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2화 (182/200)

휘와 초평우가 앉자 마치 그들이 올 줄 알았다는 듯 시비가 찻잔을 들고 나왔다. 세 개의 찻잔을. 초평우의 눈을 휘둥그렇게 하면서.

후르륵...

예법 따위가 무슨 소용이냐는 듯, 소리내어 차를 한 모금 마신 노인이 휘를 보며 여전히 웃음 띤 눈으로 물었다.

"그는 잘있나?"

무슨? 누구?

휘가 어리둥절하니 있자 노인이 흘흘 웃는다.

"그가 나에 대해서 말을 안 하던가? 아직도 화가 안 풀렸나?"

휘의 머리가 맹렬하게 돌아갔다.

'노인이 이상한 눈빛을 보인 것은 면구를 보면서부터다. 면구는 공이연이라는 사람의 것... 노인은 그에 대해 묻고 있는 것인가?'

휘가 잠깐 생각에 잠겨 있자 노인의 웃음이 서서히 엷어졌다.

"그가... 이 물건을 남에게 줄 리가 없는데? 차라리 사지 중 하나를 내놓으면 내 놓았지... 자넨 누구지?"

그러다 결국, 노인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자 느닷없이 실내의 공기가 한겨울 차가운 북풍이 몰아친 것 마냥 싸늘해졌다. 

다탁에 있던 찻물이 순식간에 싸늘히 식을 정도였다. 

노인의 곰방대에서는 뿌연 기운이 용틀임을 하며 솟아 올랐다.

초평우는 뜻밖의 상황에 손이 부서져라 칼을 움켜쥐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은 금방이라도 서리가 내릴 것만 같다.

하지만 휘의 얼굴에는 주위상황에 상관없이 가벼운 웃음이 떠올랐다. 휘가 손을 맞잡고 포권을 취했다. 천양의 기운을 끌어 올린 채.  

"저는 진조여휘라고 합니다. 공 어른께서 요즘 바쁘신지라..."

일단 짚어 보았다.

휘의 한마디에 노인의 얼굴에 다시 웃음이 떠오르더니, 북풍한설 같던 공기가 순식간에 온화하게 바뀌어 버렸다. 

휘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맞군.'

"흘흘... 그럼 그렇지... 도둑놈이 목숨줄이나 마찬가지인 자기 얼굴을 남에게 줄 리가 없지."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린 노인이 부드러운 눈으로 휘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초평우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헌데, 저 멍청하게 생긴 덩치는 누군가?"

순간 벌떡, 열받은 초평우가 일어섰다. 조금 전, 옴짝달싹도 못했던 기억은 어느새 내 팽개치고. 휘의 눈이 일어 선 초평우에게로 향했다. 움찔.

"저는... 이 분의 아우가 되는 초평우입니다!"

억지로 인상을 구기며 인사를 올린 초평우가 못 마땅하다는 눈으로 노인과 휘를 번갈아 바라 본다.

'쳇! 영감이 나에 대해 뭘 안다고 멍청하다고 하는 거야?'

때로는 안 찍어 봐도 아는 게 연륜이거늘... 초평우는 아직 그것까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 공가는 잘 지낸다던가?"

노인의 물음에 휘가 고개를 저었다.

"따님 때문에 걱정이 많은 듯 했습니다."

사실이었다. 뜻이야 어떻든 그건 듣는 사람이 알아서 생각 할 일이다.

"쯧쯧... 그 이쁜 것이 어쩌다..."

"방법은 있는 듯 했습니다만..."

"음.... 그나마 다행이긴 하네만... 얻는다 해도 치료가 쉽지 않을 텐데... 방법은 있는지 모르겠군."

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철저한 사실만.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말씀을 안 하셨으니."

"하기는.... 아 참!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면구는 얼마 전에 볼 일이 있다고 하면서 내게서 사간 것이야."

"아! 그래서...."

노인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판 면구를 내가 못 알아 본다면 귀응(鬼鷹)이라는 이름을 버려야 하지 않겠나."

"헉!"

옆에서 심드렁하니 노인을 보던 초평우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귀...응. 만시량 노선배?"

"흥! 언제부터 어린 놈이 막 불러도 되는 이름이 되었는지 모르겠구나?"

"흡! 죄송...."

"됐다! 그리고 잠시만 기다리게나. 그 면구는 재료가 특수한 것이라 구하기 힘든 것이거든. 차라리 조금 손보는 것이 다른 것보다 훨씬 나을 것이야. 그래도 백냥짜린데..."

만시량은 휘의 면구를 가지고 나가려다가 멈칫 하더니 휘를 바라보았다.

"손보는 김에 주름도 더 펴 보지. 그래도 어느 정도는 그 얼굴에 맞아야지... 흘흘흘. 그런데... 설마 그 얼굴, 면구는 아니겠지? 면구면 천냥 값어치는 되겠는데..."

"아.닙.니.다!"

불끈, 하마터면 주먹이 나갈 뻔...

이각 정도가 지나자 만시량이 휘의 면구를 들고 왔다. 어떻게 했는지 찢어진 곳이 감쪽같이 붙어 있었다. 게다가 깨끗하게 주름도 펴 졌고. 

연연이 본다면 -오빠! 다른 것 써!-할 정도로 잘생긴 면구가 되어 버렸다. 

뭐, 휘의 마음에는 쏙 들었지만.

휘가 면구를 보며 묘한 표정을 짓고 있자 만시량이 웃으며 말했다.

"그 늙은이는 그거 말고도 다른 면구가 있을 것이니 너무 걱정할 것 없네." 

누가 그걸 걱정 하나?

"헌데 그 늙은이, 수운곡에서 안 나올 생각인가 보구먼?"

수운곡? 아마 공이연이 살고 있는 곳을 말하는 것일 게다. 

휘는 얼굴색도 안 변한 채 태연히 말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온통 따님 걱정으로 가득해서..."

"하긴 뭐, 이제 쉴 나이도 됐지. 나도 이렇게 지내니 편안하기는 하다만."

휘는 노인을 바라보다가, 문득 스치는 생각에 품 속을 뒤져 한가지 물건을 꺼내 들었다. 바로 무저동에서 얻은 귀면촉이었다.

"저, 혹시 이런 물건 보신 적 있으신지..."

"음?"

만시량은 휘의 손바닥에 놓인 자그마한 귀면촉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처음 보는 물건인지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처음 보는 물건인데.... 어째 섬뜩하군."

"우연히 얻은 물건입니다. 재질도 이상하고, 쓰임도 모르겠기에 노선배님이라면 아실지 몰라서..."

"글쎄... 나는 잘 모르겠군. 시간만 있다면 알아 볼 수도 있겠는데... 내 아는 놈 중에 쇠귀신이 한 놈있거든. 그 놈이라면 혹 알지도 모르겠군."

"그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특히 귀면상에 대해서 알아봐 주십시오."

"흘흘, 걱정 말게나. 그놈이나 내가 모른다면, 아마 천하에서 그걸 아는 사람을 찾기 힘들 게야."  

그가 진짜 귀응이라면 그의 말이 맞을 것이다. 

휘가 사부에게서 들은 강호의 기인이사들 중 귀응이라는 이름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천하삼귀 중의 한 사람이 귀응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쇠귀신이라고 한 사람은 아마 철마귀(鐵魔鬼) 서수장을 일 것이다. 강호에 나오자마자 귀응을 만나고 작은 인연까지도 만들었으니, 휘에겐 행운이라 해야 할 일이었다. 

휘는 문득 공이연과의 만남이 의외의 소득을 가져오자 그에 대해 고마움이 느껴질 정도였다. 나중에야 어떨지 몰라도.

휘가 귀면촉을 맡기고 떠나려 하자 만시량이 섭섭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간다면 어쩔 수 없지. 그래 그 늙은이에게 시간 나거든 한 번 들르라 전해주게나."

"예. 노선배님."   

만난다면야 틀림없이...

휘는 깊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초평우와 함께 물상만가를 나섰다. 그 뒷 모습을 보던 만시량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쉬운 듯 연신 곰방대만 빨아대고.

'그런데.... 공가가 언제 저런 놈을 꼬셨을까? 나의 한응기(寒凝氣)를 웃으며 견디는 걸로 봐서는 무공도 제법인데... 좌우간 그 늙은이 재주도 좋네. 쩝. 신영문의 앞날이 훤하게 보이는구먼. 부럽다. 부러워!'

                              

                                 *            *             *

휘는 난감했던 한가지 일을 의외의 사람에게 떠맡기고 나자, 염소아버지로 인해 무거워졌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골목을 나가던 휘가 초평우를 보며 싱긋 웃었다.

"초형, 오늘 뭐 먹고 싶은 것 있습니까? 제가 한턱 내죠."

귀응 만시량의 위명에 눌려 숨도 못 쉬고 있던 초평우의 입이 휘의 한마디에 함지박만하게 벌어졌다. 

하지만 그 꿀 먹은 곰처럼 순박하던 얼굴이 반각도 되지 않아서 배고픈 야차의 얼굴이 되어 버렸으니...

두 사람이 골목을 나서 만향로의 대로로 향할 때였다.

저 만치 앞에 어슬렁거리며 이십여명의 장한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들의 선두에는 조금 전에 보았던 얼굴이 보이고 있었다. 휘의 이마가 살짝 찌푸려졌다. 아마도 교훈을 너무 가볍게 내린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빼빼아버지 왈.

-팰 때는 확실히 패라! 그래야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니까.-

빼빼 마른 것이 꼭 빼빼아버지 같아서 손속에 사정을 뒀더니 아무래도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다. 그렇다면... 

'확실한 것이 좋겠지.' 

휘가 망설임 없이 걸어가자 장한들 중에서 두 명이 앞으로 걸어 나온다.

그들을 향해 아까 보았던 얼굴들이 휘를 가리키며 뭐라 말하고 있다. 

그러자 두 명의 장한 중 우측의 어깨가 떡 벌어진 삼십대 장한이 휘를 향해 말했다.

"자네가 우리 형제를 부숴 놨는가?"

휘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초평우의 말에 의하면 일개 건달들이라 했었다. 

물론 단홍귀의 예를 봐서 삼살귀가 제법 무공을 익힌 자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것도 그리 이상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눈 앞의 이자는 제법 정도가 아니다. 

휘의 판단으로는 적어도 일류에 가까운 무공을 익히고 있는 자였다. 

이런 자가 왜 자신의 능력을 숨기고 건달들 틈에 끼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만향로의 건달들이 결코 예사 건달들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했다.

휘가 생각에 잠겨 있자 뭣도 모르고 초평우가 한걸음 나서며 소리쳤다.

"그러게 막을 사람을 막아야지! 아무나 잡고 시비를 걸면 되나?"

장한이 초평우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풍 맞은 늑대는 빠지시지."

끄억!

장한의 한소리에 초평우의 얼굴이 야차처럼 일그러졌다. 

하지만 초평우는 발작을 할 수가 없었다.

삼십대 장한, 그의 전신에서 쏟아지는 칼날같은 기세는 결코 그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초평우는 그것이 한스러웠다. 

일개 건달도 감당할 수 없는 자신이 한없이 미워졌다. 그래도 한 때는 기재라는 소리까지 들었던 자신이거늘.  

순간적으로 오기가 솟았다. 

눈 앞에 보이는 자의 능력이야 어찌 됐건, 자기 자신에게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으아아!! 그래! 어디 미친 늑대 맛 좀 봐라!"

휘이잉!

거도가 휘둘러지며 장한의 허리를 쳐간다. 십수 년 꾸준히 익혀 온 풍절도세를 있는 힘껏 펼치며.

휘의 눈이 반짝였다. 

막을까 했지만 막지는 않았다. 상대가 일류고수라면 이류도 못 되는 사람에게 처음부터 필살기를 쓰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휘가 본 바로는 초평우의 몸이 제법 단단해 보였던 데다, 충실한 수련으로 그럭저럭 한두수의 권각은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자신이 나서는 것은 그 때가서도 늦지 않았다. 

최소한 초평우의 자존심도 생각해야 하니까.

무의식적으로 펼쳐 나가는 초평우의 도세는 단순히 초식만 놓고 본다면 나무랄 데가 없었다.  

문제는 내력이 실리지 않아 내공의 고수들에게는 별다른 효용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 그렇다면... 

힘만 실어 준다면 충분히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힘이라... 힘. 단전을 다쳤다? 단전이 아닌 곳이라고 힘을 모으지 말란 법이 있나?'

절대 아니다. 물론 기해의 중요성에 대해선 두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 말은 중요하다 뿐이지 그 곳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휘 자신이, 단전이 아닌 곳에도 기운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생각에 잠긴 사이 초평우의 도가 장한의 허리를 쓸어 간다. 

순간, 차가운 미소를 머금은 장한의 좌수가 빠르게 거도의 중간을 짚어 가더니, 신형은 한 걸음 앞으로 전진한다.

쩡!

좌수에 잡힌 도가 울음을 터트리며 멈춰 섰다. 

찰나간에 정적이 흘렀다. 

도를 잡힌 초평우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 올랐다. 

도를 좌수로 움켜쥔 장한이 차갑게 웃으며 우수로 초평우의 가슴을 밀듯이 후려쳤다. 

대경한 초평우의 몸이 뒤로 구부러지며 우수를 흘리고, 도를 잡은 손을 비틀어 장한의 좌수에서 도를 빼내었다. 

그러자 흘러나오는 냉랭한 한마디. 

"곰이 재주를 부리는군."

휘익, 장한이 허공으로 몸을 띄우며, 뒤로 자빠질 듯 몸을 구부린 초평우의 가슴을 향해 공중제비를 돌던 그대로 회선각을 내리 찼다.

"흡!"

다급한 신음. 초평우의 몸이 빙글 돌더니, 가까스로 회선각에서 벗어나며 바닥을 두어 바퀴 더 구르다가 벌떡 일어섰다. 

이어지는 장한의 비웃음.

"크크크... 훌륭한 나려타곤이군! 역시 곰새끼가 가진 재주는 구르는 것 뿐인가?"

벌떡 일어선 초평우의 얼굴이 벌겋게 물들었다. 

이를 악물고 장한을 노려보지만 현실은 현실이었다.

'차라리 죽자! 죽어! 초평우야!'

초평우가 부들부들 떨다가 장한에게 달려가려 할 순간, 귓전을 울리는 한마디가 그의 발길을 붙잡았다.

"초형."

멈칫.

"진짜 나려타곤이 어떤 건지 보고 싶소?"

나직하면서도 왠지 등줄기를 땀에 젖게 하는 그런 목소리. 

고저장단도 없는 무감정의 목소리. 지옥사자가 자시에 찾아 와 부르는 소리가 이럴까? 부르르...

저벅 저벅... 

휘가 몸을 떠는 초평우의 곁을 스치며 지나간다. 한풍을 동반하며.

초평우는 처음 보는 휘의 차가운 표정에 오금이 저렸다. 

'왜 저렇게 화가 났지?'

휘는 장한에게 다가가며 싱긋 웃었다. 아무런 온기도 없는 웃음을. 그리고 여전히 나직한 음성.

"우리 아버지가 그랬지. 팰려거든 확실히 패라.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게."

장한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져 간다. 

그러나 뒤에 서 있던 자들의 입에선 대소가 터졌다. 더욱 창백해진 얼굴의 네 명만 빼고.

"하하하!!! 아직 젖을 덜 먹었나 보군. 여기서 아버지를 찾다니! 꼬마야! 가서 아버지를 데려 오지 그러냐?"

휘가 다시 씩 웃었다.

"데려 올 필요는 없어... 내 가슴 속에 묻혀 있거든."

장한과의 거리가 일장이 되자 휘의 걸음이 우뚝 섰다.

"삼살귀라 했던가?"

장한은 뭐라 대꾸하고 싶었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게 전신이 굳어버리는 느낌. 그는 이런 느낌을 전에도 받아 봤었다. 

자신보다 월등한 고수 앞에 섰을 때... 고양이 앞의 쥐가 된 것 같은 그런... 기분 나쁜 느낌.

"나는... 한상귀..."

"초평우는 나와 형제가 되었지. 나는 나의 형제를 비웃는 자에겐 자비를 베풀고 싶은 마음이 없어."

휘가 한 걸음 내딛었다.

"그러니... 이해 해."

장한, 한상귀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몸을 날렸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나 미처 한 걸음을 물러서기도 전이었다. 전신을 싸늘히 식히는 기운이 허공 가득히 덮어 온다. 

"헉!"

한상귀의 입에서 헛바람 빠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휘의 신형이 느닷없이 갈라지더니 자신의 좌우를 동시에 쳐 오는 것이 아닌가!

다급히 쌍수를 휘둘러 휘의 환영을 후려쳤다. 순간.

스르르...

휘의 환영이 마치 안개가 흩어지듯이 사라지고, 자신의 몸은 마치 그물에 걸린 물고기마냥 움직일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오보천환에 이은 천중무가 그의 몸을 짓눌러 버린 것이다.

이어지는 충격.

쾅!

"커억!"

훌훌 날아가는 한상귀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람이 어찌 저리 움직일 수가 있단 말인가?

휘의 눈이 차갑게 번쩍였다. 

한상귀가 일권에 날아가자 뒤에서 멍하니 서있던 자들이 우르르 달려오는 것이다.

휘가 다시 일보를 옮겼다. 

"아버지가 가슴속에서 말하고 있어. 확실히 하라구."

어른거리는 휘의 시형이 다섯으로 갈라졌다.

"엇? 뭐야?"

달려오던 자들이 놀랄 틈도 없이 휘의 환영이 그들 사이를 파고 들었다. 순간, 또다시 늘어나는 환영. 그리고.

퍽! 콰직! 퍼벅!

"으헉!"

"아악!"

"끄억!"

자진해서 몸을 날리는 것처럼 장한들의 신형이 사방으로 튕겨져 갔다. 

개중에는 부러진 다리를 움켜쥔 자. 입으로 피를 토하며 꼬꾸라지는 자. 벽에 부딪혀 정신을 놓아 버린 자. 각양각색이었다.

그나마 도를 움켜쥐고 창백한 얼굴로 서 있던 자가 경악으로 일그러진 표정을 한 채 휘를 바라볼 뿐이다.

그러나 그가 보든 말든, 휘의 신형은 다시 일어서고 있는 자들에게로 움직여 갔다. 

그리고 또 한 차례, 비명이 골목을 뒤흔들었다. 

"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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