉽게 발견되고, 너무 많은 흔적을 남겼거든요."

사공민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 정도만으로 어찌..."

"꼭, 찍어서 먹어 봐야 아나요?" 

영호련의 비꼬는 말에 사공민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그러자 영호련이 말을 이어갔다.

"생각해봐요. 한중분타에 들르기 이전의 그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있나요?"

"....."

아무도 없다. 심지어 풍혈단조차 그것에 관해선 아직 모를 것이다. 

모두가 말을 못하고 입만 벌리고 있자 영호련이 마지막 못을 박았다. 네 사람의 눈을 하나하나 직시하며.

"그렇게 철저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멍청하게 행동한다?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이 멍청한 것 아닌가요?"

-바로 당신들 말이야.- 그런 눈빛으로 바라본다.

네 사람이 졸지에 멍청이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누구도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제야 일의 심각성을 눈치챈 철군명의 눈이 번질거렸다.

그저 개인적인 원한으로 임가형을 죽인 젊은 고수, 그렇게만 생각했었다. 

며칠간 조사한 바에 의하면, 그는 그 어떤 세력과도 접촉이 없었고, 따로 만나는 사람도 없었다. 철저한 혼자였다. 지금 그의 곁에 있는, 그저 그런 두 사람만 빼면.

그런데 영호련의 말을 듣다 보니 문득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철군명은 처음부터 생각해봤다.

느닷없이 하늘에서 떨어졌는지, 땅에서 솟았는지 모르는 젊은 자가 철혈성에서 왔다며-나중에는 거짓일 거라 결론 지었지만- 한중분타에 찾아왔다. 

옛날의 원한을 갚는다며 임가형을 상대로 철혈의 도전을 했다.

그리고 임가형이 무너졌다. 

그 후, 평범한 걸음으로 동북진을 하더니 태백산 자락까지 왔다.

철혈성에선 자존심 회복을 위해 고수들을 동원했다. 그런데도 그의 행동은 여전히 유유하다. 대체 무슨 똥배짱으로?

"놈은 무언가를 노리고 있다"

철군명이 침음성을 흘리며 말했다.

"문제는 그게 무엇인가를 모른다는 것이겠죠."

영호련이 말을 받자 웅경이 눈을 빛냈다.

"우리가 너무 급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다시 조사한다는 것도 이제는 늦었어요." 

"맞다. 이제는 늦었다."

영호련의 말에 철군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놈은 앞에 있고, 총령의 아이들은 움직이기 시작했을 테니까."

"결국은 둘 중 하나로 결론이 나겠죠. 그자가 죽든가, 총령이 보낸 사람들이 죽든가. 제 느낌은 후자일 것 같지만."

영호련이 단언하듯 말하자 철군명의 입가에 희미한 잔소(殘笑)가 걸렸다.

"본인의 생각도 영호대주와 같다. 아니, 그렇게 되어야 하겠지. 그래야만 우리에게 더 좋은 기회가 올 테니까."

철군명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대주는 풍혈단의 정보를 계속 점검 하도록."

"알겠습니다. 단주!"

"사공민, 웅경. 단원들에게 현 상황을 철저히 숙지시켜라. 상대가 얼마나 강할 지 알 수 없는 만큼, 과장을 해서라도 긴장감을 늦추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예, 단주!"

"세시진 후에 출발할 것이다. 그 때까지 충분한 휴식을 취하도록. 움직이기 시작하면 쉴 시간이 없을 지도 모르니까."

태백산의 밤

태양이 태백산을 벌겋게 물들여 갈 때, 휘와 두 사람은 평자현을 빠져 나왔다. 

약간의 건량까지 준비한 세 사람은 빠른 속도로 반시진 가까이 달리다가, 태백산 준령이 굽이치다 끊어진, 부근 사람들이 막산(幕山)이라 부르는 곳의 울창한 원시림으로 들어섰다. 

길은 초평우가 앞장서고 있었다. 수림 사이로 난 소롯길을 잘도 찾아가는 것으로 봐서 자주 다녀 본 길인 듯하다.

"형님, 십리 정도만 더 들어가면 됩니다."

목적지는 초평우가 알고 있다는 사냥꾼들의 쉼터. 휘는 그 곳에서 손님을 맞이할 생각이었다. 

아주 반갑게... 붉은 인사를 나누며.

굽이 굽이 산자락을 두어 번 돌아가자, 석양이 서산에 반쯤 걸쳐진 채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구름도, 나무도, 바위도, 모든 것을 물들이며 시뻘건 핏빛으로 타오른다.

"저깁니다! 휴... 어두워지기 전에 도착해서 다행입니다."

초평우가 가리킨 곳에는 굵은 나무를 덧대어 제법 운치있게 지어진 한 채의 목옥이 서 있었다. 사냥꾼들이 임시로 묵어 간다는 목옥에 인기척은 전혀 느껴지지가 않았다.

"조금있으면 우기라 현재는 사람들이 없을 것입니다. 잘못하면 고립되거든요."

초평우의 말대로 기거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이 기거했던 흔적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부드러운 마른 풀을 두텁게 깔아 놓은 침상이며, 엷은 먼지가 쌓여 있는 투박한 탁자. 그리고 구석의 화덕에는 피운 지 얼마되지 않은 듯 검은 재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초평우가 그걸 보더니 자신있게 말했다.

"닷새정도 된 것 같은 데요?"

"초형... 이 곳에 사냥꾼들만 아는 비밀피신처가 있다 했지요?"

"예, 형님."

휘는 다른 말은 하지 않고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곳에 숨어 있으라고 지금 말해봐야 씨알도 먹히지 않을 거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어둠의 장막이 하늘에 드리워지자, 근처에서 나무를 주어와 화덕에 불을 지폈다. 

잔잔한 불빛이 목옥의 구석구석을 어루만지며 밝게 타오른다.

해시에 접어드는 시각, 산속의 밤은 생각보다 시끄러웠다. 언뜻 생각하면 너무 고요해 지루할 것 같지만, 그것은 산을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나무 위에서는 야조들이 밤새도록 울어대고, 지상에서는 온갖 동물들이 밖으로 기어 나와 돌아 다닌다. 

그러다 싸우고, 정들고, 잡아먹으려 하고, 도망 다니고. 그야말로 온갖 각축이 벌어지는 때가 바로 산속의 밤인 것이다.

밤부엉이 울어대는 삼경, 멀리 산사에서 삼경을 알리는 타종소리가 들려 온다. 

은은히 울리는 범종의 청량한 울음에 밤새조차 조용해지고, 천지가 고요에 젖어 들었다.

목옥 안의 풍인강과 초평우는 최근 며칠간의 배움을 소화시키기 위해서 자신만의 세상 속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휘 역시, 고요한 산속의 대지에서 피어오르는 맑은 기운를 음미하며 조용히 삼령의 법에 대해 참오하는 시간을 흘려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삼경이 다 지나갈 때쯤이었다.

휘이잉!

자그마한 나무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오자 화덕의 불이 꺼질 듯이 흔들리며 춤을 춘다.  

창 밖 하늘엔 구름이 잔뜩 끼더니 별도 달도 잠들어 버리고, 사위가 고요 속에 풀벌레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그 때였다.

휘의 두 눈이 슬며시 뜨였다. 

가느다랗게 뜨여진 그의 눈에서 한줄기 신광이 번뜩이더니, 옆에 놓여진 만양이 그의 손 안으로 빨리듯 들어갔다.

'왔군. 하나, 둘, 셋.... 아홉. 아니, 열이다. 하나는 더욱 은밀하다.'

문득, 이상한 기미를 눈치 챈 풍인강이 실눈을 뜨고 휘를 바라본다. 휘가 다급히 전음을 보내 경고를 주었다.

<풍형, 적입니다. 하던 그대로 있으십시오.>

휘의 전음에 풍인강의 눈이 번뜩였다. 그러자 휘가 다시 전음을 보냈다.

<제가 움직이고 나면 초형이 아는 피신처로 가십시오.>

풍인강이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나도 싸우겠소.>

<풍형이 나서면 초형까지 나설 것입니다.>

<.....>

<초형을 부탁하겠습니다.>

초평우를 지키기 위해서 나서지 말라는 뜻. 풍인강은 아쉽긴 하지만 자신의 뜻을 접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휘의 마음은 풍인강 역시 나서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가 느낀 적들의 기운은 그만큼 강렬했다. 두 사람에게 신경을 쓰면서까지 싸울 여유가 없을 듯했다.

어둠에 동화된 적들의 기운에, 산속의 동물들이 머리를 처박고 침묵으로 떨고 있는 것이다. 

초평우도 완전 무감각은 아니었다. 

뭔가 알 수 없는 기운이 사방을 조여 오는 듯하자 번쩍 눈을 뜨더니 휘를 바라본다. 

"형님...."

초평우가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이었다.

스윽!

휘의 좌수가 바닥을 밀쳤다. 순간, 별다른 움직임도 없이 휘의 몸이 그대로 허공으로 치솟았다. 

<초형! 풍형과 함께 피신하세요!>

초평우의 귓전을 파고드는 전음만을 남기고, 우수의 만양이 검집째 휘둘러졌다.

쾅!

부서진 천정의 나무파편이 폭죽처럼 하늘로 퍼져 나가자, 비산하는 파편들 사이로 휘의 신형이 솟구쳤다. 

스으으...

어둠 속에서 솟구치는 휘를 향해 살기가 쏘아져 온다. 

"흥!" 

차갑게 웃은 휘의 신형이 허공에서 휘돌았다. 흩어지듯 늘어나는 환영.

슈슈슈....

몇 개의 소전(小箭)이 휘의 환영을 뚫고 지나갔다. 찰나

번쩍! 휘리링!

암흑의 하늘에서 붉은 만월이 생겨났다. 

만양이 뽑히며 암흑을 둥글게 도려 내버린 것이다. 

동시에 터져 나온 산을 울리는 일성!

"폭(爆)!"

휘의 일갈에 붉은 만월이 터져 나가자, 어둠에 신형을 감추고 바람결에 실려 다가서던 자들이 썰물처럼 물러나는 것이 보인다. 

눈에 보이는 자들만 네 명, 아직 몇 명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 그들을 보는 휘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진퇴가 자유롭다. 역시....' 

전신에 느껴지는 감각이 강력한 경고를 발하고 있다. 

하나하나가 고수들. 게다가 어둠에 동화되어 움직인다. 극한의 살수훈련을 받은 자들인 듯하다.

치솟았던 나무조각들이 떨어져 내리자, 휘의 신형이 나무조각을 내 차고 허공을 유영한다.

허공에서 뒤집힌 휘의 환영이 겹겹이 쌓이더니 지붕의 끝에 모습을 보였다.

목옥의 지붕에 내려서서, 어둠 속을 바라보는 휘의 눈이 무저의 빙동처럼 차갑게 식어 간다. 

별빛조차 없는 완벽한 어둠, 가라앉은 두 눈이 그 곳을 향했다.

"승부에는 자비가 남을 수 있지만 전장에는 자비가 없는 법, 나를 원망하지 마라!"

나직한 말을 흘리며 우수를 흔들었다.

츠츠츠츠....

어둠 속에서도 확연히 드러나는 연붉은 기운이 만양에서 뿜어져 나온다. 

암객들의 마음은 혼란 그 자체였다.

어떻게 된 것이 어둠의 자식이라는 자신들보다 어둠을 더 잘 알고 있다.   

자신들이 쏘아 낸 소전이 빗나가더니, 허공에서 터져나간 붉은 파편들이 정확히 자신들을 향해 쏘아져 온 것이다. 그것은 상대가 자신들의 위치를 알고 공격했다는 것. 조금만 늦었어도 참담한 상황이 닥쳤을 것이다.

그런데도 자신들은 상대의 움직임조차 제대로 잡아낼 수가 없었다. 

문득 그가 자신들을 쳐다본다.

눈이 마주치자 전신이 오그라드는 충격이 전해 온다. 

대체 저자가 누구이기에...

그러나 의문을 가질 틈도 없이 나직한 말이 바람을 타고 들려 왔다. 그리고...

쩌억!!

암흑의 공간이 갈라졌다. 요요로운 연붉은 서기만을 남기고.

스스스....

어둠 속에서 암객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은밀하면서도 빠르기 그지없다. 

하지만 암객들은 휘를 모르고 있었다. 휘보다 어둠에 익숙한 사람은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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